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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한흠 평전

한국 현대 기독교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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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응규

뜰힘

2025년 12월 05일 출간

ISBN 9791197924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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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한흠 목사의 공과功過를 공정하게 읽어 낸,결과적으로 가장 정확한 형태의 명예 회복이라 할 수 있다.❞

― 민경배, 손봉호, 이상규 추천



한 인물의 생애를 살피는 일은 언제나 그 시대를 함께 바라보고 재구성하는 일과 맞닿아 있다. 은보恩步 옥한흠 목사님의 삶도 마찬가지다. 그는 개인적 열정과 신앙적 확신을 가지고 목회의 길을 걸었지만, 그 발걸음은 언제나 당시 한국 사회와 교회의 변화 속에서 형성되었다. 이 평전은 그의 생애를 면밀히 기록함으로써, 한 목회자의 이야기를 넘어 한국 현대 기독교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를 함께 살피려는 시도다. 은보의 사역은 한국 교회가 압축 성장하던 시기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한국 전쟁 이후의 혼란, 산업화로 인한 도시 팽창, 그리고 새로운 교회 성장 모델의 도입 등은 교회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정립해야 했던 중요한 전환기의 모습이었다. 그는 이 시기에 평신도 제자훈련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목회 방향을 모색했으며, 오랜 숙고 끝에 발견한 사역의 모델을 발전시켰다. 이는 그의 독창적 시도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 시대가 요구했던 신학적 과제에 대한 응답이기도 했다. 제자훈련은 그 시대가 경험한 부흥의 동력과 함께 작동하며 은보 자신과 한국 교회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목차


서문



1부자신을 깨운 한 사람, 옥한흠


1장옥한흠의 출생과 성장

한 사람, 옥한흠의 출생

경남 거제 지역의 기독교 신앙

옥한흠의 성장 과정

책벌레, 옥한흠 


2장옥한흠의 신앙 형성

옥한흠의 회심

옥한흠과 학생신앙운동 

옥한흠의 소명 


3장옥한흠의 청년 시절과 결혼

옥한흠의 대학 생활

아내와의 만남과 결혼

옥한흠의 아내, 김영순


4장신학생 옥한흠의 목회 사역 준비

1960년대 후반의 총회신학교와 교수진

옥한흠의 신학 수업과 「신학지남」

옥한흠의 지도력과 경건 생활 



2부평신도를 깨운 광인(狂人), 옥한흠


5장옥한흠의 성도교회 대학부 사역

옥한흠의 좋은 교회에 대한 꿈

제자훈련의 교두보: 성도교회 대학부

교회 속의 제자, 세상 속의 제자

옥한흠의 광인 공식: 미쳐야 미친다.

옥한흠의 멘토 김성환 목사와 평생 동지들 


6장제자훈련 신학화를 위한 미국 유학

칼빈 신학교 유학과 이민 목회

김영순 사모와 세 아들, 그리고 경남 진영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와 한스 큉의 『교회론』 


7장가장 행복한 결정

교회 개척, 강남은평교회

왜 이 교회를?

세 가지 창립 비전

작은 예수 운동 


8장예수의 제자 됨과 제자훈련 목회

제자훈련 목회와 그리스도의 하나님나라 사역

옥한흠의 교회론과 사도성, 그리고 제자훈련

성령 충만과 제자훈련, 그리고 선교적 교회론

옥한흠의 시대 인식과 제자훈련의 당위성 



3부제자훈련의 장인(匠人), 옥한흠 


9장제자훈련 목회에 함께 미쳤던 동역자들

사랑의교회와 초기 부교역자들

여집사 제자들과 옥한흠의 아내

사랑의교회의 전도부인들

사랑의교회의 권서들: 남성들의 제자훈련 


10장제자훈련 목회의 터전들

제자훈련, 현대판 카타콤

제자훈련 목회 현장 리포트, 기도행전

제자훈련 교과서, 『평신도를 깨운다』


11장제자훈련 지도자(CAL) 세미나

『평신도를 깨운다』의 후속타, CAL 세미나

CAL 세미나의 영향과 확산

제자훈련, 전도, 문화명령, 그리고 사회적 책임

제자훈련 목회와 대각성 전도집회 



4부목사들을 깨운 목사, 옥한흠


12장옥한흠의 지도력과 사랑의교회

지도력 형성과 특성

지도력과 공동체

지도력과 확산 


13장옥한흠의 교회론적 비전: 교회의 순수성과 연합 운동

교회론적 비전

예장합동 교단

교회갱신목회자협의회(교갱협)

