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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이교도의 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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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서명 : Paul The Pagans Apostle

파울라 프레드릭슨

정동현 역자

도서출판 학영

2022년 07월 28일 출간

ISBN 9791197769672

품목정보 152*225*23mm480p740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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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고대 역사가의 시각으로 본 사도 바울 이야기


『바울, 이교도의 사도』는 오늘날 전세계 성서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바울 연구의 한 축을 대변하는 중요한 책이다. 보스턴 대학교 명예 교수이자, 현재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 교수인, 저자 파울라 프레드릭슨은 최근까지도 SBL(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바울서신 분과 의장을 맡는 등 바울 학계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학자이다. 이 책에서 프레드릭슨은 후대에 덧입혀진 근현대적 시선과 시대착오적 선입견을 걷어 내고 철저히 고대라는 시대 배경 속에서 사도 바울을 관찰한다. 그리고 임박한 유대 묵시적 세계관 안에서 바울의 신학과 선교를 기존에 없던 시각으로 새롭게 풀어낸다. 한국 성서학의 지평을 넓히게 될 이 책은 독자들에게 역사에 바탕을 둔 성서 연구의 진수를 맛보게 해줄 것이다. 



<주요 특징>

- 본문에 [원서]의 쪽수가 표기되어 있어 강의, 연구, 논문 등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 각주와 참고 문헌에 방대한 자료와 최신의 연구들이 소개되어 있다.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바울 신학계의 중요한 흐름을 알 수 있다.



<주요 독자>

- 초기 예수 운동과 기독교 선교의 특징을 당대 역사, 사회, 문화, 신학 속에서 살펴보고 싶은 그리스도인

- 바울 학계 가장 최신의 논의에 참여하고자 하는 학자, 연구자, 목회자, 신학생

- 역사가의 눈으로 본 바울서신을 읽고 싶은 독자들 



목차


역자 서문 | 23

서문 | 27

서론 | 31

제1장: 이스라엘과 열방 | 45

시작점들 | 50

하나님과 세계 | 50

하나님과 인류 | 56

하나님과 이스라엘 | 59

왕국과 유배 | 64

다윗의 집, 그리고 하나님의 집 | 64

예언과 약속 | 69

속량에 대한 기대 | 77


제2장: 조국, 그리고 모도시 | 87

이교도들 사이에서의 유대인들 | 100

유대인들 사이에서의 이교도들 | 129

성전 | 129

회당 | 139

 

제3장: 바울: 선교와 박해 | 153

바울은 누구였으며,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 154

유대인 형성 | 160

할례를 전파하기? | 173

종말론적 이방인 | 183

증인, 저항, 그리고 "박해 | 192"


