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맨튼(Thomas Manton)은 당대의 유명한 영국 청교도 목사 중의 한 사람이다. 맨튼은 1620년에 잉글랜드 남서부 서머싯
주의 리디아드 세인트로렌스(Lydeard St Lawrence)에서 출생했다. 옥스퍼드 대학의 워드햄(Wadham) 칼리지에 입학한 맨튼
은 그 후 하트 홀(Hart Hall) 칼리지로 옮겨 그곳에서 1639년 문학사 학위(B.A.)를 취득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 조셉 홀 주교로
부터 그 나이 20세 때 목사 안수를 받았다. 맨튼은 지역 교구 설교자로 임명되어 데번 주 소우톤과 콜리톤에서 목회 사역을 성공
적으로 수행했고, 이어서 런던 인근의 스토크 뉴윙톤에서 본격적으로 사역을 시작했다. 맨튼은 1656년에 웨스트민스터 교회의
설교 목사로 임명되어 런던으로 이주했다. 또한 맨튼은 코벤트 가든에 있는 세인트폴 교회의 교구 목사로 임명되어 오바댜 세즈
윅의 후임자가 되었다. 맨튼은 영국의 공화정 기간 중 크롬웰 주변에서 활약하던 목회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찰스 2세의 왕정복
고 이후 1662년 청교도 대축출 사건 때, 맨튼은 청교도 신앙을 고수하는 2천여 명의 다른 목회자들과 함께 핍박을 받았다. 청교도
들은 바로 그 해에 제정된 통일령(Act of Uniformity) 하에서 신앙 양심을 지키느라 고초를 당했다. 맨튼은 1677년 10월 18일에 57
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맨튼은 체계적인 본문 강해 설교자로 이름을 떨쳤다. 맨튼의 설교는 전형적인 개혁주의를 바탕에 둔
것으로, 본문으로 설명하고 그 성경 본문의 진리를 삶의 모든 일에 적용시키려는 시도를 특징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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