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생명사 시리즈 2) 홀로코스트에 맞선 네 여성

에디트 슈타인/시몬 베유/안네 프랑크/에티 힐레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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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서명 : Four Women Confronting the Holocaust

레이첼 펠데이 브레너

김준우 역자

한국기독교연구소

2025년 09월 01일 출간

ISBN 9791193786123

품목정보 152*224mm32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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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홀로코스트에 맞선 네 여성의 치열한 글쓰기를 통한 저항을 자세히 해명한다. 네 여성은 죽음의 위협을 항상 느끼면서도 믿음과 사랑에 헌신하다가 결국 아우슈비츠 가스실에서 죽은 에디트 슈타인(50세), 런던에서 굶어 죽은 시몬 베유(34세), 다락방에서 숨어지내다 베르겐벨젠 수용소에서 굶주림과 장티푸스로 죽은 안네 프랑크(15세), 그리고 아우슈비츠에서 죽은 에티 힐레숨(29세)이다. 네 여성을 흔히 순교자나 성인으로 미화하는 경향이 있지만, 저자는 그런 경향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임박한 죽음의 위협 속에서 일기와 자서전을 쓴 치열한 작가로 본다. 또한 그들의 사상사적 위치를 해명하면서, 아렌트, 프로이트, 레비나스뿐 아니라 전후의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학자들과 틸리히, 몰트만, 반 뷰렌 등의 신학자들을 통해 그들의 홀로코스트 경험이 어떻게 신학과 여성학에서 획기적 변화의 씨앗이 되었는지를 추적한다. 유대인으로 태어났지만 그리스도교 신앙을 받아들인 네 여성이 유럽의 모든 유대인을 몰살하려는 나치의 최종 해결책 앞에서, 의식을 마비시키는 극도의 불안과 절망 앞에서 글쓰기에 몰두한 이유는 무엇인가? 전지전능한 전통적 하느님이 사라지고 인간성과 개성마저 철저히 파괴하는 묵시종말적 세상에서 무엇이 그들의 인간성을 지켜 주었는가? 그들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역사의 희망을 어디에서 새롭게 찾았는가? 그들의 글쓰기는 어떻게 폭력과 절망에 맞서는 저항이었는가? 자본의 독재와 AI 로봇의 지배뿐 아니라, 기후 파국이 빠르게 다가오는 가운데 파시즘이 부활하고 있다. 선전과 오락이 지식을 대신하며, 사회적 분열, 극우 집단의 혐오와 폭력, 타인에 대한 무관심이 팽배한 비인간적 세상에서, 우리의 마음 상태는 과연 어떠하며, 또한 비극의 역사를 정확히 기억하는 것이 어떻게 파시즘을 막아내며 우리의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첫걸음이 되는지를 이 책은 묻고 있다.



목차


감사의 말씀ㆍ7

서론|저항의 의미ㆍ9


제1부저항과 휴머니즘 윤리

1장. 계몽주의와 불/연속적 대화ㆍ25

2장. 지속적인 자기 향상ㆍ35

3장. 타인에 대한 초월론적 의식ㆍ51


제2부저항과 종교적 정체성

4장. 에큐메니즘과 반유대주의 사이에서ㆍ87

5장. 슈타인과 베유: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에 대한 서로 다른 대응ㆍ97

6장. 슈타인과 베유: 자기 긍정과 자기 부정 사이에서ㆍ127

7장. 프랑크와 힐레숨: 정체성과 하느님 찾기ㆍ165


제3부자전적 글쓰기의 저항 행동

8장. 예술과 자아가 만나는 지점ㆍ201

9장. 슈타인과 베유: 추방된 자전적 자아ㆍ207

10장. 프랑크와 힐레숨: 일기 쓰기를 통해 성장한 예술가ㆍ217



제4부저항과 여성성

11장. 공포 통치 속의 젠더 의식ㆍ251

12장. 슈타인과 베유: 여성의 본성과 운명ㆍ255

13장. 지적이며 정서적인 성숙을 향하여ㆍ279


결론저항의 유산


참고 문헌ㆍ309

옮긴이의 말ㆍ316

저자 소개ㆍ320



본문 펼쳐 보기


실제로, 그 네 여성이 죽은 후에 발표된 자전적 작품들을 신성하게 다루는 것은 전쟁 후에 그 끔찍함을 완화하려는 경향을 보여준다. 즉 슈타인은 카르멜 수녀회 소속으로서 순교자로 미화되었고, 안네 프랑크는 희생된 아이들의 보편적 아이콘이 되었고, 베유와 힐레숨은 성인다운 이타주의자들의 만신전(pantheon)에 들어갔다. … 더군다나 그런 표현은 결국 정의가 승리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_"서론" 중에서


