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어떻게 읽을 것인가 - 신앙의 이름으로 포장된 욕망의 시대
전성민 | 성서유니온
15,000 13,500원
모세오경 장별연구 1 (창세기 출애굽기)
유도순 | 머릿돌(도)
13,000 11,700원
출애굽기 주석
빅터 해밀턴 | 솔로몬(도)
50,000 45,000원
(베이커 구약 개론 시리즈 1) 오경 개론 (2판)
빅터 해밀턴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25,000 22,500원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한의택(2) | 예루살렘
12,000 10,800원
여호와의 날개 아래 약속의 땅을 향하여
김지찬 | 생명의말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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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과 함께
이상환 | 도서출판 학영
19,000 18,050원
[개정판] 성막
M.R. 디한 | 생명의말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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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바이블 욥기
송민원 | 감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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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쉠 예슈아 3
조하놐(창헌) | 기독교문서선교회(CL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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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적용과 실천
김완섭(2) | 도서출판 개혁과회복
20,000 18,000원
출애굽기 적용과 실천
김완섭(2) | 도서출판 개혁과회복
19,000 17,100원
레위기 적용과 실천
김완섭(2) | 도서출판 개혁과회복
14,000 12,600원
민수기 적용과 실천
김완섭(2) | 도서출판 개혁과회복
17,000 15,300원
신명기 적용과 실천
김완섭(2) | 도서출판 개혁과회복
17,000 15,300원
사사기서는 여호수아 사후에서부터 사무엘에 이르기까지 약 350년 동안에 이스라엘의 암흑기 역사를 보여줍니다. 출애굽 지도자 모세가 죽고, 가나안 정복사에 지도자 여호수아도 죽게 되었을 때 이스라엘 급속히 죄악에 빠지게 되어 타락하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이방 강대국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징계하게 되어 백성들은 고통을 받게 됩니다. 그때마다 “사사”들을 세워 백성을 구원하십니다. 이러한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 사사기의 역사입니다. 사사기의 저자는 분명하지는 않지만 대체로 사무엘이 저자로 추정합니다.
유대인의 탈무드에서는 사무엘이 사무엘 전후서와 룻기서, 또한 사사기를 쓴 저자로 주장합니다. 또한, 초대교회 교부들의 전승에 의하여서도 사무엘이 사사기를 기록했음을 말합니다. 사사시대에 있어 이스라엘을 괴롭힌 대표적 이방 나라는 군사적 강대국 블레셋이였습니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이 시시때때로 범죄로 인해서 이방 나라로 통해 징계를 받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결코 외면하시지 않으시면서 그들이 탄식과 하나님을 향한 구원의 호소를 들어주십니다. 사사들로 통하여 백성을 구원해주시는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이 타락할 때에 이방인 손에 붙여 고통을 당하게 되나 다시 회개하면 사사를 통하여 다시 회복케하시면서 하나님을 바로 섬기도록 기회를 주시고 계시다는 하나님의 “은총”을 보여줍니다.
여호수아 사후에
삿1:1-7
1:1-3:6은 사사기서론 해당합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 아직 미정복상태로 남아있던 가나안 땅에 대한 정복사실을 소개합니다. 막상 여호수아가 죽고나서 그를 이을 적당한 후계자가 없는 것이 이 정치적 상황이였던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자신의 직임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평안한 죽음을 맞이했지만 그가 없는 이스라엘 백성은 주변 가나안 원주민들로부터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 중에 이스라엘은?
1. 하나님께 질문을 합니다. 1절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 여호수아 사후에도 이스라엘 장로들과 백성들은 신앙심이 있었습니다. 아직도 가나안 땅에는 미정복지와 잔존원주민들, 그리고, 그들의 우상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을 제거하는 것이 당면한 가장 시급한 문제인 것입니다. 이일을 의논하기 위해 모였고 하나님께 그 뜻을 물은 것입니다. 하나님께 묻는 방법은 우림과 둠밈을 통한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주로 대제사장들이 우림과 둠밈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했는데 (축 28:30, 민27:21, 삼상28:6) 이와 같은 방법으로 구하였을 것입니다.
우림과 둠밈은 구약시대 초기에 하나님의 뜻을 묻는 신탁(제비뽑음)도구입니다. 대제사장들이 이 기구를 흉패 안에 넣어 재비뽑는 형식으로 가,부의 문제를 해결했던것입니다. 이 기구의 모양과 재료 등은 잘 알 수 없으나 아마도 매끈할 돌, 혹 금속으로 만든 일종의 주사위같은 모양일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선지자들의 예언활동이 증대됨에 따라 점차 그 필요성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과 같은 은혜시대에 있어서는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위해 기도와 성경 말씀의 계시, 성령의 조면을 통하여 인도하심입니다.
2. 하나님의 답변이 있습니다.
2절 “...유다가 올라갈찌니라...”
사사시대 전반적으로 되풀이 되던 극심한 타락상과는 달리 그래도 사사시대 초기에는 여호와 신앙이 유지되었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여호수아 사후에도 하나님께 장래의 일들을 여쭈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 유다가 올라갈 것을 말씀합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지파들 중에 유다지파의 수효가 가장 많았기 때문입니다. (민:27, 26:22) 그러나 보다 근본적 이유는 야곱의 예언(창 49:8-12)을 통해 유다 지파가 이스라엘 중에 가장 탁월한 직위를 차지하리라 축복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유다지파에게 우선 출전 명령은 과거 여호수아에게 주었던 것과 같이 (수:13-4) 승리의 약속도 주고 있는 것입니다.이는 개인의 생명과 더불어 모든 국가의 장래도 곧 하나님의 주권 하에 놓여 있음을 보여주므로 범사에 일들을 항상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순종해야함입니다.
3. 유다가 시므온 지파에게 연합을 요청합니다.
3절 “유다가 그의 형제 시므온에게 이르되... 나와 함께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자... 이에 시므온이 그와 함께 가니라” 유다지파는 형제지파 시므온지파에게 가나안 미정복지를 위해 함께 출전하여 싸우자 제안합니다. 이 요청에 대하여 시므온의 함께 출전하겠다고 대답합니다. 시므온지파는 유다지파의 기업 중에서 자기의 분깃을 나누어 받았기 때문입니다. (수19:1-9) 그러므로, 시므온 지파는 유다지파와 행동을 같이 자신들의 기업을 더 얻을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므온 지파가 기업을 유다지파 가운데에서 분깃을 나누어 밖에 된 까닭은 과거 시므온이 자기 누이 디나가 세검추장에게 강간당하자 이에 복수로 과도하게 살인을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창34:25-29) 이 일로 야곱은 시므온 지파에게 징벌로 이스라엘 지파 중에 흩어질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창 49:5-7) 이 예언은 그대로 성취되었고 가나안 정복직전에 실시한 인구조사 때에 (민 26:14) 그 수가 가장 적었을 뿐 아니라 모세의 축복 명단에서도 제외된 것입니다.(신33장) 그 결과 시므온 지파는 독립된 기업을 받지 못하고 유다 지파의 기업 중 일부만 자신 몫 차지하게 되었으므로 (수19:1-9) 더 기업을 얻을 수 있을 뜻으로 유다 지파와 유기적인 협력관계를 바랬던 것입니다. 이로 보건대 사사시대 초기 당시는 사사시대 말기적 현상과 달리 이처럼 지파간의 관계가 돈독했을 뿐 아니라 함께 가나안 정복에 대하여 뜻을 같이 할 수 있음은 실제 똘똘 뭉치는 형제우애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형제 모습입니다. 롬 8:28에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사자 삿2:1-5
이스라엘 지파는 가나안 땅을 분배받았습니다. 오랜 세월을 염원하던 약속의 땅입니다. 그러나, 그 땅의 원주민들 중에 잔존한 사람들로부터 점차 그들의 우상 숭배와 도덕적 타락에 젖어들어 간 것입니다. 곧 하나님을 등을 진 배교의 행위이며 이에 따라 하나님의 책망이 나타납니다. 이스라엘 지파의 사람들은 가나안 정착 후 얼마되지 않아서 가나안 종교를 받아드렸습니다. 곧 바알과 아스다 돗을 신봉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약해져갔고 언약을 저버린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의 사자는?
1. 언약을 버림에 대하여 책망합니다.
2절 “너희는 이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며 그들의 제단들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든지 아니하였으니...” 가나안 종교인 바알신은 농업신으로 풍요와 다산의 신입니다.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을 마련하여주며 자손의 번성올 해 주시는 신으로 비를 내려 달라고 기우제를 드린 것입니다. 또한, 아스다롯은 이스라엘 지파에게 대대로 미혹하며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게 하던 이방여신으로 가나안 원주민들에게 성행했습니다. 이에 이스라엘 지파는 가나안 땅에 거주하면서 그들의 신에 미혹된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풍요신은 현실적인 생활상이였기 때문입니다.
2. 고통이 따름을 예고했습니다.
