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고객

밀알의 흔적

순교자 박병근전도사의 사역기록과 그 가족들의 신앙이야

  • 176
  • 페이스북
  • 블로그
  • 카카오스토리
확대보기

박중기

크리스챤서적

2024년 03월 29일 출간

ISBN 9788947803892

품목정보 188*257*13mm232p518g

가   격 13,000원 11,700원(10%↓)

적립금 650원(5%)

카드
무이자
혜택보기

배송정보이 상품을 포함하여 10,000원 이상 구매시 무료배송

준비기간1일 이내 (토/주일/공휴일 제외, 당일 오전9시 이전 결제완료 주문기준) 설명보기

품목코드A000259707

매장현황
설명보기 지점별재고
광화문 강남 일산 구로 의정부 노원
1 0 0 0 0 0
* 주의: 실시간 재고수량이 달라지므로 방문전 전화확인 필수!

판매지수 40

분류 28위 | 종합 11,752위

단체주문지수 0

분류 28위 | 종합 16,147위

개별주문(100%) > 단체주문(0%)
추천지수 평점 평점 0점 (0명)
수량 상품 수량 1 감소 상품 수량 1 증가

총 합계금액0

상품 상세 정보
바로구매 장바구니 위시리스트
필독! 공지사항

함께 보면 좋은 상품이예요


순교자 박병근(朴炳根) 전도사의 사역 기록과 그 가족들의 신앙의 이야기

한국교회는, 신사참배를 강요하며 각종 고문도 서슴지 않았던 일제강점기, 공산군들의 무차별적인 교인 총살이 자행되었던 한국전쟁 등의 수난의 역사를 겪고 그 신앙을 지켜내어 오늘에 이를 수 있었다. 이 책은 그 한국교회의 신앙의 순수성을 고결한 희생으로써 지켜낸 한 순교자 가문의 ‘밀알의 흔적들’에 대한 기록이다.


[순교자 박병근 전도사]

1940년 9월 영암읍교회 시무 중 교회당 훼파,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반대하여 경찰서에 체포되어 회유에 거절하자, 조서를 받고 광주형무소로 이관되었다. 1943년 11월 광주지방법원 재판 결과 1년 6개월의 징역형 등으로 모두 3년 2개월 간의 옥고를 치른 후 출소하였다. 1950년 8월 17일 함평 나산교회 시무 중 공산군들에 의하여 순교하였다.


목차


발간사_ 박남규(광주 샘물교회 원로목사)

추천사_ 황영준(광주 동산교회 원로목사)

홍정길(남서울은혜교회 원로목사)


순교자 박병근(朴炳根) 전도사의 사역 기록과 그 가족들의 신앙의 이야기


이 글을 쓰게 된 이야기

1950년 6·25 한국전쟁과 집안의 역경


신앙의 1대 박문택(朴文澤)


신앙의 2대 박병근(朴炳根) 전도사(장로)6·25 순교자)


출생과 성장

전도사 사역의 시작

담양 창평교회 사역

제주 지역 사역

제주 지역 두모리교회 사역

장흥군 지역 교회 사역

영암군 지역 교회 사역

광주형무소를 출소한 박병근 전도사

박병근 전도사(장로) 약력


신앙의 2대 좌추선(左秋仙) 전도부인(권사)

(순교자 박병근의 부인)


출생과 성장

제주도 기독교 선교 역사와 좌추선

할머니의 믿음의 근원지를 찾아

공산교회 개척 사역

좌추선의 결혼과 가정생활

신앙의 2대 좌추선(左秋仙) 권사의 약력


신앙의 3대-1남(男) 박환규(朴煥圭) 목사

(아버지와 동생을 먼저 보내다)


출생과 성장

목회 사역의 여정

박환규(朴煥圭) 목사의 약력


신앙의 3대-1남(男)의 부인 문례순 사모

(박환규 목사의 부인)


출생과 성장

결혼과 가정생활

부친의 병 수발과 노후의 삶


신앙의 3대-2남(男) 박금규(朴金圭)

(아버지의 시신을 찾으러 갔다가 순교하다)


박금규(朴金圭)의 연혁


신앙의 3대-3남(男) 박남규(朴南圭) 목사

(샘물교회 원로목사)


출생과 성장

박남규(朴南圭) 목사의 약력


신앙의 3대-3남(男)의 부인 김해희 사모

(박남규 목사의 부인)


출생과 성장

목사 사모의 사역과 사회 활동


신앙의 3대-1남(男) 박환규 목사의 장모 박소님 전도사

(문례순 사모의 모친, 나의 외할머니)


무안 박씨 집안 신앙의 첫 도입자


각주


부록(수집한 자료 첨부)


본문 펼쳐보기


(…) 감옥에 갇혀 있다가 영문도 모른 채 끌려 나온 우익 인사 46명과 박병근 전도사는 그곳이 그들의 순교지가 될 줄 어찌 알았으랴. 공산당원들의 무차별적인 총살에 의해 박병근 전도사는 끝내 순교의 피를 흘리며 숨을 거두고 말았다. 박병근 전도사의 시신은 두 손은 앞으로 묶이고 기도하는 모습으로 발견되었고, 뒤에서 등에 대고 쏜 총탄이 배를 관통한 흔적이 역력했다. 처참한 모습이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어떤 기도를 드렸을까?

