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조나단 에드워즈 탄생 300주년에 맞추어 출판되었다. 지난 300년 동안 에드워즈는 미국의 종교 역사상 다른 어느 인물
보다도 주목받았다. 에드워즈에 대한 연구는 오늘날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에드워즈의 유산은 19세기로 전수되어 신학적 논쟁의 기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 중요한 논쟁의 소재를 제공하였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미국 종교의 역사이고, 미국 종교의 역사는 조나단 에드워즈’라고 말할 수 있다. 에드워즈는 자기 시대의 이목
을 이끌었고, 19세기와 20세기의 중요한 사건들 위에 자신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오늘날 21세기도 에드워즈는 교회의 삶과 사상에
계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런 에드워즈의 유산들이 소개된 이 책은 미래를 항해하기 위해 준비하는 복음주의자들에게 적
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
- 서론 중에서
[서문]
* 마이클 로저스
내가 담임하고 있는 교회는 펜실베니아 랭커스터 소재 웨스트민스터 장로교회로써, 천여 명의 성도들이 3세기 전 위대한 조나단
에드워즈에 의해 보전된 복음적 칼빈주의라는 그리스도 중심의 양식을 동일하게 먹고 있습니다. 21세기까지 이르는 동안 여러 차
례의 충격 속에서 살아남은 에드워즈는 중앙에 위치한 높은 강단과 하얀 패널로 된 18세기 스타일의 우리 교회에서 실제로 편안함
을 느낄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해마다 종교개혁 기념주일이 포함된 10월의 주말에 우리 시대의 가장 탁월한 개혁주의 설교자들을 중심으로 종교개
혁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2001년 10월 26일부터 28일까지 500명이 넘는 참가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필라델피아 웨스
트민스터 신학교와 공동 주최로 “조나단 에드워즈와 복음주의의 미래”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하였습니다. 우리는 주강사로 티
모디 켈러(Timothy Keller), 새뮤엘 로간, 조지 마스던, 그리고 해리 스타우트 박사와 다른 7명의 강사를 초청하게 된 것을 몹시 기
쁘게 생각합니다. 이 때 세미나에서 발표되었던 강연들이 지금 당신이 들고 있는 이 책의 주요 내용입니다.
나는 이 세미나를 준비하면서 우리 교회 장년 주일 학교에서 13주 과정으로 조나단 에드워즈의 생애와 저작을 소개하였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에드워즈의 철학적 저작들이 이해하기에 매우 힘들다는 예들을 발견했던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에드워즈를 만나기 위한 쉬운 방법으로써 그의 설교를 읽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처음부터, 그리고 항상 평신도들에
게 그리스도로 충만한 설교를 하는 설교자였기 때문입니다. 나는 『의지의 자유』에서 고도로 추상적인 글을 썼던 바로 그 사람이
『그리스도의 탁월하심』이나 『천국을 침노하라』와 같은 설교에서 학식이 없는 청중들의 양심에도 깊은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
에 계속 놀라고 있습니다.
교회 교육을 위해 컴퓨터 작업을 하면서, 나는 눈을 들어 컴퓨터 모니터 위 벽에 걸린 초상화 액자 속에서 나를 응시하고 있는 두
분의 근엄한 인물을 바라봅니다. 그들은 조나단 에드워즈와 마틴 로이드존스입니다. 이 두 믿음의 거장은 제가 강단사역으로 부르
심을 받은 이후 오랫동안 저의 최고의 스승이었습니다. 로이드존스는 목회 사역 초기에 중고책방에 묻혀있었던 조나단 에드워즈
전집을 발견했습니다.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채플에서 강해설교로 청중들을 놀라게 하였던 이 웨일스 사람은 곧 자신이 끊임없이
도전하는 위대한 영혼의 면전에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두 분 모두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에 못박히심”을 열정
적으로 설교하는 모델이었습니다. 로이드존스는 성경적 설교를 불붙는 논리라고 정의하면서 이 두 가지를 확신을 가지고 선포했
습니다. 우리 시대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그러한 복음을 선포하기 위하여 분투할 사람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에드워즈는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잃지 않고 그의 저술과 설교 속에서 그의 “개인적인 간증”에서 회심의 순간을 묘사하던 그
탁월한 영적 체험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적인 것들에 대한 의식이 종종 갑자기 불붙곤 했습니다. 이것은 마음속에서 타오르는
달콤함이며,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모르는 영혼의 격정이었습니다.” 비할 데 없는 하나님의 종 조나단 에드워즈의 영적 유산을
계속 숙고하면서, 첫째로는 우리의 강단에, 그리고 또 다른 영적 대각성이 필요한 이 땅의 구석구석까지, 오늘날도 성령께서 그러
한 불꽃들을 많이 타오르게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탤릭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 새뮤엘 로간
미국의 신학교육계는 많은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그 도전은 얼마는 생존(재정)에 관한 것이고, 얼마는 교육성과의 통일성
(원격 교육)에 관한 것이고, 얼마는 근본적인 목적(영성)에 관한 것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이러한 문제들을 즉각적이고 직접
적으로 해결할 수 없겠지만, 영성이라는 세 번째 도전을 명확히 하는데 크게 공헌하고 있습니다.