3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이 표현은 이스라엘이 대적 가나안인들로부터 입은 상처와 고통이 괴로움을 의미하는 것들임이 분명합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인들의 우상 제단을 훼파하지 아니하고 용납할 경우에 겪게 될 비극입니다. 즉, 사냥꾼의 올무에 빠져든 새가 발버둥치면칠수록 더욱 더 올무에 얽히는 것과 같이 이 세상 향락과 유혹에 빠져 현실주의, 인본주의로 살게 된다며 그 결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파멸과 슬픔 뿐이라는 것을 알고 경계해야 합니다.
3. 백성이 소리높여 웁니다.
4절 “...백성이 소리높여 운지라.”
여호와의 사자의 예언을 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말씀에 애통하며 우는 것은 아직은 영적 감각이 예민한 증거입니다. 아직은 가나안 정착 초기임으로 여호수아와 장로들의 신앙이 계속적으로 영향이 있었던 것입니다. 다행스러운 영적각성입니다. 그들은 예언의 책망을 듣고서는 죄악을 뉘우칩니다. 자신들의 죄악으로 인해 닥칠 하나님의 책망과 재난에 두려워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죄를 지적받자마자 회개한 것은 다행스럽지만 그들의 회개는 오랫동안 지속되지 못하는데에 영적 생활에 문제가 있습니다.
웃니엘(1대)
삿3:1-11
여호수아 사후에와 동시대를 살았던 장로들이 죽은 후 전쟁을 알지 못하던 신세대에 사람들이 지난날 승리를 주시고 가나안 땅을 허락하사 향유하게 하시었으나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을 남겨둔 소수의 가나안들로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게 하시고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오도록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방인들의 딸을 아내로 삼았던 것은 하나님의 금지 조항을 저버리고 통혼한 것입니다. (6절) 또한, 이방인들의 신을 곧, 가나안신 바알, 아세라, 아스다롯에 미혹되어 숭배하게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7절) 그 결과
1. 메소포다미아에게 8년동안 지배당하게 된 것입니다. 8절 “여호아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포다미아 왕 구산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메소포다미아는 두강사이라는 뜻으로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사이의 광대하고 비옥한 초원 지역을 가리킵니다. 구산리사다임은 아마도 이스라엘이 그에게 붙여준 칭호인 뜻합니다. 하나님은 진노하사 그의 손에 파셨다는 것은 “항복..하게하여 지배하에 놓이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극심한 고통 속에서 그 고통을 참지 못하고 하나님을 찾게 된 것입니다. 그 고통 중에서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합입니다. 또한, 그 고통의 원인이 이방 우상 숭배의 죄를 깊이 회개하고 그 잘못을 돌이키는 기도를 하게 됩니다.
2. 웃니엘을 통해서 구원하도록 세우심입니다. 9절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게 하시니...“ 사사(구원자) 웃니엘은 누구인가? 삿1:13절을 참고하면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입니다. 그는 갈렙의 딸 악사를 아내로 맞이한 사람입니다. 곧, 웃니엘은 갈렙의 조카입니다. 즉, 웃니엘이 드빌을 정복하고 악사를 맞이할 때에 갈렙의 나이는 85세였습니다.(수14:10) 갈렙과 웃니엘은 숙부와 조카사이입니다. 웃니엘은 혈기 왕성한 젊은 용사였으며 가나안 정복드빌을 점령했던 것입니다.
3. 여호와의 영이 충만한 자입니다. 10절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사사 웃니엘은 민족과 동족을 구원합니다. 무엇보다도 그에게 하나님의 영이 충만히 임하십니다. 곧, 하나님이 신대적 특별한 소명과 능력이 주어진 것입니다. 여기서 특별한 소명이란? 이스라엘 백성을 ”구산..으로부터 권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호 간 송사를 지혜롭게 다스리는 것도 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능력이란, 그러한 소명을 잘 감당할 수 있는 힘을 가리킵니다. 웃니엘은 믿음의 용기있는 사람이면 성령이 충만한 사사입니다.
에후(2대)
삿 3:12-23
사사 웃니엘이 죽은 후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합니다. 그 동안 40여년에 걸친 평화로운 세월을 구가하는 동안 점차적으로 신앙적 안일과 나태, 우상숭배 유혹에 물들어 가게 된 것입니다. 이때 모압왕에 글론을 통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지배하고 괴롭히기를 18년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에글론은 암몬과 아멜렉과 연합합니다. 모압족속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첫딸과 근친상간에 의해 태어난 후예들입니다. (창19:30-39) 그리고 이들은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하였고 이스라엘을 유혹하여 우상 앞에서 음란히 행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민23:11,24:10) 암몬족속은 롯과 둘째 딸 사이에서 태어난 후예들입니다.
모압족속과는 형제국이 되며 역시 역사상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괴롭혔습니다. 아메렉족속은 에서의 손자인 아메렉을 조상으로 하는 족속이며 사사시대동안 미디안과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괴롭혔으나 기드온에게 전멸당하는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족속입니다.(사6:1-7:25)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갖고있는 연합군이 이스라엘을 괴롭힙니다. 이때, 사사 에훗을 세우십니다.
1. 하나님이 사사로 세운자입니다. 15절“...여호아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우셨으니...”2대 사사는 베냐민 출신 예훗입니다. 당시 베냐민 지파 지역을 모압이 지배하고 여리고성읍을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예훗은 자신 지파가 분배 받은 성읍을 모압에 글론왕이 다스리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의 지배 속에 고통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택하시어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하여 부르신 자입니다. 곧, 그는 투철하게 솜병의식이 있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이를 보건대 하나님은 어느시대이든지 소명의식이 있는 믿음의 사람을 원하십니다. 바울은 갈1:1 “사람들에게서 난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은...” 이라고 했습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하녀가 창문을 닦으면서도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면” 곧, 소명의식이라 했습니다.
2. 용기있는 자입니다. 21절 “에훗이 왼손을 뻗쳐 그의 오른쪽 허벅지 위에서 칼을 빼어 왕의 몸을 찌르며...” 에훗가 에글론을 제압합니다. 에글론에게 공물을 받칠 때 에훗은 기회를 노려봅니다. 에글론은 비둔한 자로써 살이 비정상적으로 찐비만했습니다. 그가 서늘한 다락방에 (19절) 혼자있을 때에 에훗이 칼을 빼어 에글론 왕의 몸을 찌른 칼이 그의 등뒤까지 나갔습니다. 그는 죽었습니다(25절) 에훗은 암살을 은폐하기 위해서 다락방 문을 닫고 잠겼습니다. 다락방 안에 왕이 있을지라도 문이 잠겨있으면 신하들이 왕의 허락없이 출입할 수 없다는 점을 에훗은 십분 이요한 것입니다. 큰 용기입니다.
3. 팔십년동안 평화를 유지했습니다. 30절 “그날에 모압이 이스라엘 수하에 굴복하매 그 땅이 팔십년동안 평온하였더라...” 에훗가 사사로 통치하던 80년 기간 평화로운 세월이였습니다. 어느시대든지 한사람의 믿음과 용맹이 한시대를 구원하는 막중한 사명자임을 잘 보여줍니다. 아담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그 죄로인해 모든 사람에게 사망이 탔습니다.(롬 5:12) 그러나, 제2의 아담되시는 주님께서 십자가에 화목제물로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된 것입니다. (롬 5:19절) 주님은 우리 믿는 자들의 표상이십니다. 한사람의 시대적 사명이 너무 소중합니다. 성도는 이 시대에서 사사로 소명받았습니다. 드보라(여선지자) 삿 4:1-10
(4대) 예훗가
죽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타락의 징후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당시 일반적으로 보여주는 우상 숭배와 이방 풍습, 유행에 빠져든 범죄입니다. 이는 마치 방금 목욕한 돼지가 다시 오물탕 속에 뒹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질만능 사회에서 물질을 쫓아 사는 배금주의에 빠지고(우상화), 세상의 유행, 쾌락과 오락을 따라사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됩니다. 또한, 영적 나태와 안일에 빠져 사는 일들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돌이키지 아니할 때에 징계의 막대기를 들어 때리십니다.
1. 가나안 야빈이 이스라엘을 지배하게 됩니다. 3절 “야빈왕은...이십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했으므로...” 그럼,“야빈은 누구인가? 야빈은 가나안 북부지역 하솔이란 성읍의 왕으로써 철병기로 무장한 신흥 군사적 강국입니다. 원래 하솔 성읍 지역은 남달리 지파에게 속한 지역인데 야빈이 이 지역을 차지하여 통치하고 있게 된 것입니다. 당시 야빈왕의 철병기를 지닌 군사력이 상당히 이스라엘 백성을 압도하고 있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병거는 절대적인 전투력입니다. 막강한 무기였습니다. 철제 무기는 매우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은 철병거로 무장한 야빈의 침공을 막아낼 수가 없었고 그들의 무력 앞에 제압을 당하고 고통을 받게 되어 하나님께 부르짖게 된 것입니다.