하나님 앞에 신앙의 절개를 지키기 위해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옥고를 치렀던 박 전도사는 끝내 일본 경찰이 아닌 좌익 사상에 물들은 동포가 쏜 총탄에 맞아 죽음을 맞이했다. 공산당원들의 체포의 위험이 눈앞에 다가와 있음을 알면서도 끝내 주의 몸 된 교회를 지켰던 박 전도사는 내심 순교의 길을 가는 것을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해방 전 일제하에서 신사참배 반대로 옥고를 치르면서 순교하지 못했음을 하나님 앞에 부끄러워했는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죽는 순간까지도 기도하는 자세를 흐트러트리지 않고 순교의 피를 땅에 쏟았던 것이다.

일제 때 신사참배 거부로 광주형무소에 수감되어서는 손양원 목사님 등과 함께 묶여서 재판정에 오갔다. 그는 그때 순교하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신사참배만 아니라 창씨개명도 거절하고 성도들에게 해방의 소망과 주의 강림을 선포하면서 소망을 심어 주었다. 반공운동에도 앞장서서 청년들을 지도했다. 이번에도 변함없이 주님 위해 생명 바칠 일사각오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지켰던 것이다.26)

박병근 전도사가 순교한 날은 1950년 추석 이틀 후 지방 유지들과 함께 함평 향교 뒷산으로 끌려가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추석 이틀 후면, 정확히 1950년 9월 26일(화)이 추석이니 박병근 전도사의 순교일은 1950년 9월 28일-음력 8월 17일(목요일)이었다.

/ 102p


(…) “전도부인(Bible Woman)의 초기 사역은 여선교사들의 사업을 돕는 경우가 많았으나 점차 사역의 범위가 확대되어 갔다. 전도부인은 여전도인, 여조사(女助事), 여전도사, 부인전도사 등으로도 불렀다. 선교 초기에는 전도부인 양성을 위한 체계적인 교육이 미비한 상황에서 선교사가 한글을 깨친 여성들에게 개별적으로 성경과 단순한 교리를 가르쳐 전도 사업에 종사하게 했다. 이후 전도부인을 체계적으로 양성하기 위해 여자사경회가 시작된 것은 장로교회의 경우 1897년, 감리교회는 1898년경으로 추정된다. 사경회(査經會)는 일 년에 두 차례 농한기 때에 2~4주 동안 진행되었다. 한국교회의 성장과 함께 전도부인 양성을 위한 전문적인 교육이 더욱 필요해짐에 따라 전도부인 양성을 위한 상설교육기관으로 여자성경학원이 설립, 운영되었다. 성경학원은 1년에 3학기제, 3년 과정의 교육체계를 갗추고 성경, 교리, 교회사, 일반 학문, 전도 실습 등으로 교과목을 구성하여 사경회보다 훨씬 다양하고 폭넓게 전도부인들의 역량을 키워나갔다.

전도부인은 선교사들을 조력하면서 복음을 전했을 뿐만 아니라 여성들에게 성경과 찬송을 파는 권서인(勸書人) 역할을 겸했으며, 한글을 가르쳐 여성 문맹 퇴치 운동에도 앞장섰다. 전도부인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그 역할이 변하기도 했다. 초기 권서인의 역할에서 벗어나 여러 지방을 순회하면서 성경공부반을 개최하기도 하였고, 교회를 설립하기도 했으며, 약한 교회의 성장을 위해 헌신하기도 하였다.”


나의 할머니 좌추선도 이와 같이 서서평 선교사를 따라 광주로 나와서 교육을 받고 전도부인으로 파송되어 지역을 순회하며 전도 사업을 수행하였던 것이다. 그녀의 성이 특이하여 부친이 이웃 면 반남 대안교회 시무할 때 공산교회 사역했던 것이 알려지게 된 것이다.

/ 122p


(…) 그해 가을(9월 20일) 영암읍교회 시무 중이던 부친 박병근 전도사는 창씨개명과 신사참배 거부로 영암경찰서에 구금되어 13개월간의 유치장 생활과 조사를 받은 후, 광주경찰서로 이송되어, 광주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광주교도소에서 형을 살게 되었다.

