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 튜레틴 1623-1687
프란시스 튜레틴은 칼빈과 베자의 뒤를 잇는 17세기 제네바 신학에 있어서 빼어놓을 수 없는 신학자이다. 1648년에 제네바 교회
의 목사가 되어 설교 사역을 시작하였고, 1650년에는 여러번의 거듭되는 요청을 물리칠 수가 없어서 레이든 대학의 철학부 교수
로, 다시 제네바 교회의 목사로, 1653년에는 제네바 대학에서 신학부 교수직으로 섬겼다. 신학부 교수로서 그는 신실했고 담대했
으며 부지런히 당대의 거짓된 가르침을 신랄하게 공격하였다. 당연히 교황주의와 소시니안주의, 알미니안주의가 그의 주요 공격
대상이었다. 존 오웬이 영국에서 하고 있던 일을 대륙에서는 튜레틴이 그 일을 감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무엘 알렉산더는 프란
시스 튜레틴에 대하여 "개혁주의 교리의 가장 심오한 해설자"라고 하였고 레온 모리스는 "제네바 개혁의 최고봉"으로 불렀다. 그
의 대표작이고 역작인 [변증신학 강요]는 17세기 제네바 신학을 대표하는 저작물 중의 하나로서 19세기 미국 장로교회 신학과 프
린스톤 신학의 근간을 이루기도 하였다. 종교개혁 신학이 튜레틴에 와서 종합과 체계를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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