한국목회자협의회(한목협) 


14장옥한흠과 제자훈련 목회의 선교지향성

제자훈련 목회의 국내외 확산

제자훈련 목회의 사회적 영향력

제자훈련 목회의 선교적 적용 



5부그리스도의 참 제자, 옥한흠


15장은퇴 전후의 옥한흠

참 제자의 길

교회를 위한 선택, 조기 은퇴

오정현의 부임과 그 이후 


16장옥한흠의 한국 교회를 향한 외침

한국 교회를 향한 절규

사랑의교회 설립 30주년

고뇌와 병고 


17장옥한흠의 마지막 투병과 소천

이제는 그 모든 짐을 내려놓아야 할 때

옥한흠 없는 사랑의교회와 한국 교회

소명자는 낙심하지 않는다.





본문 펼쳐보기


옥한흠이 태어난 1938년은 일제의 압제가 더욱 거세지고 있었으며 신사참배 강요를 끝까지 거부하며 버티던 한국장로교회마저 굴복하고 말았던 치욕과 수치의 해이기도 했다. 그때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침략 전쟁이 1931년의 만주 사변을 거쳐 1937년에 일어난 중일전쟁을 통해 본격화되고 있었고, 다시 1941년에 도발한 “대동아전쟁”이라 부른 태평양전쟁으로 확대되고 있었다. 그리고 일제는 식민지 백성 조선 사람들의 전쟁 협력을 받아 내기 위한 갖가지 정책을 강화하고 있었다. 일제강점기의 끝자락에 빈농의 가정에서 태어난 옥한흠은 일제 치하의 민족적 수난기에 개인적으로도 결코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성장했다. 옥한흠은 일제 통치의 잔악성을 실제로 경험하고 피부로 느끼기에는 어린 나이였지만, 그 시대를 처절하게 살아갔던 그의 부모와 전前 세대로부터 창씨개명, 조선어 사용 금지나 이른바 황민화정책 등 여느 식민 지배와는 확연하게 다른 민족 말살을 획책하는 야만적이고 폭압적인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더군다나 장남 옥한흠이 태어났어도 지독한 가난 때문에 그의 어머니는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해 아들에게 젖 한 번 풍족하게 줄 수 없었다.

_‘옥한흠의 출생과 성장’ 중



옥한흠은 초등학교 3학년 시절에 호롱불 밑에서 바느질하는 어머니로부터 느닷없이 마태복음 27장을 읽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의 어머니는 겨우 한글을 읽을 정도의 실력으로 날마다 성경을 들고 정말 열심히 읽었지만 한 장을 가지고 오랫동안 씨름하기가 일쑤였다. 어느 추운 겨울날 오후, 주일 학교에서 성경 읽기 대회를 자주 열어 그날도 성경 읽기를 준비하며 앉으나 누우나 성경을 손에서 놓지 않고 읽고 있었던 아들에게, 어머니가 그런 부탁을 했던 것이다. 그 말씀은 지난주에 들은 주일 설교의 본문이었기에 어머니는 다시 한번 더 듣고 싶어 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판을 받으신 다음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향하시는 말씀을 누워서 읽는 가운데 이상한 느낌이 들어 어머니를 힐끗 쳐다본 순간, 어머니의 뺨에 하염없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고, 조금 후에는 어머니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더 이상 성경을 읽지 못하고 당황해하는 아들을 향해, 감정을 진정시킨 어머니는 “나는 예수님이 나를 위해 그처럼 비참하게 죽으셨다는 사실을 전에는 잘 모르고 있었던 것 같구나”라고 고백했다. 그때의 감격을 옥한흠은 이렇게 기억하며 표현했다.

