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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 고난의 기쁨

기독교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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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렌 키르케고르

이창우 역자

카리스아카데미

2022년 12월 12일 출간

ISBN 9791192348124

품목정보 128*188*15mm256p260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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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 왜 우리는 고난을 회피하는가? 예수 믿으면 고난이 사라지는가, 오히려 고난을 당하는가? 우리는 환난과 고난을 제거해달라고 얼마나 기도했던가!

ㆍ 하지만 고난 자체가 길인 경우, 고난을 제거하면 길이 사라진다!

ㆍ 사랑 없는 믿음과 소망이 울리는 꽹과리이듯, 고난 없는 기쁨도 울리는 꽹과리이다!


[역자 해제]

고난 중에 어떻게 기뻐할 수 있는가?


1. 소개

 이 글은 키르케고르가 1848년에 저술한 『기독교 강화』 제 2부 ‘고난의 싸움 중에 있는 마음의 상태Stemninger i Lidelsers Strid’를 번역한 것입니다. 전체 4부로 구성된 『기독교 강화』 중에서 이 강화는 무엇보다 고난당하는 자의 ‘기쁨’을 다루고 있습니다. 역자는 키르케고르의 고난을 주제로 한 강화가 기독교 문학의 백미(白眉)라고 생각합니다. 이 강화는 고난에 대한 엄청난 통찰이 있습니다. 독자들은 이 글을 읽으면서 키르케고르가 제시하려는 기쁨이 어떤 것인지, 고난당하는 자의 기쁨이 다른 기쁨과 어떤 점에서 다른 것인지 생각해보십시오.

 키르케고르의 작품 중에 고난에 대한 강화가 하나 더 있습니다. 1847년에 저술한 『다양한 정신의 건덕적 강화』 제 3부에 실린 ‘고난의 복음’입니다. 이 두 작품은 고난이 주제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고, 또한 고난당하는 자의 ‘기쁨’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도 같습니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고난의 복음』은 고난을 대부분 ‘제자의 길’이라는 관점에서 다루고 있는 반면, 이 강화는 ’시간과 영원’의 관점에서 고난을 다룹니다.

 키르케고르는 ‘기쁨의 철학자’입니다. 키르케고르만큼 기쁨을 강조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기쁨을 이야기하는 곳마다 ‘고난’, ‘환난’, ‘역경’, ‘짐’과 같은 단어들이 함께 등장합니다. 그가 우울, 불안, 절망을 말했다는 것은 심각한 오해입니다. 이런 결론은 그의 사상서만 읽었지 강화를 읽지 않은 까닭입니다.

 처음 읽는 독자를 위해 ‘강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시작하겠습니다. 강화는 영어로는 ‘Discourse’로 번역되었고, 덴마크어로는 ‘taler’입니다. 한 마디로 그냥 ‘이야기’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요점은 키르케고르는 자신의 어떤 작품도 ‘설교’가 아니라고 말했다는 데 있습니다. 설교의 가치를 지니지 않는 글, 설교라 말할 수 없는 글, 그 정도의 ‘권위’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의 겸손의 표현입니다.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어떤 설교보다 기독교의 본질적인 개념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2. 제거 불가능한 고난

 사람들은 고난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신앙의 힘으로 고난을 극복하고자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고난, 역경, 환난을 제거해달라는 기도를 무엇보다 간절하게 합니다. 이런 기도의 이면에 숨겨진 생각을 보면, 고난이 혼합된 기쁨은 아직 완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맛보기 바랍니다. 이 기쁨은 모든 불순물이 제거된 순전한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이 기쁨에는 세상의 어떤 고난도 없는, 그야말로 기쁨 밖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그의 작품에서 박살나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 책입니다.

 독자들 중에 고난을 제거하는 방법을 얻기 위해, 남은 생애 가운데 고난 없이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을 찾기 위해, 이 책을 선택했다면 아마도 큰 실망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 책은 고난을 제거할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 책은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키르케고르는 고난을 제거할 마음이 없습니다. 더 정확히 말해, 고난을 기독교의 기쁨 속에 제거 불가능한 요소로 남겨두기를 바랍니다. 믿음, 소망, 사랑 그 중에 제일은 사랑입니다. 사랑 없는 믿음과 소망은 울리는 꽹과리이듯이, 고난 없는 기쁨도 울리는 꽹과리입니다.

