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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철

황성철

역기능 가정에서 외아들로 태어나, 네 살 때 뜻하지 않은 결핵성 관절염으로 하반신 장애를 갖고 사춘기를 죽음과 맞서 싸우다가, 마침내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여름 수련회에서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주님의 종이 되기를 서원하고 목사가 되었다. 그러나 목사로서의 길은 장애를 가지고 있는 저자에게 마치 견고한 여리고 성과 같았다. 이 성벽을 뛰어넘어야 하는데 불가능했다. 그래서 외아들로서 정말 해서는 안 되는 불효를 무릎 쓰고 유학을 결심하고서 미국 텍사스 남서침례 신학교(Southwestern Baptist Seminary)에 갔다. 1년에 36학점을 이수해야 하는 석사 과정을 마치고, 이듬해 켄터키주 남침례 신학교(The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박사 과정에 입학해서 렉싱턴 한인장로교회(Lexington Korean Presbyterian Church)를 목회하면서 4년 반 만에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학위 취득 후, 모교인 총신대학교에서 불러 주었으나, 자녀들의 교육에 자신이 없어서 하나님께 학위를 받으면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약속 위반에 대해 눈물로 용서를 구하고, 샌프란시스코 제일장로교회(The First Korean Presbyterian Church of SF)에서 이민 목회를 시작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3년 후에 다시 모교로 길을 열어 주셔서 대망의 꿈을 이루게 되었다. 늦은 나이(50세)에 교수를 시작한 연유로 연금 없이 퇴임하게 되어 거의 1년을 정신적·경제적으로 방황했으나,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자원봉사의 일이 나를 다시 회복시켰을 뿐만 아니라 생활의 부족한 부분도 해결되는 주님의 은혜를 경험케 되었다.

신학대학원 1학년 때 'Classmate'로 만난 아내 김정설과 52년간 살아오면서 슬하에 두 딸을 두었고, 현재는 미국 켈리포니아의 라구나 우즈(Laguna Woods)라는 은퇴자 마을에 살면서 평안하고 행복한 나날의 삶을 즐기고 있다. 집에서 약 20분 거리에 있는 얼바인 베델교회(김한요 목사 시무)에서 교인들의 상담을 돕는 협동 목사로서 사역을 하고 있고, LA 개혁신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어느 날 가정예배를 드리는 중에 아내의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 뭘까?"라는 물음에 대답한 "전도가 아닐까?"라는 말이 일주일에 한 번씩 쇼핑몰에 가서 전도지를 돌리면서 전도를 하게 했다. 현재 몇 개월째 해 오고 있는데, 할 수 있는 날까지 이 거룩한 일을 계속 하려고 한다. 그리고 건강이 허락한다면 아내와 남은 삶은 선교지에 가서 선교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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