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통해
성경에서 말하는 언약을 쉽게 정리하길 기대하며...
[저자서문]
저자는 캐나다의 개혁신학교와 개혁교회를 섬기는 목사님들의 글에 많은 매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한 세기 이상 가장 이슈가 되었던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그들이 오랫동안 논의하고 정립한 원안은 불분명하거나 모호하지 않은 오히려 명료하고도 분명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그들이 칼빈의 성경주해를 정확하게 숙지하고 있으며, 그 내용에 정통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시무하는 덕일교회와 동남아지역에서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언약에 대해서 공부하고 가르쳐오면서, 이를 좀 더 효율적으로 우리 교회와 선교지에 적용하며 알려야겠다는 확고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제까지 살펴본 내용들을 다시 문답형태로 정리하여 본서를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다소 민감한 주제이다보니, 혹시라도 생길지 모를 오해의 여지를 없애기 위해 독자들이 원 저자의 신학적 주요 용어들을 직접 접할 수 있도록 안내하였으며, 그 출처를 분명히 하기 위하여 부득불 원문을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출처가 기록되지 않은 것은 저자가 따로 기술을 하였습니다. 또한 필리핀이나 인도와 같이 신학적인 환경이 현저히 열악한 곳의 사정도 고려할 필요가 있기에, 영어권 현지에서 가르치는 분들과 배우고 있는 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영어로 주요한 내용들을 정리하였습니다.
무엇보다 교회가 믿음의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개혁주의 신앙을 바르게 전수하려면 은혜언약에 대한 성경적인 바른 이해로부터 출발하여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처럼 은혜언약을 피택자와 맺었다고만 가정하면, 성경의 가르침이나 개혁주의 일치신조와는 다른 길을 가는 것입니다. 언약에 있어서 그러한 신학적인 주장이 왜 잘못되었는지 밝히기 위해 요한 칼빈, 스킬더, 판 헨더렌, 헤인즈, 피터 릴백 그리고 리차드 개핀의 글들을 본서에서 잘 요약하고 있습니다,
본서를 차근차근히 성도들과 함께 공부하다 보면 개혁주의 교리 체계를 규모있게 정립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신, 구약 성경 말씀에 대하여 좀 더 귀를 기울이게 되며, 그 이해의 폭이 넓어지리라 기대합니다. 한국 장로교회와 개혁교회는 칼빈의 성경해석을 가장 성경적인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이 언약의 교제가 성도를 온전하게 하며 이를 통해 온 교회가 진리 가운데 공고히 서 나가는데 일조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해를 돕는 글
언약에 있어서 주요 이슈가 되는 것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언약의 당사자가 누구인가? 선택이 언약을 주관하는가? 선택은 언제 세워졌으며, 언약은 언제 세워졌는가? 언약의 구성 요소는 무엇인가? 은혜언약에 있어서 그리스도는 머리가 되시는가? 라는 점들일 것입니다. 이 중에서 언약의 당사자에 대한 바른 성경적인 이해가 우선 되지 않으면 잘못된 이해를 가져오게 됩니다.
1. 언약의 당사자는 구약에 있어서는 아브라함과 그의 자연적인 후손입니다(창 17:7). 신약에 있어서는 신자와 그의 자녀들입니다(고전 7:14, 행 13:33). 이를테면 창세전의 택자만이 아닙니다.
이에 대한 첫째 증거 구절로써 창세기 17:7절을 들 수 있습니다.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라는 구절에 대한 칼빈의 주해는 명백합니다. 지금 그분의 선택이 여기서 지적되고 있다고 생각하며, 모든 믿는 자들이 무작정 다 포함되고 있다고 말하는, 말하자면 육신을 따라서 어떤 백성들로부터 그들이 출생하였든지 상관이 없이 믿는 자들을 모두 함축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속고 있는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연적으로 출생한 아브라함의 자손들과 언약을 맺으셨다는 것 이상으로 확실한 것은 없다. 이를테면 은혜언약을 선택자와 맺었다고 하거나 모든 믿는 자들이 무작정 다 포함되어 있다고 하는 자들은 속고 있다는 것을 칼빈은 분명히 말합니다.
