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코스 전도 이야기
이상만 | 생명의말씀사
8,000 7,200원
세상이 흉내 낼 수 없는 기독교
제라드 윌슨 | 생명의말씀사
14,000 12,600원
마음을 여는 전도대화
노먼 가이슬러 | 순출판사(C.C.C)
13,000 11,700원
현장전도로 가슴 뛰는 교회가 되라
해피비전
11,000 9,900원
[개정판] 내가 왜 믿어야 하죠
김재욱 | 생명의말씀사
15,000 13,500원
현대 전도에 대한 10가지 오해
라이언 댄튼 | 생명의말씀사
8,000 7,200원
팀 켈러의 탈기독교시대 전도
팀 켈러 | 두란노
9,000 8,100원
제임스 패커의 복음 전도란 무엇인가
제임스 패커 | 생명의말씀사
12,000 10,800원
[개정판] 이래서 믿는다
폴 리틀 | 생명의말씀사
19,000 17,100원
관계중심 전도
W. 오스카 톰슨 주니어 | 생명의말씀사
18,000 16,200원
현대기독교복음전도론
김주원 | 대장간
14,000 12,600원
세상을 바꾼 복음 전도
마이클 그린 | 두란노
18,000 16,200원
건빵 전도 일기
한미연 | 세움북스
16,000 14,400원
맞춤전도
이재훈(1) | 두란노
15,000 13,500원
영어로 그림전도
정철 | JEBS
22,000 19,800원
이 책은 복음 전도 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질문에 대하여 성실한 답변을 위해 저술되었습니다. 그리고 실질적인 복음 전도에 대한 방법들의 안내를 위한 목적으로도 저술되었습니다. 복음 전도 대상자들을 대할 때는 변증법적 차원에서 논리적 설득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을 논리적으로 굴복하게 만드는 사람에게 절대 감사하지 만은 않게 됩니다(잠 15:1). 대신 사람은 자신을 온유하고 겸손하고 중요하게 예우해준 사람들을 오랫동안 잊지 않게 됩니다(잠 19:22).
필자는 이 책의 내용들이 복음 전도를 실천하고자 하는 모든 분에게 유익하게 사용되기 원해 저술하였습니다. 이 책에는 복음 전도 중 자주 만나게 되는 123가지의 질문들과 답변들을 다루었습니다. 아무쪼록 본 저서가 복음 전도 시에 꼭 필요한 영적 무기로 사용이 되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바입니다.
들어가는 말 (Prologu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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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기독교만 진리라고 주장을 하는 것입니까? 27
2. 예수님을 믿는다고 살아가는데 무슨 도움이라도 되겠습니까? 36
3. 왜 예수님을 믿어야만 하겠습니까? 40
4. 왜 전도를 실천해야 하겠습니까? 45
5. 왜 전도를 실천하지 않게 되는 것이겠습니까? 51
6. 어떻게 전도를 실천해야 하겠습니까? 58
7. 기독교에 대하여 아무 관심도 없어 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전도해야 하겠습니까? 65
8. 어떤 대상자들에게 전도를 실천해야 하겠습니까? 68
9. 제가 교회를 다니고 싶을 때 스스로 알아서 교회를 찾아갈 것인데 왜 제게 전도를 하는 것입니까? 74
10. 불신자들은 전도를 안 해도 과연 알아서 스스로 교회를 찾아 나올 수 있겠습니까? 77
11. 저는 무신론자인데 왜 제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전도를 실천하는 것입니까? 79
12. 무신론자들에게는 어떻게 전도를 실천할 수 있겠습니까? 81
13. 전도 시에 무엇을 전해야 하겠습니까? 83
14. 복음이란 무엇이겠습니까? 87
15. 성경에서 말하는 ‘복음의 정의 열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90
16. 예수님을 믿으려면 일찍 믿었어야지 너무 늦었다고 생각합니다. 95
17. 영접 기도의 효력을 어느 부분까지 인정을 해야 할 것이겠습니까? 98
18. 영접 기도는 어떻게 드려야 하는 것인가요? 101
19. 기독교는 너무 독선적이고 편견이 심해 보이는 단체가 아닌가요? 104
20. 기독교인들은 왜 불신자들에게 정성을 다하여 친절하게 대하지 않는 것입니까? 106
21.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108
22. 이슬람교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112
23. 저는 개신교 보다는 천주교회를 다니고 싶은데 제게 이러한 생각은 왜 드는 것일까요? 114
24. 천주교와 개신교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116
25. 교회와 기독교는 왜 세상 문화를 ‘사탄의 문화’라고 단정을 짓는 것입니까? 118
26. 교회라는 곳은 장유유서(長幼有序) 정신도 없는지 왜 그렇게 예의들이 없습니까? 120
27. 기독교는 유교와 비교하여 볼 때도 예의범절이 취약해 보이는데 왜 그렇습니까? 122
28. 기독교회들은 자신들과 교리가 조금만 다르면 왜 ‘이단’이라고 정죄를 하는 것일까요? 124
