우울한 크리스천, 이건 넌센스다!
웃으면 축복이 온다.
가장 행복하고 가장 매력적인 당신을 회복하라!
글을 쓴 동기
이 책을 소개하기 위한 방법으로 누가복음 1장 1~4절을 변용하며 ‘프롤로그’를 시작할까 한다.
“우리 중에 이루어진 ‘예수님의 웃음’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꾼된 자들의 전해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
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는 이것들을 정리하여 모든 인류와 그리스도인
들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기쁨의 원천이 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그 배운 바
의 확실함을 알고 실천하게 하려 함입니다.”
나는 오랫동안 신학을 공부했지만 신학교에서 하나님의 유머나 웃음에 대한 강의를 들은 적이 없었다. 예수님은 과연 웃으셨는가?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어떤 표정으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의 해답을 얻어 보려고 수많은 도
서관과 서점을 오가며 찾아보았다. 감사하게도 외국에서 출판된 몇 권의 책은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책의 대부분
은 가톨릭 신자들이 쓴 책이었다. 엄숙한 의식을 강조하는 가톨릭보다 오히려 복음적 삶을 지향하는 기독교가 ‘예수님의 웃음’에 대해
서 관심이 적다는 것이 의외였고 한편으로는 충격이었다. 단편적으로 쓴 칼럼 정도 밖에는 웃음과 관련된 글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
이다. 물론 유머와 웃음에 대한 주제의 책은 수없이 쏟아져 나왔지만 ‘예수님의 웃음’을 주제로 한 그리스도인의 성경적인 웃음을 다룬
단행본은 아마 이 책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막상 서투른 글 솜씨로 책을 쓴다는 것이 부끄러워 쉽게 결단할 수 없었지만, 내게 주어진 신성한 의무에 성실하고 싶었다. 하나님께서
펜 한 자루 쥐어주시며 내 작은 어깨를 두드려 주신 데는 분명히 엄숙한 사명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먼저 이 책을 쓰게 된
두 가지 동기는 어린시절 보았던 한 장의 그림과 청년시절의 한 사건과 관련된다. 첫 번째 동기는 어린시절 보았던 한 장의 그림에 대
한 기억 때문이었다. 나의 어린시절을 되돌아보면 가장 먼저 어둠 속에서 슬퍼하고 있는 외로운 소년의 모습이 떠오른다. 가슴에 새겨
진 쓰라린 기억들은 세월의 흐름에도 퇴색되지 않고 지금도 생생한 필름으로 되살아난다. 서울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큰형에게 다
녀오시겠다던 어머니는 젊은 나이에 하늘나라로 가셨다. 그때 내 나이가 일곱 살 때였다. 어머니가 떠나버린 자욱한 안개 낀 어린시절
을 회상하면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결핍과 뼛속까지 저미는 외로움 속에서 헤매던 나를 발견하게 한다. 나는 유년시절과 청소년기를
시골에서 보냈기 때문에 기독교 문화나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었다. 고작해야 목사관의 서재에 꽂힌 책들을 허락 받고
읽었고, 출판사에서 무료로 보내주는 잡지를 받아 보는 것이 독서의 전부였다. 처절한 외로움 속에서 슬픔을 전세 낸 듯 살아가던 나의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킬 만큼 큰 영향을 주었던 그림이 하나 있었다.중학교시절 어느 날, 정기적으로 받아 보던 좥샘터좦라는 잡지 표
지에 ‘예수님의 웃음’(Jesus’ Laughing)이라는 그림이 실렸다. 눈은 거의 다 감기고, 하얀 이와 잇몸을 드러낸 채 고개까지 젖히고 통
쾌하게 웃으시는 예수님의 사진을 보고 적잖게 충격을 받았다. 그전에 성당에 다니는 친구가 자랑하듯 보여 준 두꺼운 성화집을 여러
차례 보았던 터라, 그 그림 속 예수님의 이미지가 내 사고의 한 축을 보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책에 담겨진 예수님의 상은 전부 심
각한 표정의 이미지들이었고 머리에는 언제나 빛나는 동그랑땡이 올려져 있었다.