둘째 증거 구절로써 사도행전 13:33절을 들 수 있습니다. 칼빈은 다음과 같이 주해를 합니다. “바울은 틀림없이 거룩한 조상들에게서 태어난 혈육의 자손들을 두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뭐든지 비유적으로 해석하는 광신자들은 이것을 꼭 믿음의 후손들로 보려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허구를 통해서 ‘나는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창 17:7)는 하나님의 성스런 언약을 무의미하게 만들 뿐이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는 것은 믿음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는 정반대로 아브라함의 육신적인 자손들도 그들이 자신들의 불성실로 스스로 끊어져 나가기 전에는 하나님의 영적 자녀로 보아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칼빈은 여기에서도 은혜언약의 대상은 혈육의 자손이며, 믿음의 자손들로 비유적으로 해석하는 자는 광신자들이라고 합니다. 이는 성스러운 언약을 무의미하게 만들 뿐이라고 합니다. 칼빈의 이러한 바른 해석과 지적을 주목하지 않음으로써 오늘날 교회는 언약에 대한 관심은 물론 언약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이는 성경 해석에 관한 문제만이 아니라, 참된 교회와 구원에 있어서도 참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칼빈의 해석과 달리, 오늘날 교회들은 은혜언약을 창세전에 택자와만 맺었다고 주장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에 속한 택자와 맺었다고 가정하면 선택과 은혜언약을 동일시해야 합니다. 그럴 경우 세례는 가정된 선택과 가정된 중생을 전제로 해서 주어야 합니다. 칼빈은 일반적인 선택과 제한적인 선택으로 구별합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과 맺은 언약은 일반적인 선택이며, 제한적인 선택은 창세전에 삼위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일정수의 사람들이 특별한 특혜을 받아 최종적인 믿음으로 확정되어 양자됨이 유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속언약과 은혜언약은 구별되며 동일한 수가 아닙니다(칼빈의 사도행전 13:3, 로마서 9:6,7절 주해).
만약 구속언약과 은혜언약이 동일하며 그리스도와 그에게 속한 택자와 맺었다고 가정하면, 당연히 언약에서 조건이나 인간의 책임이나 하나님의 진노를 언급해선 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창세전에 택자는 결코 하나라도 잃어버린바 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은 아브라함 카이퍼가 주장한 바와 같이 모두가 예수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그에게 속한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언약 백성이 언약을 파했다(렘 31:32)고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언약을 파한 당신의 백성들을 제하셨다고 합니다(왕하 17:15,18).
2. 은혜언약을 구속언약과 구별하지 않고 택자에게 기반을 둔다면, 세례의 대상자는 모두 택자여야 합니다. 유아들이 택자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 카이퍼의 가정적인 선택론과 가정적인 중생론이 자연적으로 생겨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유아 세례를 베풀 때, 우리의 자녀들이 언약에 속한 것을 가정하여 세례를 주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가정적인 선택과 가정적인 중생을 한 것으로 여기고 세례를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언약의 약속들을 누구에게 거짓으로 주신다거나 중생을 가정해서 주시지는 않습니다. 성경은 어디에서도 우리의 삶을 어떤 가정하에 세워가라고 하지 않습니다.
3. 구속언약은 성부와 성자 간에 동등한 협약이나 은혜언약의 당사자는 삼위 하나님과 신자와 그 자녀들입니다. 이는 동등하지 않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신자의 맞은편에서 한편 당사자로서 임하시는 것입니다. 삼위 하나님께서 일방적이고 무조건이며 영원한 언약을 약속합니다. 그에 대한 반응은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신 것이 아니며, 회개와 믿음은 책임 있는 당사자로서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의 몫인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짊어지신 죄들은 이미 완전히 속죄되었습니다. 더 이상 이 죄들에 대해서 처벌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범한 모든 죄가 자동적으로 정결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고린도전서 1:2에 보면 고린도의 신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자신들을 살피는데 실패함으로 약한 자, 병든 자, 잠자는 자들이 있었습니다(고전 11:30). 요한계시록 2:5에 보면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회개를 요청합니다. 이와 같이, 성경은 선택과 언약을 동일하다거나, 선택이 언약을 주관하는 것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언약적 특색을 상실하고 믿음과 회개가 설 자리를 잃게 됩니다.
