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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전통을 살펴야 하는가? 전통을 유산으로 받는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전통과 전통주의의 차이는 무엇인가?
20세기를 대표하는 그리스도교 역사가가 남긴 전통에 관한 현대판 고전
『전통을 옹호하다』는 20세기를 대표하는 그리스도교 역사가인 야로슬라프 펠리칸이 학자로서 이력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전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전통과 관련된 그리스도교 역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오늘날 전통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다룬 책이다. 전통에 관한 현대판 고전으로 평가받으며 『그리스도교 전통』이라는, 신학사에 남은 방대한 저술을 남긴 대가의 전통에 관한 생각을 자세히 엿볼 수 있는 책으로 꼽힌다.
그리스도교인들, 혹은 신학을 하는 이들은 종종 '성서'와 '전통'을 나누고, 성서를 중시하는 개신교와 전통을 중시하는 로마 가톨릭, 혹은 정교회를 구분하며 각자가 중시하는 요소를 내세우기도 한다. 과거 마르틴 루터와 그에게 공감한 이들이 '오직 성서'를 내세우며 종교개혁을 추진한 이후 이러한 구분은 오랜 기간 자명한 사실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과연 이런 구분이 옳은 것일까? 루터와 그 후예들은 '오직 성서'를 구호로 내걸어 '개신교 전통'이라는 또 다른 전통을 구축한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근대에 이르면 '개신교 전통'을 비판하는 또 다른 전통이 등장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 모든 전통들에게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고 있는 우리의 과제는 자신이 영향받고 있는 특정 전통을 맹목적으로 고수하는 것이 아닌, 우리를 둘러싼 모든 '전통들'을 알고, 그 '전통들'의 관계를 다시금 성찰하여, 새롭게 '전통'을 이어가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펠리칸은 성서와 전통이라는 기존의 대립구도에서 벗어나 전통을 새롭게 살피고, 그에 따라 역사도 다시 볼 것을 요청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특정) 전통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그 전통의 내용과 형성 과정을 살피지 못하면, 전통의 상속자가 아닌 노예가 될 수 밖에 없다. 전통 가운데 흐르고 있는, 혹은 전통들이 자신이 구현함과 동시에 자기 너머로 가리키는 진리로 나아가게 해주는 풍요로운 '길'이 되는 대신, 장애물과 족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통주의는 전통을 올바르게 계승하는 것이 아닌, 살아있는 이들의 죽은 신앙에 불과하기에, 우리에게는 죽은 이들의 살아있는 신앙인 전통을 계승할 필요가 있다고 그는 역설한다.
전통의 의미를 진지하게 살피고자 하는 이들, 혹은 전통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은 커다란 도움을 줄 것이다. 20세기 그리스도교 역사 연구의 대가가 전통과 관련해 펼쳐내는 현란한 논의들을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이 책은 독서의 묘미가 있다. 살아있는 이들의 죽은 신앙이 아닌, 죽은 이들과 함께 살아있는 신앙, 풍요로운 신앙을 일구고자 하는 이들에게 좋은 나침반이 될 것이다.
1. 전통의 재발견 - 경과보고
2. 전통의 회복 - 사례 연구
3. 역사로서의 전통 - 변론
4. 유산으로서의 전통 - 옹호
부록: 야로슬라프 펠리칸에 관하여
야로슬라프 펠리칸 저서 목록
비교적 최근까지 학자들은 당연히 독자들이 전통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기념비와 같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Encyclopedia Britannica 11판을 보면, 저자들이 어느 정도 교육을 받은 독자들이라면 당연히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읽을 줄 알 것이라고,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이나 성서를 별다른 설명 없이 언급하거나 인용해도 당연히 그 맥락을 이해할 것이라고 전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책이 고전이고 정전인지, 독자들이 어째서 이 책들을 알아야 하는지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가정하고 있지요.
물론 이런 가정에는 어느 정도 자기기만과 거짓(과 우월 의식)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14판 편집자이자 기고자로서 저는 존 맬컴 미첼John Malcolm Mitchell이 작성한 ‘델로스 동맹’Delian League 항목의 분량이 무기명으로 작성된 ‘우라늄’ 항목의 네 배였던 11판과 당시의 예상 독자층을 동경 어린 시선으로 보기란 얼마나 쉬운 일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존 블래신게임John Blassingame 교수가 편집하고 예일 대학교 출판부에서 펴내고 있는 프레더릭 더글러스Frederick Douglass 저작집 같은 경우를 보더라도, 흑인 공동체의 지적·도덕적 지도자였던 더글러스가 성서를, 그것도 심지어 신약보다 구약을 자유롭게 인용한다는 사실, 잠재 독자들이 공유하는 전통의 핵심인 성서와 독자들의 경험을 아주 쉽게 연관 짓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요. 더글러스가 성서를 이용해서 논의를 전개한 것은 커다란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흑인을 억압하는 등 성서의 정신에 반하는 행태를 보이던 당시 백인들조차 성서의 권위를 인정했기 때문이지요.