그런데 잡지 표지그림 속의 예수님의 모습은 파란 눈동자에 금발의 머리카락을 어깨까지 늘어뜨려서 근엄함이 깃들고 우수에 가득찬
보편적인 예수님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한순간에 내 안에 각인되었던 예수님의 이미지를 부숴뜨리고도 남을 만큼
파격적이었다. 통쾌하게 웃으시는 희한한 예수상에서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평화를 느꼈다. 나는 그 조그마한 그림을 오려
서 쪽방 모퉁이 벽에 붙여놓고 한참이나 바라보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림을 보면서 점점 “예수님은 과연 웃으셨을까?”라는 의문이
내 안에 커지기 시작했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이런 의문을 가지고 예수님의 웃으셨던 흔적을 찾아 나섰다. 숨겨진 보물을 찾듯이 성경
책을 샅샅이 뒤적이며 웃고 계시는 예수님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드디어 우리를 향하여 유쾌하게 웃으시며 친구처럼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으며, 우리가 웃으며 사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두 번째 동기는 청년시
절에 경험했던 한 사건 때문이었다. 나는 조그만 자취방에서 생활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를 하는 가난한 대학생이었지만 그 시절
은 무척이나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청년의 때에 성령님의 임재를 체험하고부터 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는 많은 상처로 얼룩진 내 영혼
과 연약하기 짝이 없었던 내 육체를 만져 주시며 회복시켜 주셨다. 그때부터 내 얼굴의 표정에는 조용한 혁명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늘
그늘진 얼굴을 하고 다니던 내가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 ‘웃음의 사람’이 되었다. 내 삶에 일어난 기적이요, 축복이었다. 청년시절
섬기던 교회의 담임목사님께서 “형제는 표정이 밝고 늘 웃는 얼굴을 하고 있으니 안내로 봉사하면 좋겠어”라고 칭찬하시며 안내하는
사역을 맡겨 주셨다. 목사님께 칭찬을 받으니 기분도 좋았고 평상시에 하고 싶은 봉사의 자리였기에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였다. 그러
던 어느 주일, 어떤 자매가 교회 입구에서 예배당 안으로 들어오다가 나를 보더니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처음 보는 자매가 나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니 나 또한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한쪽으로 안내한 후에 “자매님! 제가 혹 무슨 잘못이라도 했
나요? 왜 저를 보고 그렇게 놀라시죠?”라고 물었더니 그 자매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자초지종을 내게 얘기해 주었다.
그 자매의 대답은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감당하기 힘든 너무 큰 문제를 만나서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하다가 지쳐서 모든 것을 포기하
고 죽고만 싶었고, 그래서 약국을 돌며 수면제를 사서 죽기로 정한 장소로 가던 중에 자기 앞을 스쳐 지나가는 한 사람을 보았다. 그 사
람의 얼굴은 너무나 행복해 보이더라. ‘저 사람은 무엇이 저리도 좋을까?’라고 생각하며 자기도 모르게 뒤돌아서 그 사람을 바라보고 있
는데 그 사람이 옆구리에 성경책을 끼고 걸어가고 있더라.”
그 시간 이후로 종일 그 자매의 뇌리에는 성경책을 옆에 끼고 기쁨이 충만해서 웃으며 자기를 스쳐 지나가던 얼굴이 떠나지 않고 맴돌
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그래, 교회에 한번 나가 보자. 그 다음에 죽더라도 늦지 않겠지!”라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래서 집에서 가
까운 교회를 선택해서 나왔다는 것이다. 그 아가씨가 나를 보고 놀란 이유는 교회 입구에서 안내하던 내가 바로 ‘행복한 표정으로 지나
가던 그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 좀 쑥스러운 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너무나 기쁘고 감사했다. 그 자매는 그날 바
로 예수님을 영접했다. 그리고 가지고 있던 수면제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예수 안에서 새 삶을 찾게 되었다. 예수님을 만남으로 인해 행
복하고 감격해서 지었던 나의 웃음이 사망 가운데로 빠져가던 한 영혼을 예수님께로 인도했던 것이다. 그 사건으로 인해서 나는 그리스
도인의 얼굴표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그리스도인의 얼굴은 걸어다니는 성경이다”라고 자주 말하곤 한다. 불신
자들은 그리스도인의 얼굴을 통해서 예수님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늘 ‘웃는 목사’가 된 것도, 웃음에 관한 책을 쓰게 된 동기
도 이런 사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독자들을 향한 바람
성경을 여행하다가 성경의 평원에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웃음과 유머를 발견했다. 예수님의 웃음의 흔적을 찾아 공생애의
발자취 주변을 맴돌며 성경 구석구석의 행간을 뒤적이다가 모퉁이에서 반갑게 찾아낸 웃음의 아포리즘(aphorism, 깊은 체험적 진리
를 간결하고 압축된 형식으로 나타낸 짧은 글-편집자주)들을 이 책에 소중하게 담아 보았다. 나는 이 책이 내면의 기쁨을 상실해버린
이 시대 사람들에게 감춰져 있던 예수님의 웃음을 찾아내어 보여줌으로써 그들에게 기쁨을 회복케 하는 영적인 방향타가 되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고난속에서도 웃으셨던 예수님의 웃음의 의미를 깨닫고 독자들의 삶속에 예수님의 웃음이 회복되기를 바란다. 기상학
자 에드워드 로렌츠가 주장한 “중국 북경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뉴욕에서 허리케인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소위 ‘나비효과’
(The Butterfly Effect)가 이 책을 통해서도 나타났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전도자 스데반이 죽어가면서 던진 한 번의 미소의 낚시
줄에 바울이라는 대어가 걸릴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세계를 복음화하는 것은 이렇게 작은 미소로부터 시작되고 이루어진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이 책의 작은 날갯짓이 작게는 우리의 가정과 교회를, 나아가서는 온 민족과 온 누리를 향하여 웃음의 폭풍을 만들어
갔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소망이다.