2. 여선지자 드보라를 사사로 세우십니다. 4절 ”그때에 랍바롯의 아내 여선지자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구약에서 여선지자로 불리우는 것은 드보라 외에도 아론의 누이 미리암과(출15:20) 훌다(왕하22:14)가 있습니다. 즉, 이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예언자적 은사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드보라는 예언적 사명을 부여받았으면서도 사사로 시대적으로 백성을 구원한 유일한 여서전지자인 것입니다.
3. 구원을 예언합니다. 7절 ”... 그를 네 손에 넘겨주리라“하셨느니라. 드보라는 바락에게 지시합니다. 곧, 하나님의 명령을 전합니다.(6절) 납팔리 지파, 스블론 지파 만명의 군대를 소집하여 다볼산으로 가라고 합니다. 왜? 두 지파만을 언급합니까? 가나안 북부지역 ”하솔“성읍 가까이는 납달리 지파가 분배 받아 거주한 땅입니다. 어떡해서 그 땅을 상실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야빈에 의해 그 땅이 점령당하여 있는 상황입니다. 즉, 이 두 지파는 하솔왕 야빈으로부터 가장 많은 괴로움을 당한 지파입니다. 그래서, 드보라는 이 두 지파가 대적을 치는데 선봉장이 되게합니다. 바락은 누구입니까? 드보라가 멀리 북쪽 지방 납달리게데스까지 사람을 보내어 바락을 부른 것은 바락이 납달리 출신 사사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드보라가 바락을 불러 그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전쟁을 수행토록한 까닭은 자신이 여자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사회상에서 여성의 지도력이 외면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군대장관(사사) 바락은 드보라가 전쟁에 함께 출전하지 않으면 전쟁터에 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자신이 이 큰 소명을 혼자 감당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드보라의 동행을 요청한 것입니다. 이에 드보라는 전쟁에 출전하겠다고 답변하였고 드보라는 전쟁에서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의뢰하는 믿음이 무엇보다도 있었습니다. (7절) 그래서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9절)라고 말하며 그와 함께 출전합니다. 드보라는 가나안 왕 야빈과 그 군대장관 시스라의 군사들을 다볼산 인근 기손강전투에서 괴멸시킵니다.(삿4:14-16) 이스라엘 압제자들의 손에서 구원하고 40년간 태평성대를 이루었습니다. 믿음의 여인(사사)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용감한 여인 야엘 삿 4:17-23)
기손강이 범람한 물로 인하여 바닥이 질펀해지므로 기동력이 떨어지고만 시스라군대와 철병거는 무력해지고 패하고맙니다. 시스라와 패전병들은 도망한 곳을 찾아 뿔뿔히 흩어지게 되고 군대장관 시스라는 걸어서 도망하여 야엘, 여인의 장막에 이릅니다.
1. 야엘은 시스라를 영접합니다.
18절 ”야엘이 나가 시스라를 영접하며... 두려워마소서하매 그가 그 장막에 들어가니...“ 야엘은 군대장관 시스라를 유인합니다. 집에 들어오게하고 이부로 덮습니다. 이와같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호의를 시스라에게 베품으로써 그를 안심시켰던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결정적으로 시스라가 방심하도록 만든 계기가 되었습니다.
2. 시스라에게 접대해줍니다.
19절 ”... 우유부대를 열어 그에게 마시게 하고...“ 바락의 추격을 피해 도망하느라 시스라는 기진맥진했고 갈증이 심했습니다. 인간이 땅에서 살고자 하는 갈등은 큰 고통입니다. 하물며 죽은 후 구원받지 못한 영원한 갈증은 어떠하겠느냐를 생각하게 합니다. 야엘이 목마른 시스라에게 건네준 우유는 반쯤 ”버터“가 된 최고급 우유입니다. 그 우유를 담은 부대는 유목민들이 여행 시 포도주나 물, 우유등을 넣어가지고 다니던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자루입니다. 이러한 여인의 친절에 시스라는 안심합니다. 이에 시스라는 거실에 숨어 지켜있는 것에 대해 보안을 지켜줄 것을 부탁합니다. 그만큼 그가 심리적으로 극도의 불안한 상태에 있음을 반증해줍니다. 그러나 그가 안심하고 몸을 의탁한 거실이 자신이 죽게된 사형 집행대가 된 것입니다.
3. 시스라를 제압합니다.
21절 ”...말뚝이 꿰뚫고 땅에 박히니 그가 기절하여 죽으니라“ 여인은 용감합니다. 그녀의 정숙함과 친절함은 여인의 덕목이지만 더 나아가 영적 싸움에 그녀의 믿음은 강한 전투력이었음을 증거합니다. 영적 악한 군사들과 싸움은 착한 성품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영적 강한 능력으로만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야엘은 방심하여 깊은 잠에 들어있는 시스라에게 말뚝을 그의 관자놀이에 막아 기절하게 합니다. 고대 근동에서 유목생활은 장막을 세우는 일이였는데 여인들 주로하던 일로 망치로 말뚝받는 것에 익숙해었습니다. 이에 따라서 야엘이 시스라가 잠들어 있을 때 관자놀이를 박는 일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드보라는 큰 싸움에서 승리하였고 야엘은 소탕전에서 승리한 것입니다. 반면, 바락은 군대장관이였으나 겁이 많고 우유부단한 자입니다. 즉, 비겁한 자였던 것입니다. 자신의 의지로 만은 용기를 내지 못한 유약한 자입니다. 남에게 의존적이고 기대는 연약함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치 못합니다.
드보라의 노래(찬송)삿5:1-12
야빈왕과 전쟁에서 대승을 거둔 드보라는 개선가를 노래합니다. 사사 드보라는 이 승리를 바락은 물론 모든 백성들이 구원을 주신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에 동참을 바라며 노래합니다. 드보라의 노래는
1. 여호와만을 찬송합니다. 2절”...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라“ 드보라의 노래는 전쟁에 참여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헌신과 용기 그리고 연합에 대한 노래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배후에서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하는데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오늘날도 찬송은 예배중에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과 사랑을 응답하는 믿음의 중요한 행위입니다. 단순히 은혜받고 복을 받는 기복적수단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찬송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신령한 노래가 됩니다. 깊은 영적 기도와 간구이며 받은 구원의 은혜를 응답하는 영적찬미입니다. 바울도 고전14:15 ”영으로 기도하고 마음으로 기도하고 영으로 찬송하고 마음으로 찬송하리라“고 했습니다.
2. 승리를 주심을 찬송합니다. 7절 ”...나드보라가 일어나 이스라엘의 어머니가 되기까지...“ 이말은 야빈의 확정에 시달리던 이스라엘은 참된 지도자가 없었는데 드보라 자신이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하나님이 보내신 ”보호자“라는 의미입니다. 실제 이대승리주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드보라의 노래에서 엿볼 수가 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주력군은 납달리지파, 스불론 지파의 일만명뿐으로써 야빈과 시스라 군대장관의 철병거로 무장한 병력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어려운 위기상황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이적과 권능으로 도우셨기 때문입니다.
3. 여호와의 능력을 찬송합니다. 11절 ”...여호와의 공의로우신 일을 전하라...“ 시스라군대는 기손강 주변에 주둔했습니다. 기손강은 우기를 제외하고서는 보통 메말라 있습니다. 그래서 시스라가 철병거를 배치하기가 적당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기가 아닌 시기에 하나님은 초자연적 방법으로 강을 범람하게 하셨으니 시스라의 무리는 표류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시스라 군대는 뜻하지 않는 폭우로 우왕좌왕하였는데 이스라엘은 이 기회를 놓치하고 기습하여 그 군대를 괴멸시키게 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대승리는 이미 드보라가 예언한 일(4:7)이 그대로 성취된 것입니다. 인간의 생사화복, 또한, 역사의 흥망성쇠, 길흉화복이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는 것이며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시3:8) 구원을 주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미디안의 압제함 삿6:1-10
강력한 지도자인 사사들이 있을 동안은 40년 태평성대가 유지되었으나 사사들의 사역기간이 끝나면 곧바로 우상 숭배에 빠졌습니다. 드보라가 살았던 세월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공경하며 지냈던 태평의 기간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40년 후에 영적 안일무사 나태로 하나님을 잊었고 버렸습니다. 이때, 미디안 족속을 일으켜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추수기에 곡식을 남겨두지 아니하고 약탈해갔습니다. 미디안 족속은 아브라함의 후처인 그 두라에서 난 후손들입니다. 그들은 유목민이었으나 외국과 교역하는 무역상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광야 여정에서 모압과 동맹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했으나 대패를 당한 적이 있으며 (민31:1-12) 다시 세력을 키워 이스라엘을 침공하고 7년간 압제하여 그 어느때보다 곤란을 겪게 했습니다.
1. 미디안은 연합군을 결성하여 침공합니다. 3절 ”이스라엘이 파종할때면 미디안과 아멜렉과 동방사람들이...“ 미디안 사람들은 아메렉사람과 동방사람들과 엽합합니다. 아메렉 사람들은 에서의 아들 엘 마스와 그의 첩 딤나 사이에서 난 후손들입니다.(창36:12) 동방사람들은 미디안인접에 있는 시라아사막지역에 거주한 사람들인 듯합니다. 미디안 연합군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파종한 곡식 등 생계수단이 될만한 것은 남기지 아니하고 초토화시킵니다. 이는 마귀의 속성을 나타내는 무자비한 혹독함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범죄한 생활이 너무 비참한 대가를 치루어어야만 한다는 것을 교훈받습니다.