당시 15~16세인 장남 환규는 이때부터 신문 배달, 사진관, 양복점 등에서 일하며 가정을 돕기 시작했다. 그 당시 대중교통 수단이었던 목탄차 버스의 조수로 취업하기도 했다. 목탄차 조수로 근무할 때 차 사이에 끼어 죽을 고비를 맞기도 했다고 한다. 그 사이 모친은 고향인 제주를 오가며, 보따리 장사를 하여, 영암군 군서면 해창리 신흥 부락에 자리를 잡았다. 그 당시 해창 부락 일대는 바다를 막아 논을 만드는 간척지 개발 사업이 한창이었다. 이것은 일본인들이 식량을 수탈하기 위한 전략 중 하나였다. 그 지역 간척지 개발 공사 현장소장(일본인)의 부인이 기독교 신자였다. 그 현장소장의 부인이, 영암읍교회 박 전도사는 감옥에 잡혀가고 그 부인이 어린 4남매를 데리고 교회에서 쫓겨났다는 소문을 듣고 자기 남편에게 이야기하여, 바다를 막아 새로 조성된 논을 무상으로 임대하여 주었다. 간척지 땅이란 소금기가 남아 있어, 몇 년은 물로 씻어 내어 소금기를 제거하여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논을 말한다. 그래도 이 가족들은 이 땅을 무상 임대를 받아, 감사하며 열심히 농사를 지었고, 그로 인해 작은 집도 마련하게 되었다.

1943년 11월 19일, 3년 2개월 만에 부친이 출소하여 돌아오셨다. 이곳 신흥 부락 신흥교회에서 다시 사역을 시작하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다. 일본 경찰의 끊임없는 감시의 눈총 속에서도 부친 박병근 전도사는 조금의 두려움도 없이 목회에 정진하였다. 영암군내 장암교회와 구림교회도 겸임하여 시무하던 중 1945년 8·15해방을 맞게 된다.

박환규는 부친의 광주형무소 구속 수감으로 학업을 계속할 수 없어 취업 일선으로 나가 3년간을 가사를 도왔다. 부친이 출소하자, 가사를 도우면서 틈틈이 우편을 이용한 통신 과정으로 중학 과정을 공부하였다. 박병근 전도사는 장남 환규를 광주고등성경학교에 보내기로 결정한다.

그리하여 장남 환규는 해방 다음 해인 1946년에 광주고등성경학교에 입학했다. 이때 2남 박금규도 광주 숭일중학교에 입학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부친인 박병근 전도사도 1947년에 광주 광산교회에서 시무를 하게 되었고, 1948년에는 무안군으로 옮겨 현경면 현경교회에서 시무를 하시었다. 현경교회에서 시무 중일 때 박병근 전도사는 고등성경학교 졸업반인 장남 환규를 당시 이웃 교회인 무안면 매곡교회 전도부인 박소님의 유복자 딸인 문례순과 결혼을 시켰다.

1948년 12월 27일 성경학교 졸업을 앞두고, 그해 성탄절을 지나 무안면 매곡리 매곡교회에서 전정현 목사의 주례로 문례순과 결혼한다. 광주고등성경학교 졸업하자 바로 전도사로 사역을 시작한다.

/ 137~138p


추천의글


박 목사님 가문의 신앙의 첫 문을 여셨던 박소님 전도사님은 우리 외할머님의 수양딸이셨습니다. 외할머니께서 가장 사랑했던 친딸 이상으로 신뢰하고 사랑했던 전도사님의 이름을 제가 글로 읽으면서 가슴 뭉클한 감동을 누렸습니다. 이 기록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셨던 신앙의 현장을, 그 큰 은혜를 우리가 반드시 자녀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이 책은 너무나 귀한 책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믿은 예수님은 어떤 분이셨는지 확실하게 자녀들의 마음에 새겨, 예수 그리스도의 구세주 되심과 주님 되심이 드러나는 신앙의 바통을 잘 전해야 합니다. 이런 거룩한 가문의 기록이, 우리 후손들에게 믿음의 반석에 서서 우리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되심을 고백하게 할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 가정에 이와 같은 아름다운 전승의 축복이 있기를 소원하며, 많은 사람에게 책이 전해지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_남서울은혜교회 홍정길 원로목사의 「추천사」 중에서


상품정보고시

상품정보고시입니다.
저자 (기본값:제작사 정보 미제공)
크기 전자책의 경우 파일의 용량
쪽수 전자책의 경우 제외
제품 구성 전집 또는 세트일 경우 낱권 구성, CD 등(기본값:해당사항없음)
출간일 (기본값:제작사 정보 미제공)
목차 또는 책소개 상세화면 표시
평점 0 매우 별로예요! 총 0건 평가 기준

무성의, 비방, 도배, 도용, 광고성 평등 상품평 성격에 맞지 않을 경우 사전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이 책을 평가해주세요!