_‘옥한흠의 신앙 형성’ 중



초등학교 시절부터 옥한흠은 목사들의 설교를 듣는 것을 좋아해서 학교 공부를 소홀히 할 만큼 종교성이 매우 강했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총을 경험한 이후에는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깊이 읽고 숙고하는 혼자만의 시간을 평생 가져왔다. 성경을 읽으며 자신을 깨우고, 진리를 통해 깨우친 바를 세상일로 빼앗기지 않으려고 자기의 마음을 깨우는 일에 매우 민감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강조하며 대환란을 당할 때 살아남아야 한다는 메시지 때문에, 한때는 ‘대환란 공포증’으로 고민하기도 했지만, 이 세상의 일로 영적인 잠을 자지 않으려고 부단히 자신을 깨우는 일은 그 이후에도 여전히 계속되었다. 그는 평생 ‘말세불감증’에 걸리지 않도록 그 자신부터 철저히 깨우는 신실한 자세를 유지하려 노력했다.

_‘옥한흠의 신앙 형성’ 중



대학생 옥한흠은 영문학을 전공하면서 많은 강의를 들었지만, 대학 졸업 후 수십 년이 흘러도 그의 마음에 깊은 자국을 남긴 채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 강의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당시 연세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성균관대학교에 와서 희곡을 가르쳤던 오화섭 교수의 강의였다. 오 교수는 아서 밀러가 쓴 『세일즈맨의 죽음』이라는 유명한 희곡을 강의한 적이 있었는데, 그 강의에 옥한흠은 완전히 매료되었고 예술에 대한 그의 관점이 전적으로 변화되었다. 그가 신앙생활을 시작한 어린 시절의 교회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연극이나 드라마, 그리고 춤 등에 대해서는 아주 부정적인 태도를 취해 왔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 강의를 들으면서 그의 편견을 극복해 갈 수 있었다. 그때의 감격과 흥분을 훗날 이렇게 언급했다. “‘야, 드라마가 이런 것이구나. 음악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예술이라는 것이 이렇게 파워가 있구나’ 하는 것을 그때서야 비로소 알게 된 것입니다.

_옥한흠의 청년 시절과 결혼’ 중



광인 옥한흠이 되면서부터 불행히도 가족들을 돌보는 일은 소홀하게 됐다. 성도교회에서 5년을 사역하는 동안 사택이 남산 밑에 있었음에도, 한 번도 가족들과 함께 남산에 올라가 본 적이 없었다.” 그나마 며칠 되지 않는 공휴일마저 가족들과 보내기보다는 젊은 학생들을 양육하고 변화시키기 위해 기도원으로, 그리고 수양관으로 데리고 다니면서 시간을 보냈다. 제자훈련의 광인 옥한흠은 아내와 아들들과 오붓하게 보낼 시간이 없을 정도로 제자훈련에 철저하게 미쳐 있었다.

_‘옥한흠의 성도교회 대학부 사역’ 중



청년 옥한흠에게 목사로서 귀한 롤 모델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김성환 목사였다. 김성환은 성도교회 담임 목사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나이 40대에 부흥사요 탁월한 설교자로 한국 교계에서 유명 인사였다. 그는 한국 교회에 강해 설교를 본격적으로 선포한 설교자들 중 한 사람이었다. 김성환은 평남 강서 출신으로 고려신학대학교와 경희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한 후, 박윤선 목사가 설립하고 시무했던 서대문 동산교회에서 목회하다가 1972년 성도교회로 부임했다. 그는 영어와 일어에 능통했던 학구적인 목회자로서, 오랜 기간 동안 「기독신보」에 “칼빈주의 해설”이라는 칼럼을 연재했으며, 평신도들이 이해하기 쉽게 다양한 교리들을 해설한 논설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후에는 그의 글들이 모아져 『평신도를 위한 칼빈주의 해설』이라는 책으로 출판되어 한국 교계에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김성환은 칼빈주의적 입장에서 성경관을 비롯한 모든 교리를 일목요연하게 요약적으로 진술할 뿐만 아니라, “기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이 걸어가야 할 정로正路”를 탐색함으로써 “예수님에게로 가는 길”과 “천국으로 가는 길”을 제시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신실한 목회자였다

_‘옥한흠의 성도교회 대학부 사역’ 중



예기치 않게 웨스트민스터 구내 서점에서 그의 눈을 사로잡는 한 권의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책은 개혁 신학자가 아닌 가톨릭 신학자 한스 큉이 저술한 『교회론』이었다. 가톨릭 신학자가 저자라는 점이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개혁 신학을 철저하게 교육하는 신학교 서점에 놓인 책이라면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펼쳐 들었다. 그리고 금방 그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특히 “사도성”에 관련한 부분은 서점 바닥에 앉아 단숨에 다 읽어 버렸다. 이 책의 내용을 살펴본 옥한흠의 마음은 말할 수 없는 기쁨과 감격으로 가득 찼다. 그 책과의 만남은 제자훈련의 신학적 토대를 마련할 수 있는 희망을 가져다준 아주 값진 발견이었다.