2. 하나님께 고통을 아룁니다. 6절”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궁핍함이 심한지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이는 다시 살아계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르짖었더라“(6절,7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무기력함과 연약성을 그제서야 깨닫게 됩니다. 징계받는 유익입니다. 그래서 극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은혜입니다. 타락한 길에서 돌이키게 됩니다.
3. 선지자를 보내십니다. 8절”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한 선지자를 보내시니...“ 여기서 한 선지자는(prorhet)과도기적인 당시 중간 시대는 꼭 선지자라고 정의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자이거나(2:1,13:3)”사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역사 전반에서 찾아볼 수 있는 하나님의 전형적 섭리입니다. 이에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사사 기드온을 예비하시며 그를 세우사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어 구원하십니다.
기드온(6대) 삿6:11-16
기드온이 사사로 부르심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압제로부터 해방시키기전에 기드온을 부르시고 곤경에 처해있는 그의 백성을 구원해주시는 하나님의 이적과 능력이 나타납니다.
1. 기드온을 부르십니다. 12절”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그럼 기드온은 누구입니까? 그는 므낫세 지파 중 ”아비아셀“의 가계에 속한 자입니다. (순17:2) 그는 밀타작을 하는 농부로서 하나님의 부르심, ”소명“을 받습니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12절 下)이는 하나님께서 그 시대에 하나님의 구원을 위해 부르심이라는 소명입니다. 어느 시대이든지 주의 종들은 나의 부르심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는 ”소명의식“이 분명해야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시대적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나에게 소명을 주신 하나님께서 늘 나와 함께 하시리라는 ”믿음“이 늘 고백되어야 합니다. 바울도 옙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은...“ 갈1: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고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은...“ 구약선지자, 신약사도들은 그 시대에 ”소명의식“이 투철하게 고백되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부르심은 하나님께로 온 것임은 분명합니다. 인간의 의지에서 기인된 것이 아닙니다.
2. 기드온은 자신은 미약한자라 답변합니다. 15절”...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므낫세는 요셉의 맏아들이며 에브라임은 차남입니다(창 48:1) 애굽에 내려온 야곱이 두 손자를 위해 복을 빌 때 오른손을 차남 에브라임의 머리 위에 얹고 왼손은 므낫세의 머리에 얹을 때 요셉은 그 광경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야곱의 오른손을 므낫세에 얹어달라고 하였으나 야곱은 그 아우가 므낫세 보다 큰 자가 되리라며 축복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볼 때에 므낫세 지파는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작은 지파였던 것입니다.기드온은 답변을 합니다. 그의 고백처럼 기드온의 가정은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기는커녕 매우 보잘 것 없는 위치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3. 그러나 하나님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라는 말씀을 주십니다.(12절,16절) 2번 씩 말씀을 준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는 자신이 의지하는 인간적 능력이나 방법으로써는 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늘 고백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빌4:13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군사 선발 삿7:1-8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군사의 숫자를 줄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 그렇게 하신 이유는 전쟁의 승리가 인간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데 있습니다. 즉, 모든 세대에있어 믿음의 사람들에게 궁극적인 힘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승리이며 제아무리 미약하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잘 준비된 사람을 통하여 그 시대에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드온은 미디안 대군과 전투에 앞서 군사들을 선발합니다.
1. 두려운 자들은 떠나라합니다. 3절”...누구든지 두려워 떠는 자는 길르앗산에서 돌아가라...“ 먼저, 미디안은 어떤 족속입니까? 이미 6장에서 언급한 것처럼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에게서 난 후손들입니다. 미디안 족속은 동방사람들과 연합하여 침공하였고 그들은 군사적으로 잘 무장하였으며 포악함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큰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두려운 마음을 갖고 있는 자들은 돌아가라고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이 대적과 싸움에 있어 두려움에 사로잡혀 떨고 있는 것은 불신앙에서 비롯된 행동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자들을 통하여 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영적싸움에서 이미 사기저하되고 비겁한 군사로 전락됩니다. 반면 이들이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는커녕 스스로 자긍할 자들임이 틀림없게 됩니다. 그래서 길르앗 산에서 돌아가라고합니다. 이때, 돌아간 군사들은 이만이천명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두려움에 떠는 자들이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남은 자들은 만명이 남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숫자도 많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물가로 내려가 물을 마시게 하라고 하십니다.
2. 혀로 물을 핥는 자도 떠나라고 합니다. 5절”...누구든지 개가 핥는 것같이 혀로 핥은 자들을 너는 따로 세우고...“ 전선에 남은 자들은 1만명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숫자도 많다는 것입니다. 남은 자 중에는 ”졸장부“라는 비난을 받지 않고자하는 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여하간 아직 숫자가 많은 것은 진정한 군사를 선발하고자 함인데 잘 훈련된 자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훈련을 통하여 자기 절제를 못하고 본능적, 충동적으로 자기 결정을 경솔히 내리는 자들을 배제하기 위함입니다. 잠16:32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니라.“ 곧, 자기 마음을 다스리지 못함은 결국 어리석은 자이며 교만함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타인의 충고를 꺼려하고 자신의 견해만이 나타내는 것을 좋아할 뿐입니다. 그래서 시냇가에서 혀로 물을 핥은 자들을 집으로 돌려 보내게 됩니다.
3. 무릎을 꿇고 물을 손으로 옮겨서 마시는 자들을 선발합니다. 7절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핥아먹는 삼백명으로 너희를 구원하여...“ 하나님께서는 군대 선발에서 육적이고 불신앙적인 모든 요소들을 제거한 자들을 부르십니다. 곧, 연단의 절차를 통해서 비로서 영적 무장된 300명의 용사 뿐이였습니다. 하나님의 싸움은 사람의 숫자에 달려있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 앞에서의 신앙과 부르심에 대한 소명으로 굳게 무장된 영적 군사들은 어느 시대에서든지 요청됩니다. 비록 소수일망정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을 위해서는 이러한 철저한 영적 검증을 통해서 선발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다수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소수의 믿음의 성도를 기뻐하십니다. (고전 10:5) 또한, 기드온 300명 군사처럼 영적 군사로 통하여 작은 자가 천을 이루며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루게 하십니다.(사 60:22)
에브라임 사람 사사기 8:1-9
기드온의 군사가 대승리를 했다는 소식이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에게 들려졌습니다. 이에 에브라임 사람들은 기드온을 찾아와서 항의를 합니다. 불평, 불만입니다. 즉, 이스라엘 전체 지파 중에서 자신들이 주도권을 행사하지 못하였다는 것으로 생각했기때문 기드온에 대한 항의와 비난인 것입니다. 사실 에브라임 지파는 여호수아 당시에도 자기들이 분배받은 기업이 다른 지파보다 적다고 불평한 적이 있었습니다. 또한, 훗날 이스라엘 왕국을 분열시키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던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지파 사람이였습니다.(왕상11:26) 여하간, 축하할 때에 함께 기뻐하지 못하고 오히려 시샘과 불평을 하는 옹졸한 처사는 후대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 지파에 대한 기드온은
1. 유순한 답변을 해줍니다. 2절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놀라운 기드온의 영적 지도력이며 그의 인품의 관용적 답변입니다. 사실 큰 싸움을 미디안과 아멜렉과 동방 사람들 연합군과 싸움에서의 승리과 아직도 잔재 병력을 추격 중입니다. 사실은 불쾌하기짝이 없음에도 기드온은 너그럽게 에브라임 사람들 항의를 받아줍니다. ”끝물“은 포도 수확 후 ”포도찌꺼기“입니다. 즉, ”맏물“포도는 막 수확하여 훨씬 당도도 높고 맛이 있으나 기드온은 형제지파 외 반목하고 갈등하는 것보다는 서로 이해하고 화평을 추구하는 것이 이스라엘 지파가 분열이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신앙을 보여줍니다. 또한, 아비에셀은 기드온 집안입니다. 집안사람들이 (6:11) 미디안 연합군과의 싸움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싸움터에서 전과를 올리는데 전과정을 주도했습니다. 그럼에도 싸움 막바지에 출전하였던 에브라임 지파의 공적을 높여주고 있습니다.
2. 에브라임 사람들이 분노가 불립니다. 3절 ”...그때에 그들의 노여움이 풀리니라“ 기드온의 대답은 에브라임 사람들의 분노가 풀립니다. 잠15:1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는 교훈이 꼭 들어맞는 경우입니다. 즉, 기드온은 나보다 남의 사정을 이해하고 너그러이 의견을 받아주는 것이 상대의 격동한 마음을 풀게 한것입니다. 사실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은 처음에는 전쟁에 소집되지 않았으나 도망치는 미디안 연합군을 추격하기 위해 소집되었습니다. (삿 7:24) 늦게 소집되었으나 연합군의 군사 지도자 중에 일부를 격파시키는 공적을 이루었습니다. (삿 7:25)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기드온에게 몰려와 불평하는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은 관용적으로 잘 받아주어 분열되지 않고 화평을 이룹니다.