29. 이단이란 무엇을 근거로 규정을 지을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127
-6-
30. 삼위일체란 무엇인가요? 130
31. 왜 교회를 다녀야만 하는 것입니까? 134
32. 교회를 쉬지 않고 계속 꾸준히 다녀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136
33. 저의 동서는 교회를 다닌다고 제사 때는 얼굴도 보이지 않는데 그러한 동서를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138
34. 저는 직장을 다니는 여성으로 일주일에 하루를 쉬는데, 그러한 저에게 어떻게 교회까지 다니라는 무리한 요구를 할 수 있습니까? 40
35. 교회에서는 일요일에 가끔 한 번씩 개인적인 일로 인하여 예배를 빠지게 되면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142
36.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주일날 어디까지 활동이 가능한 것이겠습니까? 144
37. 저는 교회를 다니고는 싶지만 예배시간을 제대로 맞출 수가 없는데 어쩌면 좋을까요? 146
38. 교회들 중에 어느 교회는 일요일에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어느 교회는 토요일에 예배를 드리는 것이 맞다고 주장을 하는 것입니까? 148
39. 교회를 다니게 되면 십계명도 잘 지켜야 한다던데 제게는 그럴 의지가 없는데 어떻게해야 하겠습니까? 151
40. 교회란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야만 꾸준하게 다닐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153
41. 우리나라에는 교회가 너무 많아서 혐오감이 느껴질 정도인데 그 점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156
42. 교회가 왜 사회와 이웃들에게 아무 공헌도 안 하는 것입니까? 159
43. 교회를 열심히 다닌다는 분들은 대개 가정 돌보는 일을 등한히 여긴다고 하던데 제 생각이 맞는 것입니까? 162
44. 오랫동안 교회를 다니던 사람들이 어느 날 교회 다니는 일을 중단하는 것을 보면 교회와 기독교에는 충분히 문제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게 아닌가요? 164
45. 왜 교회를 다니다가 옮기거나 신앙생활을 중단까지 하게 되는 것이겠습니까? 166
46.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 일 외에는 모든 일들이 ‘우상을 섬기는 일’이라고 말씀하시는데, 그러면 우상을 섬기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168
47. 우상이란 무엇이겠습니까? 170
48. 교회를 다니면서 성경을 배우고 싶은데 어떤 교회로 출석하는 것이 좋을까요? 173
49.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을 해야 한다.”라는 주장은 무슨 의미인가요? 176
50. 교회를 다니면서 예수님을 믿으면 이전과는 다른 변화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178
51. 교회에서도 설교 중에 “할 수 있다.”라는 내용을 강조하던데, 그건 일종의 세상과 같은 정신교육 방법 중 하나가 아닌가요? 180
52. 교회에서 목사님의 설교 중에 지주 불가능에 도전하고 극복하라고 가르치던데 그것이 성경적으로 합당한 내용인가요? 183
53. 교회는 다니고 싶으나 여러 프로그램의 참여와 봉사는 하고 싶지않은데 어떻게 해야하면 좋겠습니까? 186
54. 교회를 다니고는 싶지만 여러 모임에 가입되어야 할 것이 예상되어 부담이 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188
55. 나의 은사를 알 수 있으려면 어떠한 방법이 있겠습니까? 190
56. 교회에서 “박수를 치라” “통성으로 기도를 드리라” “주여 세 번 외치라” “율동을 따라 하라”는 요구를 받는 것이 싫을 때는 어떻게 해야 좋겠습니까? 193
57. 예배 중에 찬송을 부를 때 박수를 치는 것은 성경에 합당한 것입니까? 195
58. 가끔 특정 자동차 뒤에 붙어 있는 물고기 그림이 교회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이라고 들었는데 무슨 뜻입니까? 197
59. 교회를 나가면 방언으로 기도하는 소리가 듣고 싶지 않은데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199
60. 방언의 은사는 어떻게 받을 수가 있는 것이겠습니까? 201
61. 교회에서 기존 신자들끼리만 서로 친하게 지내므로 느껴지는 소외감은 어떻게 극복이 가능하겠습니까? 204
62. 교회에서는 소그룹으로 모이는 것만이 반드시 최선인가요? 206
63. 교회에서 저의 자녀들이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 힘이 드는데 그러할 때는 어떻게 극복을 해내야 하겠습니까? 208
64. 교회에서 자녀들로 하여금 지금 보다 적응을 더 잘하는 사람이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210