에드워즈는 목회 기간 내내 거짓으로부터 진리를 분별하는 데 관심이 있었습니다. 조지 마스던은 그의 근간인 에드워즈 전기에
서 이러한 관심은 에드워즈 자신의 개인적인 영적 전투에서 나오며 이후의 그의 사역에서 중요한 사항이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
다. 어떤 이들은 에드워즈가 어릴 때부터 “정통적”이었고 “도덕적”이었다고 고압적으로 말합니다. 그 이상의 어떠한 영적 성장이
나 변화 없이, 교리의 정통성과 경건한 삶이라는 기준만으로도 에드워즈는 그의 조부 솔로몬 스토다드의 교회의 회원으로 충분한
자격이 주어졌을 것입니다. 이러한 기준을 적용하면 매사추세츠만 식민지를 건설했던 청교도들이 나온 영국 교회 대부분에서 교
회의 회원으로서 자격이 주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1640년 이후 “가시적 성도들”로 이루어진 메사추세츠 교회에서나 1748년 에
드워즈가 목양하던 교회에서도 회원의 자격을 부여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차이는 무엇 때문일까요? 에드워즈에게 있어서 그것은 바로 진리와 거짓 사이의 차이였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미국
신학교들은 아마도 이 문제를 이렇게 완전히 적나라하게 언급하는 것을 피할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차이는 소위
“영성”의 핵심을 담고 있습니다.
한번은, 신학교협회의 실행이사인 다니엘 알리셰어가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교직원들에게 연설하는 자리에서 매년 그가 가르
치고 있는 학교의 학위수여식의 상황에 대하여 신학교 교수로서 그의 경험을 설명했습니다. 몇몇의 졸업생들이 호명되었을 때,
알리셰어 박사와 그의 동료 교수들은 희색이 만연했습니다. 다른 졸업생들의 이름이 호명되었을 때도 그들의 반응은 좀 더 조용
했으나 기본적으로는 여전히 긍정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소수의 졸업생들의 이름을 들었을 때 알리셰어 박사는 자주 바닥을 응시
하였습니다. 이러한 당혹스러움은 그 졸업생들의 평점이나 그들의 생활 때문-이러한 요소들이 매우 중요하긴 하지만-이 아니었
습니다. 다른 무엇이 더욱 문제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다른 무엇을 영성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에드워즈는 이것을 “순수하게
은혜가 넘치는 신앙의 감정”이라고 불렀으며, 이러한 감정에 대한 그의 뛰어난 성경 해설은 오늘날의 신학교, 교회, 그리고 개개인
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충분한 길잡이가 되고 있습니다.
영적 대각성은 연합국가가 되는 나라가 경험했던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알랜 하이머트의 말처럼 만약 영적 대각성이
없었다면 미국독립혁명도 없었을 것입니다. 영적 대각성은 미국의 역사에서 최초의 “국가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조지아 주로부터
메인 주까지 식민 개척자들이 경험하였던 영적 대각성은 그들 모두가 하나의 문화적인, 그리고 머지않아 정치적인 통일체의 일환
이 된다고 하는 참된 인식을 최초로 제공했습니다. 그러나 영적 대각성이 극적인 사건이었던 만큼 논란도 있었기 때문에 충격적이
라는 용어를 씁니다. 대각성의 사건들은 식민지 교회에서 최초로 광범위한 교회의 분열을 일으켰습니다. 어떤 지도자들은 영적 대
각성을 지지하였지만 다른 이들은 반대하였습니다.