4. 언약과 선택은 수적으로 같지 않습니다. 선택은 창세전에 하나님의 은밀하고 오묘한 일에 속하며, 나타난 언약은 시간 안에서 우리와 우리 자녀들에게 속한 그 분과의 관계입니다. 선택은 불변하며 법령과 같으나, 언약은 죄성을 지닌 인간에 의해서 파괴가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창세전에 선택하십니다. 택자는 아무도 하나님의 목적에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약 안에 들어 있는 많은 사람들(롬 9:4), 왕국의 많은 자녀들(마8:12), 언약의 자녀들(행 3:25)이 버림을 받게 되리라는 것도 인정합니다. 본 감람나무 가지들이 아낌을 받지 않았으며, 일부는 포도나무에 거하지 않습니다(요 15:6). 우리에게 남겨진 약속이 있을지라도 미치지 못할 자들이 있으며(히 4:1),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떠나가는 자들이 있으며(히 4:12), 불신 때문에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들이 있습니다(히 3:19). 언약의 위반(렘 31:32)과 언약의 모독(말 2:10)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언약의 모든 자녀들이 하나님과의 교통에 참여하거나 중생의 영을 다 허락받지는 못합니다. 이들 중에는 아무도 택자로 인정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선택과 언약, 구속언약과 은혜언약을 혼돈해서는 안되며 구분해야 합니다.
5. 예언자들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의 일원이라고 확신했습니다(렘 3:14, 31:9). 또한 사도행전 3:25에서 십자가에 주님을 못 박아서 죽인 이스라엘 백성을 ‘언약의 자손’이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3:3에서 그들이 비록 믿지 아니하였을지라도, 언약들이 그들에게 있었다고 했습니다(롬 9:6 칼빈 주해). 열왕기하 17장 15절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세우신 언약을 버려서, 여호와께서 심히 노하사 이스라엘을 그 앞에서 제하셨다(18절)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에스겔 16장에서 그들이 모두 그의 자녀들이라고 증거합니다(롬 9:6절 칼빈 주해). 로마서 9:4절에 사도는 유대인들을 그리스도의 저주받은 자로 전하면서 사도바울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양자로 입양되었고, 영화롭고, 언약을 소유했으며, 율법을 받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약속을 지녔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이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이스라엘에 대해 그가 베푼 관용을 드러내 보이려는 데 있다기 보다는 그들에게 하늘의 기업에 대한 약속, 양자의 권세, 구원 약속이 예외 없이 제공되었으며 할례의 표징으로 확증되었으나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배은망덕하게 하나님의 양자되는 것을 거부하여 그들 가운데 차이가 생겨나게 된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롬 9:4-6 칼빈 주해). 그리고 나서 사도바울은 유대인의 멸망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효화 한다는 뜻이 아니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행하신 일에 대하여 후회하지 않으시며 나타난 뜻과 비밀한 뜻 가운데 역사를 운영하십니다.
