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티 윌콕스 노블 Mattie Wilcox Noble(1872~1956)
매티 노블의 일기에는 기존의 선교관련 서적에서 찾아볼 수 있는 엄정함과 깔끔함보다는 인간 냄새 폴폴나는 여성 특유의 세심함
이 묻어난다. 사역에 대한 보고 형식의 일기는 물론, 사랑해야 할 조선인들과 티격태격 씨름하며 배앓이하는 모습, 복음을 받아들
이며 변화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환희와 소망으로 뛰노는 장면, 당시의 조선 사람의 관습을 외국인 선교사의 입장에서 자세
히 풀어 전한 부분, 정치적 중립을 지킬 수밖에 없던 선교사로서 조선독립 운동을 심정적으로 지원하는 부분, 성경 중심의 분명한
사역 원칙이 있었지만 사람들의 연약함과 풍습을 이해하고 기다려주는 모습 등 단지 한 명의 뛰어난 선교사라기보다는 어머니와
같았던 그녀의 모습 속에서 어미닭의 포근함을 연상하게 된다.
그녀는 1872년 펜실베니아 주 윌크스베러에서 태어났다. 와이오밍 신학교에서 만난 윌리엄 아더 노블과 1892년 결혼했고, 그 해에
한국 선교사로 부임하는 남편을 따라 내한했다. 서울, 평양, 수원 등지에서 감리사로 오랫동안 일한 남편을 도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선교와 교육사업에 힘썼다. 특히 평양 남산현교회를 중심으로 한국 최초의 여성성경공부모임, 한국 최초의 유년 주일학교를 시
작했다. 1934년 은퇴한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돌아갔으며, 1941년 북 캘리포니아 주를 대표하는 ‘미국의 어머니’로 뽑혔다. 남편은
1945년 캘리포니아 주 스톡턴에서 사망했고, 노블 여사는 1956년 스톡턴의 한 요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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