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거스리 William Guthrie(1620-1665)
1620년 스코틀랜드 앵거스셔 피트포시에서 대가족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덕망 있는 지주였던 부모님의 보살핌으로 형제들은 모두
경건하게 자라났다. 세인트 앤드류스 대학교에서 사촌인 제임스 거스리의 지도로 문학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이후 동대학교 신학
교수였던 새무얼 러더퍼드의 지도 아래 신학을 공부했고 그의 강단 사역에 감명받아 주님을 섬기는 일에 전적으로 자신을 바치게
되었다. 1642년 스물두살에 복음을 설교할 수 있는 자격을 취득했고, 1644년 11월 7일 펜윅 교구 칼스턴 교회의 목사로 노회에서
안수를 받았다. 거스리는 주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그 메시지를 충실하게 전달해야 할 크나큰 책임감으로 늘 가슴이 벅찼다.
이런 열정과 사랑으로 펜윅 교구를 이십 년 섬긴 결과 아름다운 열매를 많이 보았으나, 스튜어트 왕조가 복위되면서 핍박의 불길
이 다시 타올랐고, 그 핍박을 거스리도 피해갈 수 없었다. 1664년, 투구를 쓴 군인들이 와서 글래스고 대주교의 명령문을 제시하
고 거스리의 목사직을 면직시켰다. 이후 요결석증, 통풍, 격렬한 울화, 신장궤양 등 모든 게 한꺼번에 그를 공격해 왔지만, 그는
모든 생각과 소망을 주님께 확고히 고정시켰고, 극심하기 짝이 없는 고통 가운데서도 주님께서 그 인자하심의 표를 보여 주시는
것에 종종 감사와 사랑을 드러냈다. 그를 가엾게 여기신 주님께서는 마침내 그의 영혼의 경건한 호흡을 받아주셨다. 1665년 10월
10일 수요일 오후, 여동생의 남편 브레친의 루이스 스키너 목사 집에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자신을 용서해 주시고 받아주실
것을 굳게 확신하며,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브레친 교회의 피트포시 회랑 밑에 있는 가족묘지에 묻혔다. 자신의 가르침과 목회 경
험에 대한 모든 것을 쏟아부은 이 책 『참된 구원의 확신』은 거스리의 살아생전 유일한 작품으로서 1658년에 출판되었다. 1682
년 거스리의 아내의 집을 수색하던 군인이 출판되지 않은 거스리의 글들을 빼앗아서 없애 버렸고, 1779년에는 설교 열일곱 편을
모은 설교집이 출판되었는데, 이 설교집은 이후『스코틀랜드 박해 시대에 전해진 설교들』이라는 제목으로 1882년에 재출판되었
다.
, 이 설교집은 이후 [스코틀랜드 박해 시대에 전해진 설교들]이라는 제목으로 1882년에 재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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