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그 목격자들 - 목격자들의 증언인 복음서
리처드 보컴 | 새물결플러스
43,000 38,700원
(앵커바이블) 메시아의 죽음 1
레이몬드 브라운 | 기독교문서선교회(CLC)
50,000 45,000원
(앵커바이블) 메시아의 죽음 2
레이몬드 브라운 | 기독교문서선교회(CLC)
50,000 45,000원
소망의 복음 요한계시록
조영민 | 죠이북스
12,000 10,800원
눈으로 듣는 누가의 예수님 이야기 (목청 신약 3)
김현정(4) | 깊고 너른
15,000 13,500원
우리 주 예수의 마지막 날들
크레이그 A. 에반스 |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IVP)
12,500 11,250원
바울서신 1 (로마서/고린도전후서/갈라디아서/데살로니전후서)
잭 헤이 | 전도출판사
8,500 7,650원
[개정증보판] 존 스토트의 산상수훈
존 스토트 | 생명의말씀사
25,000 22,500원
왕이신 예수의 복음
매튜 W. 베이츠 | 새물결플러스
27,000 24,300원
[개정판] 신약시대의 사회와 문화
앨버트 벨 | 생명의말씀사
37,000 33,300원
예루살렘 신학
윤석이 | 기독교문서선교회(CLC)
23,000 20,700원
성경의 마지막
퀼리 터니스테 | 부흥과개혁사
25,000 22,500원
요한복음과 만나다
외르크 프라이 | 비아
17,000 16,150원
우리 신앙의 표준
김충연, 박성호, 박찬웅 | 기독교대한감리회(KMC)
25,000 22,500원
내가 사는 하나님나라
이정만(2) | 책과사람
22,500 20,250원
“작금의 한국 교회가 숙고해야 할 성경 읽기.
대중의 성서학자, 김호경 교수의 고별 수업”
신약성경은 이천 년 전에 기록된 매우 오래된 책이다. 이 책을 쓴 사람들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전혀 다른 역사를 살았다. 하지만 신약성경의 사람들과 우리 사이에, 불일치한 삶의 정황을 너끈히 뛰어넘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공명이 이 시대에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김호경 교수는 이러한 ‘성경 읽기’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보여 준다. 신약성경은 다양한 삶의 자리에서 한 분 하나님을 경험한 이들의 신앙 고백이 담겨 있는 역사적인 책이다. 신약성경의 저자들은 자신들이 놓여 있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개인과 공동체의 삶을 해석해 냈다. 성경 읽기란 성경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믿음의 사람들의 신앙 고백을 들여다보고 우리의 삶에 반영하는 행위다. 우리는 성경의 이야기에 비추어 지금 이곳을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를 해석해 낸다. 각기 다른 정황에 있는 신약성경의 사람들이 동일한 신앙을 고백한 것처럼, 우리 또한 신약성경의 사람들과 다른 정황에 있지만 그들의 신앙 고백에 동참하게 되는 놀라운 일이 성경 읽기를 통해 일어난다. 『신약 수업』은 30년 동안 신학교에서 신약성경을 가르친 김호경 교수의 찬란한 결실이자, 한국 교회에 남긴 고별 강의록이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작금의 한국 교회가 숙고해야 할 성경 읽기가 무엇인지를 유려한 필치로 드러낸다. 신약성경 속 개별들의 이야기가 살아 숨 쉴 때, 오히려 한 분 하나님의 이름이 주목을 받게 된다. 우리는 대중의 성서학자인 김호경 교수의 이 역작을 통해 성경을 다시, 낯설게, 새롭게 읽어 낼 수 있게 될 것이다.
