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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눈의 한국혼 헐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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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진(2)

참좋은친구

2010년 07월 08일 출간

ISBN 9788996416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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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황제의 밀사
헐버트(Homer B. Hulbert)가 노래한 구한말의 대서사시
- 전기(傳記)이자 역사서요 교양서 -

일본이 탈취해 간 고종 황제 내탕금의 전모를 최초로 밝힌다.

헐버트(Homer B. Hulbert)란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전문 역사가들마저도 헐버트의 참모습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 책은 조선의 개화 물결 속에서, 그리고 구한말 우리가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기는 과정에서 역사의 한 축을 담당했던, ‘한국인보
다 한국을 더 사랑한’ 문명화의 선구자이자 독립운동가인 미국인 헐버트(1863-1949)의 일생을 다룬 일대기이자 역사서이며, 교양서
이다.

헐버트는, 조선 정부가 최초로 설립한 서양식 교육 기관인 ‘육영공원(育英公院)’의 교사가 되기 위해 1886년 7월 4일 조선 땅 제물
포에 첫발을 내디딘 이래 20여 년 동안 한국에 살면서 교육자, 한글학자, 역사학자, 언론인, 선교사, 독립운동가로서 한국의 문명화
와 주권 수호를 위해 크게 헌신하였다.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특사 파견 사건 이후 일제의 박해로 미국으로 돌아간 헐버트는
미국에서 서재필, 이승만 등과 함께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독립운동에 매진하였다. 1949년 광복절을 기해 이승만 대통령의 초청
을 받고 한국에 환국한 지 일주일만인 1949년 8월 5일 청량리 위생병원에서 서거했다. 그는 생전에 《AP 통신》 기자에게 말한 “나
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I would rather be buried in Korea than in Westminster Abbey).”라는
소원대로 현재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묻혀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헐버트 서거 다음 해인 1950년 3월 1일 그에게 건국공로훈장 태극
장을 추서하였다.

한국의 문명화와 한국학 개척에 기여

- 선교사
헐버트는 1893년 감리교 선교사가 되면서 감리교 출판부인 삼문출판사를 책임 맡았다. 그는 동대문교회 담임목사를 지냈으며 노량
진교회의 설립 예배를 인도하였다. 그는 아펜젤러, 언더우드를 도와 우리나라 개신교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으며, 1887년 언더우드와
함께 우리나라 개신교 최초의 세례를 행하였다.

- 우리나라 근대 교육의 초석을 놓은 위대한 교육자
헐버트는 조선에 도착하자마자 교육을 조선의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그는 육영공원 교사, 한성사범학교 교장, 관립중학교(현
경기고등학교 전신) 교사 등을 역임하면서 교과서 시스템을 정착시키는 등 우리나라 근대 교육의 초석을 놓았다. 1905년 을사늑약
으로 대한제국이 주권을 빼앗기자 ‘한국의 살길은 교육뿐’이라며 한국인들에게 교육에 전념하여 나라의 주권을 되찾을 것을 호소했
다. 버트는 또 학교교육을 넘어 모든 백성이 골고루 교육을 받아야 한다며 국민교육을 주창하였다. 그는 1903년 YMCA 창립총회 의
장으로서 YMCA 탄생의 주역이었다.

- 한글학자이자 한글 사랑의 표상
헐버트는 1889년 지리, 사회 총서인 《사민필지》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순 한글 교과서를 저술하여 육영공원에서 교재로 썼다.
그는 한글을 현존하는 문자 가운데 가장 우수한 문자 중의 하나라고 정의하였으며, 또한 조선인들에게 어려운 한자 대신 쓰기 쉬운
한글을 애용할 것을 주창했다. 그는 1892년 <한글(The Korean Alphabet)>이라는 논문을 필두로 한글에 관한 수많은 논문을 발표
하였고,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를 인류사에 빛나는 업적으로 보았다. 그는 또 1세기 훨씬 전부터 국제적인 신문 및 학술지에 한글의
우수성을 소개하였다.

- 민족 혼 아리랑을 최초로 채보
헐버트는 1896년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아리랑을 우리나라 최초로 채보(採譜)하여 논문으로 발표함으로써 아리랑이 오늘날 세계의
노래가 되는 단초를 열었다. 그는 ‘아리랑은 한국인들에게는 쌀과 같은 존재다.’라며 아리랑에 대한 한국인들의 정서를 정확히 파악
했다. 아울러 그는 군밤타령도 오선지에 채보하여 발표함으로써 우리나라 음악사에 양악보 시대를 가져오면서, 전래 민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독립운동가로서의 활동

- 고종의 침전에서 불침번을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후 헐버트는 언더우드 등과 함께 시해 위협에 시달리던 고종을 보호하기 위해 고종의 침전에서 불침
번을 섰다. 이 책은 1895년 11월 27일 춘생문 사건 당일 헐버트 일행이 고종을 보호하는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새로운 역
사 기록이라 할 수 있다.

