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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사 걷기

한민족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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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근

두란노

2021년 10월 06일 출간

ISBN 978895314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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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구한말에 복음이 들어왔을까?

복음은 암울한 한민족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과거는 미래의 한국 교회에게 어떠한 길을 제시하는가?


하나님이 “때가 차매”(갈 4:4) 그리스도를 보내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신 것처럼, 한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때가 차매 복음 전파자들을 보내셨다. 하나님은 한민족을 위해 무엇을 준비하셨을까? 구한말 조선의 종교•정치•사회•문화적 정황은 복음을 갈망하는 분위기로 무르익고 있었다. 백성은 그 어디에도 기대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에 들어온 기독교 복음은 한민족에게 생명수와 생명의 떡과 같았다. 복음은 사람의 영혼 구원뿐만 아니라, 삶의 변화까지 이끌어 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교회가 세워졌으며, 설교를 듣고 회개하여 새사람이 된 기독교인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한국 교회는 사도행전의 초대 교회처럼 부흥했다.

그러나 한국 교회가 일제강점기 신사참배의 시련을 견디지 못하고 불신앙으로 굴복한 것은 믿음과 순종에 큰 오점을 남겼다. 신사참배를 적극 지지하던 지도자들은 해방 후 교권으로 신사참배 반대운동과 회개운동을 전개한 자들을 박해하고 쫓아내는 또 하나의 죄를 범하고 말았다. 이것은 한국 교회의 큰 문제였고 그 결과는 심각한 교회 분열로 나타났다. 

교회의 급성장은 많은 대형 교회를 양산했다. 자본주의 상업 문화같이 교회도 빈익빈 부익부의 모습을 보인다. 동시에 한국 교회는 선교하는 국가로 발돋움했다. 미국 다음으로 많은 선교사를 해외에 파송하고 있다. 선교단체들의 역할이 크다. 한국 교회를 특징짓는 단어를 하나 꼽으라면, 바로 ‘복음주의’일 것이다. 복음주의적 신앙과 삶은 한국 교회를 오늘처럼 놀랍게 성장하게 하였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이 시대와 미래에도 적실한지는 돌아볼 일이다. 

역사 속에 답이 있다! 종교개혁 신앙이 다시 필요한 이 시대에 과거 한국 교회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오늘의 한국 교회를 진단하고 미래 한국 교회의 길을 찾을 수 있게 이끈다.



<이 책의 특징>

1. 성도를 위한 책으로 쉽고 재미있다.

2. 학술서가 아니라 교회라는 현장에서 발화(發話)된 이야기다.

3. 종교개혁(Reformed) 역사관으로 기술했다.

4. 본서는 한국 교회사 전반을 다루었지만, 해방 이후는 장로교를 중심으로 기술했음을 밝힌다.  