_‘제자훈련 신학화를 위한 미국 유학’ 중



개척 목회를 시작하기로 결정한 옥한흠에게는 “한 사람이라도 제자훈련해서 투철한 소명자로 만들면 기적이 일어나겠거니 하는 단순한 믿음”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개척 교회의 장소나 시설, 그리고 여러 외부 요인들을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옥한흠이 개척 교회의 미래가 밝을 것이라고 낙관적으로만 생각한것도 아니다. 교회당은 당시에는 외진 곳이라 할 수 있는 반도 유스호텔 앞의 3층짜리 건물의 2층에 40평 정도를 배기주 목사가 계약함으로 마련되었다. 새로 시작하는 교회의 입지 조건으로는 적합하지 않았고 교통도 불편했지만, 교인들을 바르게 제자훈련하면 된다는 일념에 사로잡힌 그에게는 장소 문제는 그리 큰 고민거리가 아니었다. 주변 여건은 별로 좋지 못했다. 당시 충현교회는 인근 지역에 공사를 하려고 말뚝을 여기저기 꽂아 놓았다. 옥한흠은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충현교회는 충현교회고, 우리 교회는 우리 교회다”라는 마음 자세로 시작부터 당당하게 임했다.

_‘가장 행복한 결정’ 중



옥한흠은 제자훈련을 통해 자신이 먼저 변했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복음과 영혼의 중요성, 그리고 하나님나라의 비전이 있었으며, 그 영향으로 대학생들이 변했고, 후에는 성도들의 변화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공동체적으로도 나타나 대학부나 교회의 영적 체질도 바뀌는 것을 그는 실제적으로 체험했다. 제자훈련을 통해 옥한흠 자신부터 시작된 변화는 그의 목회 사역을 참된 변화의 장으로 만들어 나갔다. 이런 면에서 옥한흠은 우리에게, 참 성도이자 제자는 어떻게 살아가며 사역할지에 대한 좋은 모범을 보여 주었다. 한 사람이자 목회자였고 제자훈련에 생애를 다 바친 옥한흠의 인간성은 솔직하고 투명했다. 이러한 면이 주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으며, 서로 신뢰의 관계가 형성되면 끝까지 교제와 관계를 유지해 나갔다. 그래서 그의 첫 제자들에게 비친 첫인상은 “믿을 만하고 진실한 맏형” 같은 느낌이었다. 옥한흠의 대표적인 특성을 “신실信實하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자신을 드러내거나 대접받는 것을 싫어했고, 그 어떤 과시나 허세도 허용하지 않으려고 했다.

_‘옥한흠의 지도력과 사랑의교회’ 중



옥한흠은 교회의 순수성은 바로 종교개혁자들이 강조한 세 가지의 참된 교회의 표지들과 직결됨을 강조하면서, 먼저 말씀을 옳게 전파하고 가르치는 교회인지, 다음으로 성례를 성경이 교훈한 대로 바로 시행하는 교회인지, 그리고 권징을 바로 하는 교회인지가 순수한 교회임을 드러내는 고귀한 증표들임을 지적한다. 특별히 마태복음 28장 18-20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선포하고 교육해야 하며, 세례를 비롯한 성례를 성경 말씀대로 시행하며, 교인이 말씀대로 살지 못할 때에는 권징해야 한다고 한다. 이러한 표지들이 분명하게 나타나는 교회라면 교파에 관계없이 참된 교회요 순수한 교회가 아닐 수 없다. 물론 교파 간 차이나 교리적 차이를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옥한흠은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본질적인 진리에 어긋나지 않는 이상”, 우리는 각 교회나 교단 간의 상이성은 긍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_‘옥한흠의 교회론적 비전: 교회의 순수성과 연합 운동’ 중