3. 반면, 기드온을 희롱하는 사람(지파)들이 있습니다. ①숙곳사람들입니다. 6절 ”어찌 우리가 네 군대에게 떡을 주겠느냐“ ②브두엘 사람들입니다. 8절 ”...브두엘 사람들의 대답도 숙곳 사람들 대답과 같은지라“ 숙곳은 요단 동편의 갓지파가 사는 성읍입니다. (수13:27) 이곳은 얍복강에서 북쪽으로 약 16km 지점에 위치한 곳입니다. 기드온은 이 곳 사람들에게 미디안의 연합군 패전병들을 추격하고 있고 진압 군사들이 허기에 지쳐있으니 떡 덩어리를 달라고 간청하였음에도 거절합니다. 숙곳 사람들은 갓지파에 속한 자손들입니다. 이들은 기드온의 요청을 무시하였고 혹 기드온의 군사들이 미디안 연합군에게 패할 경우 보복을 두려워하여 기드온을 지원하지 않았던 이유입니다. 또한, 브두엘 사람들도 동일하게 대답합니다. 브두엘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얍복강 바로 위에 있는 갓지파 성읍이였습니다. 브두엘은 야곱이 얍복 나루터를 건너가기 전 그곳에서 하나님을 대면하였다하여 ”브니엘“ (하나님의 얼굴)이라 칭하여졌던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창32:30) 그러나, 이두성읍 갓지파 사람들은 기드온의 요청을 거절하고 문전박대를 하였던 일로 기드온의 극도로 분노케하여 징벌하겠다고 다짐합니다.(7절 下) 이는 브루엘 사람들에게 동일합니다. (8절 下)
아비멜렉(7대) 삿9:1-6
아비멜렉은 기드온과 그의 첩 사이에서 난 아들입니다. 아비멜렉은 기드온의 첩의 자식으로 우스꽝스러운 존재였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소명도 없는 자로 자기 형제들을 잔인하게 죽인 자입니다. 아비멜렉은 어떤 자인가요
1. 선동가입니다. 1절”...온 가족에게 말하여 이르되“ 2절”...여룹 바알의 아들 칠십명이 다 너희를 다스림이 어느 것이 너희에게 나으냐“ 아비멜렉은 사악한 야욕에 몰두해 자신이 선수를 침으로써 아예 형제들을 제지하고자 결심합니다. 사실 기드온은 아내가 많았습니다. 그로인해 기드온에게 나은 자녀가 칠십명이었던 것입니다. (삿 8:30) 그 중 세겜 출신인 기드온의 첩이 낳은 아들이 ”아비멜렉“입니다. (삿 8:31) 세겜은 이스라엘 가나안 정복 전에는 가나안 하위 족속이 거주한 곳으로 아비멜렉의 어미는 하위 족속에 속한 가나안 원주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비멜렉은 그의 외조부 성읍인 세겜에 가서 그곳 주민들을 선동합니다. 아비멜렉은 자기의 형제들이 한결같이 왕위를 탐하고 있다고 짐작하였으나 사실무근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사악한 야욕에 몰두하여 그 야심을 실현시키기 위해 세겜을 음모의 근거지로 확보하고 한 것입니다. 무고한 자들을 해칩니다.
2. 모략가입니다. 4절 ”바알브릿 신전에서 은 칠십개를 내어 그에게 주매 아비멜렉이 그것으로 반항하고 경박한 사람들을 사서 자기를 따르게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락은 주로 우상숭배였으며 이에 따라 사사들이 죽은 후에는 바알 신을 열렬히 숭배했던 곳 ”바알 브릿“이였습니다. 아비멜렉은 이곳에서 은 70세겔로 이것을 무게로 따질 경우 약 800g, 200돈, 정도입니다. 이 자금을 가지고 경박한 자들, 불량배 들을 모아 자기를 따르게 하는 중상모략이 능한자였습니다. 불량배들을 돈으로 꾀어 자신의 야욕을 위해 동원시키는 속임수를 쓴 것으로 결국 사실을 왜곡하여 형제들을 해치게 되는 원인이 됩니다.
3. 살인자입니다. 5절 ”...자기 형제 칠십명을 한 바위 위에서 죽였으되...“ 무서운 살인 사건입니다. 사람이 부질없는 욕심을 품으면 자기 형제조차도 잔인하게 살해하는 끔찍한 비극이 일어납니다. 이 일후에 세겜 사람들은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게 됩니다. 원래 기드온은 미디안 연합군과의 싸움에서 대승리를 얻게 되었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드온에게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손자가 우리를 다스려 달라고 했습니다. (삿 8:22절) 그러나, 기드온은 자기도, 자녀들도 너희를 다스리지(왕)않겠고 오직 하나님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대답해주었습니다. (삿 8:23) 오직 인간의 왕은 경배받으실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이란 신앙으로 사사로 40년을 나라를 통치했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첩이 많이 있었고 비록 왕위를 거절했지만 그의 말년에는 영적으로 타락되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타락상은 아내를 많이 둔 호사스러운 생활을 뜻합니다. 기드온은 사사의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폐습적인 이방문화의 악습을 따랐으므로 그로인해 기형적인 폐륜아들로 통하여 70명의 아들들이 몰살당하는 징벌을 받게된 것입니다.
요담의 항변 삿 9:7-15
요담은 기드온의 막내아들입니다.(삿9:5) 요담은 아비멜렉(기드온의 서자)이 70명 형제를 한 장소에서 죽일 때에 혼자 유일하게 살아남은 자입니다. 그 후 요담은 세겜에서 왕이 된 아비멜렉의 왕위찬탈과 그 형제들을 암살한 아비멜렉의 불법과 살인을 폭로합니다.
1. 요담은 항변합니다. 7절 ”...요담이 그리심산 꼬대기로 가서 서서 그의 목소리를 높여 그들에게 외쳐이르되...“ ”그리심“산은 세겜 남서쪽에 인접해있는 곳으로 에발산과 마주보고있는 산으로 해발 854m높은 산입니다. 이 산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회중을 향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선포한 곳이기도 합니다. (수8:33-35) 그러나 요담은 이곳에서 형제들의 죽음을 군사적으로 대결하는 방식으로 복수할 계획을 작정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맡기는 태도를 갖습니다. 요담은 창의적 우화를 사용하여 항변합니다. 이러한 우화는 일종의 비유 문학으로 다수 대중을 설득시키기에 좋은 방법입니다.
2. 항변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8절, 9절), (10절, 11절), (12절, 13절), (14절, 15절) 요담은 위 구절에서 보면 먼저, 나무들이 감람나무를 찾아가서 우리(나무)위에 왕이되라하나 감람나무는 어찌 나무들 위에 ”우쭐“대리요 대답하면서 거절합니다. 마찬가지로 무화과 나무도 대답하며 포도나무도 동일하게 대답합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감람나무, 무화과나무 그리고 포도나무 등은 나름대로 요담의 아버지 기드온을 비유합니다. 사실, 기드온은 미디안 연합군과의 싸움에서 대승리를 거두웠을 때 백성들은 기드온을 찾아와 왕이 되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이때 기드온은 자신도, 아들도, 손자도 백성을 다스리지 않을 것이며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릴 것이라고 답변했습니다. (삿 8:23) 그러나 반면 가시나무는 아비멜렉을 비유합니다. 스스로 욕심이 잉태하여 왕위 직에 눈이 멀어 형제 칠십명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합니다. 세겜 사람들의 왕이 됩니다. 인간적 명예심의 욕구에 따라 스스로 왕위를 차지하기 위한 노력은 인본주의적 정치적 발상입니다. 이처럼, 무례하고 잔인한 지도자의 허세와 욕심은 그를 추종하는 무리와 피차 멸망을 초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담은 아비멜렉이 칠십명 형제를 죽인 살인자가 세겜의 왕이 된 것은 불행을 초래하는 일이라 항변합니다. (18절)
3. 결국, 아비멜렉은 파국을 맞이할 것을 예고합니다. 20절 ”...아비멜렉에서 불이 나와 세겜 사람들과 밀로의 집을 사를 것이요“여기에서 세겜 사람들의 행위가 자신들이 행한대로 보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요담의 예언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즉, 이 예언은 진실과 의로움이 없는 아비멜렉을 왕으로 추대한 세겜 사람들 사이에 반드시 분쟁이 발생하여 자멸하게 될 것이라는 것인데 실제 아비멜렉에 대한 반란이 일어나게 됩니다. (23절) 즉, 세겜족이 기드온의 아들들을 몰살시킨 아비멜렉을 왕으로 추대한 것은 전혀 사심없이 하나님을 쫓는 신앙적 행위가 아닌 것이였습니다. 정작, 세겜 족은 소위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바라며 아비멜렉을 추종한 이기적인 집단적 행위였으나 오히려 이 일이 세겜 족에게는 내란과 분열로 자멸하게 되었고 아비멜렉도 한 여인이 던진 맷돌에 맞아 두개골이 깨져 죽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이 그가 행한 악을 찾으신 것입니다.