목차


프롤로그 | 과거 한국 교회엔 어떤 이야기들이 있을까 •12


Part 1 왜 구한말에 교회를 주셨는가 

01 동쪽 끝 은둔의 나라에 전해진 복음 •20

02 한반도를 스친 복음의 흔적을 찾아서 •31

03 서학의 끈을 잡고 조선에 들어온 로마 천주교 •36

Part 2 위기의 조선, 백성을 품은 교회 

04 쇄국의 문을 두드리는 용감한 사람들 •50

05 선교사보다 먼저 한반도에 도착한 한글성경 •64

06 권서인들, 한글성경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 •71

07 미국 선교사들은 왜 조선을 향했는가 •75

08 조선으로 속속 들어오는 복음의 일꾼들 •80

09 바로 그 이름, 복음입니다 •89

10 조선의 마음을 열어젖힌 의료선교 •95

11 느리지만 확실한 방법 교육선교 •103

12 한글을 대중의 언어로 올려놓은 한글성경 •113

13 때로 흩어져서 때로 연합으로, 선교부 연합 활동 •117

14 한국 교회에 깊이 영향을 미친 네비우스 선교 정책 •121

15 선교 1-3기로 보는 한국 교회 •130

16 한국판 부림절 사건 •145

17 죽창과 낫으로 어찌 총칼에 맞서랴 •147

18 대한제국의 시작과 열강의 쓰나미 •152

19 안중근, 일본의 죄를 묻다 •154

20 나라를 잃고 교회에 기대는 백성들 •160

21 한반도를 이끈 선교사들 •161


Part 3 암울한 한반도를 쓰다듬은 영적 대부흥 

22 한국 교회의 자랑, 1907년 평양 대부흥 •172

23 부흥의 주인은 누구인가 •188

24 한국 교회, 영적 내공을 키우다 •192

25 한국 교회, 자립을 시작하다 •194

26 ‘아직 여기’에서 교회는 무엇을 할 것인가 •197


Part 4 일제강점기 교회는 민족의 등불이 될 수 있는가 

27 교란종 일본 제국주의, 한반도를 점령해 가다 •204

28 교회, 일제 항거의 산실이 되다 •207

29 기독교 학교와 교회에 대한 정교하고 치밀한 방해 •212

30 민족자결주의가 쏘아 올린 희망의 공 •215

31 일제, 무자비한 탄압에서 교묘한 민족 분열로 •222

32 박해를 먹고 성장하는 1919년 이후의 교회 •224

33 한국 교회가 도전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 •225

34 교회가 할 일, 교인이 할 일 •229

35 교회 성장과 잠재적 문제들 •235

36 기독교 문화, 복음의 통로가 되다 •250


Part 5 교회, 신사참배와 불편한 동거를 하다 

37 교회를 타락의 길로 이끈 신사참배 •258

38 하나님의 남은 자들이 있었다 •272


Part 6 해방 후 개신교회, 아직 봄은 오지 않았다 

39 대한민국 해방과 교회의 길 •294

40 북한 교회: 영적 재건보다 권력 순응의 길을 가다 •298

41 남한 재건과 일제 청산 실패 •302

42 남한교회: 회개 없이는 재건도 없다 •305

43 고려신학교, 평양신학교의 정통을 계승하다 •311

44 적반하장의 교권주의와 자유주의의 반격 •319

45 장로교 총회의 횡포 •325

46 경남노회 축출(1951)과 고신교회 탄생(1952) •332

47 조신 측(기장) 축출(1953) •334

48 합동(승동 측)과 통합(연동 측)의 분열(1959) •336

49 승동 측과 고신 측의 합동(1960), 그리고 환원(1963) •339

50 해방 후 교회 안에서 활개 치는 이단들 •343


Part 7 주제로 본 한국 교회 

51 교회의 성장 •352

52 대형 교회 현상 •356

53 놀라운 열정의 한국 선교, 그 명과 암 •360

54 기독교 문화의 확산과 세속화 •365

55 정치와 교회의 함수관계 •370

56 우리가 쓰고 있는 기독교 안경 •377

57 산아제한 이슈에서 극명하게 갈린 천주교와 개신교 •384

58 그리스도인이 부끄러워해야 할 역사, 입양 •390

59 남북통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392

60 음모론으로 변질된 종말론 •396

61 한국형 복음주의, 이대로 괜찮은가? •400


에필로그 | 교회는 시대의 도전 앞에 생존할 수 있을까?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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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없는 현재란 불가능하고, 과거를 모르는 사람의 미래는 밝을 수 없다. 필자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마음이 과거에 있으면 지혜를 얻고, 미래에 있으면 소망을 얻는다.’ 역사를 알면 현재를 직시할 수 있고 더 밝고 찬란한 미래를 꿈꿀 수 있다. 역사를 아는 민족에게 희망이 있다. :13쪽


어둠 속을 헤매며 멸망으로 달려가던 한민족에게 하나님은 선교사들을 보내 복음의 빛을 비추셨다. 하나님이 왜 19세기 말에야 복음을 전해 주셨는지 궁금하다. 하지만 그 답을 찾는 것은 어쩌면 선을 넘는 시도일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비밀이며 섭리의 신비다. 인간은 하나님의 깊은 뜻을 다 알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한민족이 굴곡의 역사를 거치면서 유구하고 찬란한 문화를 이룩했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죄와 비참함 가운데 스스로 멸망의 길로 걸어가고 있었다는 점이다.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 같은 훌륭한 분도 아담의 자손으로 원죄(Original Sin)와 자범죄(Actual Sin)를 가진 죄인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이 한국사를 공부할 때 위대한 민족이라는 자긍심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한민족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구원받을 수 있는 죄인임을 인정해야 한다.: 25쪽


