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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설교 2 (42:1-89:52) - 은혜와 영광

성경 교사와 설교자를 위한 심화과정 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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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오순

도서출판 사무엘

2024년 03월 03일 출간

ISBN 9791198669728

품목정보 152*225*14mm296p460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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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문이 말하는 ‘그 메시지’ 찾고자

 • ‘그 메시지’를 오늘 우리에게 적실하게 적용

 • ‘석의(exegesis)’와 ‘적용(application)’을 살리는 시편 설교의 정수



시편을 설교하면서 언제나 두 가지를 마음에 품었습니다. 첫째는, 본문이 말하는 ‘그 메시지’를 찾고자 했습니다. 둘째는, ‘그 메시지’를 오늘 우리에게 적실하게 적용하려고 했습니다. 오늘의 사역 현장에서 가장 안타까운 점은 신학과 목회 현장에서의 주파수가 다르고, 본문과 설교의 주파수가 다르고, 설교와 청중의 삶 사이의 주파수가 다르다는 데 있습니다. 그것은 ‘본문을 잃어버린 설교’이면서 ‘청중을 잃어버린 설교’입니다.


따라서 설교자가 전해야 하는 ‘성경 본문(text)’과 그 본문을 들어야 하는 ‘청중(context)’이라는 두 개의 기둥을 살리려고 애썼습니다. 여기에 덧붙여서 대체할 수 없는 예수님의 정체성과 교회 공동체성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설교자가 ‘석의(exegesis)’와 ‘적용(application)’이라는 설교의 두 기둥을 균형 잡으면 잡을수록 우리 교회는 양 떼가 뛰노는 푸른 초장으로 변화할 겁니다.


목차


제2권

01 하나님을 희망하라(42:1-43:5) • 1

02 우리를 구원하소서(44:1-26) • 9

03 주님의 보좌는 영원하며(45:1-17) • 15

04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하신다(46:1-11) • 21

05 큰 왕이신 여호와(47:1-9) • 27

06 시온, 하나님의 도성(48:1-14) • 33

07 재물을 의지하는 자의 어리석음(49:1-20) • 39

08 감사로 제사를 지내며(50:1-23) • 45

09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51:1-19) • 52

10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리로다(52:1-9) • 60

11 어리석은 사람은(53:1-6) • 66

12 나를 돕는 분(54:1-7) • 72

13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라(55:1-23) • 77

14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56:1-13) • 84

15 굳건한 마음(57:1-11) • 90

16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58:1-11) • 95

17 나의 힘이시여(59:1-17) • 100

18 우리를 도와주소서(60:1-12) • 105

20 하나님만 바람이여(62:1-12) • 117

21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63:1-11) • 123

22 다 자랑하리로다(64:1-10) • 128

23 은혜의 하나님, 영광의 하나님(65:1-13) • 133

24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66:1-20) • 139

25 모든 끝이 하나님을 경외하리로다(67:1-7) • 146

26 하나님이 일어나시니(68:1-35) • 151

27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69:1-36) • 159

28 나에게 서두르소서(70:1-5) • 165

29 백발 성도의 믿음(71:1-24) • 170

30 왕의 이름이 영구함이여(72:1-20) • 176

    

제3권

31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73:1-28) • 182

32 하나님이여, 일어나소서(74:1-23) • 189

33 바르게 심판하시는 하나님(75:1-10) • 196

34 누가 주님 앞에 설 수 있습니까(76:1-12) • 201

35 양 떼 같이 인도하셨나이다(77:1-20) • 206

36 다음 세대에 알리라(78:1-39) • 212

37 기억하라(78:40-72) • 220

38 언제까지죠(79:1-13) • 226

39 우리를 돌이키소서(80:1-19) • 231

40 들으라(81:1-16) • 238

41 신들을 재판하시는 하나님(82:1-8) • 244

42 지존자로 알게 하소서(83:1-18) • 249

43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84:1-12) • 255

44 우리를 돌이키소서(85:1-13) • 261

45 은총의 표적을 보이소서(86:1-17) • 266

46 시온에서 났나니(87:1-7) • 273

47 오직 주님께 부르짖었사오니(88:1-18) • 277

48 인자와 성실의 하나님(89:1-37) • 283  

49 여호와여 언제까지니이까(89:38-52) • 291


참고서 • 296


본문 펼쳐보기


01 하나님을 희망하라


말씀 시편 42:1-43:5

요절 시편 42:5

찬송 95장, 484장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우리는 오늘부터 시편 제2권을 시작합니다. 그 첫 번째인 42편에는 “고라 자손의 교훈시”라는 표제가 붙었습니다. ‘고라’는 레위의 후손으로 다윗 시대에는 성가대였고(대상 6:31, 37), 성전 문지기였습니다(대상 26:1). 우리는 그 후손이 이 시편을 쓴 것으로 믿습니다. 그리고 42편과 43편은 한 편의 시입니다.