65. 교회에서 설교를 듣게 될 때마다 잠이 너무 쏟아지는데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212
66. 기도 시간과 예배 시간에 집중력을 강화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214
67. 교회를 다니려면 그동안 짓던 죄를 완벽하게 끊은 후부터 다녀야 하는 것 아닌가요? 216
68.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끼리 갈등이 생겼을 때 왜 서로 용서를 오래 동안 못하는 것입니까? 218
69.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에게 잘못한 사람들에게 용서를 실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220
70. 교회 안에서 두 파로 나뉘어 서로 다툴 때는 어느 편을 들어야 하나요? 222
71. 저는 오랫동안 매춘 생활을 해 왔는데 그러한 제가 어떻게 교회를 다니겠습니까? 224
72. 목사님들이 하는 설교를 듣고 있자면 자기 합리화를 시키는 내용들이 많던데 그러한 내용들을 어떻게 잘 참으면서 인내하며 들을 수가 있을까요? 226
73. 목사님들 중에도 사기꾼들이 있다고 하던데 불안해서 어떻게 교회를 다닐 수 있을까요? 228
74. 목사님들 중에는 설교를 통해 교인들의 약점들을 지적하고 위협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던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230
75. 목사님에게 ‘안수 기도’라는 것을 받게 되면 무슨 효과가 나타나는 것인가요? 232
76. 안수에 대한 성경적인 근거가 무엇인가요? 234
77. 모든 기독교인들은 만인 제사장적 위치에 있다는데, 왜 목사님들만 제사장적 위치에 있는 것처럼 군림하려는 태도를 취하려는 것입니까? 236
78. 잘못된 만인 제사장의 개념에 대한 주장의 결과는 어떠한 것이겠습니까? 238
79. 저는 지난 시절 지었던 죄들에 대하여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데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240
80. 제가 이미 지은 많은 죄들을 하나님께 용서를 받으려면 어떠한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지요? 243
81.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지은 죄를 정말로 용서하여 주실 수 있으십니까? 245
82. 저는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믿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교회를 굳이 안 다녀도 되지 않을까요? 247
83. 사랑이 많으시다는 하나님께서 아무리 사람들이 죄 좀 지었다고 어떻게 사람을 지옥으로까지 보내실 수가 있습니까? 249
84. 하나님께서 존재하신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데 교회는 다녀서 무엇 하겠습니까? 251
85.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언제부터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존재를 하시게 되셨습니까? 253
86. 지구는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습니까? 255
87. 구약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너무 잔인한 모습이신데 그렇게 무서운 하나님을 어떻게 믿으라는 것입니까? 260
88.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두신 건 마치 함정단속과 같은 유사한 방법이 아닌가요? 262
89.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 왜 선악과를 두신 것입니까? 264
90.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계획을 왜 미리 믿는 자들에게 말씀해주지 않으시는 건가요? 267
91. 하나님의 뜻은 어떻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있겠습니까? 269
92. 하나님의 뜻을 매사에 미리 여쭙지 않게 되는 이유들은 무엇 때문인가요? 285
93.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왜 악을 허용하시는 것입니까? 287
94. 하나님께서는 왜 미래에 다가올 불행스러운 일들을 미리 피할 수 있게 해주지 않으십니까? 292
95. 하나님께서는 왜 미래의 일들을 미리 알려 주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294
96. 저는 성경 내용들을 아무리 믿으려고 해도 믿어지지가 않는데 어찌하면 좋습니까? 296
97. 정경이란 무엇입니까? 298
98. 사람이 어떻게 바닷물에 잠겨 있는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 동안 무사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300