제4장: 바울과 율법 | 227

복음과 이방인 할례 | 228

"율법 없는" 선교와 "율법 없는" 사도? | 252

여러 신들과 한 분 하나님 | 261

민족적 구별 | 262

율법, 에트네, 그리고 "이신칭의" | 273

율법의 저주 | 280


제5장: 그리스도와 왕국 | 301

다윗의 아들 그리스도 제1부: 에스카톤/종말 | 305

다윗의 아들 그리스도, 제2부: 로마서 | 322

간주곡: 열방이 돌아옴 | 333

혈통/휘오테시아 | 337

구별/하기아스모스 | 343

합창 교향곡: 바울의 로마서 | 351

로마서 2-7장: 이방인을 유대화할 때의 문제들 | 356

로마서 9-11장: 이스라엘과 열방 | 361


후기 | 377

감사의 말 | 391

약어표 | 397

참고 문헌 | 400

일차자료 | 400

이차자료 | 404

색인 | 436

인명 및 지명 색인 | 436

고대 문헌 및 저자 색인 | 447

주제 색인 | 466



본문 펼쳐보기


선지자 미가는 이런 말을 남겼다. “모든 민족들이 각기 자신의 신의 이름을 의지하여 걷지만, 우리는 영원토록 우리의 신 여호와의 이름으로 걸으리라”(미 4:5). 시편 기자는 또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신들의 모임 가운데에 서시며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에서 재판하시느니라”(시 82:1, 개역개정). 또 어떤 경우에는 이 신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 힘으로 압도당하거나(하나님의 “국제적인” 혹은 민족을 초월하는 힘과 권세를 강조하는 시 82:6–8과 같은 본문들), 혹은 이방 민족들이 그 신들의 형상에 경배하는 것 때문에 조롱거리가 되기도 한다(시 95:5; 97:7; 사 44:6–20). 종종 그들은 이스라엘의 신과 대조되어, 열등한 위치를 갖는다. (모세는 출 15:11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개역개정]. 그리고 시 97:7은 이렇게 소리 높인다. “너희 신들아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개역개정].) 그러나 지금 강조하려는 논점은, 성서의 몇몇 본문은 이 다른 신들의 존재에 대해서 기정사실로 언급한다는 것이다. 즉, 그들은 존재한다. 성서가 다른 신들을 인정한다는 점에 대해 현대 독자들은 놀랄 수 있다. 고대 유대인들은 “유일신주의자들monotheists”이 아니었던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p53-54


그러나 민족성과 종교 사이의 이런 구별은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는 성립하지 않았고, 당시 세계에서는 신들과 인간들이 친족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바울이 살던 시기에는 종교적으로 “중립적”인 민족성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바로 이 때문에, 즉 고대인들이 본질적으로 (그들의) 신들과의 관계 속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1세기의 에트네, 곧 비-유대인들을 가리킬 때, (종교적으로 중립적인) 민족적 용어 “이방인” 보다는 (종교적으로 특수한) 민족적 용어 “이교도”를 더 자주 사용할 것이다. 나는 “탈-이교적 이교도들ex-pagan pagans”이라는 표현을 통해, 예수 주변으로 형성된 메시아 운동의 첫 세대에 들어오게 된 비-유대인 출신 구성원들을 가리킬 것인데, 이 말은 의도적으로 모순 형용어이다. 93-94p


이와 같은 급진적인 참여는 유대인들의 제의적 배타주의로 인하여, 단지 개종자의 인간적인 가족 관계를 소외시킬 뿐 아니라, 그의 “초-인간적”인 가족 관계, 즉 태생과 혈통으로 인해 그와 연결되어 있던 신들까지도 소외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제의의 부재는 신들을 노하게 만들었으며, 노한 신들은 그들의 불만족을 지진, 홍수, 가뭄, 난파, 폭풍, 질병 등으로 표출했다. 이 목록은 신들의 진노를 나타내는 보편적인 레퍼토리였다. (고대 세계에서 제의를 제대로 수행하는 것은 오늘날 범주로 따지자면 아마도 국방 예산에 포함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 이교도 남성들은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신에게 배타적인 헌신을 하기로 결단했다. 비록 적대적인 반응의 정도 차이는 있었지만, 개종자의 결단은 그 시대 대부분의 이교도들에게 용인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신들을 소외시키는 것은 당시 실제적인 위험들을 수반하였고, 이는 바울도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유대인들 스스로도 이러한 제의적 배타주의를 다양한 방식으로 실행에 옮겼다. 특히 우리가 가진 비문들이 증거하듯이, 서쪽 디아스포라의 일부 유대인들의 경우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다이오이Ioudaioi로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다른 신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비록 온전한 의미에서 공적 제의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었다고 해도)에 대해 거리낌이 없었다. 이 두 가지가 충돌한다는 어떠한 낌새도 보이지 않는다. “유일신주의monotheism”와 “다신주의polytheism” 사이에 날카로운 구분선을 긋는 것에 익숙한 우리가, 어쩌면 고대의 행위자들 위에 현대적인 구분을 뒤집어 씌우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고대의 행위자들에게는 신성이란 증감하는 정도에 따라 다양하게 존재하는 것이며, 이질적인 신들에게 어느 정도의 경의를 표하는 것은 자신의 신에 대한 주된 충성에 손상을 가하지 않았다. 170-171p