이 시의 배경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하나님과 성전에 대한 그리움입니다. 시인은 성전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는 성전에 가지 못하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함을 안타까워했습니다. 둘째로, 시인은 병에 걸려 하나님의 구원을 갈망했습니다. 그는 병으로 하나님한테서 멀리 떨어졌다고 여겨 낙심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께 희망을 두고 그분을 갈망합니다.


시인은 성전과 하나님을 얼마나 갈망합니까? 42:1을 봅시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사슴’은 희생제물로 사용하지는 않았으나 정결한 동물에 속했습니다. ‘시냇물’은 철철 넘쳐흐르는 물이 아니라, 바닥을 따라 흐를 듯 말 듯 흐르는 가는 물줄기입니다. 하지만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물입니다. 목마른 사슴은 물을 간절하게 찾습니다. 물을 찾지 못하는 사슴의 생명은 위협을 느끼며 불안하고 초조해합니다. 심한 가뭄으로 물이 부족한 상태에서 시냇물은 사슴에게 그 자체로 생명을 뜻합니다.


이처럼 시인은 누구를 찾습니까? 시인의 영혼이 주님을 찾기에 갈급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몹시 원하는 마음을 사슴의 갈증으로 표현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합니다.


왜 그는 하나님을 그렇게 갈망합니까? 2절입니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얼굴을 뵈올까’라는 말은 ‘얼굴 앞에 언제 보이게 되는가?’라는 뜻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볼 수 없습니다(출 33:20). 그래서 ‘언제 보이게 됩니까?’라고 묻습니다. 시인이 갈망하는 바는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일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의 지성소에 나아감을 뜻합니다.


왜 그는 지성소에 나가려고 합니까? 하나님을 만나서 예배하려고 합니다. 이것을 ‘대면 예배’라고 합니다. 성전의 대면 예배는 역동적이며 경외감을 일으킵니다. 예배자는 나팔과 비파, 수금, 소고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춤과 현악, 퉁소,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했습니다. 성전은 생명의 샘입니다. 지성소에는 하나님이 있으시고, 그곳에서는 생명의 샘이 솟아납니다(시 36:9). 따라서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나서 예배함은 생명을 소유함입니다. 반면 성전에서 멀어짐은 생명의 샘에서 멀어짐입니다. 그것은 곧 죽음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시인에게 종일 무슨 말을 했습니까?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4)? 이 말은 ‘너를 도우실 하나님은 없다.’ ‘하나님은 너를 버리셨다.’라는 뜻입니다. 시인이 그런 현실에 놓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신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원수는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에 관해 조롱했습니다. 그리고 시인에게 회의를 심었습니다. 원수의 말은 시인의 믿음을 흔들고, 하나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눈물은 밤낮으로 그의 빵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음은 눈물이고, 그 눈물은 빵이 되었습니다(3). 그는 원수가 자기에게 했던 그 말을 하나님께 합니다. “나의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그때 그는 무엇을 기억합니까? 그는 옛적에 성전 순례, 축제 행사, 구원 역사에서의 하나님의 승리를 기억합니다(4). 그는 전에 축제의 행사를 지키는 사람과 함께 했던 그 시절의 대면 예배를 그리워합니다. 순례자는 1년에 세 번- 유월절, 초실절, 그리고 초막절에 예루살렘 성전으로 모였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께 예물을 직접 드리며 기뻐했습니다. 시인은 그때를 기억합니다. 그의 마음은 복받쳐 올랐습니다. 그는 억눌렸던 감정을 쏟아 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무엇을 말합니까? 42:5를 읽읍시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그는 자신과 대화합니다. “내 영혼아, 왜 그렇게 낙심하는가?” “왜 그렇게 불안해하는가?” 그는 하나님의 성전에 가지 못해서 낙심하고 불안해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얼굴을 정말로 보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현실로 낙심하고 불안해합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말합니다.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이 말은 ‘하나님을 희망하라.’라는 뜻입니다. 그는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라고 물었던 사람에게 “나는 하나님을 희망한다.”라고 말합니다.


