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고객

전생수

전생수

전생수 목사는 1954년 9월 28일에 강원도 인제군 남면 갑둔리에서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 서당을 다녔으며 갑둔 초등학교와 두촌 중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를 거쳐 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으나, 공부하던 중 그만두었습니다. 그리고 신학에 뜻을 두고 협성신학대학 에 입학하였으나 1학기 다니다가 그만두고는 총회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2년과정을 수료하고 목회를 시작 했습니다. 1981년 5월 강릉지방 금산감리교회를 개척했고, 예배당을 건축했습니다. 1991년 강릉지방 푸른교회를 섬기면서, 같은 해 3월 동부연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습니다. 1995년 1월부터 충북연회 충주동지방 추평교회를 섬기면서 "우리안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자" 라는 소망을 담아 농촌 공동체의 삶을 같이 아파하고 기쁨을 나누 었습니다. 2005년 10월 14일 새벽기도를 하던 중 뇌중풍으로 쓰려져, 병원으로 옮겼으나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여 2004년에 미리 쓴 유언에 따라 평소에 그가 원하던 대로 장기를 기증하였습니다. 전 목사님의 각막은 두 분에게 밝은 빛을 보게 했으며, 두 분에게 신장을 또 한분에게 간장을 드렸고, 심판막 연골 까지 모두 7명에게 드렸습니다. 전생수 목사에게는 여러 이름이 있습니다. 정규 신학교를 마치지 않아서인지 평소 전 목사는 스스로 "반쪽목사" 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온전한 목회자로 살고 싶은 자신의 의지를 담은 것이기도합니다. 목사라는 칭호보다 별호인 "만득이"로 불리기를 좋아했는데 이 또한 촌놈이란 의미로 전 목사 자신이 붙인 것입니다. 또다른 이름 "허이"는 "귀있는 자는 들어라" 한 예수님의 말씀을 비추어 지은 것으로 "빈 귀" 즉 귀있는 자로 살겠다는 표현입니다. 이름 값을 다하고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간 고(故) 전생수 목사, 이 땅에 자신의 흔저을 남기지 않으려는 바람대로 그의 시신은 화장돼 고향인 인제의 어느 나무 아래 묻혔습니다. 유족으로는 박영자 사모와 딸 한나, 아들 보람이 있습니다.
0의 도서가 있습니다

신상품순

베스트순

    번호
    도서명
    리뷰제목
    글쓴이
    작성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