사사입다(10대) 삿11:1-11
아비멜렉이 죽은 후 사사돌라가 23년간 사사로 활동입니다. (삿10:1-2), 그 후에 야일이 사사가 되어 22년 사사로 지냅니다. (삿10:3-4) 그 후 사사입다가 등장합니다. 입다는 어떤 자입니까?
1. 기생의 아들입니다. 1절 ”...입다는 큰 용사였으나 기생이 길르앗에게서 낳은 아들이였고...“ 입다는 ”하나님이 열다“뜻으로 이는 하나님이 그의 앞길을 여시사 그가 이스라엘 사사되게 하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실제 입다의 비천한 소생의 출신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심을 입었던 시대의 영웅이였던 것입니다. 신약 히브리서에서 열거된 유명한 신앙인의 명단에 포함된 것입니다. (히11:32) 하나님은 비천하고 보잘 것 없는 자를 은혜로 택하여 주시어 그 시대에 쓰임되게 하심은 오늘날 우리에게 동일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2. 집에서 쫓겨납니다. 2절 ”... 그 아내의 아들들이 자라매 입다를 쫓아내며...“ 3절 ”이에 입다가 그의 형제를 피하여 돕땅에 거주하매 잡류가 그에게 모여...“ 구약시대에는 부권 중심적인 사상에서 노예나 첩에서 낳은 아들에 대한 상속권은 제한조치가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입다는 아비의 적자들에게 학대를 받으며 집에서 쫓겨난 것입니다. ”돕땅“은 이스라엘 접경지역으로 이방인들이 모여 사는 곳입니다. (삼하 10:6) 이곳은 길르앗 라못에서 북동쪽으로 25km 떨어져 있습니다. 입다는 여기서 일정한 직업이 없이 떠도는 부랑배들이 입다를 추종하여 단결하여 주변에 있는 타동족들과 싸울 수 있는 세력이 될 수 있게된 것입니다. 이러한 소문은 길르앗 땅에 까지 알려졌습니다. 11절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과 함께 가니 백성들이 그를 자기들의 머리와 장관을 삼은지라...“ 암몬족이 군사적으로 이스라엘을 공격하고자합니다. 이때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를 찾아가 암몬족을 함께 싸워 승리하자고 요청합니다. 그러면 입다를 길르앗 거민의 머리(군주)가 될 것을 약속합니다.
(8절) 이것은 그가 형제들에게 쫓겨났으며 이방 땅에 머물러 있었으나 그곳에서도 하나님을 잊지 않고 매사의 일들을 하나님께 뜻을 묻는 것입니다. (11절) 이 신앙은 소중합니다. 배다른 형제들에 의해 쫓겨난 수모를 당하면서도 그는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인물이였던 것입니다. 그 후 입다는 암몬의 왕에게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요청하나 암몬왕은 얍복과 요단까지 땅을 평화롭게 돌려달라고 제안합니다. (12절) 사실 이곳 지역은 암몬인들에게 속했으나 아모리 족속에게 정복당했으며 그 뒤 이스라엘이 차지하여 갓족속에게 분배된 지역입니다. (수 13:25) 따라서 암몬왕은 억지 주장입니다. 결국 입다는 암몬 족속과 싸워 승리하였고 (32절) 암몬족은 항복합니다.(33절) 이는 여호와께서 신앙의 사람 입다와 함께 하시어 암몬을 입다의 손에 넘겨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사도바울은 ”내게 능력주시는 자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빌 4:13)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입다는 사람에게는 버림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함 받은 자가 되어 그 시대에 하나님의 구원을 나타내는 위대한 일을 이루게 됩니다.
입다의 활약과 실수 삿 11:29-40
입다는 길르앗과 므낫세 북부지역 두곳을 다니며 암몬군을 대항하기 위하여 용사들을 모집합니다. 그 후 이미 진을 치고 있는 미스바(미스베) 삿 10:17)로 돌아와 암몬군과 대치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1. 입다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게 됩니다. 29절 ”이에 여호와의 영이 입다에게 임하시니...“ 사사들에게 동일하게 성령이 임하시어 시대적 사명을 이루도록 하십니다. 입다에게도 성령을 부으시어 암몬군을 대항하게 합니다. 구약시대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인간의 창과 칼로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성령이 역사하시는 능력과 힘으로 이루어 집니다. 최초의 사사 웃니엘도 메소포타미아 왕 구산리사다임에게서 구원할 때도 웃니엘에게 여호와의 영이 충만히 임하였기 때문입니다. (삿 3:10) 오늘날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약시대 성령이 임하심은 그 시대에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택한 정해진 사람에게 성령이 일시적, 단회적으로 임하였다가 그 구원의 사역이 이루어지면 성령은 떠나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성령은 거듭난 각사람에게 오시어 떠나지 않습니다. (옙 4:30) 그러므로 늘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덷전 5:19) 늘 기도와 간구를 성령 안에서 항상 힘써야 합니다.(옙 6:18) 신약시대에 있어 복음의 사역은 성령의 사역입니다. 성령이 아니면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2. 서원을 합니다. 30절”그가 여호와께서 원하여 이르되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 주시면...“ ”서원“은 히브리어 ”네테르“단어로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약속을 뜻합니다. 즉, 실행을 맹세하고 제물을 바치며 세속적 일을 삼갈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하나님 은총에 대한 보답으로 헌신의 표시입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입다의 서원도 신앙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임은 틀림 없습니다. 즉, 미래에 대한 인간적 불안감을 하나님을 향한 의지함으로 떨쳐보려 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신앙의 위인들은 하나님의 의지하는 신앙의 발로로써 서원을 했습니다. 야곱, 한나, 바울들은 한결같이 서원의 신앙적 행위로 하나님께 헌신의 삶을 산 것입니다.
3. 입다가 실언합니다. 31절 ”...네 집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네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입다의 이 말은 실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헌신을 맹세한 것은 신앙의 동기이지만 31절의 그의 말은 경솔한 결정입니다. 입다가 하나님께 서약하는 제물은 인간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물은 짐승의 희생입니다. 그럼에도 입다는 인간제물을 경솔히 언급함으로써 그것은 잘못된 헌신이며 자신의 무남독녀 딸을 제사로 받치게 되는 비극을 초래한 것이 되었습니다. 이방 제사는 인신 제사 풍속이 허다했지만 입다는 불행하게 이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이러한 영향을 받은 것을 계기로 외동딸을 죽게 만들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에게도 큰 경종을 울립니다. 믿는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편벽되게 하거나 오인함으로써 순수한 신앙이 변질되지 않도록 바른 분별력을 가져야합니다.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이든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합니다. 더욱이 그리스도인들의 언행심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 것은 샘이 한 구멍으로 단물과 쓴 물을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언어를 잘 길들여야합니다. (약 3:8)
에브라임의 시비 삿 12:1-7
에브라임 사람들이 입다에게 시비를 겁니다. 그 이유는 암몬군과 싸우러 나아갈 때에 왜? 에브라임 지파를 부르지 않고 너희들끼리 싸움에 참전하였는가의 시기심으로 시비를 거는 것입니다. 이 경우는 지난 날 사사 기드온에게 마찬가지로 시비를 것과 같습니다. (삿 8:1) 그 때에 기드온은 에브라임 지파를 잘 달래어 진정시킵니다. 그러나, 사사 입다는 기드온과는 달리 무력으로 불평, 불만합으로 시비를 거는 에브라임 지파에게 응징합니다.
1. 에브라임지파가 논쟁을 일으킵니다. 1절 ”입다에게 이르되 네가 암몬 자손과 싸우러 건너갈 때에 어찌하여 가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와 네집을 불사르리라 참 황당한 시기, 질투입니다. 큰 싸움에서 암몬군을 물리치고 승리한 사사 입다와 그를 추종했던 지파와 길르앗 사람들에 대한 위로와 격려는 못할지언정 싸움을 부추기는 그들(에브라임 지파)에 대한 배신감을 갖게 한 서입니다. 입다의 승리는 이스라엘 전 지파의 승리임에도 자기들 지파를 전쟁터에 소집이 늦었다는 불만은 극히 이기적 발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함께한 동족의 승리에 개인적인 소외감으로 반감을 갖고 반기를 드는 것은 공동체의 해당 행위인 것입니다.
2. 입다가 변명합니다. 3절 “나는 너희가 도와주지 아니한 것을 보고 내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건너가 암몬쳤더니...” 에브라임지파 사람들은 사사 입다가 암몬군과 싸움에 소집령을 내렸으나 협조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입다가 이스라엘의 전군 지휘관의 됨을 인정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입다는 치열한 암몬군과 싸움에서 승리하게 되었고 따라서 그가 얻은 승리와 명예는 값진 것이었습니다. 삿11:32절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의 손에 넘겨주매...” 삿 11:33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항복하였더라” 이는 하나님께서 승리케 하신 전쟁이였습니다. 입다의 그의 승리에 대한 근본 원인은 여호와 하나님께 돌리는 신앙입니다.
