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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신 거대한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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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규(2)

익투스

2011년 07월 07일 출간

ISBN 9788996672319

품목정보 155*224mm35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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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 성서조선을 발행하는 잡지의 주필로서, 또 양정중학교에서 박물을 가르친 이땅을 사랑한 교사로서, 민족주의와 기독교
정신을 고취시켰던 김교신 선생의 일기를 엮고 생애를 해설하였다. 류달영, 손기정, 윤석중 등 위인들의 스승으로 후학에 지대
한 영향을 끼쳤으며 또 함석헌 선생의 둘도 없는 친구로 그의 시 ‘그 사람을 가졌는가’의 모티브가 되었던 김교신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책이다. 책에는 만 10년간 『성서조선』에 「성조통신」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던 그의 일기 중 약 4분의 1을 선
별하였으며, 엮은이가 각 장마다 시기별 김교신의 주요 행적을 해설하였다. 책에는 김교신 전집에는 공개되지 않았던 비공개
일기도 일부 수록하였으며, 그간 미공개되었던 사진도 20여장 실려 어 사료적으로도 가치가 있다. 특히, 기존 전집에 실린 김
교신의 일기는 1930년대의 고어를 그대로 옮겨 일반이 쉽게 접근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 책에는 그러한 고어와 어려운 한
자어를 풀어 적어, 김교신의 생애에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김교신은 누구인가

알 만한 이는 모두 아는, 그러나 많은 이들과 기독교인들에게조차 베일에 가려진 인물 김교신. 그는 일본의 기독교 사상가 우
치무라 간조의 제자로 그 문하에서 7년을 사사받으며, 서구의 조직화되고 인간화된 기독교를 비판하며 성서대로의 개혁을 주
창한 우치무라 간조의 개혁정신에 영향을 받았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김교신은 교사로 재직하며 일생동안 『성서조선』을
발행하며 한국 기독교사의 독특한 한 획을 긋는다.
자기 자신에게 철저한 기독교인으로, 또 극렬할 정도로 치열하게 일제하를 살았던 김교신은 주변인들에게 무수한 정신적 영
향을 끼쳤고, 또 그 문하에서 배운 수많은 제자들의 가치관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허위와 불의에 극히 단호했던 김교신은 항
상 사직서를 품고 교직에 임한 교사였으며, 『성서조선』을 통하여 교권의 부패를 날카롭게 비판했던 당대의 지식인이었다.
1942년 일제는 ‘성서조선사건’을 일으켜 잡지의 독자들과 동인들을 모두 검거하였고, 이에 김교신을 비롯한 13인은 1년여 간
옥고를 치르게 된다. 출옥 후 김교신은 흥남일본질소비료회사에서 5천여 조선인 노동자들을 위하여 일하다가 발진티푸스에
걸려, 해방을 몇 달 앞둔 1945년 4월 25일 서거한다. 김교신은 지난 2010년 건국포장에 추서되었다.
교류하였던 인물로는 『성서조선』의 동인이었던 함석헌, 송두용을 비롯하여 다석 류영모, 남강 이승훈, 춘원 이광수 등과도
교류가 있었다. 그가 교류하며 영향을 미친 기독교계 인물로는 시무언 이용도, 우원 이호빈, 성산 장기려, 손양원 목사, 밝막
이찬갑 등이 있으며, 사후 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말하는 이들은 두레교회의 김진홍 목사를 비롯하여 셀 수 없이 많다.


[주목할 점]

그간 김교신에 대한 주목은 주로 그의 무교회주의, 즉 기독교에 대한 개혁적인 조망에 집중되었다. 그러한 사상적인 면도 중
요 하겠으나, 김교신은 또한 한국 개신교사의 기독교인으로서 유례없이 독실하고 충실한 청교도적 생애를 보낸 인물이었음
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애에 대한 조명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김교신의 일기에는 그의 일상, 가정사와 학교에서의 일들을
비롯하여 일제하에서 출판물을 발행하며 겪는 일, 사회적 정황 등 모든 일들에 그의 깊은 신앙적 태도가 묻어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전인적인 기독교인으로서 그가 어떻게 시대를 해석하며 또 태도를 취하고 살았는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요즘처럼 기독
교가 사회적으로 경멸당하는 시대에 김교신은 기독교의 참 모습과 그에 합당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그림으로 그리듯 보여준다.