99. 성경은 무오한 것이 맞습니까? 302
100. 성경에서 말하는 ‘구속사’라는 개념은 무엇입니까? 303
101. 구속사의 정의(救贖史, history of redemption)는 무엇입니까? 305
102. 성경에서 말하는 ‘언약’이란 어떻게 이해를 해야만 하는 것인가요? 308
103. 교회에서는 왜 그렇게 십일조를 드리라고 강요를 하는 것입니까? 314
104. 십일조 제도는 오늘날도 유효한 것입니까? 316
105. 교회 생활을 꾸준하게 하려면 여러 가지로 필요한 돈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318
106. 저는 언젠가 어느 교회의 헌금 봉투 종류만 30 여 가지가 넘는 다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 교회 자체를 다니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320
107. 교회에서는 헌금을 알아서 드리도록 자유롭게 그냥두지 않고 왜 강요를 하는 것입니까? 322
108. 교회에서 헌금을 많이 드리는 교인들을 목사님께서 차별 예우를 하는 것 같아 마음이 많이 상할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324
109. 교회에서 다른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차별을 당하게 될까 두려울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326
110. 교회를 다니고 예수님을 믿게 되면 주변에 모범까지 보여야 한다고 하는데 그것이 부담스러울 때는 어찌하면 좋을까요? 328
111. 교회를 다니고 예수님을 믿게 되면 이전과 달리 변화를 받게 된다고 하는데 그것이 가능한 일이 맞습니까? 330
112. 교회를 다니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대화를 나눌 때 오히려 양보심이 부족한 것 같은데 그러한 그리스도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333
113. 교회를 다니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진실한 기독교인인지 아닌지를 분별해 볼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335
114. 예수님께서 항상 동행을 해주신다고 하면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문제는 어떻게 해결을 해야 하겠습니까? 337
115. 교회에서 질병을 치료받았다고 자랑하더니 얼마 못가 다시 같은 병이 재발하는 것은 무엇때문인가요? 339
116.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서 질병을 치료받는 일은 오늘도 가능한가요?341
117. 병이 들었을 때는 병원부터 가야 하나요? 교회로 가서 하나님께 기도부터 드려야 하나요? 343
118.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의 병을 먼저 치료를 해주시면 교회를 다녀보고 싶은데 이러한 저의 생각이 어떠한 것인지요? 345
119. 교회에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최면술의 일종이라고 하던데 그게 사실입니까? 347
120. 귀신을 쫓아내는 일은 오늘도 가능한 것이겠습니까? 349
121. 지구 외에도 생명체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들이 있는데 사실인가요? 351
122. 기독교와 교회에서는 미리 동거부터 해본 후에 결혼을 하려는 남녀들을 왜 반대하는 것입니까? 354
123. 기독교에서는 왜 동성애자 곧 성소수자들의 주장과 선택을 반대하는 것이겠습니까? 357
끝맺는 말 (Epilogue) 363
참고문헌 383
2. 예수님을 믿는다고 살아가는데 무슨 도움이라도 되겠습니까?
이러한 질문은,
예수님을 믿고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그것이 세상에서 성공을 거두는데 무슨 도움이라도 되겠느냐는 회의적인 반문으로 이해가 됩니다.
북한에 735일간 억류 당했던 케네스배 선교사님에게 그를 감시하던 사람 중 한 명이 했던 질문입니다. “목사님, 예수님을 믿으면 뭐 생기는 게 좀 있갔습니까?” 그랬을 때 케네스배 선교사님이 북한말로 “있습네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10)
다음과 같은 계산방법이 있습니다. 영어 단어에 A=1, B=2, C=3 … Z=26 이처럼 단어에 숫자를 대입하여 그 총계의 합을 산출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든다면 ‘태도’라는 영어 ‘Attitude’에 숫자를 대입하는 것입니다. 그리하게 되면 ‘A’는 1, ‘T’는 20, ‘T’는 20, ‘I’는 9, ‘T’ 는 20, ‘U’는 21, ‘D’는 4, 그리고 ‘E’는 5로서 이 숫자들의 합계는 ‘100’이 됩니다. 영어 단어 중에 ‘태도’ 외에는 어떤 단어도 숫자의 합계가 100이 나오게 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오직 ‘태도’라는 단어만이 숫자의 합이 100이 됩니다.