6. 택자가 은혜언약의 대상자라고 한 아브라함 카이퍼는 언약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중생했으나 아직 그리스도 안으로 접붙임을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스마엘과 에서가 할례를 받아 언약 백성이 되었음을 알려줍니다. 그들은 이삭과 야곱과 동일한 약속을 받았습니다(롬 9:4).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생의 영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언약의 자녀는 부모의 신앙으로부터 모태 신앙으로부터 세례를 통하여, 전도나 설교를 통하여 언약백성이 됩니다. 그러나 언약의 회원이 되는 그 자체가 중생의 영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하나님으로부터 양자됨과 생명의 일방적인 약속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약속 그 자체가 구원을 자동적으로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저들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지 모릅니다(히 4:1).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실제로 그러한 약속을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믿음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약속은 이스마엘이나 에서뿐 아니라 옛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목차
1. 언약의 실체 문답 1, 38, 291, 292, 293
2. 언약의 구성요소 문답 2, 301, 302, 306, 312
3. 역사속의 한 언약 문답 5, 11, 13, 308, 317
4. 언약의 당사자 문답 14, 18, 37, 37-1, 179,
180, 339, 340, 341
5. 언약 당사자의 동등성 문답 19
6. 은혜언약의 표징 문답 15
7. 은혜언약의 내용 문답 16
8. 은혜언약의 회원이 되는 조건 문답 17
9. 모든 언약회원과 은혜의 약속 문답 20, 351
10. 약속과 요구의 관계 문답 21, 306, 353, 354, 355, 357
11.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의 성취 문답 356
12. 은혜언약의 성격 문답 24, 299, 300, 301, 302
13. 일방적인 언약과 유아세례 문답 25, 322, 329
14. 창조 전 선택과 은혜언약 문답 30, 31
15. 언약의 대상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와 택자 문답 33
16.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인 유대인과 언약의 자손 문답 34, 35
17. 선택과 언약의 구별 문답 37, 291, 294, 346, 347
18. 구속언약과 은혜언약의 구별 문답 37-1, 348
19. 세례와 구원의 표징 문답 42
20. 세례와 사랑의 요구 문답 43, 44, 57, 63
21. 언약적 진노 문답 47, 74, 75, 303, 311, 312
22. 언약적 조건 문답 48, 49, 72, 73, 81,
198, 306, 315, 357
23. 선택이 언약을 주관하는가 문답 51, 52, 313, 315
24. 언약이 창조 후에 생긴 이유 문답 295
25. 은혜언약에서 그리스도의 위치 문답 76, 77, 80, 319, 320
26. 언약 유지의 조건과 구원의 조건 문답 81
27. 알미니안의 언약적 조건 문답 82
28. 언약적 의무는 율법주의인가 율법폐기주의인가 문답 83, 84, 85
29. 조건적 언약 유지는 인간의 공로나 노력을 의미하는가 문답 86, 87
30. 모세언약은 아브라함 언약을 폐기하는가 문답 92
31. 율법과 아브라함 언약은 반대되는가 문답 93, 94, 95, 96,
97, 98, 99, 102
32. 에서가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은 비택자이기 때문인가 문답 100
33. 사도 바울이 율법을 반대한 이유가 무엇인가 문답 111
34. 하나님의 주권과 우리의 책임 문답 35, 297, 349
35. “이삭을 통하여 난자라야”(영적 후손) 문답 317, 339, 340, 341
36. 예수 그리스도는 은혜언약의 머리인가 문답 165, 170, 171, 172, 173, 250
319, 320, 321, 323, 343
37. 구속언약과 율법의 요구 문답 176
38. 은혜언약과 택자 문답 304, 306, 321, 322, 359, 360
39. 칭의의 시작과 그 계속적 과정 문답 196, 273, 274, 278, 279,
280, 282, 284, 285, 288
40. 일반적 선택과 제한적 선택 문답 248, 250, 257
41. 언약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 문답 226, 227
42. 회심과 신인협동 문답 236
43. 중생의 시작과 연속성 문답 124, 238, 239, 240,
241, 242, 243, 244, 256
44. 중생의 영과 일반 선택 문답 251, 258
45. 그리스도의 연합과 이중은혜 문답 267, 268, 362
46. 칭의와 구원의 충분조건 문답 269, 270, 271, 272
47. 언약을 훼손함 문답 296, 297, 303, 361
48. 내적언약과 외적언약 문답 303
49. 택자만의 언약이 존재할 수 없는 이유 문답 304, 313
50. 믿음을 통한 약속 문답 305, 306
51. 약속과 언약의 본질 문답 312
52. 삼중 접붙임 문답 324
53. 가정적 중생과 가정적 선택 문답 325, 328, 330, 331, 335
54. 구속언약과 은혜언약이 구별되어야 할 이유 문답 348
55. 언약에 대한 잘못된 오해의 결과 문답 350
56. 믿음이 없이 처음부터 약속이 성취되고 실현되는가 문답 351, 355
57. 언약 요구의 성취와 약속 문답 352, 353, 356
58. 복음의 순서를 뒤집는 주장 문답 360, 361, 3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