더 나아가 이교도 그리스도-추종자들이 할례를 받으면 안 된다는 바울의 강력한 주장은 사실상 “이스라엘”과 “열방”을 가르는, 곧 육신에 따른kata sarka 구별을 다시금 뚜렷하게 되새겨준다. 오직 이스라엘만이(예수 운동 안에 있든 밖에 있든) 육신의 할례에 의해 대표되고 예시되는 (그들의 신과 맺은) 언약적 관계에 참여한다. 이 육신의 할례는 마음의 할례를 표현하고, 고취하며, 강화시킨다(예: 레 12:4; 26:41; 신 10:16; 30:6). 일반적으로 이교도들은 언약적인 육신의 할례든 마음의 할례든 받지 않았다(물론 이 논평은 로마서 2장을 고려하면서 더 신중하게 탐구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교도들의 경우 결국에는 “마음의 할례”를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육신의 할례를 받지 않는다do not(혹은 바울의 말을 따르자면, 그들은 육신의 할례를 받지 말아야 한다should not). 간단히 말하자면, 유대인과 그리스인, 남자와 여자, 노예와 자유인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즉 카타 프뉴마kata pneuma/“영 안에서in spirit”(조금 후에 우리는 이 사상을 살펴볼 것이다) “하나”일 수 있다. 그러나 카타 사르카kata sarka/육신을 따라서, 그들은 모두 사회적으로나 민족적으로 구별된 존재로 남아 있다. 혹은 바울을 인용해 보자면, 유대인들은 “본질상”(퓌세이physei, 갈 2:15) 이방인들과 구별된다. 따라서 우리는 바울이 이스라엘과 민족들 사이의 구별을 강화했지, 그 어디서도 그것을 지우지 않았음을 본다. 또한 바울은 “이스라엘”을 재정의해서 그것이 그리스도-추종자들을 의미하도록(그리고 오직 그것만을 의미하도록) 하지 않았다. 265-266p


바울은 율법을 칭송하고, 율법의 명령을 자랑스러워하며, 율법의 특권에 대해 기뻐하고, 하나님과 동료 그리스도-추종자들을 향한 행동이 율법의 기준에 맞춰지도록 그의 이방인 공동체들에게 권고한다. 그러므로, 바울 자신이나 바울의 선교, 혹은 그의 에클레시아이 중 어느 것에도 단순히 “율법 없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에, 율법에 대한 바울의 모든 부정적 진술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 질문을 제기하는 것은 또 다른 해석학적 수렁으로 뛰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율법에 대한 바울의 부정적 진술들은 오랫동안 그야말로 유대교 자체를 향한 바울의 정죄로 이해되어 왔다. 그 이유가 율법에 대한 유대인의 이해 자체가 아마도 영적으로 생기를 잃었거나 지금까지도 생기를 잃은 상태이기 때문이든(반율법주의적antilegalist 해석), 혹은 유대인들이 유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자만심”과 민족적 분리주의로 그들을 이끌었기 때문이든(소위 바울을 바라보는 새 관점과 연결되는 반-민족성anti-ethnicity 해석) 간에 말이다. 280-281p


간단히 말해, 내가 생각하는 로마서 읽기가 전제하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로마서가 이방인들에게 말한다는 것, 바울이 이방인들의 쟁점과 문제들을 다룬다는 것, 바울이 자신의 논점을 입증하기 위해 이방인을 수사적 장치로 쓴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이방인의 사도로 신적인 임명을 받았음을 상기시킴으로써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방인들(아직 바울은 그들을 만나지 않았다[15:22–23])에게 자기 주장의 정당성을 입증한다는 것이다. 로마서는 일반적인 차원에서 죄인들의 칭의에 대해 가장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히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방인들의 칭의에 대해 말한다. 로마서는 모든 이스라엘, 곧 바울의 “육신에 따른 친족”의 임박한 속량(9:4; 11:26) 안에 열방이 은혜롭게 포함되리라는 사실이 울려 퍼지도록 선포하는 소리다. 356p


