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계 최강 유대인들의 진짜 재산은 무엇인가
유대민족은 나라 없이 수천 년을 박해당하며 떠돌아 다녔다. 그러나 민족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고 도리어 다른 민족의 몇 배나 되는 지혜와 은총을 받았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
유대인들에게 있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 뿐이었다. 이들은 이것을 고집스레 부여잡았고 이를 그야말로 마음판에 새겼다. (신6:4~9, 신11:18~21, 수1:8)
이는 말씀의 두루마리를 소중히 여기며 정성껏 낭독하는 수준이 아니다.
말씀을 그야말로 통째로 외웠고 이를 주야로 새기며 가치관의 근간을 삼았다.
그들은 주기적으로 회당에 모여 그날 암송하기로한 말씀을 모두 한 목소리로 암송한다. 그렇게 암송하는 시간은 분 단위가 아니라 시간 단위로 이어진다.
상상해 보라. 유대민족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음속에 말씀을 새겨두고, 이를 회당에 모여 한 목소리로 암송하는 모습을.
살아 역사하는 활력과 능력의 근원인 하나님의 말씀이 민족 전체를 덮고 그들을 지켜주고 그들의 영혼을 소성시키며 그들의 앞길을 밝혀 준다.(히4:12)
그들이 세계 최고의 민족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선교나 봉사나 선행등 여러 가지 방면에 힘쓰고 있다. 이 모든 일은 당연히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 사역을 온전히 감당하기 위한 영적 연료가 필요할진데 누구도 이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
그 연료가 무엇이겠는가. 바로 모든 것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 바로 텍스트 형태로 우리 곁에 계신 하나님이다.(요1:1)
한국교회가 그렇게 많은 일을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힘을 잃어가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연료가 되는 말씀이 고갈돼 가는 것을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초창기 이 땅의 초대교회에 있었던 그 강력한 성령의 역사하심을 다시 보려면, 지금의 ‘보통의 모범적인 성도들’이 하는 것처럼 매일 몇 장씩 주기적으로 읽는 정도로는 한참 부족하다.
한국교회 전체에 대대적인 성경암송의 바람이 불어야만 한다.
마치 유대민족처럼 평생에 걸쳐 말씀의 암송을 생활화해야만 한단 말이다.
(이 땅의 초대교회 성도들도 천자문이나 사서삼경을 외우듯 성경을 받아들이자마자 외웠음. 당시엔 그게 당연한 인식.)
정보의 홍수시대. 하나님의 말씀도 그 수많은 정보들처럼 한켠에 놓아두고 필요할 때만 검색해 보려는가? 이는 말씀이신 하나님(요1:1)을 무시하는 짓이요, 기독교인으로서 절대 하면 안 되는 죄악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보가 아닌 하나님 그 자체이시다. 과거 천자문이나 사서삼경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반드시 내 안에 모셔야만 하는 생명의 근원이다.
은혜로운 집회에 참석해 충만한 느낌을 얻는 정도……
이것은 진정한 충만이 아닌, 단지 냄비신앙일 뿐이다.
이런 냄비신앙에 성도들을 언제까지고 머무르게 만드는 것은 목회자의 태만이다.
성전(내 몸)안에 하나님(말씀)의 임재가 희박하고, 등(내 몸)안에 기름(말씀)이 얼마 없는데, 어찌 영의 성장과 권능을 바라는가.
구원은 값없이 얻지만, 권세와 능력은 힘써야 얻는다.
<호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2. 성경암송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 되도록 어려서부터
유대인의 모든 가정은 아이들을 4세부터 13세까지 오로지 성경 암송과 이를 위한 지식을 가르친다. 이것을 부모의 의무이자 민족적 사명으로 여기고 혹독히 가르친다.
그 결과 유대 성인식(바 미쯔바 예식)을 치루는 나이인 13세가 되서는 천재적 두뇌와 훌륭한 절제력을 갖추게 된다.
이렇게 말씀의 아들로 양육된 유대인은 장성할수록 하나님의 더 깊은 영역까지 들어가고, 차원이 다른 통찰력과, 사회적으로도 최고의 성공을 거둔다.
유대인들이 세계의 중심이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민족적 충성이 만들어낸 필연이다.
이에 비해 한국교회의 교육은 어떠한가.
성도들을 교육시키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과 교재가 시중에 많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성경 말씀을 잘 이해시키기 위함이 목적이다.
하지만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말씀이 과연 사람의 이해수준 아래에 있을까?
성경 말씀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의미를 넘어 훨씬 더 깊고 큰 의미를 층층이 감추고 있다. 하나님의 때에 그 감추어진 의미가 성도들의 안에서 단계적으로 풀려 때를 따라 새로운 영적 양식이 되어준다.
기존의 알기 쉬운 프로그램과 교재로는 이런 영적 은사와 생명력을 기대할 수 없다.
성경은 스스로 성경을 증거한다.
성경을 이해하는 가장 효율적인 텍스트는 바로 성경 그 자체다.
