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러마이어 버로스(Jeremiah Burroughs. 1599-1646) 버로스는 ‘세상의 성자들’이라 불리는 청교도 가운데 정중동(靜中動)의 행보로 영적 혁명의 소용돌이를 헤쳐 나간 인물 중 한 사람 이다. ‘평화의 사람’이라는 별칭이 있을 만큼 온유의 미덕을 잘 실천했던 그는 생전에도 토머스 굿윈(Thomas Goodwin). 윌리엄 브리지(William Bridge) 등 당대의 고명한 청교도 목회자들로부터 존경과 찬사를 받았으며. 설교와 저작 활동을 통해 증명된 그의 탁월한 영성은 지금까지도 여러 작품과 문헌들에 의해 전해지고 있다. 캠브리지 대학교 엠마누엘 칼리지에서 교육을 받았으나 영국 국교의 탄압을 피해 학업을 중단하고 세인트에드먼즈 교회에서 에드 먼드 캘러미(Edmund Calamy) 목사를 보좌했으며. 5년 여 동안 노퍽 지방에서 강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점차 박해가 심해지던 1636년경 강사직에서마저 쫓겨나게 되자 청교도 귀족인 워릭(Warwick) 백작의 호의에 의탁하여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영국인 교 회로 옮겨 갔다. 그가 영국으로 돌아온 것은 1642년. 청교도 혁명으로 비국교도 박해 세력이 줄어들면서였다. 귀국 후 잉글랜드 최대의 회중 수를 자랑하던 런던 크리플게이트 교회와 스테프니 교회의 설교자로 선출되는 한편. 웨스트민스터 회의 회원으로도 활동하였다. ‘온화 한 성직자’란 평을 듣던 그도 당시 교회 내에 정치적인 분열이 일어났을 때는 상당히 고심했던 흔적이 보인다. 어쨌든 그는 교리와 교회 정치에 대한 독자적인 신념을 갖고 있었으나 그 결의를 실천할 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평화로운 해결을 위한 지혜를 발휘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또한 명철하고 군더더기 없는 설교로 유명하였다. 스테프니 교회에서 오전 예배 설교자로 재직할 당시. 오후 예배 때 설교하 던 윌리엄 그린힐(William Greenhill)이 ‘저녁별’로 불리던 것에 비견하여 ‘아침별’로 불리며 과장이나 허세 없이 명료한 설교를 하 여 ‘설교자의 왕자’라는 위명을 떨치기도 했다. 동시에 탁월한 저술가이기도 했던 그는 47년의 길지 않은 삶 동안 영향력 있는 작품들을 다수 써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 져 있고 가장 인기 있으며 본서의 원작이기도 한 『그리스도인의 만족이라는 귀한 보물』은 그가 눈감은 지 2년째 되던 해인 1648 년에 출간되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