유대인들은 그들 자신의 전통을 전적으로 잘못 이해했다. 이 율법들은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도록(즉 카타 사르카kata sarka, “육신적인,” 미개한 방식으로) 의도된 것이 결코 아니었으며, 오히려 (유스티누스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의미가 발견되도록 영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참고: Trypho 59). 이와 같이 2세기의 교육받은 이방인 신학의 모든 다양한 이해 방식은 한 가지 지점, 즉 초월적 최고신의 정체성과 특성이라는 점에서 정확히 한목소리를 낸다. 따라서 이 해석자들은 바울의 신을 급진적으로 탈-민족화했다. 그리고 그에 따라 또한 그 신의 왕국을 재개념화했다. 속량은 역사의 지평선 너머로 물러났다. 마르키온이나 발렌티누스에게, 그 왕국이란 영적인 천국, 개인의 죽음 뒤에 기다리고 있는 저 위, 다른 차원의 세계를 언어로 표상하는 암호였다(Trypho 80에서 유스티누스는 이것을 비판했다). 유스티누스에게 있어서 그 왕국은 완화된 의미에서 천년 왕국의 먼 희망의 불빛과 같았다. 시간이 마침내 끝나게 될 때, 성도들은 육체로 일으킴을 받아 천년 동안 다스리게 될 것이었다(Trypho 80–91). 율법과 은혜, 행위들과 은혜와 같은 대조적 이항구조를 담고 있는 바울의 논쟁적인 수사, 개종자 할례에 대한 바울의 단호한 반대, 사도적 도전자들에 대한 바울의 분노, 앞으로 곧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알고 있다는 바울의 단호한 확신 등 바울의 편지들에 나오는 이 모든 특징들은 시간이 흘러 후대의 이방인 교회들이 역사 안에 자리 잡음에 따라 양극화된 반의어의 형태로 고착되었다. 즉, 율법 대 복음, 행위들 대 은혜와 같이 양극화되었다. 그리고 후대에 등장한 바울의 신학적 옹호자들은 바울의 입장을 유대교 대 기독교라는 양극화된 형태로 특징지었다. 하지만 바울은 그의 메시지를 이렇게 완고한 양극화의 형태로 인식하지 않았다. 388-389p



추천의글


이 책은 특히 북미에서 두드러지는 (기독교의) ‘유대화’ 흐름에 속한다. 저자는 기독교의 사도 바울에게 다시 유대인의 옷을 입힌다. 그는 예수를 메시아로 믿고, 종말론적 왕국을 고대하며, 이스라엘의 회복과 ‘이교도’들의 귀환에 헌신했다. 열정적이고 독창적이었지만, 이는 전형적인 ‘제2성전기의 묵시적 사상가’의 모습 그대로다. 기독교인에게 친숙한 바울, 곧 (부족한) 유대교를 떠나 (완전한) 기독교로 ‘회심’한 바울의 초상은 바울 사후에, 교회 전통에 의해 이루어진 ‘탈유대화’의 산물이다. 이 대담한 논지는 저자의 광범위하면서도 세밀한 자료 해석과 논증으로 뒷받침된다. 기존 해석의 맹점을 파헤치고, 새로운 읽기를 제시하는 저자의 논증은 치밀하면서도 끈질기다. 칼끝은 날카롭지만, 그 칼을 휘두르는 몸짓은 신중하면서도 유쾌하다.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든 안 하든, 내용 면에서나 글쓰기 면에서 배울 것이 많은 책이다. 대부분의 ‘기독교인’ 독자들에게는 이 책의 주장이 다소 낯설고 불편할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더 읽을 가치가 있다. ‘훌륭한 적수’의 역할이 그렇듯이, 친숙한 자료에 대한 저자의 ‘대안적’ 해석은 내 확신의 바탕이 되는 역사적. 신학적 이해의 타당성을 점검하게 하고, 익숙함 뒤에 숨으려 하는 나의 안일함과 나태함을 일깨운다. 물론 비판적 대화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학문적으로나 신학적으로나 가벼운 책은 아니다. 그러나 역사적, 성서적 진지함을 추구하는 신앙인들에게는 신나는 도전과 배움의 기회가 될 것이다.

권연경│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


바울서신을 읽는 것은 마치 두 사람 간의 통화 내용을 엿듣는 것과 같다. 발신자와 수신자는 모두 익숙한 내용이기 때문에 별다른 설명 없이도 소통이 원활하지만, 그 대화를 멀리서 엿듣는 사람은 대화의 전후 맥락과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 때문에 바울이 의미한 바를 파악하는 데 지쳐버린 레이제넨과 같은 일부 학자들은 바울을 그저 모순 덩어리로 치부한다. 파울라 프레드릭슨의 『바울, 이교도의 사도』는 바울과 그의 서신의 수신자들 간의 대화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유용하고 솔깃한 고급 정보를 다수 제공한다. 율법에 대한 바울의 긍정적인 언급과 부정적인 평가는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가? 아브라함 언약의 축복 속에는 분명 이교도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럼에도 이교도의 사도인 바울이 그토록 박해를 당한 이유는 무엇인가? 로마서 7장에 나타난 ‘나’의 정체는 무엇인가? 갈라디아서 2장에서 바울이 식탁 교제로부터 물러난 베드로를 타박한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누구나 궁금해하지만 아무나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에 대해 프레드릭슨은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프레드릭슨의 이야기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그녀의 이야기가 매혹적이라는 사실만큼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톨레 레게!