 이 작품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고난의 복음』에 나오는 이야기를 인용하자면, 환난의 길, 고난의 길은 잘못된 표현입니다. 이것은 기독교를 착각하도록 부추긴 대표적 표현입니다. 아니, 이 표현은 무한히 바뀌어야 합니다. 고난의 길이라고 말할 때는 마치 고난과 길을 분리할 수 있을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기도실에 가서 기도했던 것입니다. 나의 삶에, 나의 인생길에 고난을 제거해달라고 기도실에서 매달렸던 것입니다.

 하지만 명심하십시오. 기독교는 고난 자체가 길입니다. 바로 이것이 기독교가 말하는 진리이신 그분이 가신 길의 본질입니다. 고난 자체가 길인 경우, 고난을 제거하면 길이 사라집니다. 따라서 고난은 이 길을 가는 자에게 필연적입니다. 결코 제거할 수 없을 뿐더러 제거하기 바라는 것은 말 그대로 지옥행 열차를 타겠다고 결심한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고난을 제거해달라고 기도했습니까? 인간적으로 말해, 고난을 원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이것이 맨 정신으로 가능할까요? 물론, 키르케고르는 고난을 원하는 것은 맨 정신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3. 불가능한 소원

 세상에서 고난당하기를 원했던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제 강점기에 독립을 위해 투쟁하기를 선택했던 독립 운동가들도 고난당하기를 소원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키르케고르는 이런 사람들도 고난당하기를 원한 것 같지만 실상은 싸우기를 원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쾌락을 즐기며 인생을 잠에 빠져 살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노력 없이 이익을 얻기 위해 재치가 넘치는 삶을 원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싸우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싸움을 위해 싸우기를 원하는 것은 결코 고난당하기를 원치 않는 것입니다. 주의하십시오! 이것은 최고의 것을 닮은 정반대의 것입니다.

 키르케고르는 이 부분에 대하여는 더 통렬합니다. 이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강한 자인지, 싸움으로써 획득한 명예를, 암묵적으로 그 증거를 갖기를 원했다는 것입니다. 싸우면서 강자가 됨으로써, 싸우기 위한 지속적 몸부림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자신의 자존심Selvfølelse을 새롭게 하기를 원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평안과 고요 속에 정착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싸움에 대한 열망이 너무 컸습니다. 싸움이 이제 끝났다는 어떤 소식도 듣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활시위bowstring의 자존심은 오직 한 가지, 전투에서 당겨지기를 열망하듯이, 아무리 많은 승리를 얻어도 느슨해져 창고에 처박히는 것, 이 한 가지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듯이, 그들도 역시 싸우는 중에, 전투의 날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분투의 긴장 속에, 전투의 소용돌이 속에 살고 죽기를 원했습니다.

 따라서 지혜로운 말인 ‘고난당하는 것’, ‘고난당하기를 소원하는 것’이라는 말을 사용했을 때, 이것은 오해, 기만, 착각이었습니다. 누군가 그에게 그의 말을 반복하고 “그래, 너는 올바른 선택을 한 거야.”라고 말한다면, 그리고 이제 그에게 그 말들이 함의하고 있는 것을 설명했다면, 세상을 향해 싸우기 위해 소원하고 도전했던 저 공격적인 사람들도 아마도 용기를 잃게 되었을 것입니다. 싸움에 빠지는 대신에, 그는 아마도 고난당하는 데에 빠졌을 것입니다.

 고난당하기 원하는 것과 고난을 선택하는 것, 이것은 인간의 마음에 결코 일깨우지 못했던 소원입니다. 이것을 생각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있을 뿐입니다. 고난에 대한 생각과 고난의 기쁜 복음을 파악하기 위해서, 고난을 견디고 실제적으로 고난으로부터 유익을 얻기 위해서, 고난을 선택하고 이것이 실제로 영원한 행복으로 이끄는 지혜가 되기 위해, 사람은 이 길을 걸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고, 그분께 배워야 합니다.


