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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읽는 빈손 빈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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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희

열린서원

2022년 02월 25일 출간

ISBN 9791189186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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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스승, 강연희 선생님

강민정(국회의원)


얼마 전 실로 예상치 못했던 선물을 친구로부터 받았다. 친구가 좋은 책을 추천해준 것이려니 하고 무  심하게 집어든 책 저자명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잠시 가슴도 콩닥콩닥 뛰었다. 그리고 나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45년 전 시간으로 빠져들었다. 


강연희 선생님은 1976년 나의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자 사회과목을 가르쳐주셨던 분이시다. 아울러 선생님께서는 내 학창 시절을 통틀어 내게 가장 많은 영향을 주신 선생님이시기도 하다. 당시는 소위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엄혹한 군사독재를 연장한 박정희 유신독재 시절이었다. 물리적인 억압과 통제 시스템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야 할 학생인 내게도 늘 억압과 통제, 과장된 전쟁위험의 압박 같은 것이 공기처럼 일상의 일부가 되어 있었던 시절이었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강연희 선생님은 인간과 세계에 대해 눈뜨기 시작한 사춘기 학생들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눈’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신 분이다.

당시 ‘10월 유신’은 교과서에서 굵은 글씨로 강조되는 내용이었고, 대부분의 사회교사라면 수업 시간에 본인 의지와 무관하게 10월 유신에 대한 찬양 조의 교과서 내용을 비판하거나 건너뛸 수는 없었다. 그러나 내 기억에 강연희 선생님께 사회를 배우면서 그분이 유신을 긍정적으로 설명한다거나 강조하시는 걸 본 적이 없다. 박정희 치하는 소위 ‘막걸리 반공법’이라는 것이 있던 시절이다. 너무나 엄혹해서 누가 누구를 신고할지 알 수도 없는 불신과 경계가 공기처럼 우리를 휘감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 직접적으로 정권을 비판하거나 교과서 내용을 부정하는 언급을 하지는 않으셨지만, 나는 선생님을 통해 교과서 내용과는 다른 세계, 교과서가 정답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른 방식의 사고가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당시 내가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것이 너무 간접적이고 추상적이며, 명료한 개념으로 전달된 것이 아닌 느낌 차원의 것이라는 한계가 있었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선생님 탓이 아니라, 말 한 마디 잘못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갈 수밖에 없는 정치적 상황으로 인한 것이었다.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돌이켜 보면 선생님께 배운 시간이 내게 주물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획일적으로 갇힌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생각의 자유’, ‘삶의 자유’라는 씨앗을 품을 수 있게 해주었던 것 같다.


 선생님의 수업 시간은 늘 기다려지는 시간이었다. 물론 사춘기 소녀들에게 항상 반듯하고 깔끔한 양복을 입고 허리 꼿꼿하게 펴고 다니시는 멋쟁이 남자 선생님은 그 자체로 인기 맨 일 수 밖에 없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분의 꼿꼿함은 그저 옷매무새 이상의 뭔가를 풍기는 것이 있었다. 고고함 혹은 고독함, 아니면 그 둘 다. 학교에서 제일 먼저 출근하시는 분이었고 학교 화단 꽃들을 늘 돌보시는 모습을 자주 보기는 했지만,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인 모습보다는 혼자이신 모습을 더 많이 보았고, 그게 또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도 했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가치관을 지키는 분인 것 같다는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은 내가 졸업한 한참 후에 확인되었다. 80년대 초반쯤 선생님이 ‘YWCA 위장결혼식’ 사건으로 투옥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건이 일어난 1979년 11월은 박정희만 죽었을 뿐 갑자기 맞이한 18년 독재 끝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던 시기였다. 이때 함석헌 선생님을 필두로 대통령 직선제와 유신헌법 폐지 등을 주장하며 문민정부 수립을 촉구한 용기 있는 분들 속에 나의 자랑스러운 강연희 선생님이 함께 계셨던 것이다. 너무 고맙고 반가웠다. 당시 나는 전두환 독재에 저항하는 ‘민주화 운동’을 위해 한창 뛰어다니고 있던 소위 운동권 대학생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리 학년이 선생님의 짧은 교사생활 마지막 해의 제자였다니 우리는 참으로 운이 좋았던 셈이다. 중학교 졸업 이후 선생님이 종교와 철학 공부에 몰두하시고, 사제로 세상 안에서 여전히 소금 같은 역할을 하며 사셨다는 소식을 최근에 친족들에 의해 펴낸 책과 함께 전해 들었다. 다만 최근까지 세상 사람들과 나누고픈 생각을 집필하시다 1년여 전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으니 너무 아쉽다. 돌아가시기 전에 한 번만 뵈었더라면 45년간 연결되어 있던 인연의 끈 그 사이에 비어있던 부분을 단숨에 채울 수 있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나는 나름 선생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 없음의 가르침’의 길을 따라 살려고 노력한 편인 듯하다. 어디에 있든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일, 민주주의를 조금이라도 더 앞으로 나가게 하는 일이라 생각되는 것들에 미력하나마 내 시간과 에너지를 부으며 살고자 노력해 온 편이기 때문이다. 운동권 학생으로, 교육 운동을 하는 교사로, 지금은 국회에서 잘하지는 못하지만 열심히는 하는 선생님의 제자로 살아가고 있다.