나는 이 여성들의 삶에 의미를 부여한 것은 바로 믿음이 사라진 세상 현실에서 믿음을 지키고, 사랑이 없는 세상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세상을 사랑하려는 투쟁이었다고 믿는다.

_"서론" 중에서


그녀는 이렇게 썼다. “우리는 지금까지 유례가 없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오늘날 …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이 요구하는 성스러움을 지녀야 합니다. 그 성스러움 자체도 유례가 없는 것입니다.” 마치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예견이라도 한 듯, 베유는 이렇게 주장했다. “마치 페스트에 시달리는 도시에 의사가 필요하듯이, 세상에는 천재적인 성인들이 필요합니다.”

_"1장"에서


비유대인이었던 카뮈의 상황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위협적이며 갑갑한 상황에서, 나치라는 “페스트”의 희생자들이 된 이들 네 여성은 휴머니즘의 이상인 공감과 연대가 실패했음을 직접 경험했다. … 인종에 대한 혐오와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그처럼 희망적인 태도를 유지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이처럼 그 희생자들이 임박한 죽임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세상의 미래를 바라보게 했던 세계관은 과연 무엇이었는가?

_"1장"에서


폭력과 죽음이 냉혹하게 다가오는 상황에서조차 그처럼 정서적 성숙, 도덕적 책임감, 지적인 정직성에 몰두하게 만든 뿌리는 과연 무엇이었는가?

_"2장"에서


도대체 왜 그 여성들은 당시에 자기의 이익에 확실히 도움이 되지 않는 가치들을 계속 품었으며, 또한 그 이상들을 실천하려 했는가? 훨씬 더 현실주의적 방법을 택했다면, 그들은 자신의 안녕에만 집중했을 것이다.

_"2장"에서


고통을 겪는 사람들처럼, 우리는 지금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고, 빈털터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고통을 겪는 사람들과 동일시하는 대신에 우리는 그들의 불행을 거절한다. 궁핍한 상태로 전락하는 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조차 감당할 수 없는 무엇이다. 그러나 그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정확히 알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외면한다. 

_"3장"에서


베유와 힐레숨이 악에 대해 비슷한 태도를 취한 것은 고난에 대한 그들의 이해에서 공통적 근거를 설정해준다. 자유주의자들의 세계, 그 계몽된 세계관은 악, 불의, 고난을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지만, 베유와 힐레숨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악”을 인간 존재의 뺄 수 없는 부분으로 이해한다. 

_"3장"에서


나치 정권이 네 여성을 유대인으로 선언한 현실에서, 그들이 그리스도교에 대해 강한 친근감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유대인 정체성을 봉착하게 된 것은 피할 수 없었다. … 그들은 어떻게 종교적으로 그처럼 두 개의 신분과 관계를 맺었는가? 그들은 부과된 유대인 정체성을 받아들였는가, 아니면 그에 반발했는가? 그들은 둘을 화해시키려 노력했는가, 아니면 자신의 유대인 신분을 부정하려고 했는가?

_"4장"에서


더군다나, 슈타인이 독일 유대인들을 위해 교황이 중재하도록 자신이 알현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반복해서 요청했고, “자기 민족을 위해 십자가를 질” 의향을 고백한 것은 자신의 유대인 신분에 대한 개방적 태도를 증명한다. 슈타인이 그리스도교 교회에 소속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박해받는 유대인들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연대감을 보여준 것은 용감한 저항 행동을 나타낸다.

_"5장"에서


이처럼 베유의 행동을 설명하려는 시도들에도 불구하고, 베유가 당시에 유대인들에 대한 말살이 진행되던 것에 관해 계속 침묵을 지킨 것은 억압받는 사람들에 대한 그녀의 평생의 주장과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그녀의 헌신에 비추어 볼 때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다. 베유의 침묵에 관해 조지 스타이너는 통렬하게 묻는다. “흔히 압도적이며 독창적 깊이를 가진, 사랑에 관한 철학자 가운데, (베유보다) 더 사랑이 없었던 사람이 과연 있었는가?”