4. 기쁨

 역자로서 이 작품을 평가하자면, 바로 이 불가능한 소원, 고난당하기 원하는 소원, 이 소원에 불을 붙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고난당하는 중에 기뻐할 수 있을까요? 키르케고르는 명확히 이 기쁨을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는 일곱 번째 강화인 “역경이 형통인 기쁨”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것이 기쁘다는 것을 발전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역경이 형통이라는 것을 믿는 자, 그는 이 강화가 필요 없습니다. 이것이 기쁘다는 것을 그에게 설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것을 믿지 못하는 자는 한 순간도 낭비하지 말고 믿음을 붙잡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키르케고르는 이 기쁨에 대해 말하지 않으려 하는 것은 명확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제대로 읽고 있는 독자라면, 고난당하는 중에 어떤 기쁨이 있는지 충분히 유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기쁨은 형용할 수 없는 기쁨, 서술이 불가능한 기쁨입니다. 따라서 말할 수 없습니다. 키르케고르는 그의 일기에서 일찍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1838년 5월 19일 오전 10시 30분. 사도가 어떤 분명한 이유도 없이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고 외쳤던 것만큼 설명 불가능하게 우리 사이로 빛을 밝히는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이 존재한다. 이 기쁨은 이런 저런 기쁨이 아닌, ‘마음 심연에서 나오는, 입과 혀를 가진’ 영혼의 충만한 외침outcry이다: “나는 기쁨으로 즐거워한다. 나의 기쁨으로, 기쁨을 통해, 기쁨 가운데, 기쁨에 의해.” 말하자면, 갑자기 우리의 다른 노래를 방해하는 어떤 천상의 후렴refrain이다. 산들바람처럼 시원하게 하고, 상쾌하게 하는 기쁨, 맘므레 평원을 가로질러 영원한 처소로 불어오는 무역풍에서의 미풍이다.(JP, 5:5324)


 이 기쁨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영원의 개념이 필요합니다. 먼저 키르케고르에게 영원과 시간은 이질적입니다. 어거스틴에게 시간과 영원의 문제가 이질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어거스틴에 의하면 시간은 영원에 흡수됩니다. 시간은 창조와 함께 생성된 것이고, 영원은 무시간성으로 표현됩니다. 하지만 키르케고르에게, 시간은 영원과 섞일 수 없고 언제나 물과 기름처럼 이질적인 속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시간에서 살아갑니다. 시간에 의해 길들여진 존재입니다. 문제는 시간적인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시간 안에 있는 모든 존재는 언젠가는 다 사라집니다. 여기에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시간 안에서는 어떤 존재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많은 사상가들이 있었지만, 시간과 자유의 문제를 생각한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키르케고르는 시간 속에 살아가는 인간이 자유로울 수 있는가를 생각합니다.

 시간 안에서 인간이 왜 자유로울 수 없는지를 간단히 설명해보겠습니다. 인간은 시간 속에서 개인이면서 사회 속에 살아갑니다. 문제는 개인인 인간이 사회 밖을 벗어나서 살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인간은 한 마디로 ‘사회적 존재’입니다. 이것은 나뭇잎과 나무와의 관계와 같아서, 나뭇잎이 나무 밖에서 살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문제는 나뭇잎(개인)이 떨어져 죽어도 나무는 살고 있다는 것이고 나무는 영속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개인은 시간에서 죽고 사라져도 지금까지 사회는 존속하고 있습니다. 이 사회 속에서, 인간은 사회의 규칙과 규범을 지키고 살아가야 하기에, 참다운 자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연이 자연법칙 속에 있어 자유롭지 않듯, 인간은 사회법칙 속에 있어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따라서 키르케고르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원을 끌어들입니다. 영원에서, 정신의 영역에서, 키르케고르가 좋아하는 용어, ‘하나님 앞에서’ 존재하지 않는 유일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일까요? 시간에서 영속성을 가지고 존재했던 사회, 이 사회가 영원에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영원에서는 오직 개인만 존재합니다. 영원에서는 각 개인은 유일무이한 존재입니다. 영원에서는 그는 혼자입니다. 영원에서는 자식도 없습니다. 영원에서는 아내도 없고, 부모도 없고, 친구도 없습니다.

 키르케고르는 이 영원을, 이 사회의 질병을 치유할 수 있는 치유책으로 끌어들입니다. 또한 이 영원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코람데오이고, ‘하나님 앞에서’입니다.

 그런데 이 영원이 어떻게 기쁨이 되는가를 생각해봅시다. 사회는 영속성이 있습니다. 마치 사회는 절대 사라질 수 없는 영원성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개인은 어떠한가요? 나뭇잎처럼 죽고 사라지고 맙니다. 바로 이것이 시간 안에서의 고통의 원인입니다. 