_p.13~14
전통이 “모든 계급 중 가장 알려져 있지 않은 이들, 곧 우리의 조상들에게 투표권을” 주어 “선거권을 확장”하는 과정이라면, 전통사를 연구하는 이들은 전통이라는 피아노 협주곡 중 피아노 독주자(그중에서도 탁월한 연주자)의 소리만 들어서는 안 되며, 오케스트라의 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합니다.
밀먼 패리가 역사 속에서 전통을 다시 발견하는 가운데 호메로스라는 한 사람(혹은 사람들)의 시인을 넘어, 무명의 음유 시인들과 전통의 전수자들에게, 더 나아가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부족에 있는 호메로스 전통의 정당한 후계자들에게 나아갔듯 말이지요. 물론 이 이야기에는 탁월한 독주자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안목 있는 이라면 아우구스티누스와 같은 탁월한 독주자의 연주에 빠져드는 기쁨을 놓칠 수 없겠지요.
_p.39~40
전통사 연구자가 아우구스티누스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그에게 영향을 받은 아우구스티누스주의를 살피려 한다면, 아우구스티누스를 맹목적으로 떠받드는 이른바 ‘영웅 사관’을 피해야 합니다. 물론, 아우구스티누스가 중세 지성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는 가장 탁월한 라틴어 작가는 아니었지만, 라틴어를 쓴 사람 중 가장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이토록 위대한 이유는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중세의 또 다른 거인들, 즉 (시대순으로 나열하자면) 캔터베리의 안셀무스Anselm of Canterbury,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두스Bernard of Clairvaux, 토마스 아퀴나스, 보나벤투라Bonaventure, 둔스 스코투스Duns Scotus 모두 이런저런 면에서 아우구스티누스주의자였다는 사실, 더 나아가 루터, 칼뱅, 파스칼Pascal, 심지어 데카르트Descartes조차 어떤 의미에서는 아우구스티누스주의자였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닙다. 이 강연의 맥락에서 아우구스티누스가 놀라운 이유는, 그가 플라톤과 바울을 비롯한 여러 대가와 전통을 참조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그 전통의 일부가 되었고, 그리하여 수백만 명의 사람이, 지난 1,500년 동안 수백만 부가 유통된 자신의 저서, 혹은 자신을 참조한 후대의 교리문답과 기도서와 설교를 통해, 자신이 가르친 대로 사람들이 세계와 인간을 바라보게 했기 때문입니다.
_p.41~42
그리스도교 전통의 역사는 전통에 대한 비판적 재검토의 역사이고, 이는 전통 자체의 내적 역학이기보다는, 전통 안에서 검토하지 않은 전제에 의문을 제기한 외부자들이 추동한 것입니다. 동일한 성서를 다른 안경을 가지고 들여다본 (앞에서 교회의 할머니라고 불렀던) 예루살렘의 상속자들, 인간에게 그리스도교 전통을 준 하느님은 또한 당신의 형상을 따라 인간의 정신을 창조하신 분이기도 하기에 신앙의 대상인 동시에 사유의 대상이기도 하다는 점을 그리스도교 전통의 관리인들에게 상기시켰던 (또 다른 교회의 할머니인) 아테네의 상속자들, 그리스도교가 전하는 복음 역시 역사적으로 탐구해야 한다는 주장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 따라서 전통을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라는 관점으로 연구해 온,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비판적 역사가들이 바로 그 외부자들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이 외부자들은, 꽤 자주, 어떤 의미에서는, 동시에 내부자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면에서는 (내부자였다가 외부자가 되었다고도 할 수 있을 에머슨의 말을 다시 빌리면) 전통과 통찰 사이의 갈등을 인식하는 것 자체가 전통의 불가결한 요소라 할 수도 있습니다. 전통에 방부 처리를 해서 보존하고 싶어 하는 전통주의와 전통은 동일시될 수 없습니다.
_p.127~128
“특정 주제에 철저하게 몸을 담근 이라면, 그 주제에 관해 명쾌하고, 명확하게 글을 쓸 수 있다. 전통이라는 주제를 펠리칸이 다룬다면 그 글은 고전이 된다. 이 책은 전통이라는 주제에 관심 있는 이들을 위한 표준도서가 될 것이다.”
_노스롭 프라이(문학비평가, 『비평의 해부』, 『문학의 구조와 상상력』의 지은이)
“펠리칸은 매우 거대한 비전을 가진 역사학자였다. 그는 그리스도교 사상이 위대한 사상가들, 오리게네스, 테르툴리아누스,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은 위대한 학자들과 수세기에 걸친 대화를 통해 태어났음을 가르쳐주었다. 대다수 학자들이 특정 시기에만 관심을 갖고 있을 때 그는 자유롭고도 대담하게 그리스도교 사상사 전체를 조망했다. 그 덕분에 오늘날 고전 그리스도교 전통을 완전히 무시한 채 진지한 신학 작업을 하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_로버트 루이스 윌켄 (그리스도교 역사학자, 『그리고 로마는 그들을 보았다』, 『초기 기독교 사상의 정신』의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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