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평북 박천에서 물상객주의 넷째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상당한 재력으로 풍요롭게 자란 그는 박천 공립보통학교를 거쳐 평양 서문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 유학을 떠나 경도여전과 동경 가정학원 연구과를 수료하였다. 귀국 후, 대구여자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선천보성여자학교에서 교사로 봉직하던 중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맞서 분연히 일어났다.
1940년 2월, 동경으로 건너가 일본 정치인들을 상대로 일본의 광기어린 침략행위와 기독교 박해에 대해 위풍당당하게 걸어 들어가 일본 당국의 기독교 탄압을 규탄하는 내용의 유인물을 뿌리고 체포되었다. 그리고 국내로 압송되어 평양형무소에서 신사참배 거부 투쟁자들과 함께 옥중투쟁을 전개하고 6년의 옥고를 치른 후 8·15광복과 함께 석방되었다.
1948년 미국으로 건너가 미네아폴리스의 노스웨스턴대학과 텍사스의 사우스웨스턴침례신학교에서 수학하였고, 김동명 목사와 결혼한 후, 로스앤젤레스 한인침례교회를 개척해 미주·한 인사회를 이끄는 사역을 담당했다. 1968년 자신의 수기 《죽으면 죽으리라》, 《죽으면 살리라》(기독교문사)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교계 안팎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계속해서 《당신은 죽어요, 그런데 안 죽어요》, 《그럴 수도 있지, 낫고 싶어요》, 《솔직한 노래》, 《자랑이 되는 자랑》, 《신정》, 《지나가는 순례자》(요단) 등을 출간하며 작가로서의 명성도 날렸다.
한국과 일본, 미국과 유럽 여러 나라를 순회하며 전도 간증 집회를 열었고, 대전에 새누리침례교회를 개척하기도 했다. 자신을 '실격된 순교자'라 불렀으나 주변에서는 '살아 있는 순교자'라 칭했던 그는 마지막까지 왕성한 선교활동을 벌이다가 1997년 10월 19일 미국 로스앨젤레스 선한사마리아병원에서 별세하여 로스앤젤레스 교외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