권영주│한국침례신학대학교 신약학 교수


사도 바울에 대한 이해는 초기교회의 신학을 이해하는 데 필수 불가결하다. 전통적으로 바울 신학의 배경을 그리스-로마, 유대교, 초기교회의 신학, 이렇게 세 줄기로 생각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수십 년간 바울 신학에 관한 전통적 관점과 새 관점 논쟁이 바울 이해에 대한 관심에 열기를 지폈다. 이후 차츰 논쟁의 열기가 식어져 갔지만, 이런 휴전기에 『바울, 이교도의 사도』는 바울의 신학과 그의 신학적 배경에 대한 새로운 논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책은 이방인/이교도의 사도인 바울의 신학과 상황을 유대 묵시적apocalyptic 배경하에서 재구성하며, 잔잔한 바울 신학계의 호수에 파동을 일으킬만한 신학적 도전을 준다. 이방인/이교도의 기독교로의 유입이 당시 사회에 주었던 사회학적 함의들을 찾아내 설명하는 대목에서 독자들은 바울을 이해하는 데 있어 남다른 통찰력을 얻게 될 것이다.

김경식│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신약학 교수


『바울, 이교도의 사도』는 최근 바울학계에서 가장 도전적인 제안을 하는 연구서 중 하나이다. 저자인 파울라 프레드릭슨은 유대인들에게 ‘신’은 민족적 개념이었으며, 이방인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여전히 이방인으로 남아 유대인들과 구분되며, 그들 자신의 원래의 민족적 정체성을 유지하는 ‘탈-이교적 이교도들’ex-pagan pagans이 된다고 말한다. 이에 따라 ‘탈-이교적 이교도들’은 종말론적 구속에는 참여하지만 민족적 유대인들에 비해 차등적 지위를 지니게 된다고 말한다. 프레드릭슨의 결론은 바울이 유대인과 이방인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이 둘 사이에서 ‘공유된 공동체적 정체성’을 세우려고 했다는 프란시스 왓슨Francis Watson 등의 견해와 분명히 다른 것이다. 또한 바울이 유대인과 이방인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고, 과거의 민족적 정체성이 유지된 채, 그 지위들을 재정의 내리고 ‘그리스도 정체성’Christ-identity을 형성하려고 했다는 윌리엄 캠벨William Campbell의 견해와도 다르다. 이 책이 민족, 인종의 개념과 이스라엘의 의미와 같이, 전통적 바울 읽기에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던 주제들에 대해 보다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도전적인 주장들을 모두가 동의할 수는 없을 것이지만, 보다 폭넓은 연구를 위한 시작점 혹은 자극제가 되기에는 충분할 것이라 생각한다. 바울 신학의 최근 동향 혹은 ‘유대교 안의 바울’이라는 주제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야 한다.

김규섭│아신대학교 신약학 교수


늘 그러하듯이 파울라 프레드릭슨은 신선하며 도발적인 통찰을 유려한 문장으로 전달한다. 후대의 기독교 신학 전통에서 가능한 한 벗어나 차가운 역사가의 눈으로 바울서신을 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효용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전범이다. 『바울, 이교도의 사도』는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적극적 상호 교류 및 신들과 민족들 사이의 불가분의 관계 등 바울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적확한 배경을 섬세하게 그리는 동시에 몇 가지 시대착오적 개념을 걷어 낸다. 또한 철저하게 바울을 임박한 유대 묵시적 세계관 안에 놓은 뒤 바울서신을 오로지 이방인만을 청중으로 삼은 문서로 해석하는 이 책은 분명 많은 독자들에게 건강하고 건설적인 당혹감을 줄 것이다. 프레드릭슨의 논점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손을 뗄 수 없을 만큼 큰 흥미를 느꼈고 또한 각주에 담긴 풍성한 정보에 설레었다. 가장 촉망받는 신약학자인 정동현 교수는 이 번역서를 통해 탁월한 번역자로도 자리매김했다.