이러므로 성경은 한 번 보고 덮는 책이 아닌, 유교경전 따위와 비교가 안 되는, 전심으로 외워야 하는 책이다.
성도 개인의 축복을 위해서, 각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민족의 미래를 위해서…… 되도록 어려서부터 성경을 암송시켜야 한다. 지금처럼 주요 성구를 단편적으로 암기하는 정도가 아닌 유대인들처럼 전체를 암기하도록 해야 한다.
3. 성경암송에 비법이 있는가 - 의미와 숫자의 2중 연상 방식
그냥 단순반복으로 외우는 방법밖에 없는가? 과연 유대인들은 성경을 그렇게 외웠는가?
히브리 문자는 알파벳 자체에 숫자의 의미도 갖고 있다. 알파벳뿐 아니라 단어에도 자체의 숫자 값이 있다.(게마트리아) 이래서 유대인들은 문자의 의미와 숫자 값을 동시에 참고할 수 있다. 성경을 읽음과 동시에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즉, 우뇌와 좌뇌 2중 연상이 가능하다.
이런 2중 연상은 수천 년간 사본 필사에 의한 오류를 방지하는데 도움이 됐다.
(신약성서엔 ‘없음’이라는 절이 종종 등장하지만, 더 오래된 구약성서엔 누락된 절이 없음)
동시에 개인적 차원의 암송에도 직관적인 도움이 된다.
이처럼 히브리어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대에 전하고 암기하는데 특화된 문자이다.
지구상에 히브리어만큼 하나님의 말씀에 특화된 언어는 없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한글이 이에 가장 가깝다.
단어의 음절수(글자수)를 참고하여 암송한다면 히브리어 만큼은 아니어도 그와 흡사한 성경 암송의 이점을 얻을 수 있다. 즉, 한글도 우뇌와 좌뇌 2중 연상이 가능하다.
페이지 하단의 숫자(음절수)를 보고 문장을 떠올리는 방식. 이것이라면 단순반복 방식보다 절반 이하의 노력으로 두 배 이상의 암기효과를 거둘 수 있다.
[출판사 리뷰]
위의 내용을 보신 바, 성경 암송이 아이들의 양육과 성도들의 성숙을 위한 최고의 대안이라는 점을 아셨으리라 믿습니다.
하지만……
그 두꺼운 성경을 언제 다 외우나 싶으실 겁니다.
성경의 두께를 보면서 이걸 다 외운다는 건 엄두가 안 나는 일일 터, 시작을 주저하는 게 당연합니다.(저 역시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생각해 봅시다. 분명한 길을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외면하고, 쉽고 편한 길을 걷겠다는 것이 과연 올바른 자세일까요? 제대로 길을 가려면 언제가 됐든 입구로 돌아와 그 길을 처음부터 걸어야 합니다. 그러니 그 결단은 이를수록 좋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모양의 계시를 따라 각 목자와 성도에게 갈 바를 시의적절히 알려주십니다.
주님은 밤이 새도록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베드로에게 그물을 내릴 방향과 위치를 알려주셨습니다. 그 결과는 기독교인 누구나 알고 있지요.
이처럼 하나님을 따르는 우리는 알려주신 바를 행해 약속된 복을 받음이 마땅합니다. 하지만 지난날의 경험에 비추어 불가능할 것이라고 지레 짐작해 시작도 안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마치 심한 풍랑을 보며 겁을 먹고 바다에 빠져가는 것처럼……
시작이 없으면 결과도 없습니다. 하지만 믿고 시작하면 시의적절한 방법을 따라 일을 ‘할 만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 나중은 폭포수 같은 은총이지요.
아이들이 과연 그 무거운 성경말씀을 재미있어할까 하는 염려도 들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기우입니다. 성경말씀은 활력이 있는데다가 영의 차원에서 송이꿀보다 단 무언가를 사람에게 줍니다.
제 경험을 말씀드리죠. 20대 중반의 젊은 시절, 저는 개척교회를 세우는 전도사 시절을 보낸 적 있습니다. 벌써 20년 전 이야기죠.
신학교를 갓 졸업해 교회사역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던 시절, 제 딴엔 아이들을 잘 양육해 보려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도입해 열성적으로 시도해봤지요. 결과는 그저그런 수준이었습니다. 성장은커녕 매주일 오는 주일학교 학생들 머리수 유지시키는 것도 벅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프로그램도 준비하지 못했던 그날, 저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아이들을 둘러앉혀 국어책 읽히듯 성경말씀을 돌아가며 읽게 했습니다. 초등학생 아이들이 지루해하면 곧 그만두고 같이 놀러나 가자고 생각했던 참이었지요. 그런데…… 아이들이 그치질 않고 계속 읽는 겁니다. 지루해하긴커녕 오히려 말씀에 점점 빠져들어 가더군요. 그렇게 두 달여 성경을 돌아가며 읽는 시간을 가졌고 아이들은 갈수록 더 집중하는 겁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 시간이 재미있다고 하더군요. 제 예상과 많이 달랐습니다.