왜 그는 하나님께 희망을 둡니까? 그분이 ‘그의 얼굴의 구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라는 말은 ‘내 얼굴의 구원’이라는 뜻입니다. 시인은 그분이 구원하실 줄 믿기에 그분을 찬양합니다. 희망과 찬양은 믿음에서 왔습니다. 믿음과 의심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믿음이 떠오르면 의심이 가라앉지만, 의심이 떠오르면 믿음이 가라앉습니다. 그런 중에 믿음이 흔들리기도 하지만, 그 흔들림 안에 희망이 있습니다. 그 희망에서 믿음이 다시 싹틉니다.


시인이 희망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성전에 가서 하나님을 만나는 일입니다. 그는 지금 성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성전에 가지 못하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므로 낙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그는 하나님께 희망을 둡니다. 그는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나 대면으로 예배할 희망을 품었습니다. 그렇게 인도하실 그분을 믿고 그분을 다시 찬양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비대면 예배’와 ‘대면 예배’를 함께 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비대면 예배’는 나름의 성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대면 예배’로 다시 옮길 때입니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성경에서 대면으로 예배하라.’라는 근거가 없다.” “하나님을 만나는 일은 어차피 비대면인데, 대면을 강조할 필요가 있는가?”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오늘의 시인은 무엇을 말합니까? 그는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그 영혼이 주님을 찾기에 갈급합니다. 그는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나 대면으로 예배하기를 갈망합니다. 사실 하나님은 어디에나 다 있습니다. 구약 시대라고 해서 성전에만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시인은 성전에 가서, 그분을 직접 만남으로 예배하기를 사슴이 물을 찾듯이 갈망합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을 성전에서 대면으로 예배할 때 삶의 생명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삶의 역동성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과의 만남을 사모했고,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먼저 하나님과의 만남을 갈망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대면하는 예배를 통해 생명의 풍성함과 삶의 역동성을 체험해야 합니다. 그 점에서 대면 예배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둘째로, 병에서 치료받는 일입니다. 사람은 늙거나 병이 심하면 삶의 의지를 잃습니다. 낙심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스스로 나무랍니다. “왜 낙심하느냐?” 그는 생각의 전환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절망스러운 삶의 한복판에 삽니다. 우리는 죽음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절망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구원하실 하나님이 있으십니다. 그분께 소망을 둬야 합니다. 희망은 하나님 구원의 행동을 기다리는 겁니다.


그런데도 시인은 어떤 상황에 있습니까? 시인은 희망을 묵상했음에도 아직은 낙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한테서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과의 분리 불안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그는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님을 기억합니다(6). ‘요단’은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크고 가장 유명한 강입니다. 그 물은 디베랴 호수로 들어가고, 마침내 ‘소금 바다’로 흘러듭니다. ‘헤르몬’은 약 2,700m에 이르는 큰 산입니다. ‘미살’은 헤르몬 가까이에 있는 어떤 지역입니다. 이 세 지역은 요단강의 수원지입니다. 이 지역은 예루살렘 성전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시인은 그곳에서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어떻게 주님은 반응했습니까? 주님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님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시인을 휩쓸었습니다(7). ‘물’은 생명이면서 동시에 죽음입니다. 사람은 폭포, 깊은 바다, 파도, 그리고 물결 등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혼돈의 세력을 상징합니다. 시인의 고통과 불행을 묘사합니다.


‘시냇물을 찾는 것’과 시인의 ‘눈물’이 ‘폭포’, ‘깊은 바다’, ‘파도’, ‘물결’로 대체했습니다. 시인은 필사적으로 물을 찾지만, 그 물은 생명을 주는 물이 아니라 파괴하는 물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파괴하는 무서운 물을 보내십니다. 시인의 생명을 쥐고 계신 하나님은 그에게 죽음도 주시는 분입니다. 시인은 자기가 겪는 고통을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믿습니다.


여호와는 무엇을 하십니까? 낮에는 여호와께서 시인에게 사랑을 베푸십니다. 밤에는 여호와께서 찬송으로 그를 채우십니다. 그리고 그는 그분께 기도합니다(8).


그분은 누구십니까? 9절을 보십시오.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리로다.” 그분은 반석입니다. ‘반석’은 자주 나오는 표현으로 구원의 장소이며, 안전과 방어의 상징입니다. ‘폭포’, ‘바다’, ‘파도’, ‘물결’과 대조합니다. 통제할 수 없는 폭포 속에서도 반석인 하나님이 구원하십니다.