11)
예를 들자면, ‘성취’라는 단어 36 -‘Achievement’도 대입을 하여 보면 숫자의 합계가 105입니다. 또한 ‘노력’이라는 단어 ‘Effort’의 합도 70입니다. ‘긍정’이라는 단어 ‘Positive’도 숫자의 합은 115입니다. 이처럼 각 단어마다 그들 고유의 숫자를 대입하였을 때 총계의 합이 100으로 나와지는 단어는 오직 ‘태도’라는 단어뿐입니다. 저는 이러한 상징적인 통계를 통해 ‘태도’라는 것이 사람에게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습니다. 이 처럼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올바른 태도’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예수님을 믿게 되면 그때로부터 가난하게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진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더 심한 분 중에는 예수님을 믿게 되면 모든 물질의 풍요로움과는 단절된 생활을 시작하게 되리라 추측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그러한 기록은 없습니다. 다만 예수님처럼 살아보겠다고 부유한 삶에서 스스로 가난해지는 선택을 했던 분들은 더러 있습니다. 바울 사도께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8:9)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필요하다고 판단하실 경우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물질의 축복을 허락하시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을 가지고 개인의 욕심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에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떠한 대가를 치러야만 하나님으로부터 물질의 풍요로움을 얻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주목하고 그 가르침대로 실천을 하므로 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눅 4: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으로 볼 때,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에게 “나는 너희가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더 이상 아무 노력을 안 하더라도 무조건 물질적으로 부자가 되게 해주겠다.”라고 약속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에
게 ‘가난을 극복하는데 필요한 복음’ 곧 ‘방법’을 가르쳐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현재 비록 가난할지 라도 가난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과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올바른 성경의 가르침들을 믿고 실천하기만 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이러한 약속은 성경이 보장하는 약속의 내용인 것입니다(잠 19:23).
그러므로 주의할 것은 이러한 정상적인 가르침들까지 기복신앙이 나 번영신학으로 단정을 지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단, 분명한 것은 풍요로워진 부를 가지고 개인의 이기심을 위해 사용하면 그건 매우 위험한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활용이 되는 물질적인 부는 어떤 형태로든 다시 조만간 빼앗겨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렘 17:11). 성경은 개인의 사유재산을 존중하고 인정합니다. 개인의 소유권은 구약과 신약 성경이 동일하게 보장하는 내용입니다. 십계명 중에 “도둑질하지 말라”(출 20:15)고 하신 것은 개인 사유권 존중을 근거로 하신 말씀입니다. 또한 “탐내지 말라”(출 20:17; 신 5:21)는 명령 역시, 분명한 개인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계명입니다. 모세는 신명기 19장 14절에서도 “네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지 말지니라”라고 가르치셨습니다.
12)
예수님을 믿게 되면, 믿지 않을 때와 달리 삶의 태도가 변화되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이웃 그리고 자신을 대하는 태도까지 달라집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태도를 참으로 중시 여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3-14, 16)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제대로 믿고 교회를 정상적으로 꾸준히 다니게 되면 가장 먼저 태도가 올바르게 변화가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변화된 태도로 세상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3. 왜 예수님을 믿어야만 하겠습니까?
알리스터 맥그래스(Alister E. McGrath)는 그의 저서 『예수님은 누구인가』(Lord and saviour)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결코 스스로 성취할 수 없는 것들, 혹은 결코 살 수 없는 것들인 용서와 화해와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을 받고 소유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한 사람이 친구를 사귀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친구는 왕의 아들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왕자인 친구가 자신의 집에 초청하였습니다. 공항에서 내리자 마중을 나온 왕자는 자신 경호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궁궐로 안내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왕의 아들인 왕자 이상의 신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신분이시기 때문입니다(마 28:18-20). 우리가 이러하신 예수님을 왜 믿어야만 하겠습니다.
1) 세상에서 가장 올바른 가치관을 소유하기 위함입니다.
C. S. 루이스(C. S. Lewis)는 그의 저서『순전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에서 “정상적인 올바른 가치관은 초점이 잘 맞추어진 안경과 같다.”라는 의미의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또한, 루이스는 “해가 떠오르면 그 해로 인하여 해도 볼 수 있고, 그 주변 것들까지 볼 수 있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바울 사도께서는 자신이 모든 것을 다 해로 여기는 이유가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빌 3:8). 이 말씀은 바울 사도께서는 “세상에 예수님보다 더 정확한 판단력을 가진 분은 없으시다.”라는 뜻입니다. 성경의 절대적 권위와 무오성(inerrancy)은 인간의 가치관 정립에 있어서 근본적인 기준을 제공합니다. 따라서, 모든 삶의 방향과 기준은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해야 합니다. 도덕적, 윤리적 판단에 있어서 성경을 최상의 지침으로 삼는 것은 참으로 지혜로운 접근 방법입니다. 세상에서 이보다 더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가치관은 존재하지 않습니다(요 8:32).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가르쳐 주신 가치관 역시 그 어떤 것들보다도 올바릅니다. 그 가치관들은 시대가 변해도 변함없이 유지될 것입니다(딤후 3:16). 특별히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가르침은 영원불변의 진리입니다(요 14:6). 그 진리의 가르침은 세상 끝나는 날까지 어떤 상황에서도 그 가치를 잃지 않게 될 것입니다(마 24:35; 벧전 1:25). 또한, 하나님의 말씀들은 변함없는 약속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말씀들은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영원한 올바른 지침이 될 것입니다(마 5:18; 눅 16:17).