_"5장"에서


슈타인은 자기가 십자가를 짊어지는 고통을 민족을 위한 자기희생적 행위로 인식했다. 카르멜 수녀회에 입회함으로써, 그녀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동일시할 가능성을 보았다. 이러한 희망은 그녀를 유대인의 고통과 더 깊이 동일시하게 했다.

_"6장"에서


베유가 유대교 신비주의와 유사하다는 주장과는 대조적으로, 마르틴 부버는 베유의 탈창조/해체 관념과 카발라의 ‘침춤’ 관념 사이에는 아무 연관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유대교 신비주의에서는 하느님의 수축을 통해 하느님의 계속적 창조 행위 안에서 인간을 하느님의 파트너로 위치시킨다. “나”의 파괴에 대한 베유의 생각은 유대교에서 낯선 것이다. 부버에 따르면, 유대교는 개인적 자아를 거부하지 않는다. 그와 반대로 개인은 “인간의 ‘나’와 그분의 영원한 파트너인 ‘나’라는 두 개의 튼튼한 기둥을 연결하는 다리이다.”

_"6장"에서


그들은 유대인의 전면적 멸절이라는 내러티브가 펼쳐지는 상황에 어떻게 대처했는가? 집단학살이라는 “이해의 범위를 넘어선” 상황이라 “마음에서 지울 수가 없는” 중에 그들은 어떻게 제정신을 유지했는가? 자신들의 죽음이 불가피하다는 자각 속에서 그들은 어떻게 견뎠는가?

_"7장"에서


그러나 점차 다른 하느님 이미지가 등장한다. 그것은 보호가 필요한 신적인 보호자(the divine protector who needs protection), 속량받을 필요가 있는 신적인 속량자(the divine redeemer who needs to be redeemed)의 이미지였다. 이런 역할 전환은 희생자를 하느님의 보호자로 만든다. 이제 하느님의 존재를 확인해주어야만 하는 존재는 고난받는 사람이다. 역설적으로, 하느님이 무능력한 세상에서, 하느님의 존재는 그가 구원할 수 없는 사람들의 믿음에 달려 있다. 힐레숨은 가장 감동적인 일기 중 하나에서 자신이 하느님을 돕고 보호하겠다고 서약한다. 하느님은 자신을 도울 수도 없고 보호할 수도 없지만, 철저하게 사라져버린 세상 질서에 대한 흔적이라도 보존하기 위해, 하느님을 돕고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_"7장"에서


프랑크나 힐레숨은 그런 희망을 품지 않았다. 대신에 그들은 자기의 일기 내용을 예술가로서의 자기 성장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난공불락의 침묵의 장벽을 뚫기로 선택했다. 묵시 종말적 현재에서 과거의 이야기는 더 이상 효과가 없기 때문에, 프랑크와 힐레숨은 젊은 예술가의 자화상을 통해 테러에 맞서는 매일의 투쟁을 구축했다. 내면의 힘을 진정으로 탁월하게 보여줌으로써 그들은 자신의 예술을 통해 자신의 육체적 및 정신적 곤경을 하나의 유산(a legacy)으로 바꾸려고 애썼는데, 그 유산은 그들이 잘 알고 있는 세상을 위한 유산으로서 그들이 닿을 수 없는 세상이었다.

_"8장"에서


끝으로 베유는 자신이 교회를 “집합적 단체”이며 “도그마의 수호자”로 비판하는 이유는 교회의 도그마적 입장이 반대자들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으며, 또한 교회가 사랑, 믿음, 지성의 개인적 목소리를 반대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베유는 세례에 대한 거부를 철회할 수 없다고 고백한다.

_"9장"에서


우리는 안네 프랑크와 에티 힐레숨의 일기에서, 죽음의 공포가 점점 가까워짐에 따라 이런 재연결에 대한 희망이 사실상 사라지는 것을 보게 된다. 그들은 공포에 맞서 구원의 메시지를 가지고 세상과 소통하려 하기보다는, 일기를 내면으로 향하게 하여, 조용히 성장하는 예술가의 목소리를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세계가 자신의 존재를 완전히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 그들은, 상상력과 창조력의 역량을 피해자의 무력감과 절망에 맞서게 하는 과정을 시작한 것이다.