들어가는 말
1부: 하나님의 역사를 읽는 사람들
우리의 고백
우리의 역사 인식
우리의 믿음
우리의 소망
우리의 사랑
2부: 예수를 만난 사람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사도행전
요한복음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 요한계시록
3부: 공동체를 세우는 사람들
로마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서, 데살로니가후서 디모데전서, 데모데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전서, 베드로후서
유다서
나가는 말
이 책은 일종의 신약성경 개론서입니다. 이 작업은 나의 오래된 희망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종의 숙원사업과도 같던 희망과 더불어 오랫동안 가진 질문이 있습니다. 신약성경에 관한 책이 넘쳐 나는 상황에서 과연 새로운 개론서가 필요할까, 굳이 내가 이 일을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책이 공해가 될 수 있는 시대에 책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확보하는 일이 절실했습니다. 나의 관심은 언제나 신학 전공자가 아니라 일반 대중입니다.
_‘들어가는 말’ 중
한국 교회의 이상징후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유독 성경 읽기를 강조해 왔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일반 성도들은 성경의 의미를 찾아갈 때 성경을 읽은 ‘나’가 아니라, 성경을 해석해 주는 목사나 다른 권위자에게 의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읽는 행위와 해석하는 행위가 분리된 것입니다. 목회자들은 성도들에게 성경 읽기를 강조하지만, 종종 “당신은 읽기만 하세요. 해석은 내가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성경을 해석하는 ‘수많은 눈 중 하나’를 갖지 못합니다. 그렇게 성경을 많이 읽으면서 말입니다.
_‘들어가는 말’ 중
다양성을 제재하는 통일성은 우리가 성경을 마음대로 생각하고 오독하지 않도록 울타리가 되어 주며, 통일성을 견제하는 다양성은 우리의 믿음이 획일적이지 않고 자기만의 역사를 만들 수 있는 동기를 만들어 줍니다. ‘우리’의 믿음 안에는 ‘나’의 믿음과 ‘너’의 믿음이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다양성은 삶의 다양성으로 옮겨 가고, 삶의 다양성은 고백의 다양성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고백의 다양성은 ‘너’를 인정하며 ‘우리’가 함께 살아갈 수 있게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말입니다. 다양한 고백을 묶는 출발점에는 바로 하나님이 있습니다. 의외로 단순한 이 사실이 신약성경의 세계관이기도 합니다. 신약성경의 세계관은 다양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 안에 있다는 관점입니다.
_‘우리의 역사 인식’ 중
예수는 하나님 나라가 이미 너희 안에 있다고 말합니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를 가지고 온 메시아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할 때, 그것은 “예수는 그리스도입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우리는 다른 이를 메시아로 고백하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이를 기다리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메시아가 이미 왔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가 예수라고 믿습니다. 그렇다고 기독교가 종말을 기다리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다시 오실 예수를 기다립니다. 우리는 막연히 누구인지 알지 못한 채 기다리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예수가 이미 그리스도로 왔다는 사실을 믿으며, 다시 오실 예수를 기다립니다. 다시 오실 그분이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_‘우리의 믿음’ 중
아가페를 일반적 사랑의 단어로 사용한 것이 기독교입니다. 신약성경은 예수의 십자가에서 아가페의 절정이 드러났다고 말합니다. 예수 이전까지 십자가는 치욕과 경멸의 상징이었습니다(고전 1:18). 그러나 예수로 말미암아 십자가는 구원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예수의 십자가는 세상의 가치를 뒤엎고 새로운 사랑의 질서를 만들어 냈습니다. 아가페는 ‘나’를 버리고 ‘너’를 살리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에 대한 믿음을 드러내는 길도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가 바라는 것을 드러내는 믿음, 예수를 이 세상에 보이게 하는 믿음은 불가능한 사랑을 행하는 것입니다. 예수처럼 말입니다.
_‘우리의 사랑’ 중
예수는 안락함보다는 앞으로 그들에게 닥칠 고난과 핍박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때,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이 아니라,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기 억해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버림을 받을 때,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에 직면할 때, 그들은 자신들이 두려워할 자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기억하며 그것을 잊지 않고 살아 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짧은 선교 여행은 일회적 사건이 아닙니다. 이는 예수의 제자로 살아가는 삶의 여정에 있어서 일종의 표본과 같습니다. 그들은 선교 여행을 하듯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고단한 삶을 살아 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제자의 길입니다.