1934년 가을, 에드워즈는 부흥 운동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의 교구에서 알미니안주의와 도덕률 폐기론이라
는 쌍둥이 위협을 경고하면서 오직 믿음으로 인해 의에 대한 일련의 설교로 이에 대응하였고 하나님의 성령께서 코네티컷 골짜기
에 부흥을 주시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그 이후 12년 동안 에드워즈의 거의 모든 설교와 글은 대각성과 관련되었습니다. 1737년
에 출판된 그의 첫 번째 저작은 『놀라운 회심 이야기』였습니다. 이 책은 1734년 노샘프턴 부흥의 비상하고 (심지어 독특하기까
지 한) 사건들에 대해 어느 정도 비관적인 전망을 담고 있습니다. 에드워즈의 다음 책은 1742년에 출판된 『균형 잡힌 부흥론』입
니다. 우리는 이 책에서 한층 더 성숙한 에드워즈를, 즉 하나님이 자기 백성 가운데서 행한 직접적이고 초자연적인 사역의 증거로
인정되는 다양한 사건들 사이에도 차이가 있음을 인식하고 있는 에드워즈를 발견하게 됩니다. 사실, 『균형 잡힌 부흥론』의 가장
긴 부분은 “부흥을 진흥시키기 위해 혹은 그것에 대한 우리의 처신에 있어 고치거나 피해야 할 일들”입니다. 이 부분은 다음과 같
은 중요한 주제에 대한 진술을 담고 있습니다. “마귀는 신앙을 노골적으로 적개시하는 원수들을 부추기기 위해 열심을 낼 것입니
다. 그러나 마귀는 자기에게 유익이 되는 길이 무엇인지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신항 부흥기에 있어 마귀의 주된 노력은 부흥의
지지자들에게 쏠립니다. 마귀는 이들을 오도하려고 부단히 노력합니다.
1746년 찰스 촌시와 같은 사람들의 대각성에 대한 계속되는 공격과 제임스 데이븐포트와 같은 “친구들”에 의한 대각성의 왜곡 때
문에 에드워즈의 가장 중요한 작품인 『신앙 감정론』이 탄생했습니다. 이 책은 교회와 학문 세계 양자에게 에드워즈의 유산이라
고 정의되는 바로 그 작품입니다. 또한 에드워즈의 모든 후기 저서들, 특히 『의지의 자유』의 기초가 된 것이 바로 이 작품입니다.
마스던 교수가 밝힌 대로, 그리고 에드워즈가 『신앙 감정론』의 서문에서 밝힌 목적대로, 에드워즈의 의도는 개인과 교회들 (그
리고 신학교들)이 가짜 기독교로부터 진짜 기독교를 분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었습니다. 이 논문은 “참된 영성”이 무엇인지,
“참된 영성”을 어떻게 배양할 수 있는지 논의하고자 했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 이외에『신앙 감정론』은 신학교가 그들의 근본적
목적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신학대학원 졸업생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설명하는데 가장 유용한 저서들 중 하나입니다.
『신앙 감정론』의 이러한 사상들은 이 책에서 이어질 글들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이 글들은 그 중에는 우리가 동
의하지 않는 견해도 있겠지만 여러 가지 관점에서 에드워즈의 유산을 고찰하고 있습니다. 저자들은 모두 참된 경건의 진전이라는
- 에드워즈와 동일한 목적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헌신된 복음주의자들로서 저자들은 성경의 신적 저자이
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생각들을 이해하기를 소망했던 한 사람의 사상을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글들은 신학교에서 조나단 에드워즈
에 대한 학문적 논의를 진전시키고, 또한 교회에게는 헤아릴 수 없는 가치가 될 것입니다. 에드워즈의 유산이 이러한 방식으로 21
세기까지 계속되는 것은 오로지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자들은 이 글들이 에드워즈에 관한 사상과 논의를 자극할 만큼 가치 있는 것이지만 자신들의 글이 에드워즈의 글을 직
접 읽는 것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에 동의할 것입니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목회자이자 신학자 중 한 분이신 마틴 로이드존스
박사는 한 젊은 신학생이 어떻게 목회를 준비해야 하는지 물어보았을 때 “에드워즈를 읽으십시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권유를 노트에 적당히 기록하면서 그 학생은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동일한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에드워즈를 읽으십시오!” 이 대답 역시 그 학생의 노트에 적혀졌고, 그 학생은 다시 한 번 물었습니다. 로이드존스는 다시 한 번
대답했습니다. “에드워즈를 읽으십시오!!” 이 글들로 인해 우리의 관심이 에드워즈와 에드워즈의 하나님에게로 향하길 기도합니다.
[감사의 글]
이 책의 글들은 거의 5년 전에 하나의 아이디어와 단순한 윤곽으로 시작했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새뮤엘 로간과 웨스트민스
터 장로교회(랭커스터 소재, 펜실베니아주)의 마이클 로저스가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주었고, 처음의 아이디어가 세미나가 되었고
결국 이 책이 되었습니다. 감사한 것은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와 웨스트민스터 교회, 특별히 종교개혁 세미나 위원회에서 에드워즈
전문가들과 추종자들로 넘쳐나는 2001년 세미나를 허락하였고, 논문들을 한 데 모으는 것을 도왔습니다. 우리는 이 두 기관에게
감사하며 사경회를 후원한 모든 이들에게 감사합니다. 특히, 팀 켈러와 사경회 기간 동안 중요한 회의를 이끌어 준 데이빗 커핀에
게도 감사합니다.