김교신에 대한 평가와 회고

오늘에 와서 그를 생각함이 더 간절하다. 그날에는 단순히 기쁜 생각에 그랬지만 오늘에 그를 그리는 생각은 그 의미가 다르다.
오늘에는 사람이 그리워서다. 이 나라를 위해서 산 사람이 그리워서다. 기쁨의 날이 지난 이후 2년에 이 소위 해방이 됐다는
나라의 미치는 꼴을 보고, 썩는 꼴을 보고, 생명의 말씀을 가진 참 찬 인물이 그리워서다. 그로 하여금 오늘날 이 나라에 있게
하라. 있어서 말씀하게 하라.
함석헌 (전 『성서조선』동인, 전 『씨알의 소리』주필)

이 때 김교신이란 인물이 나타난 것이다. 그는 선교사 주도의 경건한 피안적 신앙의 보수주의적 본거지인 황평, 영남의 교권자
들을 공격하면서 소위 반구미적 기독교의 조선화에 힘썼고 아울러 철저한 애국적 신앙으로 시종 반일의 반골로 남아, 알알이
민족 기독교의 찬란한 이미지를 굳히고 그 수확을 보면서 해방을 몇 달 앞두고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다들 전향하던 날에도,
영구한 민족의 운명과 거기 주어진 하나님의 섭리 그 소재에 불멸의 희망을 빛나도록 밝히고 떠난 김교신은 민족 교회사의 정
상에 서 마땅한 신실한 성도이다.
민경배 (백석대학교 석좌교수, 전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장)

어쩌면 선생님은 나면서부터 인생의 지도자가 될 사명을 띠셨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바라만 보고 있어도, 아니 선생님이 계시
다는 생각만 하고 있어도 무엇이 저절로 배워지는 것 같은 분이 바로 선생님이셨다.
손기정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김교신의 제자)

1945년 8;15의 날에, 미칠 듯이 기뻤던 그날에 누구보다도 우리들은 선생님을 생각하고 울었다. 선생님을 존경하는 모든 분들
은 다 그러했을 것이다. 세상을 떠나시기 한 달 전까지 나는 함흥에서 선생님을 한 방에서 모시고 지냈었다. 그 무렵에 나는
잠시 개성에 갔다가 거기서 갑자기 병이 나서 복부의 수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중이었는데 선생님 별세의 전보를 받게 되었다.
참으로 세상이 깜깜하였다. 류달영 (전 서울대 교수, 김교신의 제자)

김교신 씨는 참 조선인이었다. 그는 조선을 사랑하고, 조선 민족을 사랑하고, 조선말을 사랑했다. 그러나 그의 민족애는 고루
한 배타적인 민족주의와는 달랐다. 온유, 근면 등 조선인으로서의 생래의 도덕이 그에게는 믿음에 의해 한층 순화되어 있었다.
그는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으로 자신의 애국을 삼았다. 조선인의 영혼을 새롭게 살리고 이를 자유와 평화와 정의의 백성되게
하기 위하여 그는 그 귀한 일생을 바친 것이었다.
야나이하라 다다오 (전 동경대 총장)

김교신은 초 비상적인 생활을 했다. 아니 그야말로 그가 그렇게 눈부실 정도의 비약적인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언가 그
에게 비결이라도 있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그렇다, 김교신은 남이 모르는, 또 소위 동인이라는 다른 5인이 가지지
못한 지혜와 비상한 용기와 우수한 능력을 갖고 생활한 데는 분명히 어떤 놀라운 힘이 그에게 작용한 것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송두용 (전 『성서조선』동인)


졸업식 제자들의 김교신에 대한 헌사에서

말하고 말해서 한이 있겠는가. 이 정도로 멈추는 것이야 말로, 도리어 선생의 존엄을 높이는 까닭일 뿐이다. 우리들이 지금 여
기스승의 은혜에 조그마한 정성을 표하여 조품을 증정하려고 하나 은혜에 대한 감사의 행위가 어찌 이로써 다 할 것인가.
아니 사은에 대한 감사의 길은 달리 오직 하나가 있을 뿐이다. 무엇이냐, 과거 5년간의 교훈을 실행하는 일 이것이다. 스승이
여 이 조품을 받으소서. 그리고 우리들이 스승의 교훈을 지킬 수 있었다는 소식을 들으시면 크게 기뻐하시라. 이로써 감사의
말씀을 대신함. (1938년 3월 양정 제22회 갑조 대표 낭독)

목차

사진으로 보는 김교신
책머리에
차례

1부 남산은 안개의 상복을 두르고 (1930-1933)
1930년
1931년
1932년
1933년

2부 조선을 성서 위에(1934-1936)
1934년
1935년
1936년

3부 인간주의여 퇴각하라(1937-1939)
1937년
1938년
1939년

4부 전멸은 면했나 보다(1940-1942)
1940년
1941년

성서조선 사건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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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규(2)
아주대학교 국문학과 중퇴, 연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아주대학보 편집장, 전국대학신문기자연석회의 대표, 연세대학교 학생신앙운동(SFC) 위원장 등으로 활동하였다. 도서출판 익두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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