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선주
길선주(吉善宙, 1869~1935)
한국 개신교 형성의 초석을 놓은 인물로 평가받는 길선주 목사는 1869년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났다. 20대까지 동양종교에 심취해 있었으나 선교사 사무엘 마펫을 통해 기독교를 접하고 29세에 세례를 받았다.
1903년 평양장로회신학교에 입학, 1907년 평양신학교를 제1회로 졸업하고 한국인 최초의 7인 목사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같은 해 10월에는 평양에서 가장 큰 장대현교회에 부임했으며, 한국 교회사의 전환점으로 평가되는 평양 대부흥운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탁월한 부흥사이자 설교가였던 그는 기독교인의 실천적 영성을 강조하였고, 동시에 일본의 폭압적 지배로부터 독립을 갈구했다. 1919년 3·1운동 당시에는 기독교 대표로서 독립 선언서에 서명하여 2년간의 옥고를 치렀고, 한국 산업전도의 첫 시도로 간주되는 평양 노동자 연합전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길선주 목사는 바쁜 사역 가운데서도 놀라울 정도의 열정으로 여러 저서를 남겼다. 그는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을 읽고 회심했는데, 이를 반영하듯 자신의 독특한 『천로역정』 독법을 『해타론』과 『만사성취』라는 책으로 남겼다. 이 외에도 『강대보감』 『말세학』 등의 문헌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