3. 에브라임을 격퇴시킵니다. 6절 “...그때에 에브라임 사람의 죽은 자가 사만이천명이었더라” 에브라임 사람들은 입다와 그를 추종하는 길르앗 사람들은 멸시, 천대를 당합니다. 입다는 더 이상 능욕을 당할 수 없어 길르앗 사람들을 소집합니다. 길르앗 사람들은 에브라임 지역 근처에 거하며 떠도는 족속입니다. 그러나, 길르앗 사람들은 입다를 추종하며 암몬군과 싸움에 중심부대도 입다를 돕게 됩니다. 이에 입다의 말을 들은 길르앗 사람들은 에브라임과 싸우게 되고 (4절) 에브라임을 쳐서 물리치게 됩니다. 입다는 일부 길르앗 사람들을 요단강 나루터를 먼저 장악하게 하고 (5절) 에브라임 사람들을 구별하기 위해서 “십블렛이라 발음하게 합니다” “십블렛”은 “무거운 짐”이라는 뜻으로 에브라임 사람들 “ㅅ”자를 발음을 못합니다. 각 지방 특징적 발음이 굳어져 있기 때문에 에브라임 사람들은 이 발음을 정확치 못할 때에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날에 에브라임 사람들은 사만이천명이 죽게된 것입니다. 이는 에브라임 지파에 있어 매우 큰 타격이 된 것입니다. 에브라임 지파는 출애굽 당시 45,000명이었고 (민 1:33), 그리고 2차 조사에서는 32,500명 (민 26:37) 따라서 그 이후부터 입다 당시까지 300년이 흐르는 동안 각 지파마다 인구가 많이 증가했을 것이나 에브라임의 장정 42000명이 한꺼번에 죽음을 당한 것은 큰 비극입니다. 늘 범사에 감사하고 기뻐하고 함께 울고 마음을 같이하는 형제우애는 최대의 행복이며 천국 생활입니다.
삼손의 출생 (14대) 삿 13:1-7
이스라엘이 또 범죄합니다. 이로인해 블레셋 사람들에게 40년동안 지배를 받게 됩니다. (1절) 이는 사사 시대기간 중 가장 긴 세월입니다. 그간 하솔왕 야빈이 20년 지배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이스라엘 타락이 심화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사사시대 기간 중 최장 기간 40년동안 압제를 받게 됩니다. 사사기 12장 말미에서 특별 지도력이 없는 사사 입산, 엘론, 압돈의 평화로운 25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다시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블레셋 사람 손에 넘기신 것입니다. (자료첨부) 이 시기에 하나님의 사자는 마노아의 아내에게 나타나 아들을 낳을 것을 예고합니다. 곧, 나실인 삼손입니다. 나실인은?
1. 포도주, 독주를 마시지 말아야 합니다. 4절 上 “그러므로 너는 삼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나실인은 5절, 7절에 2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실인은 (히) “네지르”는 “받치다” “구별하다” 뜻으로 거룩하게 구별된 자를 의미합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제사로 자신을 드려 현신, 봉사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이는 세속으로부터 분리되어 거룩함을 이루는 성도의 생활도 의미합니다. 본문에도 삼손에게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도록 합니다. 나실인의 서원 제도는 레위인만이 아닌 사람들을 위한 제도로 하나님께 특별한 봉사하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이 나실인의 제도는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적용됩니다. (민 6:2) 곧, 제사장이나 레위인, 또한 나실인들은 자신을 성결을 유지하여야 하는데 포도주, 독주를 마시지 않는 것입니다. (레 10:9) “포도주”는 (히) 야인의 단어로 포도를 생성한 즙입니다. 독주는 (히) 쉐카르 단어로 “취하게 만드는 액체”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포도주와 독주는 속된 것으로 부정한 것입니다. 이것들은 정신을 혼미하게 하고 제대로 분별할 리가 만무합니다. 이것들은 조금만 마셔도 중독성이 강하여 타락됩니다. 현시대에 술, 마약, 게임, 세속적 노래, 도박은 분명히 미혹된 것이며 모든 사람들을 올바른 길로 나아가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잠 31:4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왕에게 마땅하지 아니하고... 독주를 찾는 것이 주권자에게 마땅하지 않도다”
2. 삭도를 머리에 대지 않습니다. 5절 “...그의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서원하여 일정한 기간이나 평생 지낼 때에 머리를 깎을 수 없습니다. (민 6:5) 삭도는 (히) 타아르 단어로 “벗기다, 밀다”의 뜻입니다. 당시에 머리나 수염을 깎기 위해서는 칼을 사용했지만 나실인은 금지했습니다. 삭도를 대지 않도록 한 것은 머리털을 기르는 것은 생명의 고상한 힘. 곧, 하나님의 주관과 능력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머리털을 길러 자신을 주장하는 것은 세상 권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신적 능력과 승리를 나타내는 표시인 것입니다. 즉, 삭도 대지 않음은 생명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복종을 뜻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살아있는 존재만이 머리카락을 생성해낼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머리를 기르는 것은 여호와에 의해 조성된 소유로써 여호와를 위해 쓴 관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곧, 하나님의 소유로 구별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만이 능력, 힘, 구원이 됩니다. 히브리인들의 수치, 혐오감은 대머리와 머리를 밀어버리는 것입니다.
3. 죽는 날까지 받쳐진 자입니다. 7절 “...이 아이는 태에서부터 죽는 날까지 하나님께 받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여호와의 사자는 마노아의 아내에게 태어날 아기가 죽는 날까지 하나님께 받쳐진 자임을 알려 준 것입니다. 동시에 예우리는 한나의 서원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삼상 1:11) 한나의 서원은 태어날 아기의 머리에 삭도를 머리에 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성소 봉사를 위해 일평생 나실인으로서 구별해 드릴 것으로 서원한 것입니다. 그런데, 나실인의 서원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자기 자식이 소명되었음을 (갈 1:15) 확실히 인식한 어머니에 의하여 하나님 손에 맡기겠다는 신앙의 결단에 따라 이루어짐을 볼 수 있습니다. 블레셋 여인 삿 14:1-9 20절 사사 삼손에게 영적 장애물이 생깁니다. 블레셋 여인입니다. 삼손은 딤나에서 한 여자를 보고 아내를 삼고자 부모에게 요청합니다. 3절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노니 나를 위해 그 여자를 데려오소서...” 삼손은 단지 파의 자손입니다. 더욱이 그는 나실인이였습니다. 이런 신분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종교적, 문화적으로 전혀 다른 이방 여인과 결혼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 여자가 그를 기쁘게 해준다는 사실 때문이였으며 삼손의 이기적인 발로 이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1. 부모는 반대합니다. 3절 “그의 부모가 그에게 이르되...네가 할례받지 아니한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맞으려 하느냐...” 부모의 반대는 모세의 율법을 근거로 한 것이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서는 동족과의 결혼을 명분화했습니다. (출 34:16, 신7:3-4) 이에 따라 이방인 여인과 결혼은 모세 율법을 위반하는 것이며 결국은 여호와의 신앙을 떠나 다른 신을 쫓게 함이 됩니다. 신 7:4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가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일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다른 신에 대하여 이미 하나님께서는 시내산 율법을 모세에게 주신 것입니다. (출 20:3-5) 3절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가나안 땅 원주민들은 바알신, 아스다롯신을 숭배했는데 그들 신에 대한 제의는 각종 방탕과 성적 문란한 의식이었습니다. 부패한 도덕적 타락상입니다. 곧, 가나안 족속과 결혼은 결국 우상 숭배에 빠지게 되며 이는 아무리 자비하신 하나님이실지라도 지체없이 벌하실 것이란 사실을 강조하고 있음입니다. 이로써 삼손의 부모는 블레셋 여인과 결혼을 반대합니다.
2. 자기 눈에 보는대로 행하는 것을 반대합니다. 7절 “그가 내려가서 그 여자와 말하니 그 여자가 삼손에 눈에 들었더라” 삼손은 잘못된 결혼을 합니다. 그는 여인의 신앙 상태에 대해서는 아랑곳 하지 않고 안목과 육신의 정욕을 충족시켜줄만한 외모에만 매료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 여인도 삼손을 서로 좋아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렇지만 이는 결혼의 심오한 영적 의의를 (성경적 결혼관)무시하고 지극히 경솔한 본능적 행동이었습니다. 물론 삼손은 블레셋 여인과 결혼을 통하여 블레셋 사람을 칠 틈을 노리고 있었다 할지라도 이러한 방법은 인간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불신앙을 미화시키려는 인본주의적 발로였던것입니다.
