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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무라 간조

우치무라 간조

1861년에 일본 에도에서 다카사키 한시의 아들로 태어났다. 동경외국어학교(1874)를 거쳐 삿포로농업대학(1877)에 입학, 거기서 처음 기독교를 접했고 세례까지 받았다.졸업 후 잠시 농상무성(農商務省)관리로 있다가 미국 유학을 떠나 애머스트(Amherst)대학 에서 기독교 역사, 히브리어, 헬라어, 서양사 등을 공부했으며 졸업 후 하트포드 신학교에서 신학 공부를 했다. 1888년 소명을 품고 귀국한 그는 나가타 현의 호쿠에쓰 가칸 학교에서 교편 생활을 시작했다. 1891년 제일고등중학교에서 가르치던 중 천황의 "교육칙어(敎育勅語)"를 불경시(不敬視)했다는 이유로 교직을 떠나야 했으며, 이 때부터 본격적인 저술 활동에 들어가 주옥같은 저작들을 쏟아 냈다. 한때 그는 월간 "성서 연구"를 통해서 신앙과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애국과 정의에 관한 견해를 펼쳤으며, 이러한 사상은 김교신과 함석헌에게로 이어져 "성서 조선"의 창간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기성 교회가 지나치게 의식적이고 조직에 얽매여 있으며 신학에 사로잡힌 나머지 그 본래의 생명성을 잃어버렸다고 판단, 무교회주의를 주창하며 성서 연구 중심의 기독교 복음 운동을 전개했다. 1930년 몰(歿) 우찌무라 간조는 젊어서 자연과학자로서의 탁월한 재능을 보였는데, 그는 근세 과학의 방법과 정신을 배움으로써 서구의 과학을 문제로 삼았을 뿐 아니라, 동시에 서구의 종교를 자기의 문제로 받아들여, 평생을 통하여 이를 추구하였다. 그리고 그는 과학자 로서의실험적 방법을 기독교의 방법으로하였다. 그에게 있어서는 기독교의 신앙을 기성의 교리로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그 생 애의 구체적인 사건을 모델로 삼아 실험적으로 이를 체득하였다. 우찌무라 간조의 생애는 그 생활태도에 있어서 독자적인 깊이를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그 강렬한 개성적인 생활태도는 일본의 역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겨놓았다. 그는 당시 일본의 문화, 정치, 종교교육등 사회 전반에 걸쳐 예언적인 예리한 필치로 그 병 페를 파헤치고 비판하면서 참된 삶의 방향과 일본의 천직을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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