_‘마태복음’ 중
배부른 누군가가 자신의 의를 기뻐하며 다른 이들의 고통을 돌보지 않는 로마의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는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12:51)는 놀라운 말씀을 합니다. 예수는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 가짜와의 전쟁을 선포합니다. 분쟁은 예수의 궁극이 아닙니다. 예수의 궁극은 평화입니다. 이 궁극을 위해서 예수는 세상에 불을 던지며(12:49) 우리가 예수의 진짜 평화를 위해서 싸우고 대립하게 합니다. 예수의 불은 끊임없이 죄인을 만들며 누군가를 소외시키고 배제하는 세상을 향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의를 선포하며 함께 하나님의 평화를 누리게 합니다.
_‘누가복음’ 중
요한일서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지 않는 사람들의 잘못된 믿음을 지적하며 그들이 다시 사랑으로 믿음을 되찾을 것을 권고하는 내용이 반복됩니다. 유사한 이야기가 반복되기 때문에, 요한일서에서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단락을 나누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믿음을 위한 요한일서의 출발점과 목적지를 명확히 기억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믿음의 출발점은 육으로 온 예수입니다. 그러나 이를 통해서 우리를 궁극적으로 데리고 가는 곳은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는 누구인가?”라는 주제가 요한복음을 관통한다면, 요한일서를 관통하는 주제는 “하나님은 어떤 존재인가?”입니다. 하나님은 빛입니다(요일 1:5).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과 사귄다면 우리는 어둠에 있지 않고 빛에 있을 것이며, 우리가 형제를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가 빛 가운데 있다는 증거입니다(2:10). 하나님은 사랑입니다(4:7-8). 하나님의 이러한 존재적 특성은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해야 할 당위를 제공합니다.
_‘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 중
‘일꾼’으로 번역된 ‘디아코노스’라는 단어는 아볼로에게도 사용됩니다.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고전 3:5). 같은 단어가 뵈뵈에게는 ‘일꾼’으로 아볼로에게는 ‘사역자’로 번역되었습니다. 번역자는 왜 이런 차이를 만들었을까요. 아마도 뵈뵈가 교회에서 지도자 역할을 했다고 하더라도, 여자에게는 ‘사역자’라는 명칭을 꺼렸던 것 같다는 의심이 듭니다. 바울은 여자인 뵈뵈와 남자인 아볼로에게 동일한 단어를 사용했는데도 말입니다. 그러나 로마서 12장 3-8절에 따르면, 교회에서 일하는 데 중요한 것은 ‘믿음의 분량’, 혹은 ‘믿음의 분수’입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믿음의 정도에 따라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섬기는 일이든, 가르치는 일이든, 구제하는 일이든, 그것은 믿음의 분량에 따른 것이지, 성적, 인종적, 경제적 조건에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_‘로마서’ 중
바울은 인간을 영과 육이 아니라 ‘몸’으로 이야기합니다. 살아 있는 인간은 영과 육으로 나눌 수 없으며 그것을 바울은 몸이라는 통전적 언어로 말합니다. 몸은 삶이며 생명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영으로 한정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 우리의 삶에서 일어납니다. 비록 우리가 육적인 질서 속에서 예수의 새로운 몸으로 사는 것이 쉽지 않더라도, 우리가 옛 질서가 아니라 새 질서를 따라야 할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도 정체성의 문제가 제기됩니다. 바울은 우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이며 ‘성령의 전’이라고 말합니다(6:15, 19).