3. 결국 여인과도 헤어집니다. 20절 “삼손의 아내는 삼손의 친구였던 그의 친구에게 준비되었더라” 부모의 반대에도 블레셋 여인을 즉흥적이며 본능적으로 아내를 삼았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이 여인과의 결혼 생활은 늘 갈등과 괴로움이었습니다. 반면, 블레셋 사람들은 여인을 통하여 끊임없이 삼손을 해치려고 기회를 엿보았습니다. 여인의 아버지 장인은 삼손이 화가 나서 자기의 고향으로 돌아간 것을 보고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고 판단하여 자기 딸을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보내었는데 그 사람은 삼손의 친구였으며 이 일로 큰 싸움이 납니다. 장인되었던 사람으로부터 문전박대를 당합니다. 또한, 분노가 가득한 삼손은 여우 삼백마리를 잡아다가 꼬리와 꼬리를 매고 두 꼬리 사이에 홰를 달아 불을 붙여 블레셋 사람들의 곡식단과 포도원, 감람나무를 불사릅니다. 삼손의 행실은 본인뿐 아니라 동식물들까지 피해가 왔습니다.
나귀의 턱뼈 삿 15:9-20
큰 싸움이 났습니다. 나귀 턱뼈 하나로 블레셋 용사 일천명을 대항하여 승리한 싸움입니다. (15절) 삼손이 혼자의 몸으로 블레셋 사람을 무찌르고 승리의 노래를 합니다. 나귀 턱뼈로 싸움은?
1. 혈,육의 도움이 없는 싸움입니다. 11절 “유다 사람 삼천명이 에담 바위 틈에 내려가서 삼손에게 이르되...” 12절 “...우리가 너를 결박하여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 주려고 내려왔노라하니...” 이전에 삼손이 여우 삼백마리고 블레셋 사람들의 논, 밭을 불사르고 블레셋 사람들을 죽인 일로 복수하기 위해 유다 사람들을 찾아가 삼손을 결박해서 블레셋으로 넘겨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에 유다 사람들은 삼손을 설득하여 새 밧줄들로 결박하여 넘겨줍니다. 같은 동족 유다 지파는 블레셋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삼손을 돕지 않습니다. 오히려 결박합니다. 우리 신앙은 오직 하나님을 의지해야할 것입니다. 인간은 기회주의자들이어서 내가 불리한 처지에 있을 경우에와 약하여 있을 때 이해를 해주거나 돕지 않습니다. 그럴 경우에 낙심할 수 있으나 하나님에 대한 신앙심을 가져야 합니다. 시 56:4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하지 아니하리니 혈, 육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고 했습니다.
2. 성령충만한 싸움입니다. 14절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그의 팔 위의 밧줄이 불탄 삼과 같이 그의 결박된 손에서 떨어진지라” 비록 동족들은 삼손을 팔아 넘겼지만 하나님은 삼손에게 성령을 부으시고 나귀 턱뼈로 천명을 죽이게 하십니다. 원수들은 삼손이 꽁꽁 묶여서 오는 모습을 보자 환호성을 지릅니다. 그러나 삼손에게 성령의 권능이 임하였고 포박된 줄은 불탄 삼과같이 끊어지고만 것입니다. 여기 우리는 죽음의 결박을 푸시고 죄에 사슬을 끊으신 주님의 부활하심과 그후 약속하신 성령이 임하심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신,구약 모든 선지자들 사도들은 늘 성령충만했습니다. 우리는 구약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성령께서 그의 종들에게 임하셨으며 그로 인하여 성령의 능력과 구원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성령은 회개하게 하시고 즉각적으로 구원의 능력을 이루심입니다. 낙심치 말고 늘 기도와 성령충만을 사모해야함입니다.
3. 샘을 터뜨려 물을 마시도록한 싸움입니다. 19절“...한 우묵한 곳을 터뜨리시니 거기서 물이 솟아나오는지라...” 하나님은 끝까지 그의 종을 편들어주십니다. 모세에게 므리바 돌에서 샘이 흐르게 하셨습니다. (출 17:6-7) 이삭에게는 르호봇 우물을 주시었스으며 (창 26:22) 삼손은 “엔학고레” 샘터를 얻었습니다.(삿 15:19)인생의 시련의 길목에서 샘이 솟게 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요 7:37-38절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자는... 생수의 강이 흘러 나오리라 하시니라”고 하십니다. 우리 인생에 생수가 되시는 주님입니다.
영적위기 삿 16:1-9
영적위기가 닥칩니다. 삼손은 여인들을 통하여 경건성이 상실되게 됩니다. 이 여인들을 만난 것이 그의 생애에 비극이 된 것입니다. 성도들은 누구를 만나는가의 문제가 인생에 중요합니다. 성도는 살아가면서 의지하고 믿어야할 이는 주님이 되십니다. 삼손은 계속되는 블레셋 여인들을 만나는 것이 믿음의 손상이 올 뿐아니라 경건성을 상실하게 되는 치명적 불행을 자초하게 된 것입니다. 영적위기는
1. 원수가 죽이려고 매복합니다. 2절 “...그들이 곧 그를 에워싸고 밤새도록 성문에 매복하고 새벽이 되거든 그를 죽이리라 하였더라” 블레셋 병사들은 삼손이 있는 기생집을 에워싸며 밤새도록 성문을 매복하고 새벽을 기다립니다. 그들은 정면 대결을 피하고 공격할 수 있는 기회를 노렸던 것입니다. 그들은 삼손의 출현 자체가 두려웠으나 어떻게 해서든지 삼손을 죽이려 했던 것입니다. 삼손은 기생의 집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아리따운 기생이 삼손의 눈을 매혹시켰던 것입니다. 지난 날처럼 삼손은 다시 안목의 정욕에 사로잡힙니다. 이는 죄악의 늪에 빠진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육신의 행위입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는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늘 싸움 대상 마귀는 우리를 삼키려고 입벌려 달려듭니다. 그러므로, 정신차려 근신하여 기도함으로 마귀의 악한 체계를 물리쳐야만 합니다.
2. 경건성을 상실함입니다. 4절 “이후에 삼손이 소렉골짜기의 드릴라이름하는 여인을 사랑하매” 가사에서 기생집에 들렀다가 큰 변을 당할 뻔 했던 삼손은 다시 육신의 정욕에 빠져 들릴라 여인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사랑”은 합법적인 결혼이 아니며 음탕한 부도덕적 사이임은 틀림없습니다. 그럼에도 삼손은 육신의 정욕이 앞서 영적 분별력과 경건성을 잃어버립니다. 결국, 삼손의 생애를 보면 부도덕적인 여자로 말미암아 큰 고통과 낭패를 야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롬 12:2 “너희는 이 시대를 본받지 말고...”
3. 거짓 사랑에 빠짐입니다. 6절 “...당신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기며 어떻게 하면 능히 당신을 결박하여 굴복하게 할 수 있는지 내게 말하라” 드릴라는 계속하여 삼손의 힘의 근원이 무엇인지 재촉하여 물어봅니다. 3번씩 쪼릅니다. (7절, 11절, 13절) 삼손은 “활줄 7줄”로 삼손은 결박하라고 합니다. 이는 미신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이방인들에게는 신비성있게 보였던 것으로 삼손도 거짓 대답함은 이들의 사랑은 진실되어 보이지 않음입니다. (7절) 또한, “쓰지 않는 밧줄”로 결박하면 된다고 삼손은 말합니다. 여기서 대답도 이전에 마찬가지로 그럴듯하게 여겨집니다. 그러나, 이 대답 역시 드릴라로 희롱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이러한 거짓은 훗날 삼손이 동일하게 메돌을 돌리게 되는 무방비 상태에서 회롱을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당하게 됩니다. (11절) 마지막으로 “머리털 일곱가락을 베틀의 날실에 섞어 짜면 되리라 대답해줍니다.” 거짓 대답입니다. 여기서 머리털 일곱 가락을 베틀에 있는 천 사이에 옷을 짜듯이 자면 힘을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여인의 간청 속에 블레셋인들의 간교한 계교가 있음에도 삼손은 단호하게 여인의 질문을 물리치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태도는 스스로 파멸을 초래합니다. 오늘날도 사단은 인간의 본능적 부패한 속성을 발동시켜 유혹의 손길을 뿌리칠 수 없도록 우유부단케 합니다. 그리고, 거짓 사랑은 무엇보다도 옷을 짜듯이 죄악에 빠지도록 얽매케 하고 번뇌와 고통을 가중시키는 잘못된 교제임을 보여줍니다. (13절, 16절)
머리말 / 6
여호수아 사후에 / 8
여호와의 사자 / 14
웃니엘 (1대) / 18
에후 (2대) / 22
드보라(여선지자) / 27
용감한 여인 야엘 / 32
드보라의 노래(찬송) / 36
미디안의 압제함 / 40
기드온(6대) / 44
군사 선발 / 48
에브라임 사람 / 54
아비멜렉(7대) / 60
요담의 항변 / 65
사사입다(10대) / 70
입다의 활약과 실수 / 75
에브라임의 시비 / 80
삼손의 출생(14대) / 85
블레셋 여인 / 91
나귀의 턱뼈 / 97
영적위기 / 102
영적 괴로움 / 108
회개(삼손) / 114
미가의 우상숭배 /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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