_"9장"에서


다락방의 덫에 갇힌 상태에서의 “정지된 시간”과 베스터보르크 수용소에서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떠나는 열차의 규칙적 출발이라는 절망 속에서, “불가능할 것 같은 가능성”을 기록하는 행위는 예술적 창조성을 생명 유지 체계로 정의한다. 예술 행위가 회복의 수단인 이유는 필연적인 죽음을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숨막힘”을 반전시키기 때문이다. 글쓰기가 생명줄(lifeline)이 되는 이유는 그것은 생각과 감정을 정당화하고, 유대인 희생자의 개별성이 말살된 현실에서 개인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하기 때문이다. 

_"10장"에서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힐레숨의 윤리를 “사랑이 모든 것을 이긴다”는 식의 감상적인 버전으로 단순화해서는 안 된다. 힐레숨은 “막사들의 생각하는 심장, … 전체 강제수용소의 생각하는 심장이 되고자” 했다. 이 “생각하는 심장”이라는 자기 이미지는 고난당하는 사람들과의 감정적 동일시를 부각시키는 동시에, 이성의 범위를 넘어선 상황에서도 “생각하는” 것을 필수적인 것으로 강조한다.

_"10장"에서


그렇다면 이 네 여성의 최종 해결책에 대한 대응에서 젠더 의식은 어떤 역할을 했는가? 그들은 자신을 유대인 여성으로 인식했는가, 유대인 여성 젠더로 인식했는가, 아니면 단순히 유대인으로 태어난 여성으로 보았는가? 그들 각자의 세계에서 품게 된 소명감, 즉 교육자(슈타인), 종교 개혁가이자 사회적 반역자(베유), 미래의 유명 작가(프랑크), 베스터보르크의 기록자(힐레숨)라는 각각의 소명감은 그들이 세상에 대한 여성의 책임에 대한 인식을 통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유대인으로서 사회적으로 멸시받고 배제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어느 정도까지 세상에 대한 의무감을 느꼈는가?

_"11장"에서


여성의 사회적 평등을 근본적인 권리로 보는 페미니스트 활동가로서의 슈타인의 입장에서 볼 때, 베유가 사회주의자로서 여성 노동자가 남성 동료들에 비해 불평등한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침묵한 것은 상당히 당혹스럽다. 유대인들과 여성들 모두를 위한 동등한 권리를 주장한 슈타인과 달리, 베유는 두 집단 모두에 대해서 완전한 침묵을 지켰다. 우리가 이미 살펴본 것처럼, 베유는 박해받는 유대인들의 운명에 대해 침묵했으며,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는 그녀의 신념에 비추어, 여성들을 향해 베유가 별로 반응하지 않았다는 점은 더욱 두드러지게 보인다. 

_"12장"에서


슈타인의 여성관은 여성의 “내재적 여성적 가치”(intrinsic feminine value)에 초점을 맞추며, 그녀는 이를 여성의 속량/구원하는 잠재력(redemptive potential)의 원천으로 보고, 남성보다 훨씬 우월하다고 여긴다. 여성의 성장과 발전 능력은 남성의 타고난 역량을 능가한다. “남성은 더 객관적으로 보인다”고 말하지만, 슈타인은 그 객관성이 남성을 규율 속에 예속시킨다고 주장한다. “여성의 태도는 개인적이다.” 따라서 여성은 “완전한 인간”의 자유를 얻을 가능성이 더 많다. 여성이 개인적인 성향을 타고났다는 사실이 윤리적으로 훨씬 가치가 있는 이유는 “인간의 인격은 모든 객관적 가치보다 훨씬 귀하기” 때문이다.

