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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사랑하면 누군가 산다 (복음에 빚진 선교사 열전 1)

전부를 쏟아부어 사랑할 때 거두는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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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아 뭉흐(Joshua Munkh)

(도)사도행전

2023년 03월 13일 출간

ISBN 9791197806223

품목정보 135*200*15mm272p373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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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믿어주고, 끝까지 사랑하라!”

몽골 1세대 목사의 한국인 아버지, 최순기 선교사의 삶과 순교 이야기


몽골이 외면할 수 없는 분

최순기 선교사님이 사망한 다음, 몽골에서 장례를 치르기까지 보름이나 걸린 데는 이유가 있었다. 평양에서 죽은 외국인의 시신을 북한 정부가 내줄 수 없다는 입장 때문이었다. 특별한 ‘비밀’이 있어서는 아닌 것 같았다. 그저 “전례가 없다”는 게 그들의 입장이었다.

최 선교사님이 집사로서 다녔던 LA영락교회의 고(故) 김계용 목사님도 1990년에 평양에서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최 선교사님의 사인(死因)도 같은 것이었다. 김계용 목사님은 북한에 묻히셨다고 들었지만, 나는 아버지마저 그렇게 되도록 둘 수 없었다. 

나는 부고를 듣자마자, 선교사님의 가족과 함께 우선 몽골로 갔다. 우리는 북한 대사관, 미국 대사관, 중국 대사관, 그리고 몽골 정부까지, 접촉할 수 있는 외교적 통로를 최대한 들쑤셨다. 동생 최홍기 장로는 최 선교사의 유언이 담긴 편지를 북한 정부에 보내 ‘몽골에 묻히는 것’이 고인의 바람이었음을 알렸다. 당시 미국 국무부 장관이던 콘돌리자 라이스(Condoleezzs Rice)도 이 일을 보고받고 시신 송환에 힘을 보탰다. 북한 주재 스웨덴 대사관은 몽골 주재 미 대사관의 시신 인도 요청 전달에 협조해주었다. 중국도 시신이 중국을 경유하는 데 동의하였다. 전례가 없다던 북한 정부도 의외의 국제적 관심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이 일의 마지막 열쇠는 정작 몽골 정부였다. 몽골 정부가 최순기 선교사의 장례식과 매장을 몽골에서 하는 것을 처음부터 승인한 건 아니었다.

20세기 초부터 구소련의 개혁개방선언인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가 선포될 때까지, 무려 70여 년간 소련의 영향 아래에서 공산국가였던 몽골 정부는 외교적으로 남한보다 북한과 가까웠다. 당연히 북한 눈치를 먼저 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북한이 고향인 대한민국 사람이면서 미국 시민권자인 개신교 목사가 평양에서 죽은 복잡한 경우다. 공산주의 사상과 불교와 무속의 영향이 여전히 남아 있는 몽골로선 자연스러운 입장이었다.

나는 몽골 외교부를 찾아가 호소했다. ‘교회식’으로 말하자면, 공무원들 앞에서 ‘간증’한 것이다.

“뭉흐 자르갈은 영적 아버지 최순기 목사님을 만나기 전까지 몽골에서 방황하던 수많은 청소년 가운데 한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부모님은 이혼해서 고아처럼 살았고, 먹을 게 없어 도둑질한 적이 있었으며, 몽골의 거리에서 동네 아이들과 깡패처럼 싸움박질이나 하던, 정말 아무 소망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최순기 목사님이 오셔서 하나님을 만나게 해주시고, 저를 사람답게 살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목사님 덕분에, 저처럼 변화된 몽골 친구들이 많습니다. 저를 미국에 유학까지 가게 해주셔서, 이제는 꿈과 희망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최순기 목사님은 몽골 사람 아니고, 한국인이고 미국 시민권자이지만, 나 같은 몽골 청년들이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해주신 훌륭한 분입니다. 이런 분을 어떻게 우리 몽골이 외면할 수 있습니까? 우리 몽골 사람이나 다름없는 분입니다! 무엇보다 내게는 아버지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분도 몽골에 묻히기를 바라셨고요. 시신을 몽골에 모셔서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부디 허락해주십시오!”