_‘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중
골로새 찬가는 하나님의 창조로부터 시작된 우주를 보여 줍니다. 그것은 예수와 더불어 시작한 우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만물보다 먼저, 만물 위에, 그리고 만물 안에, 계신 분이라는 설명과 교회가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다는 것 외에 적대자들에게 다른 말은 필요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어떤 것도 범접할 수 없는 우주적 존재입니다. 세상이 창조된 이래, 창조되기도 전에, 어느 때이든 그리스도가 없었던 때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천사와 같은 것들은 하나님의 형상인 그리스도와 비교할 것이 못 됩니다. 골로새서가 적대자들의 주장을 헛된 것이나 초등 학문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세상의 근본에 대한 이러한 이해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처음에 있었고,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교회와 함께합니다.
_‘골로새서’ 중
예수와 모세의 비교는 예수와 대제사장의 비교로 옮겨 갑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을 제의를 통한 유대적 구원과 차별화하기 위함입니다. 대제사장은 사람들 가운데 선택된 자이기 때문에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리는 것같이 자신을 위해서도 속죄제를 드려야 합니다(5:1-3). 그러나 우리의 믿는 도리인 예수는 승천한 하나님의 아들이며, 우리와 같이 시험을 받았지만 죄는 없는 존재입니다(4:14-15). 그런 예수가 우리의 큰 대제사장입니다. 예수의 존재는 유대 대제사장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유대 대제사장은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 성소에 들어가 제사를 드려야 하지만, 예수는 ‘단번에’ 자신을 제물로 드려서 세상의 모든 죄를 사했고 우리를 위해서 다시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7:27; 9:25-28). 수없이 드려야 하는 유대인들의 제사에 비한다면, ‘단번에’ 자신을 드림으로 이루어진 예수의 구원의 완전성은 어디에도 비할 수 없습니다.
_‘히브리서’ 중
신학 훈련 없이도, 약간의 도움만 있어도, 성경에 대한 이해가 바뀌고 성경의 의미가 새로워지며, 결국 최소한의 지식과 정보가 바른 믿음으로 인도할 것이라는 희망이, 이 책의 출발점입니다. 그러므로 글을 쓰는 내내 이 정도는 말해야 할까, 이것까지 말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너무 복잡한 이야기가 아닐까, 너무 많은 단계를 건너뛴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들로 글을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면서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균형이 지리한 정보의 늪에서 믿음의 길을 놓치지 않게 하리라 믿으면서 말입니다. 사실 일반 독자들이 어렵다고 하는 다른 모든 신학 책도 궁극 목적은 믿음의 길을 알려 주려는 것입니다. 다만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단어들과 전문 지식들이 의도치 않게 그 길을 막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신약성경 안에서 독자들이 찾아갈 수 있는 믿음의 길을 내기 위해서 정성을 들였습니다. 이 마음과 이 길이 독자들에게 닿기를 바랍니다.
_‘나가는 말’ 중
성경을 읽는 이들은 많지만 성경이 자신을 읽도록 허용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성경은 시간·공간·인간·천지간에서 이루어지는 신앙적 삶의 날실이다. 날실이 가지런해야 삶의 태피스트리 또한 반듯해진다. 저자는 성경을 읽는다는 것을 하나님의 뜻을 따른 사람들의 고백에 반응하는 것이라 말한다. 바르게 반응하기 위해서는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다양한 시대, 다양한 저자, 다양한 문체로 기록된 텍스트를 일이관지하는 통일성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칫 잘못하면 나무는 보면서 숲은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기 쉽다. 저자는 성경에 담긴 정보와 고백, 상징과 이야기의 숲을 관통하고 있는 유장한 흐름을 마치 조감도처럼 보여 준다. 탁월하다. 『신약 수업』은 일종의 지도다. 지도를 손에 든 이들은 이제 그 지도의 안내에 따라 구체적인 장소를 탐색해야 한다. 성경의 세계를 종횡으로 누비며 구원의 신비에 젖어 들 수 있기를 빈다.