당신이 이 책을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가다 보면, 예수님께서 웃으셨던 통쾌한 웃음이 때로는 소금처럼, 때로는 설탕처럼 녹아들어가
이전보다 훨씬 맛깔스럽고 매력 있는 삶으로 변화되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웃음이 넘치는 삶을 살아왔던 사람들
도 지금보다 훨씬 더 생명력 있는 웃음이 가득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이 책을 통하여 당신 가까이에 행복과 웃음의 땔감이 널려 있다
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으면 좋겠다. 네잎클로버의 의미가 ‘행운’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세잎클로버의 의미가 ‘행복’임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가까이에 있는 행복을 붙들지 못하고, 행운의 네잎클로버만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읽혀졌으면 하
는 바람이다. 행복이 없다면 행운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심각하
고 침울한 삶을 살면서 그것이 마치 거룩한 삶인 것처럼 착각하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웃음은 소중한 하나님의 선물임을 깨닫
게 해주고 싶다. 그리고 교회 안의 지도자들에게는 새로운 리더십과 인간관을 발견하게 해서 밝고 건강한 교회공동체를 만들어 가는데
이 책이 친절한 안내자가 되기를 바란다.
감사의 글
나는 이 책을 우리 주님 전에 내놓아 지극히 작은 충성의 표로 삼고 싶다. 나는 이 책을 쓰는 동안 예수님과 더욱 친밀해질 수 있었다.
이렇게 친절하시고 유쾌하신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동행할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흐믓하고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남자는 출산
을 경험할 수는 없지만 출산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은 책을 쓰는 일이다”라는 선배 목사님의 조언이 생각난다. 초산인지라 산고가 없지
는 않았지만 이 책의 출산 과정은 매우 즐겁고 행복했음을 고백한다. 미리 예약하지 않아도 내가 찾기만 하면 웃음 가득한 얼굴로 언제
든지 찾아오셔서 만나주시고, 잉태된 아기가 잘못될까봐 세세하게 정기적으로 검진해 주시고, 마지막 출산하는 날까지 기쁨으로 나의
출산을 도와주셨던 위대한 산부인과 의사이신 예수님께 먼저 환한 웃음의 꽃다발을 찬양과 함께 올려드린다. 특히 기도와 격려로 힘이
되어주신 한국강해설교학교 대표이신 박원영 목사님과 늘 기도와 헌신을 아끼지 않으며 밝은 웃음으로 충성하는 서울영광교회의 모든
성도들 그리고 이 책이 나오기까지 옆에서 격려해 준 아내와 시간마다 웃음을 선물해 준 사랑하는 딸 에스더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
다. 끝으로 이 책의 가치를 알고 출판해 주신 토기장이 출판사의 임용수 사장님, 그리고 내 기억 속에 지우로 기억되는 모든 분들께 감
사와 사랑의 말을 전하며 이 책이 출판되는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
- 서울영광교회 목회실에서 박 영 민 -
목차
1. 웃으시는 하나님
2. 웃게 하시는 하나님
3. 예수님의 웃음
4. 웃음의 미학
5. 그리스도인이여, 유머로 무장하라
6. 그리스도인의 기쁨, 어디에서 오는가?
7. 웃어라, 성공이 보인다
8. 행복 처방, 웃음 비타민
9. 웃는 교회, 잘되는 교회
10. 유대인의 웃음
11. 웃음 나라, 하늘 나라
12. 웃음이 넘치는 강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