공무원들은 내 호소를 묵묵히 들어주었다. 자기들끼리 회의를 하는가 싶더니, 이윽고 내게 말했다.

“안 그래도 여러 나라의 외교적 의견도 들었고, 무엇보다 뭉흐의 말을 듣고서 우리가 결정했습니다. 최순기 씨의 몽골 안장을 허락합니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몽골 정부에서 묘지도 제공하겠습니다. 잘 모시고 와서, 장례를 잘 치르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하는 외침이 바로 터져 나왔다. 북한도 이제는 더 마다할 이유가 없었던 모양이다. 북한 당국은 시신을 보내주기로 했다. 단, 별도의 부검 같은 건 하지 않겠다는 각서에 사인을 요구했다. 가족은 동의했다.


한 알의 밀이 몽골 땅에 떨어져 죽다

3월 31일, 최순기 선교사님의 관이 북경을 경유해 드디어 몽골에 도착했다. 나는 장례를 치르기 전에 시신을 모셔둘 병원 영안실에서 가족과 함께 ‘아버지’를 만났다. 시신은 외상없이 깨끗했다. ‘혹시?’ 하며 ‘의심’했던 이들도 있었지만, 최순기 선교사는 심장마비로 쓰러지신 게 분명한 듯했다.

최 선교사가 쓰러진 곳은 북한의 동업자와 함께 식사를 한 다음, 호텔을 벗어나 인근 지하도로 향하던 길 위였다고 한다. 갑자기 가슴을 움켜쥐더니 쓰러졌다는 동업자의 설명을 들었다. 훗날에 안 것이지만, 최 선교사는 건강에 이상 징후가 있었음에도 북한 방문을 감행한 것이었다. 그때가 네 번째 방문이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번엔 김정일 위원장까지 만나 직접 가공한 보석을 선물할 계획도 갖고 있었다. 언젠가 그 보석을 내게 보여주셨다.

“뭉흐야! 이거 내가 직접 깎은 건데, 다음에 북한 김정일 위원장 만나면 선물할 거야! 좋은 일이 생기도록 너도 기도해달라!”

최 선교사는 로스엔젤레스에서 집사일 때 보석 가공을 하던 보석 세공 전문가이자 보석 사업가였다. ‘007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배우 숀 코너리가 애용한 액세서리도 그가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는 자신의 전문 분야인 보석 세공 기술을 북한에 소개하고, 관련 사업을 평양에서 펼치고 싶어했다. 그 이면에 감춘 은근한 목적은 물론 선교였고 통일이었다. 그래서 고위당국자들과의 만남을 기대했는데, 안타깝게도 무산되고 만 것이다.

2006년 4월 5일 수요일 오전 10시, 재몽골한인선교사회(KMEM), 그리고 몽골 교회의 연합체이자 새생명교회가 주축인 몽골복음주의협의회(MEA)가 공동으로 ‘사랑의 빛 센터’에서 장례식을 치렀다. 그런 다음, 최 선교사는 가조르트 묘역에 안장되었다.

새생명교회는 1994년, 최순기 선교사가 중년의 나이에 몽골 선교사로 헌신해 몽골에서도 가장 추울 때 오셔서 개척한 교회이다. 새생명교회는 몽골 전역에 지금까지 20개 이상의 교회를 개척했고, 몽골 교회의 뿌리 중 하나가 됐다. 이제는 내가 담임하여 목회하고 있는 교회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나는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아버지’를 추억하며 전율한다.

이 책은 한 알의 밀이 몽골 땅에 떨어져 죽어 수많은 새가 깃들 만큼 많은 열매를 맺은 역사의 기록이다. 나는 그 열매 중 하나로서, 몽골 교회가 추모하는 최순기 선교사님에 대해 쓴다.