한 권의 책이 소환한 45년 전 강연희 선생님과의 인연이 내가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게 해주어 그것도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특별히 만나지도, 일부러 떠올리지 않아도 늘 함께였던 것 같은 강연희 선생님의 제자였음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살아갈 수 있도록 앞으로 내 남은 시간도 잘 채워 나가야겠다.


2021년 8월 13일

 

강연희 선생님의 제자 강민정 씀 



목차


헌  시  강희석(시인) / 5

추천사  최자웅(신부) / 8

회  고  강민정(국회의원) / 12

머리말  / 16


제1장 무엇이 마음을 아프게 하고 행복을 파괴하는가?

Ⅰ. 일그러진 가정 / 23

Ⅱ. 무지(無知)와 육신생활(肉身生活) / 43

Ⅲ. 직업의 차별 / 59

Ⅳ. 출세주의 / 72

Ⅴ. 무너진 권위 / 85

Ⅵ. 돈 버는 일 / 96

Ⅶ. 무능(無能)한 왕관 / 106 

Ⅷ. 위장하고 사는 인간들 / 119

Ⅸ. 잃어버린 건강(健康) / 128


제2장 누가 가치 있고 행복한 사람인가?

Ⅰ. 돈키호테(Don Quixote)의 비통한 후회 / 141

Ⅱ. 순수와 진실 / 165

Ⅲ. 정신생활 / 179

Ⅳ. 탈속(脫俗) / 190

Ⅴ. 문화인(文化人) / 205

Ⅵ. 인간은 각자가 하나의 세계다 / 222


제3장 빈손 · 빈마음으로 사는 가치 있는 생활

Ⅰ. 출가수도(出家修道) / 241

Ⅱ. 간소한 생활 / 251

Ⅲ. 자유의 혼(魂) / 260

Ⅳ. 자연과 진리 속에 사는 인생 / 272

Ⅴ. 알바트로스(Albatross) / 288


제4장 위대한 영혼, 빈손 빈마음의 인물들

Ⅰ. 소크라테스(Socrates) / 299

Ⅱ. 디오게네스(Diogenes) / 318

Ⅲ. 스피노자(Spinoza) / 323

Ⅳ. 헨리 소로우(Henry Thoreau) / 334

Ⅴ.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 / 347


추모의 글 유종일 박사(KDI국제정책대학원 원장) / 364

편집 후기 강헌희(대표 편집인) / 374



본문 펼쳐보기


제 1 장 

무엇이 마음을 아프게 하고 행복을 파괴하는가?


행복하게 살고 싶어도 마음뿐, 실제로 행복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간에게서 행복은 살 집이다. 행복이 없으면 머물러 살 곳이 없는 방황하는 인생이다. 마음 붙이고 살 데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 왜 행복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왜 살면서 마음 아픈 일이 많고, 누리던 행복도 어느 날 쉽게 무너져 버릴까? 

행복은 둘로 나누어 생각할 수도 있다. 하나는 절대적인 행복이고, 또 하나는 상대적인 행복이다. 절대적인 행복이란 가정이나 사회가 아무리 일그러졌어도 그 일그러짐에 영향을 받지 않고 나 혼자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이다. 구정물 같은 연못 속에 피어있는 연꽃과 같은 사람이 누리는 행복이다. 이런 행복을 누리는 사람은 흔치는 않아도 사회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 상대적 행복이란 나와 가정과 사회, 삼자(三者) 간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행복이다. 가정의 가치관이 바르고, 부모님으로부터 정신적으로 배울 것이 많고, 사회가 바르고, 그리고 나 자신이 바르면 누리게 되는 행복이다. 내가 바르더라도 가정이나 이웃이나 사회가 바르지 않으면 거꾸로 나를 해치게 되고, 그러면 나의 행복은 부스러지고 만다. 

반대로 내가 부모님이나 이웃이나 사회를 해치는 인간이 되면 그들 또한 불행하게 된다. 그리고 내가 뿌린 불행은 나에게 다시 되돌아와서 나의 불행을 가중시킨다. 그러므로 내가 가정이나 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아야 되고, 나도 해침을 받지 않아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내가 가정이나 사회에 해를 끼치게 되고, 어떤 가정이나 사회가 나에게 해를 끼치게 되는가를 생각해 보자.