_"12장"에서


슈타인에게 마음이란 자기중심성과 쾌락과 공격 본능을 억누르는 프로이트식 억압 기제(repressive mechanism)가 아니다. 또한 슈타인에게 마음이란 파괴 기제(destructive mechanism)도 아니다. 베유에 따르면, 마음은 “미래와 환상의 세계에 속하는 모든 향유의 욕망”을 제거해야 한다. 슈타인이 보기에, 마음은 여성이 독특하게 “세계를 향해 지니는 삼중적 태도, 즉 세계를 알기, 즐기기, 창조적으로 형성하기”를 회복할 수 있다. 슈타인에 따르면, “마음의 훈련” 또는 자기 교육은 인류 안에서 선한 것을 꺼낼 수 있는 해방적 체제인데, 특히 악이 다스리는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_"13장"에서


프로이트와 베유와는 대조적으로 슈타인은, 개인의 정신적 구성 속에서 공감이라는 내재적 가치를 보고, 이것이 적절한 교육 체계를 통해 계발될 때 윤리적 사회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 프로이트가 예언한 문명의 붕괴가 비극적으로 실현되었음은 사실이다. 프로이트와 슈타인 모두 나치 정권의 끔찍한 폭력과 공격성의 희생자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심지어 오늘날에도, 홀로코스트 이후의 세계에서, 교육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반드시 함양해야 할 근본적 윤리와 공감의 가치가 있다는 전제에 달려 있다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억압적인 교육 제도를 시행하는 대신, 계몽된 세계에서의 교육은 인간의 내재적 공감 능력과 지적인 잠재력을 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_"13장"에서


안네 프랑크와 에티 힐레숨의 페미니즘적 지향성에도 나타났듯이, 슈타인이 여성에게서 본 돌봄의 특별한 능력은 현대 페미니스트 사상가들―낸시 초더로(Nancy Chodorow), 사라 러딕(Sara Ruddick), 캐럴 길리건(Carol Gilligan), 넬 나딩스(Nel Noddings)―에 의해 상당한 지지를 받았다.

_"결론"에서


폴 반 뷰렌 역시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이 홀로코스트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셨는지에 대해 씨름한다. 몰트만과 달리, 반 뷰렌은 하느님이 고난받는 자들과 함께하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이 자행하고 있었던 범법 행위들로 고난당하고 계셨다고 본다. 

_"결론"에서


매우 끔찍한 상황에서도 세상과 자기 자신, 그리고 하느님과 연대할 인간의 의무는 힐레숨의 꾸짖음 속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책임지지 않는다. … 우리가 그분께 책임을 지는 것이다! 나는 이미 천 개의 강제수용소에서 천 번의 죽음을 겪었다.”

_"결론"에서



추천의 글


페미니즘, 신학, 윤리학, 문학 등 여러 분야의 통찰력을 결합한 이 책은 홀로코스트 해석학에서 충격적인 책이다. 저자의 신선하고 독창적인 통찰력은 절대악에 직면해서 글쓰기, 저항, 생명에 대한 헌신이 본질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밝힌다. 에디트 슈타인, 시몬 베유, 안네 프랑크, 에티 힐레숨의 글들을 분석하면서, 저자는 이 여성들 각자가 어떻게 잔혹성과 파멸의 악몽 한복판에서 자비심의 증인이 되기로 선택했는지를 탁월하게 밝혀 준다.

Alan L. Berger|Chair of Holocaust Studies, Florida Atlantic University


나치의 박해를 받은 여성 희생자들과 생존자들이 쓴 책들을 학자들은 대체로 증언으로 간주했을 뿐 사상으로 간주하지는 않았다. 저자는 슈타인, 베유, 프랑크, 힐레숨의 사상을 살핌으로써 그런 경향을 뒤집는 데 도움을 준다.

Sara R. HorowitzModern Fiction Studies


이 책은 매우 가슴 아픈 책이다. 브레너는 당시의 문화적, 휴머니즘적, 페미니스트적 상황을 홀로코스트와 연결시킨다. 저자의 창조적 연구를 통해 우리는 네 명의 여성 작가들에 대해 역사적으로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Michael PhayerMarquette University


브레너는 설득력 있는 책을 통해 많은 사실을 전해주며 씨름하도록 만든다. 이 책은 인문학 양서의 특징을 지니고 있어서 읽기에 편하며 도전하는 책이다.

Maurice HamingtonNational Catholic Reporter


독자들은 네 여성에 관해 솔직한 전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보다 깊은 이해를 얻게 될 것이다. 이 책의 통렬한 요점은 대다수 홀로코스트 문학의 부정성을 능가한다.

Robyn SassenJewish Affai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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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생명사 시리즈(한국기독교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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