그런데 시인은 그 반석인 하나님께 어떻게 탄식합니까?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그는 하나님께 ‘왜’라는 말을 두 번이나 반복하며 안타까움을 토로합니다. 시인은 상을 당한 사람처럼 어두운 옷을 입고 어두운 기색을 하고 있습니다. 시인이 겪는 압제는 하나님께서 시인을 잊으시고 버리셨다는 증거입니다.


그런 그를 보고 대적은 무엇을 합니까? 대적은 시인의 뼈를 찌르는 칼같이 비방합니다.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10)? 대적은 시인의 뼈를 찌르며 모독했습니다. 뼈를 찌름은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시인은 무엇을 합니까? 11절을 읽읍시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그는 다시 자신과 대화합니다. “왜 그렇게 낙심하는가?” “왜 그렇게 불안해하는가?”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내 얼굴의 구원을 찬송하리라.”


그는 하나님께 무엇을 기도합니까? 43:1을 보십시오. “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하시되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에 대하여 내 송사를 변호하시며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시인은 자기 영혼 대신에 하나님께 말합니다. 그는 자신을 재판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의로운 재판장으로 믿습니다. 시인이 바라는 바는 원수에 대한 복수가 아니라, 정의로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정의가 이긴다는 믿음으로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현재 어떤 상태입니까? 하나님은 그의 힘입니다. 하지만 힘인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버리시니 원수가 그를 억압합니다. 그는 슬프게 다닐 수밖에 없습니다(2). 원수가 그를 억압하는 일보다 하나님이 그에 대해 침묵하심이 더 슬픈 일입니다.


그는 계속해 무엇을 기도합니까? 3절을 보십시오.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 ‘빛’은 성전에 계신 하나님한테서 나오는 빛입니다. 거룩한 산과 성전으로 가는 길을 비추는 빛입니다. ‘진리’는 그 길을 바르게 인도하는 ‘언약의 신실함’의 표현입니다. 시인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왔을 때 여호와께서 그들을 밤낮으로 행진하도록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음을 떠올립니다(출 13:21). 그리하여 주님의 거룩한 산, 주님이 계시는 곳에 이르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은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42:2)에 대한 대답입니다. 하나님은 빛과 진리를 보내셔서 그를 성전으로 인도하실 겁니다.


그는 성전에 가서 무엇을 하려고 합니까? 4절입니다.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제단’은 예배를 뜻합니다. 예배는 미래에 대한 희망입니다. 제단은 지성소의 입구에 있기에 시인은 그곳에서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얼굴을 언제나 가서 뵈올 수 있겠습니까?”(42:3)라고 물었습니다.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하나님의 제단에 들어가는 겁니다. 그는 이제 성전에서 대면으로 예배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를 수 있습니다. 그는 그 하나님을 수금으로 찬양합니다.


그는 누구에게 희망을 둡니까? 43:5를 읽읍시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이 말씀은 42:5, 11과 같습니다. 시인은 다시 자기 영혼과 대화합니다. 그는 하나님한테서 멀어짐에 대한 탄식보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음에 대한 희망을 말합니다. 지금은 비록 멀리 떨어져 있을지라도 곧 하나님을 대면으로 만나고, 예배할 수 있음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줄 믿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분을 여전히 찬양합니다.


시인은 성전과 하나님을 얼마나 갈망합니까?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갈망합니다. 왜 갈망합니까? 성전에서 하나님을 대면으로 만나서 예배하기 위함입니다. 그 예배 안에 생명이 있고 역동이 있고, 기쁨과 찬양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시인처럼 하나님을 갈망하기를 바랍니다. 성전에서 ‘대면 예배’를 통해 생명을 누리고 삶의 역동을 일으키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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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오순
성경 본문이 말하는 ‘그 메시지’를 찾아서 ‘그 메시지’를 오늘의 청중에게 적실하게 적용하는 일에 힘쓰고 있습니다. 목회학 석사(M.Div.), 신학석사(Th.M.), 실천신학 박사(Th.D.in ministry) 과정에서 설교에 관한 논문을 썼습니다. 그리고 신학박사(Ph.D.) 과정에서 그동안 배우고 연구한 내용을 통합하고 정리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모든 설교자는 설교를 잘하고 싶어 하고, 잘하려고 애씁니다. 그래야 성도가 살고 교회가 살고 나라가 살기 때문입니다. 본서가 그 일에 일조하기를 기대합니다.

단국대학을 졸업하고, 총신대 신학대학원(M.Div.), 총신대 일반대학원(Th.M.), 그리고 백석대 기독교전문대학원에서 Th.D.in ministry와 Ph.D.과정에서 각각 설교학을 공부하고 각각 학위 논문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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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품이 불가능한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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