2) 예수님께 보호를 받기 위함입니다.
존 파이퍼(John Piper)는 그의 저서 『예수님이 오셔서 죽으신 50가지 이유』(Passion of Jesus Christ)에서 ‘당신은 누구인가?’가 아니라 ‘당신은 누구의 것인가?’라고 말했습니다(고전 6:19-20).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믿는 자들을 자신의 피로 사셨기 때문입니다(행 20:28).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여러 방법으로 전인격적으로 보호하여 주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체포하러 온 대제사장 종의 귀를 칼로 베어 땅에 떨어뜨렸습니다(눅 22:5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귀를 다시 붙여 주시면서 “이것까지 참으라”(눅 22:51)고 말씀하시면서 귀를 낫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는 베드로에게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마 26:53)고 물으셨습니다. 유다는 하나님께서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유 1:24)라고 기록하였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께서 소유주가 되십니다(롬 1:6). 예수님께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항상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요일 5:18) 못하도록 보호하시는 중이십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예수님의 허락 없이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마 10:29).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하여 주인이 되십니다(사 43:1).
3) 필요한 것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해서 응답받기 위함입니다.
세상에서 필요한 것들을 구하는 방법은 가장 먼저 스스로 일을 하는 대가를 치르는 방법이 있습니다(살전 4:11; 살후 3:10). 그러나 자녀들은 자신의 위치를 이용하여 부모님에게 필요한 것들을 얻기도 합니다(눅 15:12). 세상에서 필요한 것들을 구할 수 있는 또 한 가지의 방법은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마 6:11, 7:7-11).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필요한 것들에 대하여 아무 요구도 안 하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강제로 채우지만은 않으십니다(계 3:20). 예수님께서는 기도라는 제도를 통해 기도를 받으시고 우리의 삶에 개입을 시작하시고 관여하여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요 14:13-14, 16:23-24; 약 4:2).
4) 기적을 체험하기 위함입니다.
신앙생활 중에 기적을 체험하기 위한 접근 방법은 개인의 신앙생활 방식에 좌우됩니다. 기독교 신앙에서는 다음과 같은 방법들을 통해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는 꾸준한 기도 생활을 통해서입니다(시 50:15; 렘 33:3; 막 9:29; 11:23-24). 그리고 성경 말씀의 묵상을 통해서도 기적의 체험은 가능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성경 말씀을 읽다가 변화를 체험한 사람들은 그 수를 다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이기 때문입니다(롬 10:17; 요 21:25). 또한, 예수님을 믿는다는 자체만으로도 삶에서 기적은 수시로 일어나 다가오게 됩니다(히 13:8).
5) 죄를 용서받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가지고 있는 뜻은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 구원할 자”라는 것입니다(마 1:21). 사람이 죄를 짓고 용서를 받는 방법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진심으로 지은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전에 지은 죄를 중단하지 않고 반복하면서 “잘못했다.”라고만 인정 고백을 하는 것은 진실한 회개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죄를 한 번에 모아서 진심으로 해야겠다.’라는 태도 역시 회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것이겠습니까? 가장 고질적으로 계속 반복해서 짓게 되는 죄에 대하여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회개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같은 죄를 만 번을 짓게 될 때, 회개 역시 포기하지 않고 만 번을 회개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다 보면 언제인가는 반드시 죄를 포기하는 순간이 다가오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마 18:21-22). 중요한 것은 회개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태도입니다. 회개하는 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그냥 계속 죄를 지으면서 살아가겠다.’라는 의지 표현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롬 1:24-28). 예수님을 믿게 되면 죄를 용서받고 마음에 평안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요 14:27, 16:33).
