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영 선교사의 인생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기적이 일상이 되는 삶’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를 여의고 끼니를 걱정해야 할 만큼 형편이 어려웠지만, 그 와중에도 이른 새벽부터 무릎으로 나아가는
기도자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무명의 전도자로 사셨던 어머니의 믿음을 물려받아, 학비를 벌어 중·고등
학교를 다녀야했고, 그 상황에서도 아르바이트를 하며 중증장애인들을 섬겼다.
성화영 선교사는 어려서 부터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며, 하나님께 넘치는 사랑을 받아, 자신의 집보다 교회당을 먼저 세우려는
열망으로 개척헌금을 드림으로 한 교회가 탄생되는데 밀알이 되었고, 이후 그 교회를 세워나가는데 기쁨으로 아낌없이 헌신하였
다. 또한 주님의 사랑에 감격, 고시패스한 공무원인 남편보다 더 월급이 많았던 은행원으로서의 탄탄한 직장을 그만두고,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는 부르심에 순종하여 거리 전도자가 돼 많은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였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심정으로 열방에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로 살고 있다. 스리랑카 선교 중 남편을 먼저 주님 품에 올려 드리고(2017년 초 또다시 주님이 부르시는 그곳을 향하여 사역하고 있다.
성화영 선교사는, 목포여자상업고등학교 재학 중 은행에 취업돼 근무하면서, 방송통신대학 가정학과, 성균관대학교 중문학과,
목회상담대학원, 한국성서대학원 목회학과...등에서 공부했으며, 대부분 수석으로 졸업했다. 서울 만나장로교회의 사역자였고,
중동지역, 필리핀, 에콰도르, 중국, 스리랑카에서 선교사로 주님을 섬기고 있다. 가족은 코이카 자문관으로 주님을 섬기다 주님
께 먼저간 남편 박융성선교사와 코넬대 박사과정과 에디오피아 NGO사역 증인 첫째 딸 사라와, 선교를 위해 중국에서 중의학을
공부한 후, 지금은 미국에서 한의학박사 인턴 중에 있는 둘째 딸 혜신이가 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