옥한흠은 그의 목회가 절정기에 있을 때, 사역을 마감하고 물러나야 할 시기가 언제일지 모색하고 있었다. 그는 1995년 10월 1일 주일 예배에서 요한복음 강해 설교를 하면서, 목회를 마감해야 할 때 과감하게 그럴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자연스럽게 언급했다. 옥한흠은 세례 요한을 “영적 거인”으로 추앙하면서, 그 근거 중 하나로 “예수 그리스도는 흥하여야 하겠고 자신은 망하여야 하리라”는 자세를 꼽았다. 요한은 그러한 태도를 견지했기 때문에 오실 메시아가 나타나셨을 때 과감하게 자신의 자리뿐만 아니라 그의 제자들마저도 예수께로 보내 드렸다는 것이다. 그러한 요한의 모습에 목회자인 자신의 모습을 투영해 보았다. 그때부터 그가 물러날 때를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이 물러가야 할 때가 되면, 단호하게 행동하겠다고 강하게 암시했다.

_‘은퇴 전후의 옥한흠’ 중



옥한흠이 목회 사역을 마감하기 6-7년경 전에 아시아권 교회들(특히 일본과 중국 등)에 제자훈련 목회가 확산되어질 수 있는 기초가 놓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제자훈련을 국제화하기에 적합한 사람이 그의 후임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대해 이동원은 그의 견해를 이렇게 밝혔다. “앞으로 오정현 목사와 사랑의교회가 직면한 과업은 교회가 글로벌라이즈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옥 목사님이 이 부분 때문에 오정현 목사를 선택한 것이다. 본인은 한계를 느낀다고 하셨다. 그래서 다음 세대 사람이 글로벌라이즈하고 더 그 시대에 맞는 글로벌 디사이플십이 나와야 할 것으로 본다.” 하지만 많은 지인들과 동역자들 중에는 그와 같은 옥한흠의 견해에 이견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많았다. 평신도를 동역자로 삼는 그의 사역 정신에 비추어 보아도 후임자 선정 과정에 그의 영향력이 과도하게 행사된 것에는 비판의 여지가 있다. 평신도 지도자들을 동역자로 삼고자 평생을 목회해 온 옥한흠이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누구보다도 많이 고민하고 기도했겠지만, 자신의 일방적인 견해를 중심으로 성도들을 설득해 나가는 모습은 제자훈련 목회자의 이미지와는 상반되는 측면이 강했다.

_‘은퇴 전후의 옥한흠’ 중



추천의글


박응규 박사의 『옥한흠 평전』은 한국 교회의 대표적 목회자이자 제자훈련 운동의 선구자였던 상재上梓하신 옥한흠 목사의 삶을 세밀하게 기록한 대작이다. 옥한흠 목사의 어린 시절 거제 한촌寒村에서의 성장, 신앙의 형성 과정, 청년 시절, 신학 교육, 그리고 교회 개척과 제자훈련 목회와 정년, 그리고 서거에 이르는 생애 전체를 전기 문학으로 편수한 대저다. 옥한흠 목사는 한국 전쟁 이후 현대 한국 교회를 세계적으로 부상하게 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동시에 순수 소박한 복음적 기독교와 강남 기독교를 형상화한 목회자로 평가되고 있다. 저자는 흩어진 자료들 수집에 있어서 거리가 먼 것을 알지 못하였으며, 글의 조리를 곧게 하고 문장을 읽기에 감동으로 하도록, 골고루 정성을 기울였다. 기도로 시종한 것은 이 문장들이 경건 문학을 방불하게 하는 영험靈驗으로 젖어 있게 하였고, 읽는 동안에 전달되어 오는 감동은 전기 문학의 극치에 이르게 했다. 이런 글을 쓰고 간행한 박응규 박사의 업적이 그의 또 하나의 준봉峻峰이 될 것이고, 우리 교회나 사단史檀에는 보감寶鑑의 묵직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민경배|교회사학자(연세대학교 명예교수)