6)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대적하여 물리치기 위함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마귀는 우는 사자들같이 공격할 시기를 엿보며 삼킬 자들을 찾으며 뒤를 쫓고 있는 중입니다(벧전 5:8).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막 16:17)라고 뒤로 후퇴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싸워 이겨야 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둔다는 것은 가장 먼저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아니하고 싸워 이기는 것을 의미합니다(약 4:7; 벧전 5:9). 그리고 그러한 마귀를 물리칠 때는 가장 먼저 완전 무장을 갖추는 것이 필요합니다(엡 6:11-17). 마귀와의 전투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성령의 역사가 동반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마 4:1-11; 눅 4:1-13, 18-19).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을 권세 있게 사용하는 것입니다(막 4:39).
7) 영혼이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갈 수 있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있는 성도들과 교제 나누기를 기뻐하십니다(고전 1:9). 그러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떠나시기 전에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3)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에 가기 위해 예수님을 믿는 것은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핵심 부분에 해당합니다(요 1:12). 베드로 사도는 우리가 천국을 가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믿으면서 사랑하는 믿음이 필요하다고 가르치셨습니다(벧전 1:8-9). 바울 사도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구원을 받게 되면 죽은 후에 즉시 예수님과 함께 거하게 된다고 가르치셨습니다(고후 5:8). 사람은 세상에서 언젠가 한번 죽어야 하고 죽은 후에는 심판을 통과해야만 합니다(히 9:27). 그러려면 그러한 심판 전에 예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믿고 자신을 대신하여 피 흘려 죽어 주신 후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고백이 있어야만 합니다(롬 10:9-10).
4. 왜 전도를 실천해야 하겠습니까?
존 프레임은(John M. Frame) 그의 저서 『기독교를 생각하다』(Christianity considered)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다루었습니다.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은 무신론자이자 철학자였습니다. 누군가 그에게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만일 죽고 난 후 하나님을 만났는데, 하나님이 ‘너는 왜 나를 믿지 않았느냐?’고 질문하신다면 뭐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이에 대해 러셀은 대답했습니다. “증거가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누구나 대부분 전도를 해야 한다는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전도에 대한 막연한 생각이나 부담감만으로는 전도를 실천하여 좋은 결과까지 거둘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도를 실천해야만 하는 이유는 자신이 그리스도께서 계시다는 증거가 부족하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변증법적 법적인 설득을 하기 위함입니다.
1) 전도란, 예수님의 유언적인 지상 명령을 지켜드리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께서는 전도의 정의를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고전 1:21, 23). 또한, 예수님께서는 바울 사도에게 전도를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행 26:18)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부탁을 받게 되면 그의 생전에는 사정상 안 들어주거나 못 들어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가능하면 이전에 부탁받은 일들에 대하여 들어주고 싶어서 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계실 적에 남기셨던 유언은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 막 16:15)는 명령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오신 목적 중 한 가지가 전도 실천을 위함이셨습니다(막 1:38). 그러하셨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요 14:1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전도는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로서 마땅히 실천해야만 하는 일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실 때도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 4:19)고 말씀하셨습니다.
2) 전도란, 실천하지 않으면 명령 불복종의 결과로 화까지 다가오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왜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면서도 아직 복음을 접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하겠습니까? 바울 사도는 자신이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다가오게 될 것”(고전 9:16)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약 4:17). 바울 사도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을 “군사”라고 지칭했습니다(빌 2:25). 백부장은 예수님께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라고 말했습니다(마 8:9).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로부터 받았던 전도 명령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미루다 마침내는 큰 핍박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행 1:8; 8:1).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께로부터 전도 실천에 대한 명령을 이미 받은 상태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살아가야만 합니다(마 4:19). 또한, 사도로부터도 전도에 대한 실천 명령을 받은 채로 살아가고 있는 중입니다(딤후 4:2).
3) 전도란, 하늘의 상급을 받기 위해서라도 마땅히 실천해야만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면서도 상급은 전혀 기대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이 종종 있습니다. 더 위험한 것은 그러한 태도를 고수하는 분들이 믿음이 좋아서일 것으로 추측하는 사람들까지 있습니다. 그러나 상급에 대한 그러한 태도와 관점은 성경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칫 자신의 의를 나타내게 될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마 6:1). 정상적인 능력을 갖춘 부모라면 자녀들의 작은 수고에도 마땅한 보상을 하고 싶어서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리스도인들의 수고와 노력에 대하여 기꺼이 상급을 베풀고 싶어 하십니다(막 10:29-30).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주님을 위한 수고를 할 때마다 마땅한 상급을 기대하는 것이 오히려 믿음의 태도인 것입니다(신 6:10-13; 고전 9:7-9, 14; 갈 6:7).