 한 개인은 너무나 무력한 존재입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낙을 즐긴다 해도, 언젠가는 죽고 사라져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많은 업적을 남긴다 해도, 그도 인간이고 허무하게 죽고 사라지고 맙니다. 이것을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다시 말해, 시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인식한다면, 이것이 우리를 불행하게 합니다. 동물은 시간에 대한 개념이 없어 고통당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반면, 시간에 대한 개념이 정립된 인간은 유일하게 시간으로 인해 고통당합니다. 그래서 이 강화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시간적인 것만 시간에서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시간은 당신에게 시간적인 것 말고는 어떤 것도 빼앗을 수 없습니다. 다른 측면에서는 이렇습니다: 영원한 것은 영원히 획득될 수 있습니다.”


 상실의 고통이 아무리 가혹하더라도, 그것은 시간적인 것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키르케고르는 고난을 제거하려는 것이 아니고, 영원에 의지하여 고난을 견딜 수 있는 용기를 주고자 합니다. 그는 또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지금 우리가 기쁨을 포획하기 위해, 기쁨으로 고난당하는 자를 사로잡기 위해 이 생각을 한데 모아봅시다. 시간적인 것이 시간에서만 상실되고 영원한 것은 영원히 상실된다면, 유익은 분명합니다. 내가 시간을 상실하면 영원을 얻습니다.”


5. 시간의 성화

 하지만 시간을 상실하는 일, 이 세상에서 유한한 것을 포기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는 포기가 아니라, 의도적인 포기를 말합니다. 여기에는 언제나 고통이 따릅니다. 키르케고르에게, 영원은 시간의 반대입니다. 영원은 시간 전체에 저항합니다. 시간을 양적으로 축적한다고 해서 영원이 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자신을 수치로 계산하여 영원을 닮으려 합니다.

 예를 들어, 고난당하는 자를 생각해보십시오. 그의 고난은 결코 한 번이 아닙니다. 시간의 계산법에 따르면, 그는 하루, 이틀, 사흘, … 등 많은 날들을 고난당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허구한 날 고난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간은 이렇게 고난이 영속될 것처럼 고난당하는 자를 괴롭힙니다.

 하지만 기생식물이 아무리 길게 자라난다 해도, 아무리 땅에서 넓게 퍼진다 해도, 그 키가 숙주식물 이상 더 자랄 수 없는 것처럼, 시간 역시 그러합니다. 영원이 다스릴 때, 시간이 아무리 오래 지속된다 해도, 시간은 한 순간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거꾸로 생각해야 합니다. 시간이 기생식물처럼 고난당하는 자를 의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난당하는 자의 종이었던 시간이 고난당하는 자의 주인이 되려 합니다. 하지만 시간을 저지하는 힘은 영원뿐입니다.

 여기에는 목적과 수단의 문제가 존재합니다. 사도행전 8:18-20절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먼저 시간과 영원을 생각하자면, 시간(돈)이 영원(성령)에 봉사해야 할까요, 영원이 시간에 봉사해야 할까요?

 다음으로 목적과 수단을 생각하자면, 성령을 수단 삼아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인가요, 돈을 수단 삼아 성령을 얻는 것이 목적인가요? 혹은 시간적인 것(돈)으로 영원한 것(성령)을 살 수 있을까요?

 목표나 목적은 수단보다 언제나 높습니다. 그때, 이 땅의 유익을 얻기 위해 영원한 것으로 얻으려 한다면, 이 땅의 유익이란 그에게 영원한 것보다 더 높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 그는 영원한 것을 상실합니다. 이것이 키르케고르가 말한 멸망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십시오.

 이 땅의 유익을 위해, 자신의 사익을 위해, 자신의 영적 우월을 뽐내기 위해, 자신의 영적 자만에 봉사하기 위해, 성령을 이용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시간에서 영원을 얻기 위해 살지 않고, 시간을 포획하기 위해 영원을 이용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를.

우리는 무엇보다 ‘시간을 성화’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원의 도움으로 말입니다. 아브라함 허셸은 『안식』에서 시간의 성화를 말한 바 있습니다.


 “시간의 문제는 시간을 성화함으로써만 풀 수 있다. 시간처럼 붙잡기 어려운 것도 없다. 하지만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에게 시간은 변장한 영원이다. 창조는 하나님의 언어이고, 시간은 그분의 노래이며, 공간의 사물은 그 노래에 담긴 자음이다. 시간을 성화하는 것은 하나님과 한 목소리로 모음들을 노래하는 것과 같다. 공간을 정복하고 시간을 성화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에게 주어진 과제다.”