[출판사 책 소개]

이 책은 몽골에서 선교하던 중에 평양에서 순교한 고 최순기 선교사의 몽골인 제자이자 목사인 조수아 뭉흐가 자신의 영적 아버지인 최순기 선교사의 삶과 그 제자들의 이야기를 쓴 것이다. 

몽골이 민주화되는 과정에서 혼란스러울 때 거리에서 방황하던 10대 시절의 저자가 어떻게 변화의 소망을 갖게 됐는지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혹한기의 몽골에 홀홀단신으로 온 최순기 선교사가 저자와 그 친구들을 만나 교회를 시작하면서, 몽골에 교회가 세워진 이야기 자체는 몽골의 최근 교회사이기도 하다. 복음이 심기고 교회가 세워진 뿌리는 최순기 선교사의 사랑이었다고 저자는 증거한다. 최 선교사 부부가 아버지와 어머니처럼 몽골의 제자들을 친자식처럼 품은 사랑을 통해 그들이 살아난 것이다.

<내려놓음>의 저자 이용규 선교사는 그의 책 <같이 걷기>에서 최순기 선교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몽골에서 사역하다가 하나님 품에 안긴 최순기 선교사님은 부모가 없는 몽골 아이들을 자녀로 여기며 돌봤다. 거리의 아이들은 종종 선교사님 집안의 물건을 훔쳐 도망쳤다가 갈 곳이 없어 다시 돌아왔다. 그러면 최 선교사님은 아무 말 없이 함께 목욕탕에 가서 아이의 등을 밀어주고, 따뜻한 밥을 먹이고, 피곤할 테니 들어가 자라고 이불을 깔아주었다고 한다. 최 선교사님과 함께한 사람들은 “그분이 진짜 우리 아버지였다”라며 선교사님을 많이 그리워했다. 최 선교사님은 눈에 보이는 대단한 성공을 거둔 분은 아니었다. 성도 수가 200명이 안 되는 교회와 몇 개의 지방 교회를 세우고 돌보면서 관계 맺는 과정을 통해 사람들을 키워냈다. 선교사님이 보여준 예수님의 사랑으로 그들의 마음이 열리자 그들 안에 변화가 일어났다.


최 선교사가 북한 출신이기도 했지만, 몽골에서 만난 북한 사람들과의 인연으로 북한선교를 도모하던 중 안타깝게도 평양 거리에서 심장마비로 소천하게 된다. 전례대로라면 북한에서 시신을 받아올 수 없었으나, 저자는 백방으로 수소문해 최 선교사를 몽골에 모셔올 수 있었고, 몽골에서 장례식을 치르고 안장할 수 있었다. 

최 선교사가 갑자기 사라진 몽골 교인들은 잠시 어려웠지만, 저자를 중심으로 한 제자들이 선교사의 가르침대로 몽골 전역에 교회를 세워가는 교회 개척의 비전을 이뤄갔다. 지금은 몽골 전체 21개도의 절반 이상 지역에 교회를 개척했고, 개척한 교회들이 또 교회를 개척해나가면서, 몽골인 스스로 몽골 선교의 중심에 서고 있다. 

이 책은 최 선교사가 저자를 만나 새생명교회를 개척하고 여러 교회를 또 개척한 이야기, 최 선교사의 개인사와 순교 이야기, 이후에 펼쳐진 몽골 교회의 부흥사까지 두루 보여준다. 선교의 본질은 누군가가 선교에 헌신하여 누군가를 자기 목숨처럼 사랑하는 것이며, 그리하면 누군가 살아난다는 것이 이 책의 주제이자 결론이다. 