4) 전도란, 아직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알려주는 사랑의 실천과도 같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을 전달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행 2:24).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막 1:3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선택하신 것도 전도를 실천하게 하시기 위함이셨습니다(막 3:14).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는 일에 힘쓰기를 원하십니다(요 17:3). 예수님께서는 양들에게 생명을 풍성하게 주시려고 이 땅에 오기도 하셨습니다(요 1:4, 10:10; 요일 5:12). 그러하신 예수님께서는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느니라”(요 8:17-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항상 기회를 만들어 이웃에게 예수님을 전해야 하겠습니다(요 13:34-35). 남은 생애를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을 적극적으로 전해야만 하겠습니다(딤후 4:2).
5) 전도란,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를 제시하는 일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웃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고 전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 일을 참으로 기뻐하십니다(눅 15:7).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전도를 실천하지 않는 것은 아직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행동으로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 것은 아직 예수님을 진정 사랑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어느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이 아내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에 아내에게 아무 선물도 안 하고 그냥 지나갈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인류를 사랑하신다는 것은 행동으로 그 사랑을 십자가에서 증명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요 3:16, 14:15, 21; 롬 8:32; 벧전 1:8, 3:1).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전도에 대한 가시적 실천을 해내는 길만이 자신이 예수님 사랑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롬 10:14; 고전 1:21)
6) 전도란, 사랑의 관계 성자들과 어느 날 갑자기 헤어지게 되더라도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는 안전 조치와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들과 헤어져야만 하는 상황을 앞두고 하셨던 말씀이십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2-3)고 약속하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사랑의 관계 성자들과 어느 날 갑자기 헤어지게 된다면 어디서 다시 만날 수가 있겠습니까? 그곳 중 한 곳이 천국일 것입니다(고후 5:1, 8). 우리는 사랑의 관계 성자들과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천국에서라도 다시 만날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해두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사랑의 관계 성자들이 살아 있는 동안, 세상을 떠나기 전에, 특별히 서로 헤어지기 전에 미리 반드시 전도를 실천해야만 할 것입니다(막 9:47-49; 행 4:12; 고후 1:14)
7) 전도란, 의지적으로 실천하지 않는 것은, 마치 불치병의 약을 발견하고도 자신 혼자만 사용하려는 범죄 행위와 같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께서는 “하는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고전 4:20)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복음은 능력의 말씀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롬 1:16). 정상적인 가족 관계의 구성원들은 각자 생활을 하다가도 어느 곳이든 맛있는 음식을 발견하게 되면 나타나게 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언젠가는 반드시 사랑하는 가족들을 함께 데리고 다시 그 음식점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먼저 믿게 된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주변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전도 실천을 늦추고 있는 것은 마치 범죄 행위와 같을 수도 있습니다. 좋으신 하나님을 자신 혼자만 독점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결코 사랑의 행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갈 3:13-14).
8) 전도란, 출석하는 교회를 성장시킬 수 있는 노력과 방법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선교학자인 피터 와그너는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는 것은 하늘 아래 가장 효과적인 전도 방법”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느 단체이든 지금보다 더 성장하고 싶어서 하는 것은 인간 고유의 본능에 속합니다(잠 22:29). 세상에 어느 부모가 자신의 자녀가 지금보다 더 잘되기를 원하지 않겠습니까?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모든 일에 전심전력을 다 하여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딤전 4:15)고 가르치셨습니다.
9) 전도란, 도저히 변화가 어려워 보이는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 중에는 온 동네가 나서도 도저히 통제와 제어를 할 수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무조건 격리만 하는 것은 올바른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을 제대로 영접만 시켜주더라도 훌륭한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눅 4:18). 생각해 보면 바울 사도와 같이 사나웠던 사람이 흔한 경우였겠습니까? 그는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게 될 때 증인까지 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그가 변화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행 9:1-20).
10) 전도란, 세상에서 가장 가치가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누군가 우리에게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을 단 한 가지만 얘기해 달라.”고 한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하겠습니까? 그것은 “세상에서 영혼들에 전도하여 천국으로 갈 수 있도록 안내를 해드리는 것”이라고 답해야만 할 것입니다(마 16:26). 그리스도인들은 물질을 천국으로 곧바로 송금시킬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있는 영혼들에 물질을 기꺼이 투자하여 전도를 실천하게 되면 그 영혼들이 후에 천국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란 세상에서 행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값지고 아름답고 귀한 일이 분명한 것입니다(행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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