……그 이후 어떻게 됐냐고요? 다른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바람에 성경 읽는 시간을 더 이상 갖지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제가 많이 어리석었죠. 직접 눈으로 보고서도 말씀의 능력을 깨닫지 못 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돌아섰으니…… 으~~~~~
나이를 먹고서야 생각해 봅니다. 제멋대로 아이들의 수준에 맞춘답시고 다른 프로그램을 운영할 바엔 차라리 순전히 말씀으로만 양육했으면 어떠했을까. 국어책 돌아가며 읽히는 그 방식도 좀 더 다이나믹하게 발표 형식이나 경쟁과 상급의 요소도 집어넣었으면 어땠을까……
여기에 그치지 않고 말씀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게 하는 방법이라면 진정 최고의 프로그램 이었을 텐데……
후회해봤자 이미 지난 일입니다. 저에겐 말이죠.
과거 아이들은 천자문이나 사서삼경을 외웠습니다. 외울 수 있으니 외우는 겁니다. 성경도 마찬가지죠.
그리고 외우는 공부는 입시공부와 다르게 함정이나 속임수 따위의 변별력 평가도 없습니다. 우직하게 외우면 외워지고 그만큼 많이 외웠다는 성취감과 자부심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칭찬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어른들이 있으면 신나서 더 외우고 더 머리가 좋아집니다. 이런 방식으로 지혜의 근원인 하나님의 말씀을 채우면 아이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이에 더해 이전의 단순 반복식의 암기보다 몇 배나 효과적인 암기 기법을 활용한다면 그 효과는 더 극대화될 것입니다.
문장과 숫자를 동시에 활용한 2중 연상법이라면 뇌를 더 광범위하고 효율적으로 쓸 수 있습니다. 그 방법을 알면 간단하지만 효과는 절대적입니다. 유대인 아이들도 히브리어의 게마트리아 방식을 인지해 2중 연상으로 말씀을 암기합니다. 그 효율성은 이루 말할 수 없지요.
이에 그치지 않고 이렇게 성경을 암송한 아이들이 중학교 이상으로 진학할 때, 영어 성경을 추가로 암송시키면 아이의 장래에도 이루 말할 수 없는 득이 됩니다. 한 번 외웠던 장을 영어로 재차 외우는 것이니 지혜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튼튼히 하고, 영어도 쉽게 습득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도 성경암송만 해왔던 유대 아이들이 다른 어느 민족보다 외국어를 더 수월히 익히고 구사할 수 있습니다.
언어는 공부가 아니라 반복입니다. 관계대명사나 전치사의 활용법 따위를 제아무리 공부해봤자 영어는 늘지 않지요. 양질의 문장을 얼마나 많이 암기했는가가 중요합니다. 하물며 평생을 함께할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그 이상의 문장이 없겠죠.
성경 암송은 아이들 뿐 아니라 장성한 성도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성도가 평생에 걸쳐 해야 할 의무이자 축복의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잔소리가 필요 없는 최고의 교육입니다. 어른이 모범을 보이면 아이들은 자연스레 따라오지요.
참고로 제 나이는 46세 입니다. 이런 제가 출판사 업무를 하면서 반 년 만에 창세기 1~9장, 마태복음 5~7장, 시편 1~8편, 19·35·37·41편을 외웠습니다. 그리고 갈수록 암기속도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제 나이에도 이럴진데 아이들이라면 얼마나 더 효과적이겠습니까?
목적이 아니라 과정을 즐기십시오. 성경 암송은 무슨 입시공부가 아닙니다. 진도를 다 나가야만 의미가 있는 시험공부가 아닌, 그때그때 즐기는 진미와 같은 겁니다. 한 장을 암기했을 때 느끼는 그 충만감. 그리고 내 속에 들어온 말씀이 시의적절할 때 떠오르는 그 인도하심의 체험, 말씀이 내 안에서 서로 연결돼 가는 것을 느끼는 지혜의 충만감…… 이는 줄지 않는 빵이며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습니다.
말씀이 순금보다 더 귀하며, 송이꿀보다 더 달다는 말씀은 스스로 체험해봐야 압니다.
저는 과거에 신학대학을 졸업한 젊은 전도사였지만 지금은 출판사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런 길을 걷게 되리라곤 생각 못 했죠. 그것도 성경을 출판하리라곤 꿈에도 생각 못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인도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젠 제가 직접 목회사역을 하진 않지만, 대신 일선에서 목회사역을 하는 분들께 최고의 지원을 드릴 수 있다는 점에 감사드립니다.
저희가 제작한 암송에 특화된 성경 [암송용 성경]을 추천하고 공급해드리겠습니다.
(일단은 시편 한 종류 뿐이지만 추후 연속으로 출간할 예정입니다.)
제 20대 시절, 시골의 컨테이너 개척교회를 섬기던 젊은 전도사는 이제 직접 섬기는 방식이 아닌 개척하는 분을 지원하는 입장이 되어드리겠습니다.
목차
개역개정 성경 시편
1편 ~ 150편 전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