김선용│신약학 연구자 Ph.D. University of Chicago


파울라 프레드릭슨은 이 책을 통하여 복합적이고 입체적으로 재구성된 그리스-로마의 고대 사회 가운데 바울과 그가 대표하는 유대교적 전통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를 통하여 프레드릭슨은 기존의 반유대교적 관점에서 바라봤던 “이방인 기독교의 창시자”로서의 바울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그간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었던 “이교도의 사도”로서의 바울의 유대교적 모습을 살핀다. 프레드릭슨은 당시 이교적인 고대 사회를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묘사하고, 또한 그 가운데 있던 유대인들과 그들의 전통을 상세하게 서술하는 가운데 바울의 모습을 그려낸다. 그리고 그런 바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바울이 서술한 서신서들에 담겨 있는 그의 신학과 교훈들을 해석하려 한다. 바울서신들을 교회의 정경으로서가 아니라 1세기의 고대 문서로 접근함으로써 그것들을 다른 자료들과 마찬가지로 최대한 객관적이고 역사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며 바울의 모습과 신학을 설명하려고 하기 때문에, 접근법의 전제에 대한 차이와 그로 인해 발생되는 신학적 견해 차이는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유대교 전통을 떠난 바울의 모습에 대해서만 치우치게 바라보는 이해를 지양하고, 그보다 균형 잡힌 이해를 성실하게 도모한다. 이를 통하여서 바울서신들에 담긴 신학과, 이교적인 사회와 문화 가운데 있던 교회와 성도들을 향한 그의 가르침이 훨씬 더 입체적이고 실감나게 다가온다. 따라서 바울과 그의 신학의 사회, 문화적 배경에 대해서 더 심도 깊은 연구를 수행하려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책이다.

김의창│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신약학 교수


어떻게 바울은 그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절로 인식하게 되었을까? 바울의 자의식과 관련해 바울 자신의 이방인 선교에 대한 인식은 무엇이었을까? 이 자의식에 대한 정의가 달라진다면, 바울의 선교에 대한 해석은 어떻게 바뀔 수 있을까? 파울라 프레드릭슨의 『바울, 이교도의 사도』는 위 질문들에 새로운 방향의 답을 추구한 저작이다. 이 책에서 프레드릭슨의 핵심 명제는 크리스터 스텐달 등을 위시한 선행 연구자들의 ‘이교도pagan를 위한 선교사 바울’의 테제를 보다 심화한 것이다. 곧, 바울은 철저히 유대교적 정체성을 유지했고, 이방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하기 위한 사도였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사도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프레드릭슨의 주장은 1세기 그리스도 추종자들 전부에게 복음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급진적인 주장까지는 아니지만, 분명 이방인과 유대인의 정체성과 구원 방식을 선명하게 나누어 기존의 바울 선교관 이해에 도전한 급진적인 해석이라 할 수 있다. 그녀의 대안적 바울상 제시는 바울을 무조건적으로 탈-유대교, 탈-율법의 맥락에서 설명했던 기존의 해석들에 의문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분명 긍정적인 기여를 했다. 우선은 독자들에게 이 책의 논지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각자의 선입견을 내려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저자의 목소리를 경청하기를 당부드린다. 혹여 프레드릭슨의 결론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녀가 제공한 신빙성 있는 증거와 날카로운 주해에 근거한 바울의 선교사적 정체성은 분명 바울 연구의 흐름에서 주목해야할 중요한 지점이다. 따라서 프레드릭슨이 연 토의의 장 안에서, 신학 사조에 따라 단편화 되기 쉬운 바울 읽기를 넘고 바울 연구의 풍성한 색채를 한껏 음미하길 바란다. 새로운 바울 읽기에 도전하고픈 모든 이들을 기꺼이 환영하며 『바울, 이교도의 사도』를 권하고 싶다.