이 책에 실린 몇 개의 글들은 사경회로부터 나온 것이 아닙니다. 이 책에 자신의 글을 넣을 수 있도록 제공하여 준 리차드 베일리,
조지 클랙혼, 새뮤얼 스톰스, 그리고 더글라스 스위니에게 감사합니다. 새뮤얼과 더글라스의 논문은 처음에 복음주의 신학회의 에
드워즈 연구회 모임에서 발표되었습니다. 열정적인 지원과 함께 이 책을 출판할 수 있게 인도해준 베이커 대학의 밥 호삭크와 웰스
터너에게 감사합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친절한 도움을 준 예일대학 조나단 에드워즈 전집 출판부의 켄 민케마에게도 감사합니다.
마스던과 스위니의 논문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준 예일대학 출판부와 옥스퍼드대학 출판부에도 감사합니다.
우리의 아내들, 앤 하트, 사라 루카스, 그리고 하이디 니콜스에게도 유익한 제안, 교정, 그리고 끊임없는 격려에 대하여 감사합니
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조지 클랙혼 신학 박사에게 바칩니다. 그는 지난 40년 동안 조나단 에드워즈를 연구하였고, 조나단 에드워
즈를 교회와 신학교에 가장 잘 반영하였습니다. 두 명의 편집자들 특히, 클랙혼 박사는 복음적 경건과 학문적인 인내의 모델이었습
니다. 섬기고 있습니다. 그는 그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영향을 우리에게 끼쳤습니다. 클랙혼 박사에게 이런 방식으로 감
사하는 것은 우리가 그에게 진 빚에 대하여 작은 보상 밖에 되지 않을 것입니다.
목차
기고자
서문 - 마이클 로저스
서문 - 새뮤얼 로건
감사의 글
서론
1부 에드워즈의 비전
1. 조나단 에드워즈의 삼중적 세계관 _ 해리 스타우트
천국
지상
지옥
천년 왕국의 전조(前兆)인 부흥
조지 휫필드 이후의 노샘프턴
각성한 에드워즈
두 번째“죄인들”설교
결론
2. 최후의 모히칸족 선교사
스톡브리지의 조나단 에드워즈_ 스티븐 니콜스
에드워즈와 인디언 정책
에드워즈의 스톡브리지 목회 사역
결론: 선교사로서의 에드워즈
3. 열정에 이끌리는 설교
조나단 에드워즈와 설교의 방법 _ 리처드 베일리
계시와 이성의 도움
“그렇게 살기로 결심하다”
신앙의 감정
결론
4. 그리스도에 대한 조나단 에드워즈의“달콤한 내적 감각”
_ 찰스 햄브릭스토우
2부 에드워즈의 신학
5. 시대정신에 도전하는 두 개의 논문
왜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셨는가 _ 조지 마즈던
“미덕”의 시대에서“참된 미덕”
6. 한 성난 청교도의 손 안에 있는 개방적 유신론
하나님의 예지에 대한 조나단 에드워즈의 견해
_ 새뮤얼 스톰스
철저한 신적 예지에 대한 에드워즈의 논증 구조
철저한 신적 예지에 대한 성격적 주장
결론
7. 조나단 에드워즈의 변증학
죄가 이성에 미친 지적 영향 _ 스코트 올리핀트
마음의 기능들
하나님의 형상과 이성
변증학적 의미들
8. 조나단 에드워즈와 국가 언약
그는 옳았는가 _ 제럴드 맥더모트
3부 에드워즈의 유산
9. 조나단 에드워즈와 경험적 칼빈주의의 기원
_ D. G . 하트
주관적으로 파악한 회심
또 하나의 칼빈주의자?
세 입장이냐 혹은 두 입 장이냐
10. 테일러주의와 타일러주의, 그리고 뉴잉글랜드
신학의 소멸 _ 더글라스 스위니
테일러주의와 타일러주의 논쟁 직전의 뉴잉글랜드 에드워즈주의
테일러-타일러 분열의 제도화
뉴잉글랜드 신학의 쇠퇴
11.“ 그는에드워즈주의를뿌리까지근절하였다”
19세기 남부의 대브니와 에드워즈주의의 유산
_ 숀 마이클 루카스
4부 새로운 연구를 위하여
12. 어려운 필체의 해독
30년에 걸친 에드워즈의 편지 수집과 편집
_ 조지 클랙혼
13. 교회와 학계에서의 조나단 에드워즈
참고 문헌_ 숀 마이클 루카스
인명 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