- 을사늑약 저지를 위한 고종 황제의 대미 특사
고종 황제는 1905년 을사늑약을 저지코자, 미국의 26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자신의 친서를 전달하는 특사로 헐버트를 임
명하였다. 헐버트는 1905년 11월 미국을 방문하여 미국 조야에 조미수호통상조약에 따라 미국이 일본의 보호 통치 음모를 저지시켜
줄 것과 일본의 침략주의를 막아달라고 호소하였다. 이 책은 헐버트의 미국에서의 활동을 우리나라 최초로 세세하게 밝혔으며, 당시
고종 황제가 을사늑약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 일본의 횡포에 맞서는 헐버트
헐버트는 러·일 전쟁 직후 박해받는 한국인들을 위해 일본에 대항하였으며,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에게 부동산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헐버트에게 부동산 등기문서를 들고 와 헐버트 명의로 이전해 달라고 요청하기까지 했다. 헐버트는 이토 히로부미 통감에게 한국인
들에게 공정한 재판이 보장되면 자신은 일본 비난을 중지하겠다고 타협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1907년 일본 궁내부 대신이 우리나라 국보인 개성 부근에 있는 경천사 10층 석탑을 고종 황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탈취해가자 헐
버트는 현장에 가서 사진을 찍어 국제적 신문에 고발하며 석탑 반환을 촉구하였다. 후일 석탑은 돌아왔으며 현재 용산 국립중앙박
물관에 세워져 있다.

- 미국에서 서재필, 이승만 등과 함께 독립운동을 계속
헐버트는 1907년 여름 일본의 박해로 한국을 떠나 미국에 정착하면서 한국인들을 격려하고, 국제적으로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면
서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독립운동을 계속적으로 이어갔다. 이 책은 헐버트가 3·1 만세운동 직후인 1919년 8월 <한국을 어찌할
것입니까?(What about Korea?)>라는 제목의 진술서를 미국 상원에 제출하면서 일본의 잔학상을 고발하고,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
였음을 최초로 밝히고 있다. 헐버트는 이 진술서를 위해 공증까지 하였다. 지은이는 이에 대한 자료를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입
수하여 이 책에서 사진과 함께 제시했다.

일제가 탈취해 간 고종 황제
내탕금을 돌려받아 고종 황제의
100년의 한을 풀어줘야 한다

이 책은 1903년 고종 황제가 상하이에 있는 덕화은행(독일계 은행)에 독일화 510,000마르크를 금괴와 일본 엔 화로 예치하였으며
이 돈을 1908년 일본이 탈취해갔음을 우리나라 최초로 밝혔다. 이 돈은 당시 대한제국의 총세입의 1.5%나 되는 돈이다. 오늘날의
치는 연리 10%로 100년을 계산하면 약 2조원이 된다. 국제금융인인 저자는 이 책에서 덕화은행장이 써준 예치금 영수증, 통감부
외무총장이 독일 측으로부터 돈을 받고 써준 영수증 등 실체적 증거를 제시하며 내탕금의 예치 과정, 고종 황제가 헐버트에게 내탕
금을 찾아오라고 위임하는 경위, 일본이 예치금을 탈취하는 과정, 헐버트의 내탕금을 찾으려는 분투, 해방 후 우리 정부가 이 사실
을 헐버트로부터 접하고 취한 행동 등을 소상하게 밝혔다. 40년 동안 이 돈을 찾으려고 동서분주한 헐버트는 생전에 이승만 대통령
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국은 이자까지 합쳐서 꼭 돈을 받아내야 한다고 울분을 토했다.
저자는 CEO 출신답게 증거 자료와 함께 이 문제를 객관적으로 세밀하게 파헤쳐 내탕금 문제의 모든 의문점을 해소하였다. 지은이
는 내탕금에 대한 근거 없는 여러 설을 일축하며 이 문제를 흥밋거리로 보아서는 아니 되며, 민족정기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회장이기도 한 저자는 이 문제는 새로운 한·일 문제로서 헐버트가 소원한대로 이자까지 합쳐서 돌려받아야
하며 경술국치 백년을 맞아 고종황제와 헐버트의 100년의 한을 풀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은이는 이 문제에 대해 김영일 광
복회장과 김삼열 (사)독립유공자유족회장과 협의하였으며 두 분은 일본이 탈취해 간 내탕금에 대해 흥분을 감추지 못하면서 소송
을 해서라도 기필코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목차

1부 운명적 만남, 조선
아름다운 영면
미지의 세계를 찾아
구한말과 외국인들
인격이 승리보다 더 중요

2부 문명화의 선구자
육영공원에서 싹튼 한국 사랑
최초의 한글 교과서
근대 교육의 초석을 놓은 계몽주의자
참 크리스천
YMCA를 창립한 Y운동의 중심인물

3부 헐버트가 노래한 한국혼
한글 사랑의 표상
아리랑을 세계의 노래로
언론인이자 저술가
불세출의 역사학자
한민족의 독창성과 잠재력을 발견

4부 독립운동으로 승화한 헐버트의 한국 사랑
독립운동의 힘, 정의와 사랑
을사늑약 저지를 위한 고종 황제의 특사
일본의 횡포에 맞서는 헐버트의 인간애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와 특사 헐버트
선택과 운명
미국에서도 독립운동을 이어가
고종은 무능한 군주였나?