김주헌│신약학 연구자 Ph.D. University of Aberdeen


파울라 프레드릭슨은 바울의 유대성을 강조하는 점에 있어서 “바울에 대한 새 관점”보다 한 발 더 진화된 형태인, “바울에 대한 급진적 새 관점” 혹은 “유대교 안의 바울” 학파에 속한 학자이다. 또한 최근까지 SBL 바울서신 분과의 의장을 맡기도 하는 등 바울 학계에 영향력이 있는 학자이다. 『바울, 이교도의 사도』라는 이 책의 제목 자체가 바울서신의 수신자가 유대인들이 아닌, 이방인들이었다는 “바울에 대한 급진적 새 관점” 학파의 가장 중요한 주장 중 하나를 암시하고 있다. 또한, E. P. 샌더스의 책,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를 연상시키는 이 책의 표지는 샌더스의 노선을 따르면서, 샌더스가 바울학계에 미친 영향을 닮고자 하는 저자의 야심을 엿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현재 바울학계에서 점점 더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는 “바울에 대한 급진적 새 관점” 학파에 속한 주도적인 학자의 가장 최신 논의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책이며, 실제로 2017년에 이 책이 출판되었을 때, 바울학계에서 많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내용에 대한 찬반 여부를 떠나, 바울을 연구하는 진지한 학생들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이다.

김형태│신약학 연구자 Ph.D. University of Durham


파울라 프레드릭슨은 “바울에 대한 급진적 새 관점”이라 불리는 소위 “유대교 안의 바울” 학파에 속한 학자들 가운데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바울에 대한 새 관점” 학파가 그렇듯이, 이 학파에 속한 학자들의 주장 역시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그 가운데서도 프레드릭슨은 바울이 평생 머물러 있었을 기원후 1세기 디아스포라 유대교의 세계를 역사학적으로 재구성하는 데 있어 학문적 탁월함을 보여준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바울, 이교도의 사도』의 첫 장을 펴는 순간부터 독자들은 전문가의 안내를 받으며 여행하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익숙하던 것이 어색해지는 과정을 통해 바울의 세계를 보다 생생하게 체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익숙하지만 낯선 세계로의 안내서는 아니다. 프레드릭슨은 바울의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가운데, 친절한 안내자에서 치열한 논쟁자로 변모한다. 그녀의 주장은 급진적이면서 논쟁적이다. 독자들은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그녀의 바울 이야기가 초기 교회 공동체가 처한 다양한 정황에 타당한지 이리저리 곱씹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옛 관점, 새 관점, 급진적 새 관점에 속한 학자들이 그리는 바울 신학의 지형을 조망하게 될 것이다. 바울을 진지하게 탐구하기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바이다.

남궁영│칼빈대학교 신약학 교수


『바울, 이교도의 사도』는 파울라 프레드릭슨이 지난 20-30년간 학계에 제시해 온 주장을 집대성한 것으로, 저자의 관점을 담은 일종의 바울 신학 안내서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중심 질문은 다음과 같다. “사도 바울은 역사적 예수로부터 3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후에도 여전히 하나님 나라의 도래가 멀지 않았다는 묵시적 희망을 간직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저자는 이것이 수많은 이방인들이 교회로 몰려 들어오고 있던 당시 상황과 관련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당시 유대 세계와 지중해 세계를 배경으로 삼으면서, 기존의 성서학 흐름과는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바울의 신학을 재구성한다. 파울라 프레드릭슨은 “유대교 안의 바울” 관점을 대표하는 학자들 가운데 한 명이다. 전통적인 성서 연구에 비해 “새 관점”은 유대교와 바울의 연속성을 강조하는데, 저자가 속한 흐름은 연속성을 그보다 더욱 강조하기 때문에 “급진적 새관점”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책은 “유대교 안의 바울” 관점의 연구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매우 좋은 사례이다. 이 관점의 책들이 국내에 거의 번역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 책이 한국 성서학의 지평을 넒히는 의미 있는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번역도 깔끔하고 용어 사용의 일관성도 있어, 저자의 논지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안용성│서울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