부록으로 간략한 몽골 선교사도 덧붙여, 한국인 선교사에 의해 완성돼가는 몽골 선교의 오늘까지 거시적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은 도서출판 사도행전이 한국 선교사에 대해 소개하는 ‘복음에 빚진 선교사 열전’ 시리즈 제1권이다. 한국교회가 선교에 후원한 것이 보람되고 가치있는 일이었음을 증거하는 이 시리즈 도서의 첫 책으로 고 최순기 선교사의 이야기가 선정된 것은 의미가 크다. 무엇보다 그 이야기를 몽골인 제자를 통해 읽게 된 것이 더 큰 의의가 있다. 저자는 현재 몽골에서 지도력있는 목회자로 사역하고 있으며, 한국 사람 못지않게 한국어에 능통해서 해서 이 책을 쓸 수 있었다. 그럴 만큼 고 최순기 선교사가 현지인에게 전한 선교적 영향이 매우 컸음을 반증한다. 이 책은 선교사에 의해 어떻게 현지인에게 선교사역이 이양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일선의 선교사는 물론 선교사를 후원하는 한국교회에 모두 유익한 인사이트를 준다.


목차


들어가는 글 : 내 아버지는 평양에서 돌아가셨다

 

1부 변화될 희망이 이제 생겼다

1장 참 ‘보르항’ 예수를 진짜로 믿자

2장 ‘사람 죽이는’ 이상한 종교

3장 성령께서 몽골에 교회를 세우시다

4장 초콜릿과 커피보다 맛있는 기적


2부 사랑은 이래야 정말 느낀다

5장 누군가 기도하면 누군가 살아난다

6장 밥과 스팸이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

7장 원더풀 원더풀 아빠의 인생

8장 “먹어봐야 맛을 알지? 하나님도 그래”

 

3부 사람을 바꾸는 찬란한 열정

9장 ‘사랑과 결혼’이라는 이름의 순종 시험

10장 “내가 안다, 네게 사랑이 없다는 거”

11장 ‘소리 지르는 사람들’의 교회 개척

12장 몽골에서 북한 사람들을 만나다

 

4부 사랑하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13장 북한에 자신의 모든 걸 주고 온 사람

14장 사랑하면 두려울 것이 하나도 없다

15장 내 마음의 나침반을 자랑하다

16장 선교사를 후원한 교회가 받은 축복

 

5부 내가 없어지면 누가 남을까?

17장 “최 선교사님이 잘 가르치셨다”

18장 교회를 충성스럽게 섬긴 사람들

19장 손자 교회들이 전달하는 선한 생명력

20장 이제는 눈을 들어 하늘을 본다


나가는 글 : 최순기 선교사님이 사랑한 성경

부록 : 몽골의 기독교 역사

추천사


본문 펼쳐보기


어머니의 오빠, 내 외삼촌은 스님이었다. 공산 치하에서 불교가 심하게 핍박받을 때 죽임당한 승려 중 한 분이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하나님은 없다는 무신론을 배웠고, 어머니가 아버지 몰래 부처에게 기도하는 ‘모순’을 보고 자랐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믿었던 몽골의 공산주의는 하루아침에 무너졌고, 정치도 경제도 무너졌다. 불교는 내게 ‘효과 없음’이 증명(?)되고 있었다. 러시아 사람이 사라진 거리를 아이들은 쏘다녔고, 얼마 남지 않은 ‘훔칠거리’가 이 동네와 저 동네 아이들이 패싸움을 한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다. 나는 그런 형들을 따라다니며 도둑질하고 싸움질했다. 그렇게 방황하던 나는 인생을 ‘변화’시켜줄 누군가를 바라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거칠게 살면서도, 속으로는 ‘아무 희망 없이, 이대로 내 인생을 보낼 순 없다’고 몸부림쳤다. _027


“기독교인들은 좋지 않다. 이 종교의 사람들은 자살을 권유하고 죽기도 한다.”

하필 그 무렵에 자살 사건이 알려졌는데, 자살한 사람이 교회 다니고 있었으니 기독교가 자살하는 종교라는 식의 논리를 전개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자살한 사람은 교회를 다닌 적도 없었다.