 하지만 아브라함 허셸은 이 이상 발전시키지 못했습니다. 도대체 시간을 성화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역자는, 키르케고르에게 있어, 시간의 성화란 순종이라 확신합니다. 순종은 시간을 구원하는 힘입니다. 주님은 고난을 통해 순종함을 배우셨습니다.(히5:8) 그분은 삶과 죽음에서 순종함으로 시간적인 모든 것을 내려놓으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고난당함으로 순종하는 자는 주님의 영광을 선포합니다. 따라서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주님의 영광을 위한 찬양의 노래입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뜻이 이 땅 위에 울려 퍼지게 하는 천상의 노래입니다. 공간의 정복은 역설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시간적인 모든 것을 포기할 때만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이 과정을 통해 어떻게 성화될까요? 그리스도인은 고난을 통해 성화되고 깨끗해집니다.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통해 순종함을 배운 것처럼, 그리스도인 역시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울 때 성화됩니다. 영원의 사고로 생각하면, 한 번의 고난은 이동, 통과일 뿐입니다.

 당신은 고난을 통과해야 합니다. 이 고난이 당신의 인생만큼 길다할지라도, 마음을 찌르는 칼이 된다 할지라도(눅2:35), 그것은 겨우 통과에 불과합니다. 당신을 통과하고 있는 것이 고난이 아닙니다. 당신이 고난을 통과합니다. 영원의 의미에서, 당신은 절대로 다치지 않습니다.

 시간에서, 시간의 이해에서, 고난은 끔찍한 것처럼 보입니다. 시각적인 착각에 의해, 고난이 마치 당신을 뚫고 지나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고난 속에서 죽어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고난을 통과하고 있는 것은 바로 당신입니다. 바로 이것이 시각적 착각입니다.

 이것은 마치 한 배우가 다른 배우를 죽이는 연기와 같습니다. 이 연기에서 한 배우가 다른 배우를 정확히 찌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이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습니다.(눅21:18) 살해당한 배우가 해를 당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듯이, 다니엘이 해를 당하지 않고 사자 굴에서 나오듯이(단6:10-23), 그의 세 친구들이 용광로 속에 걸어 들어가지만 해를 당하지 않듯이(단3:8-27), 믿는 자의 영혼도 모든 일시적인 고난에 의해 해를 당하지 않고 영원으로 걸어갑니다. 죽음에 의해 다치지 않습니다.

 모든 일시적인 고난은 신기루입니다. 영원의 의미에서 죽음 자체는 어릿광대입니다! 좀과 동록이 영원의 보물을 소멸할 수 없듯이(이보다 더 불가능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도둑이 그것을 훔칠 수 없듯이(마6:19-20), 일시적인 고난은 그것이 아무리 오래 지속된다 해도, 눈곱만큼도 영혼에 해를 가할 수 없습니다. 어떤 병도, 어떤 기근이나 궁핍도, 어떤 추위나 더위도 아무리 많은 것을 소멸한다 해도, 영혼을 소멸할 수 없습니다. 어떤 중상모략도, 어떤 모욕도 어떤 인격적 공격이나 핍박도 아무리 훔치고 강탈한다 해도, 영혼을 소멸할 수 없습니다. 죽음도 영혼을 소멸할 수 없습니다!

 한 번의 고난은 영혼에 어떤 흔적도 남길 수 없는 통과입니다. 아니, 훨씬 더 영광스럽게도, 이 고난은 영혼을 완전히 깨끗하게 하는 통과입니다. 결과적으로 청결은 통과가 뒤에 남겨 놓은 흔적입니다. 금이 불 속에서 깨끗해지듯이, 영혼은 고난 속에서 깨끗해집니다.(말3:3) 그러나 불은 금에서 무엇을 제거합니까? 이것을 제거한다고 부르는 것은 이상한 말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불은 금 속에 있는 불결한 요소들만 제거하니까요. 그렇다면, 금은 불 속에서 무엇을 상실합니까? 이것을 상실한다고 말하는 것은 이상한 말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금은 불 속에서 모든 비천한 것들을 상실하고 있으니까요. 다시 말해, 금은 불을 통해 이득을 얻고 있습니다.