보스턴 대학교의 명예 교수인 파울라 프레드릭슨은 『바울, 이교도의 사도』에서 신약학의 전통적인 개념과 해석을 거부한다. 프레드릭슨은 인류학적인 담론을 활용하여 구약성경의 묵시적 맥락과 그레코-로만이라는 사회적 맥락 속에 종말론적 메신저로서 유대인 바울을 위치시키면서, 바울의 생애와 소명과 선교를 참신한 시각으로 풀어낸다. 그녀는 초기 기독교의 기원과 신약 기독론에서는 구종교사학파의 계보를, 바울 연구에서는 새 관점 학파의 계보를 따르면서도 바울을 포함한 초기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유대적 기독교”보다는 “기독교적 유대교”로 본다. 곧, 21세기 신약학의 주요 흐름인 유대교와 기독교의 연속성이라는 관점에서 역사적 바울을 “유대교 안의 바울”로 강조한다. 바울 연구, 초기 기독교의 기원, 신약 기독론에 중요한 학문적인 이정표를 세운 『바울, 이교도의 사도』를 학자들과 전공자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한다.

이상일│총신대학교 신약학 교수


프레드릭슨이 21세기 독자들에게 바울을 소개하는 방식은 최대한 교리의 껍데기를 걷어 내고, 그의 편지들을 역사적, 문학적, 신학적 정황 안에서 조망하는 것이다. 이신칭의, 이방인과 유대인, 할례와 율법, “주”, 종말과 같은 바울 신학의 열쇳말들은 종교개혁 이후 교리와 해석의 틀 안에서 해석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1세기 유대인 그리스도인 바울이 비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써보낸 서신들은 그 서술의 역사적 정황을 반드시 검토해야 한다. 난해한 바울 신학 개념을, 참신하면서도 논리적으로 풀어낸 프레드릭슨의 해석은 바울 서신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도전과 가능성을 함께 던져 준다.

조재천│전주대학교 신약학 교수


저자는 바울의 선교 대상이었던 ‘이교도들’이 어떻게 ‘탈-이교적 이교도들’(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되었는지를 당시 지중해의 종교적 상황에 기초한 자신의 신학적인 틀 안에서 설명해 나간다. 또한 종말에 이방인으로서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돌아오는 ‘종말론적 이방인’은 제2성전기 유대교의 묵시적 소망의 중요한 부분이었다고 전제하면서, 헬레니즘 시대에 이미 각 도시들에서 유대인들과 이방인/이교도들은 서로 충분히 관계를 맺으며 살았고, 유대인들의 회당에서도 다양한 정도로 이교도들이 참여할 수 있는 문이 열려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초기 예수 운동의 에클레시아에 들어온 이방인들은 개종자, 즉 할례를 받고 유대교로 개종한 자들도 아니었고, 후대의 개념인 기독교로의 개종자도 아니었으며, 이방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이스라엘의 신에게 배타적인 충성을 바치는 ‘종말론적 이방인’, 혹은 ‘탈-이교적 이교도들’이었다고 주장한다. 곧 바울이 기독교의 창시자나 첫 번째 신학자가 아니라 전적으로 제2성전기 유대교의 묵시적 소망 안에서 이교도의 사도로 살았던 환시자이자 하나님의 메신저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바울을 중심으로 펼쳐졌던 원시 기독교 선교와 관련된 지금까지의 기독교적인 이해에 대한 정면 도전이기에 엄밀한 검토와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이 책이 이 주제에 관해 최근까지 거침없이 진행된 서구 신학계의 연구와 논쟁 상황을 총망라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전문가들의 주장과 학문적인 계보를 상세하게 담고 있어 학문적 토론의 장을 활성화하는데 꼭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최재덕│전 장신대학교 신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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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라 프레드릭슨
파울라 프레드릭슨은 Princeton University, California University, Pittsburgh University에서 종교 및 역사학을 가르쳤으며, 이후 20여 년 동안 Boston University에서 William Goodwin Aurelio Professor of the Appreciation of Scripture였고, 현재는 William Goodwin Aurelio Chair Emerita of the Appreciation of Scripture이자, Hebrew University에서 Distinguished Visiting Professor of Comparative Religion이다. 저서로는 Augustine on Romans (1982), From Jesus to Christ (1988; 2000), 그리고 National Jewish Book Award를 수상한 Jesus of Nazareth, King of the Jews (1999)가 있다. 보다 최근의 저서로는 Augustine and the Jews: A Christian Defense of Jews and Judaism (2010), Sin: The Early History of an Idea (2012)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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