1832년 2월 26일 마카오를 출발한 배는 중국 해안을 돌다가 한반도 서해안까지 오게 되었다. 그때가 7월 17일이었는데, 백령도 부근에 상륙해 주민들에게 한문성경을 나눠 주기도 했다. 조선 정부에 무역을 하자고 서신을 전달해 줄 것을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 배는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7월 25일쯤 고대도 안항에 도착했다. ‘로드 앰허스트’는 그곳에서 홍주의 목사(牧使) 이민회를 통해 순조에게 진귀한 서양 물품과 성경 등을 선물로 보내면서 영국과 통상을 요청했다. 답을 기다리는 동안 귀츨라프는 고대도 사람들과 친하게 지냈다. 잔치에 초대되기도 하고 배운 의술을 발휘하여 병자를 고쳐 주며 복음도 전했다. 그러나 당시 천주교 박해가 심했기 때문인지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양’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사람은 달랐다. 그에게 한자로 ‘주기도문’을 써 주고 한글로 써 보라고 했다. 이것이 최초의 한글성경 번역이었다. 귀츨라프는 이때 배운 한글을 나중에 서양에 소개해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돼지)감자 씨를 주며 심는 법과 포도로 즙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지금도 고대도 포도주와 감자는 유명하다. 8월 9일 서울에서 순조로부터 온 특사는 선물을 돌려주며 통상을 거절했다. 결국 그들은 고대도를 떠나야 했다. 귀츨라프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조선에 뿌려진 말씀의 씨앗이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 나는 믿습니다. 주님이 예정하신 때에 반드시 풍성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55-56쪽


서상륜은 1885년 20여 명의 개종자와 함께 개신교 공동체를 시작했는데, 그것이 ‘소래교회’(송천교회)다.1 이들 중 3명은 1887년 언더우드 선교사에게 가서 세례를 받았고 나머지는 나중에 언더우드를 초청하여 세례를 받았다. 후에 소래마을 58가구 가운데 52가구가 개종할 정도로 복음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이렇듯 ‘소래교회’는 한반도 최초의 교회이자 장로교회의 요람이었다. 소래는 ‘대구면’에 있었는데 ‘대구’(大救)는 ‘큰 구원’이라는 뜻이다. 정말 이 지역에

‘큰 구원’이 일어났다! 이 교회에는 직분자도 없고 조직과 제도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지만,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고 있었다. 성경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가 있게 한 것이다. 번역된 한글성경은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었다.: 73-74쪽


성경 번역의 원칙이 몇 가지 있었다. 첫째, 선교사가 한인 번역자와 함께 짝을 이뤄 초벌 번역을 한다. 둘째, 초벌 번역을 다른 번역자에게 보여 의견을 듣고 수정 번역을 한다. 셋째, 수정본을 또 다른 번역자에게 보여 의견을 듣고 수정한다. 넷째, 번역자 회의를 열어 한 절씩 읽어 가면서 토론과 표결을 거쳐 최종 확정한다. 선교사들은 헬라어 성경과 개정판 영어성경(Revised Version)을, 한인 번역자는 한문성경(Delegates Version)을 가지고 번역했다. 후에 이 단체는 ‘대한성서공회’로 발전하였고, 1937년 개역(改譯)성경이 출판되어 오래도록 사용되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선교사들이 유식자의 언어만 선택하지 않고 무식자도 이해할 수 있는 단어를 사용하려고 고심했다는 점이다. 일반 백성이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는 점이 높이 평가받을 대목이다. 당시 천대받던 한글이 한글성경 번역으로 인해 모든 국민에게 보편적 언어로 통용되는 기틀이 마련됐다. 한글성경 번역은 한글 역사에서 가장 커다란 도약의 분기점이 되었다. : 115-116쪽


미술 분야는 비교적 다른 분야보다 한국적 형태가 기독교 문화에 많이 적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회화’의 경우 1895년 출판된 《텬로력뎡》에 그려진 김준근의 삽화가 있는데, 대표적인 한국적 토착화로 인정받는다. 동양화 기법으로 그린 것이 특징이다. 김준근은 게일 선교사로부터 영향을 받아 원산 지방에서 기독교인이 되었다. ‘성화’(聖畫)로는 김은호(金殷鎬, 1892-1979)가 그린 <부활 후>라는 그림이 있다. 서울 안동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한 김은호는 고종과 순종의 어진을 그린 어진화사로 한국 근대 미술사에서 유명하다. 그의 제자가 김기창(金基昶, 1913-2001)인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 251쪽