5부 내탕금의 진실
고종 황제가 내린 소명
예치금을 도둑맞는 고종
내탕금을 찾기 위한 분투
내탕금은 돌려받아야 한다

6부 헐버트 정신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인간 헐버트
헐버트가 남긴 교훈

-헐버트 후손과의 교류
-헐버트 정신 이어가기
-책을 마치면서
-헐버트의 일생
-근대 개화사 연표
-참고 문헌 및 자료
-찾아보기
김동진(2)
잃어버린 역사를 희망의 역사로 되살린 국제금융인 김동진은 1978년 미국 케미칼은행(Chemical Bank)에 입사하여 제이피모간은행(JPMorgan Chase Bank) 한국 회장을 역임하는 등 30여 년간 국제금융인으로 활동하였다. 김동진은 국제 금융기관에 재직하며 후순위채(Sub. Debt) 등 선진금융기법 도입에 앞장서고, 1998년 IMF외환위기 시에는 외채연장 협상에서 국제 채권단 대표로 활약하며 협상 타결에 일조하였다. 학창시절 헐버트의 저서 <대한제국의 종말(The Passing of Korea)>을 읽고 헐버트의 한국 사랑, 학문적 기품, 가치관적 삶에 매료된 김동진은 국제 금융기관에 근무하면서도 끊임없이 헐버트를 탐구하였다. 1989년 미국 뉴욕에서 금융기관에 근무할 때 우연히 헐버트의 맏손자를 만나며 헐버트 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헐버트의 일생을 추적하기 위해 헐버트의 모교인 다트머스(Dartmouth)대학, 컬럼비아대학, 버클리대학, 유니언신학대학 등 대학과 연구기관을 직접 방문하고, 런던의 고서점가를 누볐으며, 뉴욕타임스 등 100년 전의 신문 기사와 씨름했다. 특히 헐버트의 후손들을 일일이 찾아내 그들로부터 헐버트에 대한 각종 자료를 모았다. 2006년 헐버트가 저술한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교과서 《사민필지》 영인본을 제작 세상에 공개하여 《사민필지》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했다. 이후에도 헐버트에 대한 역사 발굴을 계속하여 잃어버린 헐버트의 역사를 되살려냈다. 김동진은 2010년 헐버트의 일대기 ≪파란눈의 한국혼 헐버트≫를 저술하였으며, 이 책은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로부터 2010년 8월 이달의 추천도서로 선정 되었다. 2016년에는 헐버트의 한국학 관련 논문 57편을 모아 《헐버트 조선의 혼을 깨우다》를 번역, 출간하였다. 김동진의 헐버트 탐구 성과는 헐버트가 독립운동가일 뿐만 아니라 교육자, 한글학자, 언어학자, 역사학자, 언론인으로서 한국 문명화의 선구자였다는 사실을 새롭게 부각한 점이다. 그동안 헐버트는 독립운동가로서만 주로 알려졌다. 김동진은 1999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를 발족하고,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를 이끌며 헐버트 기념사업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여 헐버트 알리기에 앞장서 왔다. 1999년 이래 매년 추모식 거행, 후손 초청, 학술회의 개최 등 다양한 기념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의 기념사업 전개는 헐버트 알리기로 이어져 대한민국 정부는 헐버트를 2013년 7월 ‘이달의 독립운동가’에 선정하고, 2014년 10월 9일에는 헐버트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였다. (사)서울아리랑페스티벌은 헐버트에게 2015년 10월 제1회 '서울아리랑 상'을 추서하였다. 서울시에서는 한글 역사인물 주시경-헐버트 상징조형물’을 세우고, 경북 문경시는 '문경새재헐버트아리랑기념비’를 건립하였다. 김동진은 현재 헐버트를 세계에 알리는 일는 곧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일이라는 확신 아래 헐버트를 국내외에서 알리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2011년 뉴욕의 코리아소사이어티(The Korea Society)’에서 ‘Crusader for Korea, Homer B. Hulbert’라는 제목으로 강연한 이래 미국에서도 헐버트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김동진은 2003년 외자유치 공로로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2014년 9월 헐버트 역사를 발굴하여 국제사회에 소개한 공로로 미국 미시건주립대학교(Michigan State University) 한국학부로부터 ‘글로벌코리아 상(Global Korea Award)’을 받았다. 연락처: 이메일 - hulbert0126@naver.com 전화 02 3142 1949/010 6462 9931 팩스 02 326 1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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