이 대목에서 최순기 선교사님이 자주 해주셨던 말씀을 언급하고 지나가지 않을 수 없다. 선교사님이 우리에게 강조하셨던 말씀이 다름 아니라 ‘잘 죽자’였기 때문이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진짜 죽으라는 말로 들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독자라면 그 말씀이 무엇일지 금세 눈치챌 것이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_035


사모님은 주일이면 예배를 마친 다음 스팸을 구워주셨다. 두 분이 드시려고 가져온 것이 분명했지만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스팸도 초콜릿처럼 입에서 먼저 녹았다. 그걸 보며 내가 깨달은 것이 있다. ‘이분들은 우리를 진실로 사랑하시는구나!’ _074


최 선교사님은 우리에게 ‘이 새끼, 저 새끼’ 같은 말을 자주 하셨다. 그건 우리를 진짜 아들처럼 생각해서 그러신 것이지 결코 욕이 아니었다. 그게 한국 사람에게 욕일 수 있다는 것도 처음엔 전혀 몰랐다. 하지만, 화가 많이 났을 때 하신 이 말이 거짓은 아니었을 것이다. 선교사님이 참지 않고 군대에서 배운 대로 하셨다면, 나는 벌써 죽었을지 모른다. 그런 분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끝까지 참으셨다. 예수님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그러실 수 없었을 것이다. _083


“알았지? 바닷물이 짜다는 걸. 너희들이 이제야 바다가 뭔지 진짜 안 거야! 이런 게 바로 하나님을 경험한다는 말과 같은 거란다. 바다가 눈으로만 보면 물이 많고 넓기만 하지만, 그 맛은 직접 들어가 보지 않으면 영영 모르는 거거든. 우리는 하나님도 그렇게 경험하고 알아야 해.” 

그때 우리는, 평소에 목사님이 설교하실 때마다 하나님을 경험하라, 하나님을 직접 만나 맛을 보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머리로만 아는 게 아니고, 눈으로 겉만 봐서도 아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었다. 맛보아야 진짜 아는 것이 신앙이다. _093


피츠버그한인중앙교회의 의료선교를 통해 바양어쇼에 예배당이 세워지는 기적도 있었다. 새생명교회가 아직 예배당이 없을 때였다. 피츠버그 교회의 박영혜 권사님이 97년에 의료선교팀을 따라왔는데, 하나님이 마음을 주시면 필요한 곳에 헌금하겠다고 1만 불을 가지고 왔기 때문이다. 선교 현장에서 감동받은 박 권사님은 최 선교사님과 새생명교회 교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러자 그곳에 예배당을 세우는 것이 기도제목이라고 답했다. 얼마면 지을 수 있겠는지 물었더니, 1만 불이면 될 것 같다고 했다. 권사님은 그 마음을 주신 하나님 앞에서 크게 우셨다. _185


우리 제자들은 이제 각자 흩어져 여러 지역에서 사역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목사님이 돌아가신 날이 돌아오면 모이곤 한다. 첫 기일에 모였을 때, 우리는 이렇게 다짐했다. 

“우리는 최순기 선교사님의 제자들이니, 싸우면 안 된다. 우리가 다투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보겠는가?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서로를 용서하고 사랑하자. 흩어져서 사역하더라도 서로 돕자. 우리는 한 스승의 제자들이니까.”

예수님이 고난받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실 때 제자들에게 강조하신 말씀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었다. 선교사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르침도 똑같았다. “너희는 서로 사랑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사랑하자’라는 운동을 펼쳤다. 몽골 교회의 여러 목사님들과 한국 선교사님들이 우리의 이런 모습을 보고서 칭찬해주셨다. 그것은 우리를 칭찬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스승, 최순기 선교사님을 칭찬하신 것이다. 한국 선교사님들이 말씀하셨다.