본문 21쪽



Ⅰ. 일그러진 가정 


1. 잘못된 가치관

 

사람을 가치 있게 하는 것은 돈도 아니고, 지위나 명예나 학벌도 아니다. 돈 많고 학벌이 좋다고 하여 저절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고, 돈 없고 공부 못했다고 해서 사람이 못되는 것도 아니다. 돈, 지위, 명예, 학벌 등은 인간의 겉옷에 불과 하다. 좋은 옷 입었다고 해서 좋은 사람이 되지 않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돈, 지위, 명예, 학벌은 저차원의 인간들이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지상적 가치(地上的 價値)에 불과한 것이다. 가정에서도 이와 같은 지상적 가치를 중요시 하게 되면 그 가정은 잘못된 가치관으로 말미암아 종내에는 크게 망치고야 만다.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가치는 어디까지나 내적 가치(內的 價値)에 있다. 그 내적 가치는 바로 인격이고, 인격은 곧 ‘사람다운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외적인 것보다는 내적인 것이 중요하다. 단순히 얼굴 잘 생기고, 재주 있고, 좋은 옷 입었다고 가치 있고 행복한 사람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타고난 순수성과 진실성을 지켜주는 좋은 환경에서 성인(聖人)과 현인(賢人)들의 진리를 무엇보다도 귀중하게 여기고, 몸소 솔선수범하는 부모님과 함께 진리를 탐구하고 마음을 닦아 고결한 인격을 형성하는 일이 가정의 우선가치가 되지 않고,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돈과 지위와 학벌·학위가 최고의 가치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지극히 슬픈 일이고, 가정의 불행의 원인이 되고, 나라를 기울게 하는 병원균이 되는 것이다. 



2. 돈은 왜 궁극적 가치가 되어서는 안 되는가? 


돈은 올바른 사람이 가져야 올바르게 쓰이게 되는데 비해, 잘못된 사람이 가지게 되면 그 돈은 대부분이 잘못 쓰이게 됨으로써 결과적으로 돈이 악의 도구가 되거나 악 자체가 되어 버린다. 따라서 잘못 쓰이는 돈이라면 없는 것이 오히려 낫다. 왜냐하면 돈 때문에 가정의 불행이나 사회악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돈은 생활하는데 필요한 정도 이상을 가지게 되면 잘못 쓰이게 되는 경우가 아주 많다. 불필요한 사치와 주색잡기에, 뇌물로 감투를 팔고 사는 매관매직(賣官賣職)에, 선량한 대다수 사람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는 투기 등에 쓰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인격을 먼저 갖추고 나서 돈을 벌어야 그 돈이 바르게 쓰이고, 바르게 쓰이는 돈이라야 사회범죄를 유발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처음에는 돈을 잘못 쓰려고 벌지는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많은 돈을 벌게 되면 잘못 쓰게 된다. 그것이 돈의 속성(屬性)이다. 그렇게 쓰이는 돈이 인간을 파괴하고 행복을 파괴하는 것이다. 돈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생활의 도구이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본문 23-24쪽



3. 감투가 왜 높은 가치가 되어서는 안 되는가? 


감투란 그 본질이 명예가 아니고 봉사이며, 권력을 휘두르는 자리가 아니고 인도자의 자리이며, 월계관이 아니고 가시관의 자리이다. 봉사란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섬기면서 일하는 것이고, 인도자란 가장 바르게 일할 수 있는 능력과, 최고 수준의 영혼을 가진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가장 바르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은 길을 바르게 아는 것이고, 길을 안다는 것은 득도(得道)에 이른 것이고, 득도는 진리의 통달을 뜻하는 것이다. 

사람이 진리를 통달하면 비로소 지상적 가치를 멀리하게 된다. 반면에 지상적 가치를 떠나지 못한 자가 감투를 쓰게 되면, 일을 그르치게 되고 부정과 불의를 행하게 된다. 

감투가 가시관이라는 말은 그 공동체 내의 다른 사람들보다 못 먹고, 못 입고, 고생하면서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고 책임을 지는 자리라는 뜻이다. 공동체 내에서 책임 있는 지위에 있는 사람이 남보다 더 호화롭게 살고, 위세를 부리고, 지배욕을 부린다면 그것은 곧바로 선행이 아니고 악행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악행을 일삼게 되면 반드시 그 사회에는 아부와 뇌물이 뒤따르게 되고 잘못된 야심을 갖는 자가 생기게 된다. 그러면 그 공동체는 성장이 정지되고, 분열되고, 종내에는 멸망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감투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게 되면 그는 곧 악인(惡人)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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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희
강연희(姜鉛熙) 신부는 1938년에 전북 고창에서 출생하여 성균관대 법과를 졸업하고, 서울 가톨릭 신학대학과, 한국신학대학 대학원에서 수학하였다. 이후 성공회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성공회 강남교회, 강화도 온수리교회 등에서 관할사제로 시무하였다.
은퇴 후 세상과의 인연을 멀리하고 은둔 생활을 하면서 동양철학, 서양철학 연구와 집필에 열중하시다가, 2020년 3월 어느 날, 전라남도 장성군내 실버센터에서 홀연히 고독사 하였다.
기존의 저서로는 1993년에 출간(다산글방)된 『빈손 빈마음』과 2009년 번역?해설(신아출판사)한 『노자 도덕경』이 있고, 유고 작 『광야로 간 사제』(2021년 도서출판 人)가 있다.
그밖에 유고로 남긴 『논어』, 『주역』, 『장자』는 현재 ‘강연희 신부 전집 간행위원회’에서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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