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비국교도라는 이유 때문에 투옥되어 옥중에서 순교한 청교도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옥스퍼드의 유니버시티 대학(University College)을 졸업 하고 데본(Devon)의 다트머쓰(Dartmouth)에서 거의 평생을 목회하였다. 그는 청교도 전통의 모든 특성들을 자기 목회사역에 적용한 목사로서 “설교는 ‘이를 가는 것 같은 열심’(hissing hot)과 함께 마음을 탐사하는 성경강해여야 한다.”라고 역설하였다. 플라벨은 자신에게 허락된 능력을 극대화하여 성도들의 마음을 가르치고 그 마음에 호소하는 설교를 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청교도 설교자들 중에 그 보다 학식이 높은 이들이 있을 수 있으나 하나님의 손에서 여러 방면에 쓰임새를 보이는 면에서는 그를 능가할 사람이 없다.
그의 전작집(全作集)이 여러 차례 재판된 것은 그의 영향력을 실감하게 한다. 18세기에 다섯 차례, 19세기에 적어도 세 차례의 재판을 거듭하였다. 특기할 사항은 18세기에 미국의 영적 거장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영성에 있어서 존 번연(John Bunyan)과 매튜 헨리(Mathew Henry)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영국의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 그리고 19세기에 로버트 맥체인(R. M. M'Cheyne)과 앤드류 보나(Andrew Bonar)와 같은 스코틀랜드의 영적 지도자들이 이 플라벨의 저작들을 극찬하고 애독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더욱 더 중요한 요점은 플라벨의 저작들은 여러 세대의 그리스도인들 가정들 속에서 그 영적 호소력과 감화력을 계속 뿜어내왔다는 것이다. 19세기 프린스톤 신학교 초대 교장인 아춰발드 알렉산더(Archibald Alexander)가 십대에 그의 책을 읽고 회심하였는데, 말년에 그것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였다. “나는 분명하게 말하여 그 어떤 영감있는 저자보다 더 충일한 이 존 플라벨에게 더 많은 빚을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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