옥한흠 목사는 한국 교회의 자랑이다. 굴지의 대교회를 이룩했으면서도 그것의 바람직함에 대해서 계속 고민했고, 수많은 사람의 부러움과 존경을 받았으면서도 교만하지 않았고, 성공한 목회자의 표상이라 할 수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의 부족함에 관해 고민했으며, 올바로 설교하기 위해서 처절할 정도로 고민하고 노력한 진실하고 신실한 목회자였다. 그는 모든 목회자의 사표요 한국 기독교 역사에 중요한 목회자로 기록되기에 충분하다. 그의 설교나 강의를 들을 때마다 그가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가를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고, 비록 나이로는 후배지만 존경스러웠던 것이 기억난다. 그의 삶을 매우 상세하게 소개한 책이 나왔다. 박응규 박사의 『옥한흠 평전』이다. 한 인물을 이토록 상세하고 광범위하며 깊이 있게 다룬 경우는 드물다. 그리고 그 어느 부분도 무의미한 지면의 낭비라고 느끼지 못할 정도로 치밀하게 서술했다. 옥한흠 목사에 관해 관심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옥한흠의 어렸을 적 어려운 가정 상황, 결코 순탄했다 할 수 없는 학업 과정, 일생 동안 그를 괴롭힌 건강 문제, 행복한 결혼과 훌륭한 배우자,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좌절과 끊임없이 추구한 완벽함, 흠잡을 수 없는 자기 관리 등을 아주 생생하게 전달해 주고 있다. 그 하나하나가 독자들에게 인상적이고 긍정적인 자극이 될 수 있다. 그 대상의 삶이 충분히 모범적이기 때문에 당연히 긍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일단 세상을 떠난 분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라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적어도 옥한흠 목사가 고심 끝에 대교회를 해체하지 못한 점과 결코 자랑스럽지 못한 줄 알았으면서도 막지 못한 사치스러운 교회 건축에 대해서는 후대의 평이 존재해야 마땅했는데, 이 책이 그 역할을 감당해 주었다. 이는 그의 약점을 폭로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조금이라도 더 온전하게 사역하려고 씨름한 옥한흠 목사의 공과功過를 공정하게 읽어 낸, 결과적으로 가장 정확한 형태의 명예 회복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이 책은 그리스도인들과 특히 한국 목회자들이 읽으면 큰 이익이 될 좋은 책이다. 그리고 읽기 시작하면 쉽게 놓아지지 않을 만큼 재미도 있다.

손봉호철학자(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오랜 외우畏友 박응규 박사의 『옥한흠 평전』을 보니 43년 전 옥한흠 목사를 처음 만난 일이 그려진다. 1982년 2월 18일, 부산 고신대학교 교회문제연구소 행사에 초청받고 부산으로 온 옥한흠 목사는 “어떤 교회가 성장하면 그 교회를 모방하려고 하는데 그것은 최선의 길이 아니며, 자신의 고유한 목회 방식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평신도 훈련이 새로운 목회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목회는 목회자의 일방적 사역이 아니라 평신도와 함께하는 사역”이라고 하면서 “평신도 훈련이야말로 새로운 활로라고 주장”했던 그의 결의와 실천이 이 책을 통해 우리 앞에 목회자의 모범으로 제시되었다. 그때는 사랑의교회를 개척한 지 6개월 정도 되었을 때였고, 『평신도를 깨운다』가 출판되기 약 2년 전이었다. 옥한흠 목사는 40여 년간 오직 한길을 걸어갔고, 부흥했던 한국 교회를 갱신했다. 이 책은 옥한흠 목사가 걸어갔던 자취를 따라 그가 남긴 제자훈련, 평신도 지도자 양성, 교회 갱신, 개혁과 부흥 등 한국 교회 복음주의 운동의 역사와 유산을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박응규 박사는 『한부선 평전』을 통해 전기 혹은 평전 작가로 명성을 얻었고, 이 대작을 통해 다시 그의 역사적 안목, 예리한 성찰, 기술적 능력을 보여 주었다.

이상규교회사학자(고신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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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응규
총신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다. 필라델피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목회학 석사와 신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교회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아신대학교(ACTS)에서 명예교수로 교회사 및 역사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옥한흠 목사의 설교 세계』『한국 교회와 종말신앙』(CLC), 『한부선 평전』(그리심) 등이 있고 역서로는 『이성의 시대』『교리 속 종말론』(그리심), 『페르시아와 성경』『부흥의 계절』(CLC), 『종교개혁과 개혁신앙』(크리스챤출판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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