김기석|청파교회 원로목사
‘읽기’란 문자로 쓰여 있는 것을 이해하는 행위다. 그러나 쓴 자와 읽는 자의 시공간적 불일치로 인해 쓴 자가 전하고자 했던 뜻은 어긋날 가능성이 있다. 그것이 전지전능한 직관을 가지지 못한 인간 인식의 운명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성경 읽기도 다르지 않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행위에는 ‘계시’가 작동하기에, ‘성경 읽기’만은 성경 저자들의 뜻이, 아니 그들이 대언한 하나님의 말씀이 독자에게 완전하게 전달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자신만이 그 말씀의 원뜻을 알고 있다고 현혹한다. 저자의 ‘성경 읽기’는 그러한 오만과 독선을 버리고 읽는 자로서의 해석학적 한계를 겸허하게 고백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겸허한 성경 읽기는 오히려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하나님의 말씀과 그 뜻을 새로운 생명력으로 우리 삶 속에 피어 낸다. 신약성경 전권을 앞서 읽어 간 저자의 발자취를 모든 그리스도인이 함께 더불어 갈 수 있다면 작금의 절망적인 한국 교회에 희망을 걸어 봐도 되지 않을까?
김혜령|이화여자대학교 호크마교양대학 교수
신약성경에 대한 친절하고 따뜻한 안내서가 나왔다. 많은 정보를 담고 있지만 기술적이고 딱딱한 그간의 개론서와는 달리, 이 책은 신약성경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에 초점을 맞추었다. 저자에게 신약성경은 스물일곱 개의 믿음의 고백이다. 그 고백들은 서로 다른 삶의 정황 속에서 형성된 독특한 것들이면서도 같은 존재를 우러러보고 같은 세계관 안에 머물러 있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독자들의 신학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우리는 어떻게 신약성경의 세계관과 믿음의 고백을 오늘 우리 삶의 정황 속에서 새롭게 표현해 낼 수 있을까? 이제 신약성경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은 자연스럽게 독자들의 것이 된다. 나는 진작에 신약 개론 수업이 이러한 방식이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성국|아신대학교 신약학 교수
저자 | (기본값:제작사 정보 미제공) |
---|---|
크기 | 전자책의 경우 파일의 용량 |
쪽수 | 전자책의 경우 제외 |
제품 구성 | 전집 또는 세트일 경우 낱권 구성, CD 등(기본값:해당사항없음) |
출간일 | (기본값:제작사 정보 미제공) |
목차 또는 책소개 | 상세화면 표시 |
무성의, 비방, 도배, 도용, 광고성 평등 상품평 성격에 맞지 않을 경우 사전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배송비
- 라이프북의 배송비는 15,000원 미만으로 주문하실 경우 3,000원의 배송비가 부과됩니다. (단,제작처 개별발송 상품은 제작처의 배송비정책을 따릅니다)
- 도서,산간 지방의 경우 및 퀵 서비스요청은 배송정책과 관계없이 추가 배송비는 고객님께서 부담하셔야 합니다.
배송기간
- 신용카드 결제나 핸드폰,실시간 계좌이체는 즉시 결제확인이 가능하며,무통장입금의 경우 입금하신 순서대로 결제확인 후 출고가 이뤄집니다.
(단,토요일,일요일,공휴일을 제외한 평일 9시 이전까지 결제확인 된 주문건에 한해서만 당일출고 됩니다.)
- 배송기간은 출고 후 최소 1일(24시간)~최대7일 정도 후 주문하신 상품을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단,토요일/공휴일제외)
•도서는 개정판/재판이 출간될 경우 가격이 변동될 수 있어 주문취소 및 주문변경을 요청드릴 수 있습니다.
•상품의 실제 색상은 사용하시는 모니터에 따라 다를 수 있사오니 이점 양해부탁드립니다.
상품에 대한 주문취소/교환/반품/환불정보를 확인하세요!
구매확정하시거나 출고완료 후 10일이 지난 주문건은 교환/반품이 불가하여,마이페이지에서 신청버튼이 조회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