 모든 일시적인 고난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고난이 아무리 힘들고, 아무리 오래 지속되더라도, 고난은 본질적으로 무기력합니다. 고난은 불결한 것만 제거할 뿐입니다. 다시 말해, 고난은 청결함을 줍니다.


6. 결론

 오늘날 한국 교회는 고난을 제거하는 일에 몰두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진리로 고난당하기보다 고난을 회피하기 위한 도구로 진리를 활용하려 했습니다. 이것은 가장 깊은 타락으로 사회에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만을 양산할 뿐입니다. 세상은 진리 가운데 있지 않습니다. 곧, 비진리의 세상 속에 진리를 선포하는 것은 고난당하는 길입니다. 이것은 마치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에 들어가 민주주의를 선포하는 것 이상으로 목숨을 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 일이 세상 속에 살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일입니다. 이 일은 언제나 위험 가운데 있습니다.

 요즘 코로나 사태로 세상이 전복되었습니다. 오죽하면 ‘뉴노멀’이라는 말이 나올까요? 정상과 비정상이 전복되었습니다.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가기 어렵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마음 한 편에는 이 위기가 지나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루 속히 정상으로 복귀하기 원하고, 여행도 다니고 싶고, 마스크도 벗고 싶어 합니다. ‘집단 면역’만이 살 길이고, 집단면역이 가능할 때만 정상으로 복귀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 세계는 백신 주사를 맞느라 한창입니다.

 이 사태를 영적으로 이해해 봅시다. 도대체 영적으로는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가요? 저는 시간에 길들여진 삶이 정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적으로는 영원에 길들여진 삶을 살 때만 정상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살기로 결단하는 한, 시간적인 것에 길들여진 일반 대중들이 이 삶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영적인 삶에서 ‘뉴노멀’이란 영원에 길들여진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이해한다면, 코로나 사태는 끝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이 위기가 지나가길 바라지만, 영적인 위기는 지나가는 법이 없습니다. 또한 코로나는 집단 면역으로 돌파할 수 있는 반면, 이런 영적인 위기에는 백신 같은 것은 존재할 수도 없고, 집단 면역은 아예 불가능합니다. 그리스도인 각 개인이 영원의 도움으로 주어진 매 순간을 견딜 때만, 삶을 살아낼 때에만, 시간을 성화하고 영원을 얻습니다.


목차


개정판 서문 _9

이 책을 밀어주신 분들 _10

추천의 글 _12

역자 해제 _16


Chapter 1: 한 번 고난당하지만 영원히 승리하는 기쁨 _41

Chapter 2: 환난이 소망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소망을 구해오는 기쁨 _75

Chapter 3: 가난할수록 다른 사람을 더 부하게 할 수 있는 기쁨 _99

Chapter 4: 약할수록 당신 안에 하나님은 더 강하다는 기쁨 _129

Chapter 5: 시간에서 상실한 것을 영원히 얻는 기쁨 _157

Chapter 6: ‘모든 것을 얻을 때’, 나는 아무것도 잃지 않는 기쁨 _187

Chapter 7: 역경이 형통인 기쁨 _205


해제: 영원의 리트로넬로 _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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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령을 받은 자들의 심령에 반드시 나타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원하여 고난받는 자리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기독교는 신자들이 삶에서 겪는 고난을 효과적으로 제거하는 법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말씀에 역행하는 가르침입니다. 키르케고르는 이 부분에 있어 타협이 없습니다. 그는 방대한 지식과 날카로운 안목으로, 신자의 삶에 존재하는 고난이 어떤 역할을 하며, 왜 그것이 신자의 삶에 계속 실존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밝힙니다. 고난에 대해 말랑말랑한 가르침을 원하는 분들은 함부로 이 책을 읽지 마십시오. 심령에 큰 상처를 받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고난의 본질을 더 선명하게 배우기 원하는 분들은 용기 내어 이 책을 잡으십시오. 자신의 인생에 놓여 있는 고난의 길을 감사함으로 걸어가기로 결단하게 되실 겁니다. 

 _김관성 목사 (『본질이 이긴다』 저자)


 이 책이 주는 해석에서 우리 인생은 시간과 영원이라는 하나님의 창조 아래 있다는 것이다. 삼차원의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영원한 세계를 준비하는 이 땅에서의 고난과 역경에 우리는 어떠한 자세가 필요한가? 직면하는 삶의 여정에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가야 하는 그 고난의 동참에 키르케고르를 통해 예수님의 고난을 다시 깊이 묵상하는 도움받기를 권면하며 추천한다. 