1938년 제27회 장로교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가결할 때 부총회장이던 김길창이 경남노회 소속이었다. 그와 그를 따르는 친일 배교자들은 이 자숙안에 반대했고 교묘한 방법으로 결정을 못하도록 방해했다. 경남노회의 분위기는 동요되기 시작했다. 회개하자는 쪽과 회개할 필요가 없다는 쪽이 대립한 것이다. 결국 경남노회의 교회 재건은 출옥 후 남쪽으로 내려온 주남선 목사와 한상동 목사를 중심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1945년 12월 3일 마산 문창교회에서 제47회 경남노회가 열렸는데 거창교회의 출옥 성도 주남선 목사도 참석했다. 노회는 지난 노회의 자숙안이 진행되지 않은 책임을 묻고 임원들의 사퇴를 요구하면서 출옥한 주남선 목사와 다른 노회원이 일을 맡아 새 출발할 것을 요구했다. 주남선 목사는 먼저 손양원 목사를 초청해 사경회를 갖고 노회를 개회하자고 제안해 실행했다. : 309-310쪽


해방 후 장로교 총회는 일제강점기의 신사참배에 대한 회개와 교회의 순결과 재건에는 관심이 없고 교권에만 혈안되어 있었다. ‘회개해야 할 자’가 회개하지 않고 ‘회개하자는 자’를 독선자로 몰아붙여 권력과 힘으로 제압하려 했다. 교회 총회는 더 이상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다고 보기 어려웠다. 사탄이 교묘히 교회를 유린하고 있었다.

1950년 4월 21일 개최된 제36회 장로교 총회는 대구제일교회에서 열렸다. 총회는 시작 전부터 경남노회 문제를 해결하라고 보낸 전권위원회가 1개의 노회를 5개 노회로 만들었으니 그들을 다 총대로 받을 것인가를 두고 설전을 벌였다. 그리고 장로회신학교 측과 조선신학교 측이 서로 교권 확보를 위해 이미 계획적으로 욕설과 폭력을 동원해 맞섰다. 한마디로 난장판 총회가 되고 말았다. 겨우 이틀 만에 총회가 시작되긴 했지만 진리를 위한 싸움이 아니었다. 교권을 확보하기 위한 인간적 탐욕만 가득했다. 4월 24일 오전 총회는 경남노회 전권위원회 보고를 기각하고 ‘특별위원회’ 7인을 다시 선정하여 노회를 합병, 조직, 해벌하는 권한을 부여했다. 회의는 큰 소란과 난투와 싸움으로 얼룩져 비상 정회를 두 번이나 해야 했고, 경찰이 출동하는 부끄러운 사태까지 벌어졌다. : 327쪽


그런데 1990년대 들어서면서 한국 개신교의 성장에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2005년에 조사한 통계 수치에 의하면 1995년보다 개신교인이 줄었다. 한국 복음주의의 효과가 떨어진 것이다. 청소년 교인수가 점점 감소하는 것 또한 교회 성장에 부담을 주고 있다. 미자립교회와 폐교회가 증가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개신교 전반에 대한 사회 인식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복음주의적 한국 개신교가 보여 준 부정적인 모습에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1997년 한국갤럽조사연구소에서 실시한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의식’에서도 확연하게 나타난다. 한국 개신교는 전도 대상자인 일반인들에게 공신력을 상실했다. 이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이후와는 정반대 상황이다.

이 같은 한국 교회의 현주소가 한국 개신교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한국형 복음주의가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2007년 ‘어게인 1907년’을 외치며 부흥을 위한 온갖 행사를 열었지만, 부흥은 일어나지 않았다. 한국 복음주의는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 403-4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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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근
고려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네덜란드로 유학을 떠나, 캄펀(Kampen)과 아펄도우른(Apeldoorn) 신학대학원에서 교회사로 신학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7년의 유학시절 동안 자녀들을 기독교학교에 보내면서 기독교 교육을 경험했다. 
귀국 후 울산교회와 샘물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하면서 샘물기독학교(유치+초등)에서 교목으로 섬겼다. 그 후 개혁신앙에 충실한 교회를 세우기 위해 2011년부터 용인에 다우리교회를 개척해 섬기고 있다. 또한 네 명의 자녀를 홈스쿨링하며 가정예배 확산에 힘쓰고 있다. 고려신학대학원에서 10여 년간 외래교수로 후학을 가르쳤으며, 인터넷 웹진 <개혁정론>(www.reformedjr.com)의 운영위원으로 사역하고 있다. 저서로는 《교리와 함께하는 365 가정예배》(세움북스), 《기독교 학교 이야기》, 《종교개혁과 가정》, 《개혁신앙, 현대에 답하다》 (이상 SFC), 《소요리문답과 함께하는 365 교리묵상》(이레서원), 《콕 집어 알려주는 가정예배 가이드》(생명의말씀사), 그 외에 여러 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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