“과연 최 선교사님이 제자들을 잘 가르치셨다.” _201


추천의글


몽골인의 시각으로 쓴, 몽골에서의 교회 사역과 선교 이야기. - 이용규, 내려놓음 저자


몽골과 북한의 복음화가 이루어질 때, 크게 빛날 분. - 임현수, 큰빛교회 원로목사


선교사가 양육한 현지인이 뭉흐 목사처럼 될 수 있다는 증거. - 강대흥, KWMA 사무총장

자신의 전부를 쏟아부어 사람을 사랑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 유영기, 나성북부교회 은퇴목사


몽골에 건물이 아닌 교회를 세운, 위대한 복음의 능력을 확인한다. - 이웅조, 갈보리교회 담임목사


상식적 선교사 상을 파괴하는, 저돌적 선교사의 일생을 들려준다. - 안교성,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최 선교사를 통해 깨닫게 된 선교란, 그들과 한 가족이 되는 것이다. - 류철배, 보배로운교회 담임목사


세속화되어 방황하는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을 깨울 것이다. - 이형석, 타코마중앙장로교회 담임목사


한 영혼에 미친 사람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 박종근, 서울모자이크교회 담임목사


말로 한 선교가 아니라, 삶으로 한 선교였다. - 림형천, 잠실교회 담임목사


하나님께서는 이런 선교사를 찾고 계십니다. - 황덕영, 새중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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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아 뭉흐(Joshua Munkh)
몽골 울란바토르 소재 새생명교회의 담임목사. 1975년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공산주의 공무원인 아버지와 초원 출신의 불교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공산국가이던 몽골이 러시아 페레스트로이카 이후의 민주화 과정에서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1992년, 거리에서 방황하던 10대 청소년이던 그는 선교사의 전도를 받고 예수를 ‘보르항’(몽골어로 ‘하나님’)으로 믿었다. 서양 선교사가 세운 교회에서 만난 친구들과 몽골인만의 교회를 시작했는데, 마침 몽골 선교사로 헌신해 미국에서 온 최순기 목사가 그들과 함께 새생명교회를 개척하였다. 뭉흐를 비롯한 최 선교사의 첫 제자 8명은 선교사님 집에서 가족처럼 먹고 자면서 제자훈련을 받았다. 최 선교사 부부는 아빠와 엄마가 됐고, 뭉흐와 제자들은 아들이 됐다. 새생명교회가 예배당이 없어 기관 건물을 빌리고 들판에서 기도하고 예배할 때도, 달동네와 시골 각지에 전도하고 교회를 개척하는 사역부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30년이 지난 현재 몽골 전역 21개 도의 절반이 넘는 지역에 다수의 교회를 개척했고, 유목민이 대부분인 몽골 사람 중에서 목회자를 양성하는 지도자 학교를 온라인과 각지의 게르 학교를 통해 활발히 운영하고 있다. 2006년 3월 22일 평양을 방문중이던 최순기 선교사가 심장마비로 사망하자, 백방으로 탄원하여 ‘아버지’의 시신을 평양에서 울란바토르로 모셔서 4월 5일 몽골 교회와 재몽골한인선교사회 공동으로 장례를 치를 때, 제자들은 최 선교사를 운구했고 뭉흐는 맏아들 역할을 맡아 영정을 받들었다. Mere 선교센터 원장으로서 출판과 영상 미디어 사역, 온라인 큐티와 강해설교 등을 전하고 있다. 몽골목회자협회 회장을 역임했다(2012-2017). 몽골 지도자학교 원장, 국제제자훈련원 몽골과 중앙아시아(Global Disciple Training Center Mongolia and Central Asia) 원장이기도 하다. 2006년에 미국 성서장로신학교(Bible Presbyterian Theological Seminary)를 졸업했다(M.Div.). 2010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아내와 네 명의 자녀를 두었다. 유튜브 @joshuamunkh7949 페이스북 joshua.mun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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