 _육근원 목사 (글로벌비전채플 담임목사)


 고난의 기쁨이 무엇인지 궁금하면 이 책을 찬찬히 들여다보라. 큰 상실을 경험했다면 이 책을 읽으라. 당신 안의 속사람이 날갯짓을 시작하는 것을 경험하게 되리라. 이창우 선생님의 노고에 감사하며 사명감을 가지고 키르케고르의 강화집들을 번역하는 그에게 깊은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 키르케고르의 《고난의 복음》과 《마음의 정결함》이 그의 친절하고 탁월한 번역으로 계속해서 출간되기를 기대한다. 

 _윤덕영 목사 (키르케고르 학회 총무ㆍ삼성교회 위임목사)


 대부분의 목사는 성경의 가르침을 바로 전달하고 있는지 점검합니다. 이 책은 그 동안 고난에 대하여 바르게 설교하였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이 책은 고난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줍니다. 그리고 고난에 대한 근시안적 관점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고난을 영원이라는 시간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합니다. “사람은 단 한 번의 고난을 당한다.” “영원의 관점 에서 고난은 신기루이다.” 고난에 대한 키르케고르의 설명은 깊은 울림을 줍니다. 번역한 이창우 목사의 노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_이영호 목사 (부천침례교회 담임목사)


 오늘날 철학자들은 물론하고 성서학자들도 관심두지 않는 이 많은 성경에 대한 키르케고르의 저작들을 오래전부터 외롭게 천착해온 한국의 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제가 사랑하고 아끼는 이창우 목사입니다.  이 목사는, 덴마크어를 배우고, 영어와 덴마크어로 키르케고르를 독해하고 나서 번역하고, 이를 온라인에 게시하고, 종국에는 종이책으로 출판하는 지난한 작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는 또한 각 책마다 해 제를 달고 있습니다. 그는 이 모든 작업을 지금까지 10년 넘게 혼자서 합니다. 

독자제위께서는 이러한 몇 가지 배경을 염두에 두고 본 번역서를 읽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동시에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자신의 믿음을 점검해보는데 지대한 감동을 받으실 것으로 확신하여 일독만 아니라 숙독을 권합니다. 

 _장동수 교수 (전 한국침례신학대학교 신약학 교수)


 값비싼 향수의 본질은 그것을 뿌렸을 때만 향기가 퍼지는 것이 아니라 밀폐된 병속에 갇혀 있을 때도 향기를 내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주어진 영적재물은 전달함으로 다른 사람을 부요케 한다. 여기에 기쁨이 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고 우리 인간은 피조물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우리를 중요한 존재로 만드신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능해진 일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강함이다. 그 하나님의 강함이 우리에게 기쁨을 준다. 

 시간이라는 한계속에서 우리는 시간적인 것들, 일시적인 것들을 상실 한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영원히 획득될 수 있다. 거기에 기쁨이 있다. 

 바람이 배를 목적지로 이끈다면 사람들이 그것을 역풍이라 불러도 선원에게 그것은 순풍이다. 역경은 목표로 인도한다. 따라서 역경이 형통이 될 수 있다. 거기에 기쁨이 있는 것이다. 

 《고난의 기쁨》에 담긴 키르케고르의 주옥같은 강화를 통해 그의 통찰력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추천하며 일독을 권한다. 

 _조은식 교수 (키르케고르 학회 회장ㆍ숭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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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렌 키르케고르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출생. 7형제의 막내로 태어났으며, 소년시절부터 아버지에게 기독교의 엄한 수련을 받았고, 청년시절에는 코펜하겐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연구하여 1841년에 논문 <아이러니의 개념에 대하여> 로 학위를 받았다. 1837년경 그가 스스로 "대지진" 이라고 부른 심각한 체험을 하였는데 그것은 죄의식의 자각이었다. 그것을 계기로 인생을 보는 눈과 기독교를 보는 눈에 근본적인 변혁이 생겼다. 그래서 그는 짧은 생애였지만, 단독자로서의 신을 탐구하는 종교적 실존의 존재방식을 추구하는 삶을 살았다. 그가 쓴 책으로는 <죽음에 이르는 병>,<기독교의 수련>,<이것이냐 저것이냐>, <공포의 전율>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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