상품평 작성하기

상품관련 문의를 남겨주시면 답변해드립니다. 성격에 맞지 않는 글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

상품Q&A쓰기

배송 관련정보

배송비 

- 라이프북의 배송비는 1만원 미만으로 주문하실 경우 2,500원의 배송비가 부과됩니다. (단,제작처 개별발송 상품은 제작처의 배송비정책을 따릅니다) ​

- 도서,산간 지방의 경우 및 퀵 서비스요청은 배송정책과 관계없이 추가 배송비는 고객님께서 부담하셔야 합니다.
 

배송기간

- 신용카드 결제나 핸드폰,실시간 계좌이체는 즉시 결제확인이 가능하며,무통장입금의 경우 입금하신 순서대로 결제확인 후 출고가 이뤄집니다.
  (단,토요일,일요일,공휴일을 제외한 평일 9시 이전까지 결제확인 된 주문건에 한해서만 당일출고 됩니다.)
- 배송기간은 출고 후 최소 1일(24시간)~최대7일 정도 후 주문하신 상품을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단,토요일/공휴일제외)

교환/환불 관련 정보

도서는 개정판/재판이 출간될 경우 가격이 변동될 수 있어 주문취소 및 주문변경을 요청드릴 수 있습니다.

상품의 실제 색상은 사용하시는 모니터에 따라 다를 수 있사오니 이점 양해부탁드립니다.


상품에 대한 주문취소/교환/반품/환불정보를 확인하세요!

 

구매확정하시거나 출고완료 후 10일이 지난 주문건은 교환/반품이 불가하여,마이페이지에서 신청버튼이 조회되지 않습니다.
파본상품은 반품/교환 버튼이 보이지 않을 경우 유선전화나 게시판으로 연락부탁드립니다.

주문취소
•주문상품  취소는 "입금확인중(전체취소만 가능)/결제완료(부분취소도 가능)" 단계에서만 가능합니다.
•"입금확인중" 단계에서는 부분취소가 되지 않사오니 부분취소를 원하시면 전체취소후 재주문 주셔야 합니다.
•무통장 및 가상계좌 결제의 경우 주문일 기준으로 15일이후까지 결제가 완료되지 않을 경우 주문은 자동으로 취소됩니다.

반품/교환
•받으신 상품을 사용하지 않으신 경우, 출고완료 후 7일 이내에 반품이 가능합니다.
•주문 상품이 발송완료 된 후 "마이페이지>취소/반품/교환신청"메뉴에서 반품/교환신청이 가능합니다.
•교환은 상품불량 및 오배송 시에만 동일제품에 한하여 교환됩니다.다른 상품으로 교환은 불가능합니다. 다른 상품으로 교환하기 원하시면 반품후 새로 주문해주셔야 합니다.
•사용자변심에 따른 반품의 경우 편도/왕복 배송비가 부과되며 배송료는 고객 부담입니다.
-전체반품시 왕복배송비 부과
-부분반품시 남은주문금액이 무료배송기준 미달일경우 왕복배송비 부과
-부분반품시 남은주문금액이 무료배송기준 이상일경우 편도배송비 부과


※ 반품이 불가능한 경우
•시즌 상품의 경우에는 반품/환불이 되지 않습니다.꼭 숙지해 주세요.(월간지/다이어리/절기공과 등)
•복제가 가능한 상품(교재/악보/음반 및 멀티미디어 등)경우 성경공부교재 및 악보는 받으신 이후에는 반품/환불이 되지 않으며 음반 및 멀티미디어의 경우 포장을 훼손한 경우 반품/환불이되지 않습니다.
•인쇄성경/스프링제본 등과 같이 고객 요청으로 별도제작된 상품인 경우
•고객님의 책임이 있는 사유로 상품 등이 훼손된 경우
•포장을 개봉하였거나 포장이 훼손되어 상품 가치가 현저히 떨어진 경우(단, 가전제품, 음반 등의 일반 상품은 제조사 기준에 따릅니다.)
•고객님의 사용 또는 일부 소비에 의하여 상품가지가 현저히 떨어진 경우
•시간의 경과에 의하여 재 판매가 곤란할 정도로 상품 가치가 현저히 떨어진 경우
•비닐로 랩핑된 상품의 경우 비닐을 뜯으시면 반품이 불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